<145화 >#145.착각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라는 이름이 어째서 나연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튀 어나온 이름에 나는 잠시 사고가 정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a
• • .몰라.”
최선의 답변이었다.
누구도 아닌 갓 성인이 된 여동생에 게 내가 야짤 작가라는 것을 바로 고백
해버릴 수 있을 리가.
그녀가 어떤 경로로 그 소설을 알아냈는지를 알아내는 지 가 먼저였다.
설마 내 휴대폰이 나 컴퓨터를 훔쳐보기 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두기기 모두비밀이 많았기에 언제나보안을 철저히 해둔 나였다.
아니면 설마 오빠 컴퓨터를...?
아니 지. 아니 지 . 내 가 알기로 오빠 컴퓨터도 잠금이 제대로 되 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리고 나연이가 멋대로 남의 전자기기를 열어봤으리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역시 그렇구나.”
뭐가 역시라는 거니. 나연아.
그녀는 자신이 생 각하고 있는 바에 확신이 생 겼는지 이 내 고개 를 두어번
끄덕였다.
“뭐가 그렇다는건데.”
“아니야. 언니는 몰라도 괜찮아.”
“…요즘나온 책이야?”
너무나도 잘 아는 것을 완벽히 모른 척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
었다.
“…언니 같은 사람들은 몰라도 괜찮아.”
나연 이의 표정은영화속 주인공이 마지막씬에 모두를희생하는듯한 느
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야. 한나연.
“…나중에. 나중에다시 얘기하자.”
“뭔데 그러는데. 자세히 얘기를 좀 해봐. 오빠 얘기 하려고 한 것 아니었어
?”
할 말이 있지만 애써 참으려고 했는지 동생은 앙증맞은 아랫입술을 꽉 깨
물었다.
“어쩌면 오빠는...”
작가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가.
정말로 이 민호가 한겨울 작가라는 것을 나연이 가 알아내 기 라도 했단 말
인가.
가슴이 쿵쿵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만약 나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오빠가 실수로 자지를 나연이한테 보여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의 답변을 기 다렸다.
“…언니 가 생 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연이 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었다.
…
아우씨... 눈치 보여...
연재 복귀를 약속한 1주일이 지났다.
꿈만 같은 1주일이 될 뻔했지만 애석하게도 나은이의 동생의 방문으로
인해 휴가의 마지막 이틀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매 일같이 즐겼던 정신 나간 개변태 플레 이들은 신기루라도 됐다는 듯이
사라져버렸고 사람 좋은 오빠를 연기해야 하는 나만이 오롯하게 남아있었
다.
나은이가 등록했었던 스터디 카페에 1주일짜리 이용권을 등록한 나는 1
인실로 하지 않았음을 무척 이 나 후회 했다.
사실 나은이의 작업 같은 경우에는 화면으로 한 눈에 야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에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 각했지만,
내가 쓰는 글이라는 매체의 특성상누가 바로 옆에서 읽지 않는한 레포트를
쓰는지 에 세 이 를 쓰는지 알 수 없다고 생 각했 었다.
내 말은 사실이 었지만 나의 적은 나였다는 것을 나는 여기에 직접 와서야
깨달을수 있었다.
터벅터벅.
누군가 내 뒤를 스쳐지 나가는 소리.
놓고 간 필통을 줍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자연스
럽게 알트탭을 누르고 있었다.
시발.혹시 읽은 것은 아니었겠지.
나유진의 타락 씬을 쓰고 있던 나는 다시 워드 프로그램 을 띄 우고는 주변
을한번슥살폈다.
사람이 좋기로 주변에서 평이 자자했던 유진은 요즘 들어 자신이 이상
해졌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이 점점
더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의 원동력 이 었던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조금씩 그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 대신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새까만욕망
의 씨앗.
투명한 물병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진성이라는 존재는 천천히 그
녀를 변화시켜 가고 있었다.
어젯밤 데이트가 떠올랐다.
집 앞에서 자신에게 격정적인 키스를퍼붓던 진성.
그의 혀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하복부에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
흡사 커다란 곤봉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크기.
그게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커다란 것이...
“선생님! 다했어요!”
멍하니 책상을 내려다보던 유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보고 나
서야 딴생 각을 멈출 수 있었다.
“아유〜 정말 예 쁘게 그렸네 요〜 자. 이 제 다음 페 이 지에 있는 이것도 한 번
그려볼까요!”
...어서 그가보고 싶었다.
유진의 삶의 척도는그렇게 서서히 진성을 향해 기울어가고 있었다.
쓰으읍...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여기서 끝내면 독자들이 한소리 하려나.
다른 작가들을 보면 좀 장기 휴재를 하고 돌아오면 일러든, 연참이든 들고
오는것 같던데.
일러는 나은이가준비해줄 형편이 되지 않았고, 연참은...
주변을 한 번 슥 둘러본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는도무지 무리인 듯 싶었다.
오늘자 원고를 빠르게 퇴 고한 나는 노트북을 후다닥 덮고 카페를 빠져
나왔다.
음악이 나 들으면서 집 에 갈까 싶어서 휴대 폰을 꺼 내든 나는 嬖건이 나 쌓인
부재중 전화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두 다 나은이 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 걱정이 됐던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왜이렇게 전화를 안받아요]
[미안. 나 작업 중이었어.]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
[일단 얼른 집에 좀 들어와 봐요. 작업 다 끝났죠?]
[응. 안그래도 집들어가는 길.]
[나연이 지금 친구 만나러 나갔으니까 당장 튀어와요. 알겠죠.]
용건이 무엇일까... 역시 나은이가 없는 동안 그간 못 나눴던 정을 나누자
는 뜻일까.
[알았어. 금방가.]
[...기다릴게요.]
[응.]
안 그래도 야설 쓰느라 아랫도리 가 간질간질했는데 잘 됐다는 생 각이 들
었던 나는 한층 더 큰 보폭으로 집을 향해 나아갔다.
약 10분 정도 거리를 지나 집에 도착하자 컴퓨터 의자에 앉아 있던 나은이
는 짧은 다리를 열심히 앞뒤로 흔들며 현관까지 나를 마중 나왔다.
“앞으로는 진동이라도 해놔요.”
“…일할 때는 신경 쓰여서 끄고 싶단 말이야.”
“나쓰러져서 누가 연락했는데 못 받으면 어떡해요.”
“내가옆에서 119불러주려고같이 살잖아.”
내 손목을 붙잡고 침실로 데 려간 나은이의 얼굴은 무척 이 나 심각해 보였
다.
“…나연이는 어디로 갔대?”
“자기네 학교 근처로 갔다고 하네요.”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벌써 친구가 있어?”
“나연이네 고등학교에서도 서울로 대학온 애들 있을 것 아니에요.”
아... 입학한지 하도 오래 지나서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시 염두하지
못한나였다.
7년 정도 지나면 입학했을 당시의 기억 정도는 흐릿해져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나를 찾은 이유는뭔데?”
“...나연이가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의 존재를 알아요.”
“...걔가?”
전혀 의외의 답변에 반문을 해버린 나는 또 나은이 가 악질 짓을 하나 싶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애석하게도 나은이의 얼굴에는 한 점 거짓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걔가그걸 어떻게 알아?
설마노벨 월드 유저인거야?”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젯밤에 갑자기 나를 붙들고 물어보더라고요.”
“흠...”
내 가 실수를 해서 걸릴 만한 뭔가가 있을까?
집필 자제도 외부에서 하고 있고 집 컴퓨터도 보안은 완벽할 텐데.
“암만생각해도 너 때문에 걸린 것 같은데?”
“오빠는뭐 짚이는 것 없어요?”
“딱히.”
“하이씨...”
어딘가불안해 보이는 나은이의 모습에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어루
만져 주었다.
“그냥 어쩌다 노벨 월드 들어갔다가 재밌게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너무 마음쓰지마.”
“아니.오빠.걔가오빠한겨울이고내가HNE인 것 알면 가만 있겠어요?”
“...난모르지.내 동생 아니니까.”
나은이는 못 산다는 말을 반복하더니 이마를 탁 쳤다.
“잘 들어요.”
“엉.,,
“걔가오빠가 씹변태 새끼인 것 알면 일단 엄마 아빠한테 전화 가는 것은
무조건이고요, 어떻게든 오빠 나한테서 떼어놓으려고 별 쇼를 다할 걸요?”
허... 확실히 그냥 대충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넘어갈 건은 아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내 쪽에 서 뭔 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었다.
“근데 나연이가 아직 별 소리도 안 했는데 내 가 먼저 찾아가서 ‘저 그런 사
람 아닙 니 다.’ 하는 것도 웃기 잖아.”
“누가 그렇게 하래요. 그냥 알아두고 항상 조심하라는 거죠. 항상도 아니
다. 딱 앞으로 꿓일 정도만.”
“알았어.그렇게 할게. 근데 그럼 설마 내가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랑관련
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쌀쌀하게 군걸까?”
물론 첫 만남부터 단추가 어긋났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나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래 좀 애교 많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기는 한데, 그렇지 않다고 확답은
못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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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원래 그런 사람이라그렇다는 말 별로 안좋아하는데 말이지.”
이번만큼은 나연이가 원래 까칠한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