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144.명탐정
스르륵.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백지 위에 인쇄된 글자들을 따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이 있던가.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은 있었어도 너무 놀란 마음에 입을 틀어막은 적
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이대로 책을 덮기에는...
우선 이 책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무척이나중요했다.
언니일 확률은...우리 언니가... 이런 걸...
모르겠다.
솔직히 언니의 집에 들어와 보지 않았더라면 죽어도 오빠의 물건이라고
확정지 었을 것 같았지 만 지금은...
0프로라고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도 아마오빠의 책이지 않을까.
처 음에 는 스릴 러 가 아닐까 생 각했었지 만 단 30페 이 지 만 읽 어본 나는 이
것이 지독히 치밀하게 설계된 야설임을 알수 있었다.
주인공 이진성의 첫 번째 타깃이 된 강수연은 지금 막 감금된 상태.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아직은 알수 없었다.
삐. 삐. 삐. 삐.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나는 다급하게 책을 다시 책꽂이에 꽂
아 넣었다.
“나연아. 우리 왔다〜”
언니의 목소리.
나는 최대한 태 연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려
했지만놀란 가슴은그걸 그리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 언니 왔어? 빨리 왔네.”
오빠의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비 닐봉투.
초록빛 파의 끄트머리 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장을 보고 온 것이 분
명했다.
“어디 아파? 얼굴이 쫌 붉어진 것 같은데.”
“좀 덥네... 집이...”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였지만 한심한 내 머리는 이 정도 변명 밖에 생각
해내지 못했다.
언니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식료품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창문을 열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남겼다.
시린 바람에 손이 차가웠지만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서 얼굴을 식혀
보고자 했다.
..뭘까. 도대체.
…
검색 페이지에 접속한 나는 한겨울과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입력해 검
색해보았다.
가장 먼저 뜬 배너에 담긴 문구.
[작품명: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작가: 한겨울]
[작품소개: 그녀들을 감금하는데 이유 따위는 필요 없었다.]
[노벨 월드에서 바로보기]
아무래도 이렇게 바로 뜨는 것을 보아하니 나름 이름이 있는 책임이 분명
했다.
그런데 노벨 월드라는 출판사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애 시 당초 온라인으로 소설을 본 적 없었기 에 나는 그냥 내 가 잘 몰라서 그
런가보다 싶었다.
페 이지를 클릭한 나는 다시 한 번 망설임에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망측한 일러스트들.
야시 시 한 간호사복을 입고 있는 아가씨 가 커 다란 장난감 주사를 들고 있
는 그림 이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는 속옷이 라도 부르기도 민망한 천쪼
가리를 걸친 처자가 브이를 하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페 이지는 남성들을 타겟팅한 소설 사이트임 이 분명했
다.
조금은 거북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 집에 존재하는 그 책의 정체가 몹시나
궁금했던 나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성인 인증이 필요한결과물입니다.-
이걸 해. 말아.
뭔가 개인 정보가유출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이트였지만 나는
그냥 가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으로 성인이 된 이후 하는 회원가입이었다.
이런데 내 주민번호가 쓰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휴대폰 인증을 끝내고
나자 19금 버튼을 ON 하는 순간 나는 침실에 혼자 있었음에도 주변을 살피
게되었다.
“허 미...”
진짜 천박하기 그지없는 사이트였다.
19금을 키기 전에도 야시꾸리한 그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은 야시시한선을 넘어서…
가슴과 비부를 모두 드러낸 여자들이 윙크를 하고 있다.
....
텔레그램 최대 소설 공유방!....
드씨, 웹툰, 소설, 등등 10만개 이상의 파일이 존재!
인터넷 주소창에 따라치세요.
엉덩이를 한껏 높이 치켜 올린 처자가스스로 엉덩이골을 벌리고 있었고,
그... 액체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가슴에 바르고 있는 일러스트 또한눈에
들어왔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그대로 다시 한 번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를 검색해
보았다.
들어 가자 보이는 것은 압도적 인 누적조회 수.
솔직히 이런 페이지에서 어느 정도 조회수가 나와야 성공한지는 모르겠지
만그냥세지 않고육안으로만보더라도 이게 몇 자리수인지 조차감이 오지
않았다.
일... 십... 백... 천만...
누적조회수가 천만이 넘어간다고...?
바보 같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 던 나는 스크롤을 살포시 내 려 공지글로 추
정되는 글들의 이름을 살펴보았다.
[히로인 송한별의 일러스트(HNE 작가님.VER)가 나왔습니다!(매우 중요
)]
잘 모르겠지 만 무척 이 나 중요하다고 했으니 까 한 번 들어 가 볼까?
용량이 제법 됐는지 버튼을 누르자마자 일러스트가 바로 보이지는 않았
다.
잠시 기 다리 자 나를 기 다리고 있던 것은...
“와.”
순수한 감탄.
당연한 예 상한 대로 야한 그림 이 기는 했지 만 이 건 내 가 조금 전에 봤던
표지들과는 격이 달랐다.
어나더 레벨이 라고 해야 하나.
그림 속 여자는 자신의 나시티를 뒤집어 까고 침을 질질 흘리며 가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별로특별할 것이 없었는데 그녀 앞에 놓인 있는모니터 속 그
림과 완벽한 대 칭 을 이루고 있는 그 구도 자체 가 무척 이 나 인상 깊다고 해 야
하나.
심지어 모니터 속 그림은 날림이 아니라 거의 캐릭터를 두 명 그려놓은 것
처럼 섬세한 터치가들어가있었다.
오오...
스크롤을 내리자 이어지는 한겨울 작가의 찬양글.
그림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작가는 거의 한페이지 가량의 장문의
찬송가를 적 어놓았다.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매너인가?
하지만 마지막 줄에 적힌 이 구절은 전혀 맥락도 없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씨발련. 존나 따먹고 싶네.]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아 댓글창을 눌러본 나는 다른 유저들 또한 나와 크
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이게 무려 추천이 500개가 넘어간 베스트 댓글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연아! 나와! 밥 먹자!”
언니의 부름에 홈버튼을 누른 나는 거실로 나가 식탁 의 자에 착석했다.
한상 가득 차려진 반찬들.
역시나 언니의 요리 솜씨는 여전했다.
“와. 이거 토시살이야? 언니?”
내 가 소고기 중에 서도 가장 좋아하는 부위.
식욕을 자극하는 육향이 부엌을 가득 메우자 입가에 군침이 도는 것이 느
껴졌다.
“너 온다고 사왔다.”
싱긋 웃으며 찌개를 들고 오는 언니.
냄비 받침대를 들고온 오빠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아니.음식 준비한 것은 나인데 왜 오빠가멘트 쳐요.”
“야. 마트에서 계산 내가 했으니까 이건 내 가 준비한 거나 다름 없지.”
장난스러운 얼굴로 언니랑 투닥거리는 오빠.
하지만 그가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같은 변태 소설을 책으로 소장할 만
큼 음습한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나는 쉽게 선입견을 떨쳐낼 수가 없
었다.
“...혹시나한테 할말이라도?”
너무 빤히 바라본 탓일까 오빠는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어제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시작한 우리 세 사람.
오빠는 나랑 친해지고 싶었는지 자꾸 말을 걸었다.
“나연이는... 성인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어?”
“그냥술 먹어보고 싶었어요.”
“아아〜 술 좋지. 술. 나랑 나은이 랑도 한잔할래 ?”
...언니한테도 술을 먹이고는 이상한 짓을 했을까.
“아뇨. 가족이랑 먹는 것은 별로라서요.”
“하긴〜 스무 살 때는 친구들이랑 마시는 것이 재밌기는 하지.”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는 오빠.
언니는 내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나를 슬쩍 흘겨보았다.
언니.
언니도 분명 오빠가 무슨 책을 갖고 있는지 알면 까무러칠 걸좥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걸 알고도 언니가 오빠를 만났을 리 가.
하지만이건 언니한테 따로 진지하게 이야기해야하는 일.
면전에서 오빠한테 무안을 주는 것은 첫만남 때로 족했다.
“그래. 음식은 좀 입에 맞아? 나연아?”
“에이. 언니음식이야늘 맛있지.”
아무런 의미 없는 빈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이건 팩트였다.
“그래. 많이 먹고. 너는그러면 여기 머무는동안에는 다른 일정 같은 것 없
어?”
“내일은 친구랑 약속 있고 낼 모레에는 신입생들끼리 미리 한 번 만난다고
해서 나가보려고.”
“거기 가서 괜히 남자애들이랑 엮이지 말고.”
언니는 자기 경험담인지 진절머리 가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
들었다.
“나도 이미 많이 경험해 봤다니까.잔소리는...”
“이 언니가 밟아온 길을 그대로 갈 거 생각하니까 벌써 머리가 아프구나.”
“알아서 할게. 알아서.”
식 사를 끝내 자 설 거 지 는 오빠가 하는 모양이 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시작하자 나는 언니를 붙잡고 침
실로 들어갔다.
“잠깐여기 앉아봐.”
“왜.또원룸 때문에 문제 생겼어?”
“아니 아니. 그거 아니고. 오빠 있잖아...”
끌고는 들어왔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오빠. 왜.”
“…혹시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라는 소설 알아?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