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29.오해
실물로 받아본 오빠의 코트는 내 가 예 상했던 것 이 상으로 진짜 마음에 들
었다.
물론 무려 150만원씩이나 냈는데 안 예쁘다면 그것도 이상한 것이겠지만
, 바로 현관 앞에서 포장을 뜯어본 나는 탄성은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돈이 좋기는 좋구나.
근 며칠간 진짜 잠도 줄여 가면서 일했던 보람이 있었다.
이 제 마지 막 한 장 최 종 수정본만 전달하면 지 긋지긋한 억 지 외 주도 모두
끝이었다.
사실 어제 끝냈어야 했지만 속옷 위치를 조금만 바꿔달라는 뒤늦은 요구
에 하루 더 미뤄졌던 일정이었다.
“띠리〜 디리리리〜”
다크서클이 축 처질만큼 피곤했지만 오빠한테 얼른 이걸 입혀줄 생각에
콧노래 가 흘러 나왔다.
진짜 너무 잘 어울릴 것 같고〜
삐. 삐. 삐. 삐.
비 밀번호를 열고 문을 열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은 삐딱하게
벗어놓은 오빠의 운동화.
분명 운동을 다녀온다고했던 오빠의 신발이 어째서 벌써...
평소라면 두 시간 정도 걸렸던 오빠였지만 오늘은 한 시간 조금 넘었는데
벌써 돌아온 모양이 었다.
하지 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 었다.
컴퓨터...
컴퓨터 전원을 안 끄고 간 것 같은데 .
슬리퍼를 후다닥 벗어 던진 나는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오빠의 이름을 불
러보았다.
“…오빠?”
나갔을 때처럼 모두 다 꺼 져 있는 조명.
하지 만 단 한 가지 가 바뀌 어 있었다.
“오빠...”
내 컴퓨터 앞에 앉아 스크롤을 드르륵 드르륵 내리는 오빠의 모습에 나는
화들짝놀랄 수밖에 없었다.
은은한 조명 이 오빠의 얼굴을 비춘다.
툭.
품에 안고 있던 택배 상자가 떨어졌다.
“지금 뭐해요...?”
끼이익.
의자가회전함에 따라오빠의 몸또한내 쪽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얼굴의 오빠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 한나은.
99
쿵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
오빠가 도대체 어디까지 확인했을까.
지금 내 가 켜둔 포토샵 파일 하나?
대금수령을위해 띄워놨던 일러 월드페이지?
설마 다른 의 뢰 자들이 랑 주고받은 메 시 지 까지...?
아아...그건 절대 안되는데,그것만큼은진짜로...
그걸 오빠가봐버린다면...
“너.뭐냐.”
“...네?”
“너.뭐냐고.”
“그게 무슨 질문이에요.”
단 세 글자만으로 내 멘탈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 작했다.
내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다.
“대답 잘해. 지금부터.”
꿀꺽 침을 삼킨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 였다.
“여기 앉아.
내 의자에서 일어난오빠가나를 컴퓨터 의자위에 앉혔다.
“ 마우스 잡아.”
마우스를 잡았다.
“일러스트 강의 듣는다고했지?그럼 강의 페이지 들어가서 로그인 좀해
봐.”
오빠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데...
따라야 하는데...
내 손은석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꿈쩍도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아예 등록조차 안한 거야?”
모든 것을 알아차린 오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다니 손으로 앞머
리를쓸어 넘겼다.
“좋아.그래.그럼다음.”
이건 겨우 서막에 불과했다.
내 손에 서 마우스를 빼 앗아간 오빠가 클릭 한 페 이 지 는 내 가 다른 남자들
과 주고받은 의뢰 내용이었다.
“왜말 안했어?”
“그게요...”
“내 가 너 다른 사람 일러스트 그린다고 화낼 것 같아?”
...적어도 나는 화를 냈으니 까 오빠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니에요?”
슬그머 니 눈치 를 보며 그에 게 되 묻자 오빠는 책 상을 주먹으로 팍 내 리
찍었다.
“어. 화 안 내.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네가 일해서 생활비 벌겠다는데 그걸
왜 뭐라하겠어.”
생 각보다 관대 한 마인드라고 생 각했지 만, 이 어 지는 후속타들은 나를 녹
다운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좆같은것이 뭔지 알아?”
“네 가 나한테 씁주동안 내리 거짓말한 거 야.”
“나한테 매일 일러스트 강의 들으며 스터디카페까지 간다고해놓고 다른
사람들 그림 그리고.”
“새벽에 안 자고부스럭 거리길래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해 줬더니 아무 일
도 없다고 했잖아 너.”
“설마 운동도 이 거 그리 려고 나 보낸 거 야? 밖에서 나 구르는 동안 집 에서
편하게 그리려고? 진짜웃기지도 않아서.”
“아니에요...! 그건 진짜 아니...”
다그치는 오빠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오빠의 말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의 실망했다는 표정.
“아니 긴 뭐 가 아니 야. 내 가 운동하고 지쳐서 쓰러져 잤으면 이때다 싶어서
좋다고 그림 그렸을 것 아니 야. 내 말 틀려 ?”
“근데 이건 다오빠를위해서...”
“웃기는소리 좀하지 마.거짓말쟁이 년아.”
내게 대답할 기회조차주지 않은오빠는 책상 위에 있던 휴대폰과 지갑을
챙기더니 그대로 현관을 박차고 나섰다.
차마 무슨 말로 오빠를 붙잡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던 나는 그 자리 에
털썩 주저앉았다.
a
오빠.”
:k * *
꼴깍꼴깍꼴깍.
차가운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내 려 가자 취 기 가 확 올라오는 것이 느껴 졌
다.
“시발...”
아무도 때리지 않은 내 뒤통수는 아프다못해 얼얼한수준이었다.
커플링을 전해줄 생각에 헤벌쭉 했던 내가 병신 같이 느껴진다.
물론 나은이가 일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태클을 걸 생각은 일절 없었다.
오히 려 나은이 가 내 작품 그림 만 그리는 것은 전 지구적 손해 였으니 까.
나는 내 작품 이전에 나은이가 그렸던 다른 그림들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내 일러스트만 그린다고 해도 한 달에 한 장 신청할까 말까인 정도인데 나
은이의 작업 속도를 고려해보면 다른 작업을 해도 두 세장씩은 더 그릴 수 있
을 것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고 내게 숨겨서 작업을 했다는 것을 메시지 창을 통해
알게 되니까 내 기분은 밑바닥을 쳐도 한참 바닥을 쳤다.
솔직히 의뢰 내용도 좀좆같기는 했다.
물론 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의 뢰 를 할 때 나은이 가 여 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했겠지 만 나은이와 의뢰자들의 대화 내용은 나랑 그녀의 의뢰
메일보다도 더 더럽고 음습했다.
도대체 왜 나은이가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되지 않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울리는 휴대폰.
나은이는 벌써 몇 번째 나한테 전화를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화가 식 지 않은 나는 그냥 다 무시하고 있는 중이 었다.
전화 받아봐야 소리만 지를 것 같아서 그냥 안 받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소주병을 입에 가져다 댄 나는 하천 위를 둥둥 떠다니는 오리를 바라보았
다.
심란한 내 속마음과 달리 한없이 편안해 보이는 녀석들.
하... 그냥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말까...
마음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든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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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하기]
[오빠]
안 받아... 안 받아...
신호음이 갈 때마다 주기적으로 끊어지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오빠
가 고의 적으로 내 전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침대에 앉은 나는 계속해서 오빠한테 전
화를 시도할 뿐이었다.
오해를 풀어 야 하는데 ...
그런 게 아니었다고...
오빠 선물 사주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자꾸 상처 입은 얼굴로 나를 다그쳤던 오빠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조금 전까지 만 해도 다 울었다고 생각했지 만 오빠의 얼굴을 떠올리 니까
또 눈물샘 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흐으읍. 흐으윽.
99
오빠에 게 주려고한 코트를 끌어 안았다.
이리도 매끈한 감촉이 피부에 맞닿고 있음에도 내 마음은 누군가가 계속
날카로운 압정을 꽂아넣는 느낌 이 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역시 숨겨서는 안됐던 일인 걸까.
사과를 해서 오빠의 마음이 누그러진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을 것 같
았다.
근데 그것도 오빠가 집 에 돌아와야, 내 전화를 받아야 할 수 있는 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나는 그저 다시 한 번 통화하기 버튼을 누를
뿐이었다.
역 시 이 번에도 안 받는 건가 싶 었던 그 순간이 었다.
[여보세요.]
...혹시나 내가환청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빠르게 귀에서 휴대
폰을 뗀 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오빠 00:06]
오빠가 제대로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성은 오해를 풀어야겠다
고 생각은 했지만 내 가슴은 그렇게는 두지 않았다.
[오빠아아... 흐으윽... 어디야...]
[밖에.]
밖인 것을 누가 몰라. 누가 모르냐고.
[언제 와아...]
[몰라.]
[내가... 내가... 잘못해써... 미아네...]
아아... 조금 더 제대로 말하고 싶은데, 자꾸 눈물이랑 콧물이 나와서 그게
되지 않았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오빠.
혹시 나 끊었나 싶어 다시 확인을 했지 만 그건 아니 었나 보다.
[...화장대 서랍장가장안쪽.]
...화장대?
[그거나 열어보고 있어.]
뚝.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 린 오빠.
아직 내 사연도 설명 못 했고, 하다못해 빨리 돌아오라는 말도 꺼내지 못
했는데...
하지 만 오빠의 마지 막 말이 무척 이 나 신경 쓰였던 나는 오빠의 코트를 한
구석에 치워두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걸이로 서랍장을 열자 내가 발견한 것은 남색의
보석함.
..설마우리 100일선물인가.
손을 뻗어 함을 꺼내든 나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이히잉...”
서러움을 이기지 못한 내 입에서는 다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왜냐하면 오빠가 준비했던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한 쌍의 반지였기 때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