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125.새벽
“허억. 허어어억. 허어어어억.”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것 같은데.
처음으로 받아보는 피티는 정말이지 내게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네.회원님오늘수업어떠셨나요?”
씨발... 집에 보내줘... 내가잘못했어...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약했나 싶었지만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만
쓰는 인간의 육체는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와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방금 전까지 운동을 위해 흔들었던 기구들에 실린 무게는 30
KG로도 채 되지 않았다.
누가 보더 라도 헬 린 이 거 나 그 이 하.
수치스러우면서도 나은이가 나를 이렇게 바라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아아...”
마음이 약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이 라도 첫 1회는 무료라고 했으니까 전액 환급이 가능하리 라는 생각
이 들었음에도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조금아쉽기는 해서...]
[조금아쉽기는 해서...]
[조금아쉽기는 해서...]
[조금아쉽기는 해서...]
[조금아쉽기는 해서...]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았지만주먹을 꽉쥔 나는 이를 악물고 트레이너에
게 웃음을 지어보았다.
“수업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릴게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긋 웃는 헬창 아저씨는 내 등짝을 팡팡 두드
려 주셨다.
“그래요.그럼 다음수업 때 뵙도록하겠습니다.”
비틀비틀거 리 는 몸을 일으킨 나는 땀으로 축축해 진 옷 그대 로 밖으로 나
섰다.
...첫 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자마자하수구에 토를 한 것은 나은이
에게 굳이 밝히지 않았다.
…
[여기서 가랑이를조금 더 벌릴까요?]
[작가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것 같으신데요?]
[흠... 제가 보기에는…]
이 구도라면 확실히 그려본 적 있는 구도.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주민지가 이런 포즈였는데...
포트폴리오 파일을 클릭한 나는 내가 전에 작업했었던 샘플을 의뢰자 분
에게 전송했다.
[사진1]
[요런 식으로 나올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와아. 역시 HNE 작가님. 어떻게 제가그렇게 원하는구도를 그대로.]
그거야 내가 진짜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그린 일러스트였으니까 당연한
소리였다.
내가 오빠의 명성에 행여 누가 될까 얼마나 전전긍긍하면서 고민해 가며
그렸는데.
이 구도 하나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럼 이 포즈 느낌 살려서 살짝 변화만주는 정도로 갈게요.]
[넵! 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네네.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 젖꼭지 부분 그림자처리 조금만 더 진하게 부탁드려도괜찮을까요
?]
이미 충분히 야릇한 느낌은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손님은 더
적 나라한 표현을 원하는 모양이 었다.
[네. 가능합니다.]
[그리고 보지도 둔턱도 이렇게 도끼자국 슬며시 음영 처리 넣어주세요.]
넵.]
[작가님도 그 편이 꼴린다고 생각하시죠?]
[네. 그렇게 진행해보도록 할게요. 그럼.]
...분명히 전에도 이와 비슷한 대화를 숱하게 해왔던 것 같은데 기분이 이
상했다.
오빠랑 사귀 기 전에는 저것보다 더 천박한 말로 의뢰를 했어도 아무런 감
흥이 없었는데 지금은뭐랄까...좀거북한느낌이 있는것 같았다.
삐. 삐. 삐. 삐.
현관문 비 밀번호가 입 력되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일러 월드 창을 닫
았다.
컴퓨터를 절전 모드로 바꿔둔 나는 쪼르르 현관으로 나가 오늘 첫 피티
수업을 받고 온 오빠의 상태를 살피러 갔다.
그런데 어째 내 남자친구는...
“...저는복싱 학원에 보낸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헬스란건원래 전쟁이다. 애송아.”
“당신오늘 하루 했잖아요.”
어딘가 한 대 맞고 온 것 같은 몰골에 나는 바보 같은 얼굴로 눈을 깜빡였
다.
불과 떠난 지 두 시간 만에 오빠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축 쳐져 있었고, 가
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는지 오빠의 어깨는 자꾸 벽을 향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비켜줄래? 나좀 씻게.”
“아... 응. 그래요. 씻고 와요.”
아마 의 식 이 있는 좀비 가 실존한다면 저 런 느낌 이 아닐까 싶었던 나는 화
장실 문을 쾅 닫고 들어 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지 켜만 보았다.
“허어...”
물론 내가몰래 외주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도 있기는 했지만 오빠는
진지하게 운동을 좀 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방 밖으로 기어나갈 생각도 하지 않아서 내가 억지로
산책을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햇볕을 쬘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남자였다.
이 렇게 생 각을 해 보니 까 뭔 가 사람보다는 애 완동물 같기 도 하고.
기껏 혼자 외출하는 날에는 어디 나가냐고 물어보면 휘민 오빠랑 술 마시
고 온다는데 이번 기회에 부디 운동에 취미를 붙였으면 하는바램이었다.
얼른 밥 준비 해 야지.
고생하고 왔으니까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보자... 뭐가 있냐...
대패삼겹살 있네.
이거 좀 볶아주고...
숙주... 숙주도 사둔 것 같았는데… 아. 찾았다.
대패 숙주볶음 레시피를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소스를 만드는 법을 찾아
본 나는 바로 요리에 착수했다.
“닷. 닷. 닷. 닷. 닷다다닷닷닷.”
콧노래를 흥얼거리 면서 불판 위 에 대패 삼겹살을 볶고 있던 나는 갑자기
기습적으로 뒤에서 껴안는오빠 탓에 노래를 멈출수밖에 없었다.
“아! 깜짝이야! 뭐해요.”
“나은아...
99
“네...?
조금은 애 달파 보이 는 목소리 에 고개 를 살짝 꺾 어 뒤 를 바라보자 그곳에
는 진짜로 슬픈 눈의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한 오빠가 있었다.
“나 너무힘들어.”
샤워 를 하고 나오니 현타가 몰려왔는지 오빠의 눈에는 어째 습기 마저 찬
것처럼 보였다.
“강사가 많이 힘들게 했어요?”
“응... 존나...”
이렇게까지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보니까 내 마음 또한그리 편치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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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가 사랑하는 남자를 사지 로 내몬 느낌 ...?
“가서 앉아서 좀 쉬 어요. 밥 금방 되 니까.”
“싫어. 이러고 있을래.”
응석을 부리고 싶어 하는 남자친구 탓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 고는 그 상태 그대로 나머 지 반찬들을 준비했다.
“아. 이제 진짜로 다했으니까. 가서 숟가락 좀 놔요.”
“으 99
O•
그제야 내게서 떨어져서 수저를 셋팅하는 오빠.
...묘하게 남친이나 남편이 아니라 아들 같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 엄마도 언제나 아빠를 보면서 우리 집에는 자식이 셋이라는 소리를
하셨는데.
이런 기분이셨던 걸까.
“밥도 가서 퍼요.”
“으 99
터벅터벅 둔한 곰돌이 인형처럼 삐그덕거리며 움직이는 오빠.
식 탁에 나란히 마주보고 앉자 나의 이 상형 이 었던 작가님 은 무척 이 나 하
찮아 보여서 귀 여웠다.
“아니.근데 나은아.진짜로그게 엄청 무거웠다니까?”
“그랬어요. 우리 오빠. 덤벨이 너무 무거워〜”
힘든 일에는 제대로 공감을 해줘 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자꾸 웃음이 새
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공감해! 한나은! 공감하라고!”
나의 오구오구 컨셉 이 반복되 자 결국 참지 못한 오빠가 내 게 빼 액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 가 언제 뭐 오빠한테 그것도 못 한다고 구박했나, 고생 많았다고
해주던 중이 었는데.”
궁시렁대 기는 했지만 오빠가 어떤 부분에서 석이 나갔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씨... 너 진짜 한 달만 딱 기다려. 다시는 체력의 ‘체’ 자도 못 꺼내게 해
줄 테니까.”
내 가 했던 도발에 어 지 간히 도 충격을 먹 었는지 내 게 선전포고를 갈기 는
오빠.
“네〜 네〜 알았으니까식사나 마저 하시죠.”
“너. 이 자식아. 여자가 남자를 그렇게 무시해서야.”
생명의 불꽃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식탁이었다.
왜 냐하면 오빠는 저 말을 끝으로 혼자 침 실로 들어 가더 니 드르렁 코를 골
며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었다.
…
어우씨...허리 아파...
자고 일어나면 이놈의 근육통은 분명히 가실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째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었다.
이러다가 피티고 뭐고 병원비 가 더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어째
내 옆자리에서는 평소와 같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따듯하고 말캉한 내 여자친구가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없네?
마치 탄피를 분실했다는 소식을 들은 분대장처럼 내 눈은 번쩍 떠졌다.
뭐야. 나은이 안자나?
옆에 충전시켜둔 휴대폰을 뽑아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02:37 AM]
평소 같았으면 이 미 함께 잘 시 간이 었지 만 내 여자친구는 침 대 위 에 없었
다.
뭐지... 안 자고 뭐 하고 있나 싶었던 나는 발을 질질 끌며 침실을 벗어났다.
불도 모조리 꺼져있는 거실.
혹시나 밖에 나간 건가 싶어 당장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거실을 밝혀주는
은은한 모니터 화면은 그녀가 집에는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자고 뭐해.”
분명히 나는 놀래킬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나은이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
다 더 요란했다.
“히에에에에에에 엑!”
전기의자에 앉은 것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이쪽을 노려보는 그녀.
“왜 사람을 말도 없이 놀래키고 그래요!”
...아니. 나방금 말한것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