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가구
이사를 온 지도 어느덧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정말 다행 인 점은 내 가 이사할 것을 염두해 두고 원고를 미리 만들어 둔 것
•
그대로 이 상태로 글까지 쓰라고 했다면 아마 나는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
고 무단 휴재를 해버리지 않았을까.
“됐어?”
“아뇨.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아니. 아까는 왼쪽으로 가라며.”
“오빠가 너무 왼쪽으로 많이 감.”
깐깐한 인테리어 선생 한나은 양은 저 멀찍이서 내가 책상을 옮기는 것을
지휘하고 계셨다.
“됐어?”
살짝 책상에 힘을 실어 오른쪽으로 밀었다.
“왼쪽으로.
99
...아무래도 나은이의 몸에는 그 좆같던 선임새끼가 잠시 빙의한 모양이었
다.
그래도 나은이 가 온라인으로 구매했던 대부분의 새 가구들이 도착했는
지라 우리 집은 얼추 사람 사는 집 같은 모양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엄청 휑했었는데 하나둘 물건들이 차가니까 만족스러
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특히나 이번 이사가 조금 더 의미가 있던 점은 나은이가 직접 집 전체를
디렉팅 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살았던 방이랑도, 만약에 내가 혼자 산다면 꾸미려고 했던 분위 기랑
도전혀다른느낌.
근처 꽃집 에서 사온 푸른색 아기 자기한 화분들.
쪼그려 앉은 나은이가 분무기를 들고 와서 물을 칙칙 뿌렸다.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네가 워낙 꼼꼼하게 관리 잘 하니까 오래 살 거야.”
의자에 앉은 내가팔을 괸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따스한햇살이 나은이를 비춰 그녀의 염색모가 한층 더 밝게 보였다.
“오빠 관리하기도 바쁜데요?”
“나? 내가 관리할게 뭐 가 있다고.”
솔직히 학교를 다닌다면 관리할 구석이 있기는 하겠다고 말하겠으나.
소설만쓰고 있는데 관리할 것이 뭐 있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어. 운동도 안 해. 연참도 안 해.”
뭔 가 파바박 콤보를 꽂아 넣는 것 같은데 연참은 왜 들어 가 있냐.
이놈의 독자들은 연참이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아는 건가.
“연참은 왜.”
“내 가 오빠 옆에서 글 쓰는 거 자주 봤잖아요.”
‘그치』
“한편에 꿓시간도 안 걸리던데...”
나은이의 눈매가 사나운 고양이처럼 변한다.
“왜두편 못써요?”
“어...”
하루 세 시간만 써도 먹고 살 만큼 버니까?
그리고 사실 연참이 무조건적으로 두 배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기분 좋고, 글 잘 써 지면 그날 하는 거지.
“하루 閌시간. 못해?”
못 할 거야 없지만 하루에 그렇게 나 오랜 시간 동안 워드를 켜놓고 앉아있
을 생각은 없었다.
“응.못해.”
“어째서!”
나의 여자친구. 하얀 눈꽃님은 남자친구가 야설을 더 안 써온다고 협박을
하고 계셨다.
물론 그녀가 달아준 댓글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애 정을 갖고 있는지 알
고 있었으나 일단은 너 내 여자친구야. 나은아.
정신 좀 차려.
“떡 쳐야 되는데, 그거 쓰면 나 피곤해서 못 해.”
어때. 존나합리적이지.
너도 반박 못하겠지. 한나은.
내 가 생 각해도 나은이 를 납득시 킬 수 있는 기 가 막힌 방법 이 었다.
“으...그건...
99
분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는 하얀 눈꽃님.
“야.이렇게 생각해 보는건어때.”
“뭘요.
99
“내가글을 써서 노벨 월드에 올리는 시간동안 나는 공공재인거지.”
“...공공재요?”
“그니까 수많은 남정네들이 내 소설 보고 좆 잡는다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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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박한 워딩에 나은이는 잠시 찌푸렸지만 이내 진행하라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니 까 나는 하루 꿓시 간 사회 에 환원되 는 거 야. 두 편을 쓰면 閌시 간이 되
는 거고.”
“환원은 뭔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쓰는 표현 아니에요?”
“누군가가행복했다면 그게 선한 영향력이지. 뭐야.”
내가 말하면서도 강간밀실타락조교 소설이 선한 영향력이라고 찌껄이는
것은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누군가는 행복했으리라는 말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기존에 21시간은한나은의 것이었던 것이 18시간한나은의 것이 되는건
데, 그게 좋아?”
나의 개같은논리에 혼란이 온 것 같은표정.
“아니. 오빠는 그냥 씁딙시 간 내 껀데, 뭔 소리에요.”
쓰으읍... 안 먹히는 건가.
“몰라. 연참 시 섹스 없음.”
나의 단호한 선언에 나은이는 잠시 아무 말도 않고 있더니.
“…연참은 1주일에 한 번만 하는 걸로 하죠.”
…
“와.사람개 많아.”
“그러게 내가평일에 오자고했잖아요.”
인산인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인파가 북적거리는 이곳은 바로
가구 전문 대형 쇼핑몰 이게아.
“아니. 나는 안와봐서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니까.”
“말좀 들어요. 말좀.”
그래도 여기까지 무려 1시간이나 지하철 타고 왔으니 맨손으로 돌아갈 수
도 없는 법 .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위한 아이템이 뭐가 있는지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미 필수 가구들인 책 상이 나 침대 등은 모두 구매한 상태 였지 만 그
밖에 자잘한 인테리 어 소품들은 아직 이 었다.
솔직히 남자인 나는 소품에 는 별 관심 이 없었지 만 여자친구님 이 원하신다
면야.
오랜만에 먼 곳으로 바람의 쐬 러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 각했기 에
나는 순순히 그녀의 계획에 협조하기로 했다.
“여기도 백화점 마냥 시계가 없네.”
“아. 이건 제 설계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인데요. 이게아에서는산소를 일
부러 더 매장 안에 주입한데요.”
“…그래? 왜?”
“그래야 사람들이 상쾌함을 더 느낀다고 그러던데요?”
허어...뭐 야설로 치면 미약을 주입하는그런 거겠구만.
“아. 그리고 이것도 말해주셨어요.”
나를 커다란 매장 전체 안내도 앞으로 데려간 나은이는 검지를 들어 갑자
기 발표를 해주기 시작했다.
“오빠. 여기서 출구 찾아봐요.”
“출구?”
“네.메인 계산대이자출구.”
눈을 이 리 저 리 굴려 가장 끝자락에 위 치 한 출구를 짚 어 내 자 나은이 는 이
번에는 입구를 짚어보라고 시켰다.
“그거야...”
어?
뭐야. 끝하고 끝이네.
별도의 출구가보이지를 않았다.
이렇게 공간이 구상이 되 었다는 건...
“오빠도 느꼈죠.”
“그러게.”
“여기... 들어오면 무조건 모든 코스 정주행 하는 거 아니면 못 나가게 설계
되어있어요.”
이곳이 정녕 21세기 그리스 신화 속 미궁이란 말인가.
“이 런 거 하나하나가 다 디 테 일 이 라고 하더 라고요.”
이 거 만들면서 건축가는 무슨 생 각을 했을까.
[나는 이용자들의 동선을 지배할수 있다]라며 흐뭇해 했으려나.
“신기하다. 이것이 건축...?”
“상업성에 찌들어버린 동선이라고 하죠. 아무튼 이제 구경해요.”
나은이의 손에 붙들린 나는 거대한조류를 타고움직이는 물고기 마냥 인
파에 휩쓸려 가구들을 구경했다.
“와. 소파 너무 예쁘다.”
“그거 어차피 우리 집에 못놔.”
“아니. 그냥 예 쁘다고요. 말도 못 하나.”
사지도 않을 거면서 정 줘서 뭐 하나 싶었던 나였지만 나은이는 아랑곳하
지 않고꿋꿋하게 여기저기 앉아보았다.
“오빠도 이침대대박임. 완전 푹신해요.”
나은이 가 침대를 팡팡 두드리 자 나는 못 이 기 겠다는 표정으로 옆에 가서
앉았다.
“쩔죠. 그쵸?”
확실히 우리집 침대보다 푹신함 측면에서는 압승이 기는 했다.
“하지만 나은아. 너도 알고 있잖아. 왜 이런 침대가 선택받지 못했는지는.”
내 가 근엄하고 진지 한 얼굴로 그녀에 게 대 답하자 나은이 또한 무척 이 나
심 각한 표정으로 고개 를 끄덕 였다.
“너도 [그녀를감금했습니다]를읽어봤으니 알것 아니야.”
“당연하죠.그래서 이렇게 푹신한 걸로주문 안했잖아요.”
나. 한겨울.
야설을 위해 침대별 리뷰글도 인터넷에서 모두 찾아본 남자.
당연히 적나라하게 싸구려 스프링의 감촉이 느껴 지는 메트리스는 최 악이
기는 하나, 그렇다고 당장이 라도 흘러 내 릴 것 같은 푹신한 침 대 가 섹스에 가
장 좋은 선택은 아니 었다.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
흔들림 속에 안정감.
나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한 에피소드 전체를 침대에 대한 설명으로
만쓴 적이 있었다.
그만큼 내 가 하나하나에 진심 이 라는 것을 독자들한테 보여줘 야 했으니
까.
물론 19금 소설에 떡씬 하나 없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지독하게도 딥다크한 내 독자들은 오히려 ‘침대론’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
들이 꽤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날은 민심을 위해 연참을 하기는 했다.
침대와 소파 코너를 지나쳐 이번에 도착한 곳은 식기 코너.
여기서부터 나은이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거 랑. 이 거 랑. 아. 그리고 이 것도.”
“아니. 나은아.우리 집 두 명이 사는데 이렇게 큰 냄비가...”
“필요해요!”
“왜?,,
“...명절에 갈비찜 해주고 싶어서.”
너는도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왔던 거냐. 한나은.
대 한민국 24살 처자들은 다들 그런 거 할 줄 아는 거 야?
종갓집 이 나 가야 먹을 수 있던 메뉴인데…
이쯤되 니 처 가는 사실 익스트림한 곳이 되 지 않을까 생 각이 들기 시 작한
나였다.
두려워져요...
차마 나를 위해 요리해주고 싶다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커
다란 냄비를 쇼핑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자주 써라.”
“내돈내산인데 뭐요.”
할 말이 없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