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116화 (116/276)

#116.갑

나은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이거.”

슬며시 책을 그녀를향해 들이밀었다.

“뭐 야?

5,

“아... 그거요...”

“이거네 책이야?”

나는 내가 이 글귀를 썼던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야 다른 독자님도 아니고 [하얀 눈꽃]님 이셨으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의 한겨울 작가를 있게 해준 사람.

비록 나는 악필이 었지만 [하얀 눈꽃] 이 네 글자만은 똑바로 쓰려고 무척

이나 열심히 썼었다.

“아...어... 친구 책이에요.”

“친구 누구.”

“미영이요.”

“미영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걔가 다른 책도 아니고 야설인 [그녀 감

금]의 단행본을 갖고 있다고?”

...이게 얼마나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나의심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럼 나 미 영이라는 애 번호 좀 알려줘.”

“왜요! 갑자기 !”

나은이 가 울컥 한 목소리 로 내 게 소리 친 다.

“밥이라도 한끼 맛있는 거 대접하려고.”

“지금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다른 여자랑 밥 먹겠다는 거예요?”

나은이의 눈썹이 자유분방하게 움직인다.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으나 만약 나은이의 지인이 정말로 하

얀 눈꽃님이라면 나은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물이나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무척 이 나 고마운 사람이 니 까.”

단행본을 펼치자 나은이가 열심히 작업해준 히로인들의 일러스트들이 눈

에 들어왔다.

강수연, 한희정,유소연 등등 이건 언제 봐도예쁘네.

“어쩌면 너랑 나를 만나게 해준 사람일 수도 있거든. 이 책의 주인이 말이

야.”

“…그럼 그 사람을위해 어디까지 해줄수 있는데요?”

이 건 무슨 질문인가 싶 었지 만 나는 일단 생 각나는 대 로 대 답해 보았다.

“음...맛있는 식사랑 디저트?”

“겨우그게 다에요?”

나은이는뭔가내 대답이 시원치 않다는듯이 대꾸했다.

“…그럼 뭘해줘야되는데.”

“엄청 고마운 사람이라면서요. 겨우 밥 한 끼 사주고 땡이에요?”

“그렇긴 한데, 어디까지 나 작가랑 독자니까. 개 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미영이가 엄청난 미녀인데 오빠한테 자지 한번 빨게 해달라고하

면 어떡할 거예요?”

...야설도 그러지는 않아. 나은아.

“네 친구 그런 애니?”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그니 까 하얀 눈꽃님 이 미 녀 에 다가 내 좆을 빨고 싶 어 한다라...

솔직히 나은이 가 없었다면 서비 스로 이 라마치오도 가능하다고 말했을 것

같은데.

“미 안하지 만 불가능하다고 해 야지.”

“옷 벗고 달려들어도요?”

“응.그런다고 해도.”

나은이의 입가에 어째서인지 모를 흐뭇한 미소가 걸린다.

나는 나의 추측이 사실이었음을 직감했다.

“...그 동안 모르는 척해서 혼자 아주 재밌었겠다? 으이 ?”

나은이도 대 답을 거절하지 않았다.

“한겨울 작가님 . 지 금 이 러실 때가 아니 에요. 제 가 뭐 를 제 일 좋아하는지

아시잖아요.”

나은이 가 바닥에 앉아있는 내 등을 와락 껴 안았다.

말캉한 가슴의 감촉이 셔츠를 타고 넘 어온다.

“연참해 ! 한겨울!”

진짜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와... 이 배신감...

서 운하다고 하기 에 도, 그렇 다고 잘 된 일 이 라고 하기 에 도 미 묘한 느낌.

이제야 나은이가 어째서 그렇게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외주를 맡겼을

때 입에 거품을물었는지 알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밀실에 집착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내 소설 내용을 잘 알고 있었는지.

내 소설을 진짜초창기부터 봤다는 소리인데...

“왜얘기안했어?”

이거부터 물어봐야지.

“독자인 거 알면 강간 안해줄 거니까.”

“미친년.”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있는그대로의 생각이 필터링 없이 입에서 홀

러나왔다.

“진짜 미친년이다. 너는.”

하지만 나은이는오히려 욕설에 해맑게 웃으며 화답해 주었다.

“맞아요.그런 개변태 소설을 사랑하는 애독자가제정신일 리 없잖아요.”

뭐라 반박할 말이 없네.

“물론 그거 쓰는 오빠도.”

쪽.

나은이의 입술이 내 볼에 맞닿는다.

“아.개같이 걸렸다.진짜내가무덤까지 안고가려고했는데.”

나은이는 나한테 발각된 것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뭐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하는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화를 내 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 소설을 사랑해줘서,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할까.

뭔 가 진득한 대화의 시 간이 필요한 것 같은 우리 였다.

단행본위에 손을 얹은 채 멍하니 있던 나는 이내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

다.

“나은아.”

“네?”

“사인해줄까?”

나은이는 내 말이 뜬금없었는지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 내 팬이잖아.한겨울 작가친필 사인 받고싶지 않아?”

당장 떠오르는 생각대로라면 나는 우리의 연애 관계에서 절대적인 갑의

위치가 아닐까 싶었다.

그야 나은이는 내 팬이 었으니까. 그것도 골수팬.

오랜만에 우위에 있는 느낌을 만끽해보고 싶었다.

나은이는 내 속셈을 눈치 챘는지 혀를차더니 이내 손뼉을 짝쳤다.

“아〜 좋죠〜 친필 사인.”

“그래그래. 어디다 해줄까. 말만 해.”

종이나 단행본에 해달라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는 이 어지는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얼빠진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자요.”

조금은 분홍색 이 감도는 탱 글한 두 살덩 이 .

바지를 무릎까지만 내린 나은이는 속옷마저 쭈욱 내려 자신의 귀 여운 빵

댕이를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여기다해줘요.”

컴퓨터 사인펜을 쥐고 있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대문호〜 한겨울 작가님은 모쏠 아다 새끼라못 하는구나〜”

사귀 기 전이나 했을 법한 싸가지 없는 도발.

“이진성이었으면 사인이 아니라 자지를 박았을 텐데〜 자. 얼른해요. 안하

고 뭐해요.”

정 식 으로 사귀 기 전 에 는 저 런 말들을 경 멸 어 린 차가운 눈으로 했 었더 라면

지금의 그녀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럼 나도 그에 응하는 수밖에.

“그럼 가만히 있어봐. 사인하게.”

“네!”

엉덩이를 내민 채 상체를 숙인 그녀.

당연히 이런 건방진 여자친구에게는 매가 약이었다.

스스 스스

1111

—I —I —I —I

“오빠. 이거 싸인 맞아요? 뭐이렇게 오래해요?”

“여자친구니까특별히 감사메시지도 한 마디 더 써 놓은 거지.”

내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은이는 그 상태 그대로 방 안쪽 전신 거울 쪽

으로 이동했다.

..한겨울 작가님.

“네.하얀 눈꽃님.”

“이게 뭐에요.”

“뭐. 팩트잖아.”

“ 아. 진짜.”

유명한 입간판 광고 모델마냥 등을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확인한 나은이

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오리 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허접뷰지독자에게] [사인은없다.]

왼쪽과 오른쪽 엉덩이에 각각 적힌 수치스러운 문구들.

나는 완성됐다는 의 미로 인증마크 마냥 손바닥으로 짝. 그녀의 엉덩이를

때렸다.

흰색 살결과 검정색 글씨 위에 붉은색 자국이 얹어지니, 이 얼마나 아름다

운 배색이란 말인가.

사인을 하고난 이후에 이건그냥해프닝을넘기고 마저 이사준비를하리

라 생각했는데, 침대 위에 올라간 나은이는 고양이 포즈를 취하더니 그대로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뭐해.

“허접뷰지라면서요.”

“맞는 말이잖아.”

“아닌 거 내가증명해 볼게요.”

나은이가두손으로 자신의 엉덩이 골을 벌리기 시작했다.

“왜요. 박지도 못하겠어요? 이 조루 작가 새끼야?”

“…넌 뒤졌다.”

하얀 눈꽃님 에 게 닉 네 임 그대 로 하얀 눈꽃을 뿌리 고 나서 야 우리 의 허 접

배틀은 끝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패자는...

“오빠...! 그마아아안! 그만요...!”

“이진성이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 하는 거 봤어 ?”

그러게 깝치지를 말지.

:k * *

때로는 과분한 호의는 독이 되 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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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도움을 주려고 하는 행위는 결과

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제가 딱 그랬다.

하아...

오빠한테 책 장 ‘위 쪽에 ’ 있는 책들을 상자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 너

무 열심히 도와주려던 이 남자.

기어이 바닥 한구석 안 보이는 곳에다 꽂아둔 단행본을 찾아내고야 말았

다.

아니.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기까지 가가지고.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떻게든 아등바등하며 숨겨왔던 내 노벨 월드 아이디

까지 털렸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개국공신인 [하얀눈꽃]

단행본의 존재로 인해 펀딩한 것까지도 걸렸네.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운 나머지 친구 책이라고 둘러댔지만 그게 얼마나

신빙성 없는 소리 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변명을 하면서도 끝났다는 생 각이 들었던 나였다.

미 영 이 라는 애 는 존재 하지 도 않는 사람이 었다.

내 가 애독자인 걸 눈치 챈 오빠는 아니 나 다를까 바로 갑질을 하려고 했고

, 나는 오빠의 조롱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사인해줄까〜’라며 나를대놓고놀리는 이민호.

나쁜 새끼.

이럴까봐 내가 말 안했는데.

역시 나 내 예상대로 앞으로 내 가 뭔 가 심 기를 거스르면 협박을 할게 뻔했

다.

[한나은너 이런 식으로나오면 나연재 안해.]

[이러면 순애 드리프트 할 거야.]

[아... 힐링 일상물 같은 느낌 나쁘지 않지 않아?]

아... 우... 어...

벌써 어지럽네.

침실에서 자다 일어난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꽃아〜 물 좀 떠와라〜”

...일단은 가져다주고 후일을 도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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