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106.넿넿
[어? 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 연한 목소리.
장난해? 이민호?
나랑 지금 장난하자는 거 야?
[...진짜 나한테 할 말 없어 ?]
나는 지금 화가 나서 손이 다 벌벌 떨리는데.
너는끝까지 모른 척 하겠다는 거니?
[어... 내 일 도착하면 서울역 근처에 맛있는 곱창전골집 있으니까 거기 가
자?]
그래.네 입으로는말할생각이 없다이거지.
[...일러스트.]
[아...!]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뻔뻔한 남자친구 새끼는 탄성을 내뱉었다.
[벌써 봤구나...?]
[업로드 된 지 꿓시 간이나 지났어. 내 가 어떻게 그걸 못 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매일 저녁 11시에 업로드되면 12시가되기 전에 꼭 [그녀 감금]을챙겨보
는나였다.
진짜 늦더라도 새벽 1시 전에는 댓글과 추천을 꼬박꼬박 남기는데...
내 호통에 오빠는 당황했는지 어버버 말을 절었다.
[아... 사실 너한테 이야기 할까했는데, 너 여행 중이라고하길래 신경 쓰일
까봐. 그냥 다른 분한테 맡겼지.]
내가 본가에 내려와서?
내가 여행 중이라서 ?
[...내가만들어준 캐릭터잖아.]
그의 구차한 변명에 눈물이 차오른다.
[...나 생각하면서 같이 구상했던 애잖아.]
잔인해. 잔인해. 잔인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잔인할수 있어.
[근데... 그걸... 다른 사람한테 외주를 맡겼다고...?]
[다 너 재밌게 마음 편히 놀다 오라고 그런 거잖아. 다음 캐 릭터부터는 다
시 당연히 너한테 의뢰하지.]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하지 마!]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흘러내린다.
[오빠는 이게 장난이야? 지금 나 화난 것 안 보여 ?]
잠시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나은.]
[어.]
[섭섭할수는있는데,나도내 일정이라는게 있잖아.]
오빠는 조금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 어 나갔다.
[나는 모레까지 일러스트가 나와 줘 야 일정을 맞출 수 있었고, 너는 그거
에 맞춰 줄 수가 없는 상황이 었잖아.]
[아니야. 그래도 올라가서 금방하면...!]
[겨우 이틀 만에 완성을 시킨다고? 너 평소에 나한테 씁주 정도는 달라고
하잖아.]
구구절절 맞는 말.
아마 실제로 이틀 안에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가져오는 것을 무리일 것이
었다.
기본채색 정도가한계겠지.
[말을 안해준 건 미안. 네가 이렇게까지 기분 상해할줄은몰랐는데 너도
나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네.]
머리와 가슴은 언제나 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민호 오빠가 어떤 생각으로 내게 숨겼는지 이해했음에도 이미 상처가 나
버린 나의 마음은 아물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작가 누군데요.]
[응?]
[그거 그린 작가 누구냐고요.]
[Cporia]
[끊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참아왔던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나는 엉엉 울며 배게를 마구마구 때
렸다.
“어떻게 네가나한테 이래...한겨울...”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첫 캐릭터.
강수연을 맡게 되 었던 그날이 떠 올랐다.
내 가 그토록 좋아하는 소설의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게 됐다니 .
신청을 받은 그날 나는 육성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작가님에게 답장을
보냈다.
맡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정말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숱하게 많은 캐릭터들을 함께 만들어갔다.
스타킹이 찢어진 스튜어디스 지서윤을 그릴 때도.
치 마를 위 로 들어 올리고 있는 유소연을 그릴 때도.
[그녀를 감금했습니다]가 완결이 나는 그날까지 나는 한겨울 작가님과 함
께일 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도 심지어 내 남자친구된 한겨울 작가님이...
다시 한 번 내 그림 이 아닌 러프를 눌러본다.
“…왜 이렇게 더럽게 잘그리는 건데.”
솔직히 못 그린 그림이었다면 그게 뭐냐고 당장 엎어버리고 내가 새로 그
려주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씨포리아인지 뭔지는 존나게 잘 그려놨다.
그래서 더 짜증나.
“흐으윽. 이거 내껀데...”
한 손으로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검색 엔진에 접속해 오빠가 알려준 일러
스트레이터의 이름을 적어본다.
[씨포리아]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한국어로 적었음에도 바로 영문으로 된 개인
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 그리네.
스크롤을 내려서 그림들을 하나하나 훑어본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랑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 기는 했으나 이 사람이 실력자임은 그냥 메 인
으로 박혀 있는 한 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근데 그림체가좀 익숙한데...
바닥까지 내리자 나는 작가의 가장 초기작으로 추정되는 낯익은 그림을
발견했다.
이건...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지민언니...”
…
하아...
샤워를 하고 양치를 마친 나는 조금은 퀭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은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다고 해
야하나.
어제 밤에 러프본을 올려서 오늘 만나면 사정을 설명해 주려 했는데 나은
이는 어째서인지 이미 공지를 확인하고는 새벽에 내게 전화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소설을 읽는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그렇게 칼같이 보고 연락이 올 줄
이야.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화를 내서 조금 당황한 것은 있었다.
그야 나은이한테 일러스트를그리는 것은 ‘일’이니까.
휴가를 나간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게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거라
던데.
그런 맥락으로 이해해보면 내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것 같은데 말
이지.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머리를 말린 나는 청바지에 회색 맨투맨을 입고, 긴 곤색 코트를 챙겨 입었
다.
분명히 나은이를 보내줬을 때는 26살이었는데 본가를 다녀오자 나는
27살 나은이는 25살이 되어있었다.
약속 시 간은 꿓시 .
자기 할 말만 하고 뚝 끊은 그녀는 다음날 아침 뫫시 에 꿓시 까지 나와 달라
는 문자를 보내놨었다.
조금은 일찍 역에 도착한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은이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봐서 좋기는 한데, 아직도 화가 나 있을까 긴장이 되 기도 했다.
위이이잉.
울리는 휴대폰 진동.
[여보세요.]
[...어디에요.]
[나 여기 정문쪽 약국 앞에 벤치.]
[...거기로 갈게요.]
한 嬖분 정도 지 났을까 멀리 서 자그마한 검 정 색 캐 리 어를 끌고 오는 나은
이가 보였다.
붉은색 치마위에 하얀색 니트.
짙은 베이지색의 코트가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를 모두 덮어주고 있었다.
..나은아』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려고 했는데 그녀의 얼음장 같은 얼굴을 보니까 지
금은 그럴 분위 기 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휴대폰 내놔.”
“…휴대폰?”
“응. 당장.”
단호한 말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나는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라 휴대폰을 넘겨
주었다.
뭘 하려나싶어서 슬그머니 그녀의 뒤로 이동했는데 그녀가확인하고 있
는 것은 내 메시지 창이었다.
“…없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그녀.
“뭐 가없어?”
내 말에 대답을하지 않은그녀는그대로 내 메일 어플을눌렀다.
야. 뭐해. 한나은.”
나는투명 인간이라도된 것일까.
내 가 그녀에게 계속 질문을 했음에도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내 휴대
폰 화면만을 두드리고 있었다.
....
텔레그램 최대 소설 공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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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가를 정신 없이 찾고 있는 것 같기 는 한데 혹시 내 가 외 도라도 했을까봐
그러는 걸까.
그런 거라면 나는 떳떳했다.
애 시 당초 나은이 를 제 외 하고 마지 막으로 여 자랑 연락을 해본 것은 도시
계획 발표 당일날 시은이 가 학교 오냐고 물어본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 다.
아. 1월 1일에 엄마한테 전화하기는했구나.
그럼 그거까지도 제외하고.
a
..찾았다.”
왼손으로는 손톱을 물어뜯던 그녀가 누른 것은 나와 Cporia 작가와의 메
일기록.
Cporia 작가와 사담을 나눈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협업을 위한 정보의 전달만이 오고 갔을 뿐.
맹세코 나은이한테 못 보여줄 거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 려 그녀 가 이 상한 망상을 하고 있다면 내 가 먼저 보여줘 서 오해를 풀
수 있는 훌륭한 자료라고까지도 생각했던 나였다.
“아이. 진짜뭐 없어. 나은아. 다음 캐릭터는무조건 너한테 신청할테니까.
”
슬그머니 나은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내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없기는 뭐가 없어. 오빠.”
태클을 걸고넘어질 부분이 있다고?
그럴 리 가 없는데 ?
아니 그리고 혹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 라도 나는 저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모르는 상태 였다.
그냥 야짤그리는 거 좋아하는 씹덕 돼지 새끼일 수도 있는데 왜 저렇게 예
민하게 구는 걸까.
“이거안 보여요? 이거?”
도대체 뭘 보고저러는걸까싶었는데...
“…이게 뭔데?”
암만 봐도 별 것 없구만.
“진 짜오빠 제정신이에요!”
우리 주위를 지나쳐가던 사람들이 나은이의 외침에 우리 쪽을 쳐다본다.
허... 뭔 가 굉 장한 개 새끼 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아니. 나은아.좀만진정하고 정확히 어디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러는 건
데.”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그녀.
“이 거 … 이 거 좀 보라고요. 흐응. 흐어 엉.”
그녀가 검지로 지목한 부분을 확인한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
다.
아!••• 이거
!•••• 좥
이 거 때문에 우는 거야?
n
근데 만에 하나 여자라고 쳐도 이거 정도면 봐줄 수 있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