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96화 (96/276)

<96화 >#96.로터코스터

지갑을 주워서 그녀에게 건넨 나는 버튼을 눌러보라는 나은이의 말에 상

자에서 핑크색 스위치를 꺼냈다.

하아... 수상하리만큼 익숙한 비쥬얼.

하지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 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검지 정도 되는 사이즈.

내 가 심 란한 표정으로 버튼을 누르지는 못하고 지 켜 만 보고 있자 나은이

는 씨익 웃었다.

“얼른 눌러보라니까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

마치 ‘너 이거 못 누르잖아〜 허접아〜’ 같은 표정에 나는 손가락이 자꾸 꿈

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근데 만약에 이게 정말로 내 가 생각하는 그거라면...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끼리 놀러온 것인지 해맑게 떠들고 있는 꼬마 아이들.

우리랑 엇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커플.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 무리들까지.

이렇게나 많은 인파 속에서...?

“에 이. 안 쓸거면 말고요. 나 줘요.”

나은이가 손을 뻗어 리모컨을 낚아채려 하자 나는 본능적으로 스위치를

가장 높은 단까지 탈칵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으에...?”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은 그녀의 손은 나에게 닿지 못했다.

스위치를 올린 이후로 나은이는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당장이 라도 나를 노리 려고 했던 그녀의 두 손은 얌전히 무릎 위로 돌아갔

으며, 그녀의 고개 또한 바닥을 향해 90도로 꺾 였다.

“...나은아?”

“..려.”

“어?”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기에 나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

해할수 없었다.

“...리라고요.”

“뭐 ?”

“좀만내리라고요!”

고개를 든 나은이의 얼굴은 새빨간 사과같이 붉어져 있었다.

작은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던 나은이는 내가 버튼을 내리고 나서야 진정

이 됐는지 커피를 쪼옥 빨아먹었다.

“아니.오빠. 어떻게 그렇게 배려가 없어요?”

“뭐가. 네가눌러보라며.”

웃기는 녀석 일세 . 자기 가 눌러보라고 해서 눌렀건만.

“이런데서 그렇게 끝까지 올리면...!”

억울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나은이.

사실 억울한 것은 나인데 말이지.

괜히 심술인 났던 나는 다시 한번 스위치를올렸다.

“..히끅!”

말대꾸를 하던 나은이는 딸꾹질이 올라왔는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주 성능이 좋구만.

“오빠... 쫌만... 낮은 단계로… 히끅!”

마치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처럼 손발을 비틀던 그녀는 내가 다시 스위치

를 끄자 다시 적개심을 드러냈다.

“아니. 사람이 말이에요.히끅! 좀 이렇게 순차적으로 단계를올리면 안되

나요? 히끅!”

“…말대꾸?”

하지만 이미 스위치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또다시 손을 위로 들어 올리며

버튼을 올리는 시늉을 했다.

나은이는 나를 무슨 사이코패스 변태새끼 보는 것 마냥 쳐다봤지 만 어

림도 없었다.

네가 먼저 선물이랍시고들고온 거잖아.

이니시를 건 것은 저쪽이었다.

“아무튼 선물 고맙다. 나은아.”

물론두번째 선물은상상도하지 못했으나둘다 잊을수 없는첫 생일 선

물이 될 것만 같았다.

“... 밑에 편지도 있어요.”

나은이는 딸꾹질을 멈추는데 성공했는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며 내게 말해주었다.

확실히 봉투 가장 밑에는 핑크색 편지가 깔려 있었다.

귀 여운 강아지 스티커 가 봉투를 깔끔하게 동봉하고 있었다.

“…지금 읽어봐도 괜찮아?”

나은이는 격한 거절의 표현으로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었다.

“오빠도 오빠 소설 낭독하면 자살하려고하면서.”

아니. 그건 야설이잖아.

암만 같은 활자라고는 하지 만 그걸 같은 선상에 두면 어떡 하자는 거 야.

“알겠어.그럼. 이건 잘보관해서 이따집 가서 읽어보도록할게.”

“알았어요. 선물은... 맘에 들어요?”

내 눈치를 살피는 나은이.

하긴 나은이도 첫 연애라고 했으니까, 그녀도 분명히 이모저모 내가 뭘 좋

아하는지 고민하고 사온 거겠지 .

“응.정말로 맘에들어.”

“그럼 두 개 중에 뭐가 더 마음에 들어요?”

둘중에 뭐가더 맘에 드냐고?

그니까지금 네 보지에 박혀있는무언가와, 이 명품메탈시계 중에 고르라

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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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금액 면으로 보면 분명히 시계가 압승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은이의 보지 속 로터는 정성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저걸 스타킹 안쪽으로 꾸득꾸득 넣어서 왔다는 것 아닌가.

첫째를 고르자니 뭔 가 돈 밝히 는 속물 같은 느낌 이 들고, 둘째를 고르자니

그냥 존나 밝히는 씹변태새끼 같았다.

“ 나는. • • ”

기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거!”

편 지 봉투를 꺼 내 서 위 아래 로 흔들었다.

“나 이런 것 살면서 한번도못 받아봤거든.”

로망이 있기는했다.

여자친구가 나를 위해 한 자 한 자 마음을 꾹꾹 담아 써준 편지.

과연 이번 생에 받아볼수 있을까싶었던 물건 중하나.

물론 내용물은 아직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크툴루 신화 마냥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될 것 같은 어질어

질한 내용들이 담겨 있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피해가기에요?”

“응. 이렇게 피해 가려고. 자. 이제 다시 놀이기구들 타러 가자.”

지나치게 격렬했던 회전컵으로 인해 시간을 제법 빼앗긴 우리들이었다.

“알았어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고민이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이 리모컨.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을까. 아니면 그냥주머니 안에 넣어서 들고 다닐까.

망설였던 나는 결국 주머니 안에 리모컨을 쏙 집 어넣었다.

...오늘은 내생일이니까.

민호 오빠는 어떻게 사람이 0 아니면 100인 걸까.

내 남자친구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 었다.

처음 스위치를 건네줬을 때 솔직히 약한 단계로 맛만 보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이 남자는 그냥 처음부터 풀파워 로 로터를 진동시 켰다.

밖에서 살살 자극되는 야릇한 쾌감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는 오빠의 폭력

적인 처사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가랑이를 오들오들 떨 뿐이 었다.

그 와중에 내 보지는 이 상황 속에서도 흥분을 느꼈는지 , 물을 막 토해 내

려고 했다.

진짜 나도 정상은 아니기는 하네.

아닌가? 오히려 좋은건가?

잘 모르겠지 만 오빠가 생 일 선물을 기쁘게 받아준다면 좋다고 생 각했다.

간신히 오빠를 멈춘 나는 오빠에게 일부러 어느 선물이 더 좋냐는 짓궂은

장난을 쳤다.

솔직히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로터가 더 맘에 들

었다고 말해준다면 정말 너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개변태같은 내 남자친구는 애석하게도 내가 준 선택지들을

요리조리 피해 편지를 선택했다.

그냥 넘 어 가기 는 했지 만 속으로는 거 짓말쟁 이 라고 생 각했다.

‘마음이 가장중요한 것 아니겠어?’ 같은 소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생각했다.

결국은 형태가 없는 ‘말’은 너무나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었

다.

“나은아. 너 무서운 것도 잘 타냐?”

“그럼요.저 위에서 떨어지는 거나,롤러코스터 같은 것도잘탄다고요?”

“그래?”

약도를 손에 쥔 오빠는 곰곰이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행선지를 정했다

“그럼 일단이거나타러 가자.”

오빠가 정한 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놀이 기구이자 여기에 오면

꼭 한 번은 타봐야 한다는 롤러 코스터 였다.

“좋아요. 근데 줄길 것 같은데 괜찮아요?”

“어차피 인기 있는 것 타면 다비슷해.노잼인 것만 타고 갈수는 없잖냐.”

제 법 추운 겨울이 었음에 도 대 기 시 간은 무려 1시간 10분.

손이 시 려워 소 호호 입 김을 불어대 자 오빠는 내 손을 꼭 쥐고는 자기 주머

니에 집어넣었다.

“어때.좀 낫지 않아?”

멋진 남자친구인 척 행동을 하고 싶어 보였던 오빠는 칭찬을 요구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아... 참... 이런 스윗남 컨셉 안좋아하기는 하는데...

하지만 오빠의 생 일이었다.

그냥 순순히 그가 원하는 리액션을 해주도록 하]•자.

“그런 것 같네요. 고마워요. 오빠.”

내 가 어색하게 웃으며 넘기려고 하자 갑자기 오빠의 손이 꿈틀거렸다.

부르르르.

내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나는 커다래진 눈으로 오빠를 올려다보

았다.

“...진심이 안느껴져.”

이 미친놈아.

로맨스 영화 같은 반응 해주지 않았다고 로터를 켜버리는 남자친구님 .

참나...오빠의 음습한욕망을 해소하라고준거지.

그는 자꾸 이상한 데서 나를 괴롭히는데 스위치를 이용했다.

다리에 살짝 힘 이 풀린 나는 자연스럽 게 오빠의 가슴 쪽으로 몸을 기 댔다.

“다시.”

“아니.뭘다시해요...옷!”

다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거부하자 오빠는 진동을 한 단계 더 위로 올렸

다.

둘만 있는 장소나 사람들이 없으면 상관 없는데 , 사람들 잔뜩 줄 서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자극을 받았다가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다.

“아〜오빠〜 너무고마워〜우리자기 손 따듯해〜헤헤”

결국 그에게 굴복한 나는 진심을 담아 해맑은 웃음을 지 어보였다.

그제야 잠잠해진 내 둔부.

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진짜오빠제정신 아닌 것 알죠?”

“무슨일 있었어? 나은아?”

걱 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진짜 뻔뻔하기까지 .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도 오빠랑 나름대 로 수다도 떨 며 시 간을 보내 다보니 어느덧 시 간은

지나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야. 막상오랜만에 타려니까나좀떨린다.”

“에 이. 여기까지 와놓고 뭘 쫄아요. 그냥 타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탈 거야.”

직원의 안내에 따라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다.

근데...

“오빠. 혹시 그거 건드렸어요?”

띵띵띵띵

“오늘도 엑스월드를 찾아주신 여러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여

행되 시기를 바라겠습니 다〜”

철컹철컹.

열차가 움직 이 기 시 작하는 소리.

하지만 열차가 올라가는 것 때문에 긴장되는 것은 아니 었다.

“그거? 그게 뭔데?”

“스위치요. 내가준그거.”

“아니 좥 안 만졌는데 나손도 안 닿아. 지금.”

이미 내려간 안전 레버에 탓에 실제로 오빠는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도 없

어보였다.

“아... 미친...”

아무래도 나는 360도 회전하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기상천외한 경험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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