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93화 (93/276)

<93화 >#93.잘못

나은이랑 같이...?

좋기야하겠지. 좋기야.

근데 어떤 생활이 펼쳐질 지는 잘모르겠는 나였다.

잠깐 상상을 좀 해볼까.

[오빠〜 일어나요〜]

[아... 나너무졸려... 내버려둬...]

[치... 어제 밤새 뭐하다가 지금까지 자요?]

[일했지 ... 그냥 또 존나 구멍 이 란 구멍 다 쑤시 는 내용 쓰는 거 야...]

[나는 따먹어주지도 않고 또 다른 여자 먹는 내용만...]

[미안해...! 우리 나은이 치킨값벌라면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정상적인 일을 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했겠으나 하고 있는 일이 일

이다 보니 뭔가 좀 애매하달까.

하긴 나은이도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집중한다고 하면 방금 내가 상상한

것보다 두 배는 더 어지러운 상황이 나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왜요. 싫어요?”

나은이는 내가묘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지 않자 기분이 상한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한바탕 삐친 것을 풀어주느라 진을 뺀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웃음

을지었다.

“아니지〜 싫기는〜 무슨 소리야. 너〜무〜 좋아서 상상하고 있었지〜”

“진짜요? 오빠도 상상해본 적 있어요? 나랑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지 ?”

그냥네가우리 집에 놀러 와서 안나가는것이 너랑사는것 아냐?

어디서 들어본 적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집에 놀러온 여자친구가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설명을.

동거는 결혼의 체험판 정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좋기는 하겠네.”

“나 오빠랑 같이 살잖아요? 그러면 진짜... 하아...”

살짝 붉어진 뺨을 나은이는 양 손으로 감쌌다.

황홀하다는 표정.

맛있는 것이라도 생각났는지 그녀는 혀로 입술을 한 바퀴 훑었다.

“그건 우리 집이 아닌거죠.”

“응? 집이 아니면 뭔데.”

“우리.”

“우리?,,

“짐승들을 가두는 우리. 할때 우리요.”

..나은아.

사람 두 명이 사는데 그게 왜 우리야.

“그냥 집이라 하면 되지 왜 우리 라고 하는데.”

“제가 오빠 집에서 못 나가게 할 거거든요. 헤헤.”

웃으면서 김치 찌개 속 두부를 뜨는 나은이.

김 이 모락모락 피 어올랐다.

오우...뭔가등골이 서늘한데...

분명히 ‘동거’라는 말은 같이 산다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알고 있었는데 ‘

우리’라는표현이 들어가니 오히려 ‘사육’에 더 늬앙스가 가까워 진 것 같았

다.

마치 [그녀를감금했습니다.]처럼...

싸늘한 느낌 을 지 울 수 없었던 나는 뭔 가 다른 대 화 주제 가 없나 싶 었다.

“아! 연말에는 어떻게 보낼 생각이야?”

“일 단은... 오빠 생일 씁 1일 이 잖아요.”

아... 맞네...

종강을 한 이후 언제나 다가오는 이벤트.

내 생 일은 겨우 꿓일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생일 같이 재밌게 보내고...또4일 후에 크리스마스잖아요?”

이제야 새삼 종강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행복한 이벤트가 두 배.

그것도 무려 ‘여자친구’와 함께. 였다.

항상 크리스마스날 남자놈들끼리 모이면 서로 병신이라며 놀리기 바빴는

데.

나도 이 제 그 좆같은 솔크 모임 에 나가지 않아도 된 다는 소리 였다.

그냥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입에서 바보 같은 웃음이 흘러

나왔다.

“오빠. 어디 아파요?”

나은이는 뭐하냐는 듯이 실실 웃는 내게 물었다.

“아. 크리스마스 너무 기대된다.”

나는 벌써 부터 남자끼리 만 있는 채 팅창에 염장질 할 생 각에 기분이 좋아

졌다.

이새끼들 나모쏠 아다라고 존나놀렸는데 ‘꼴이 좋아.’ 한번 시전해줄 생

각에 나는 함박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있을 때 놀려야 했다. 이건 무조건이 었다.

“맞아요. 그래서 오빠랑 좀 놀다가 저는 본가 내 려갔다 와야 되 거든요.”

“그럼 언제와?”

1월 1일까지도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려우려나?

“아마 1월 초? 한 씁주 정도 보통 있다가 오거든요.”

“그렇구나...”

나는 설날이나 돼서야 본가에 내려가려고했는데 말이지.

물론 앞으로 휴학하고 나면 더 많이 시 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

지 만 당장 조만간 씁주간 못 본다고 생 각하니까 아쉽 기는 했다.

“오빠.왜 또웃다가시무룩해져요. 나본가 내려가서 그래요?”

“으 99

O•

“에 이 ... 금방을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우리 같이 살 거잖아요.”

그건 아직 확답을 주지는 못하겠는데 .

“그니까 나 보고 싶어도 쫌만 참아요.”

아이처 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끄덕 이

고는 다 먹은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k * *

애매한 시간대에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종강을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설계실에 두고 온 짐이 한가득이 었다.

당연히 완성하고 제출한 모형도 집에 들고 와야 했다.

한 번에 옮기기에 무리일 정도로 많은 짐들 때문에 차가 없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우리 같이 두 번에 걸쳐서 짐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

“나은아. 다 챙겼어?”

커 다란 쇼핑 백 속 물건들을 가득 채 운 내 가 나은이 에 게 물었다.

“넹.근데 너무무거워.”

등에는 배낭을 메고 양 손에 에코백을 쥔 나은이는 체구 작아서 그런지

귀여워 보였다.

“근데 나는못들어줘.”

손이 남았다면 들어줬겠지만 내 코가 석자였다.

이 제는 잊고 싶은 어깨 위 군장과 흡사한 무게 감.

“알아요. 얼른가요. 우리.”

이대로 버스를 타는 것은 민폐였기에 우리 두 사람은 택시를 잡아탔다.

“오빠는저 집에 떨궈 주고뭐하게요?”

“일.”

이 제 야 맨정신으로 소설 좀 써보겠네.

솔직히 마감 시즌 때는 내 가 무슨 정신으로 글을 썼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

았다.

“일러레 캐릭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맞다...

문득술김에 내게 연참해 달라던 나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타킹 건 때문에 묻혀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의문점에 대해서 나는 입을 열

었다.

“...나은아.”

“네?,,

“너도에이미파트 별로였냐?”

“솔직히 저는에이미는빌드업 단계가약간.”

나은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자연스러운 질문이라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금기를 범한듯한그녀의 반응에 나는 나의 가설이 높은 확률로 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빼박이네. 이건.

“...한나은.”

“네?”

슬며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는 그녀.

“너는 이따집에 가서 전화받아라.”

어차피 이 골목에서 꺾기만 한다면 나은이네 오피스텔

차마 택시 기사님이 듣고 있는데서 그렇고 그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나은이를 순순히 집에 보내줬다.

나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문을 열고 집 앞에서 내렸다.

“꼭 받아라. 안받기만 해.”

“…알았어요.”

트렁크를 열고 짐을 모두 빼내자 택시는 유턴을 해서 이번에는 우리집 쪽

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혼자 뒷자석 에 남겨진 나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언제부터 나은이는 내 소설을 봤던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어째서 지금까지도 내게 그 사실을 숨겨왔던 것일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내 생각에는 여태까지의 반응들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귀고 난 이후부터 본 것 같기는 한데...

남자친구가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 하는 것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생 각

했다.

나도 나은이 가 만약 작가였다고 한다면 그녀 가 무슨 이 야기를 쓰고 있는

지 보고 싶었을 테 니까.

그리고 솔직히 그녀가 그걸 봤다고 해서 그녀를 꾸짖거나 싫어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아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소설을 돈 내고 읽어준 독자님인데 내가 싫을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 만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를 읽고 나은이 가 나를 무서워 하거나 꺼

려하게 되 었다면 그건 좀 안타까울 것 같기는 했다.

생 각보다 더 딥 하고 음습한 내 취 향에 질려버 릴 수도 있다는 생 각도 살짝

들기는 했다.

음... 일단 제대로 된 대화가 필요해 보였다.

“13900원입니다.”

기사님의 말에 카드를 리더기에 가져다댄 나는 짐을 싸들고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아우씨. 무거워.

집에 돌아온 나는 일단 짐을 정리하기에 앞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는 나은이.

20분 정도 지났으니까 얼추 정리는 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대로

나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짐 잘정리했어?]

[아... 네... 오빠는 아직 일 것 같은데 ... 좀 정리하고 이 따가 통화 할까요?]

대화를 꺼려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

하지만나는 그녀가왜 이렇게까지 도망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분명 내 가 생 각하는 것 이 상으로 나은이 는 뭔 가를 숨기고 있다는 예 감이

들었다.

[아냐. 지금얘기 좀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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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 나는 신중하게 질문을 선택하고자했다.

[나은아.]

숨을 고른 나는 차분한 목소리 로 그녀 에 게 물었다.

[너. 내 소설 언제부터 봤어.솔직하게 말해줘.]

절대로 화를 낼 의도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나는 일부러 나긋나긋한

톤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게요... 오빠...]

망설임 이 잔뜩 느껴 지는 그녀의 단어들.

[..다오빠가 나쁜거예요!]

뚝 끊긴 전화.

나는 벙찐 표정으로 내 휴대폰 화면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야. 내가너한테 일러스트 맡긴 게 얼마어친데.

단골 손님한테 다 너가 나쁜 거야라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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