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89화 > #89. 변화
설계 마감까지 남은 시간 단 꿓일.
모든 시험은 어찌저찌 끝난 상태.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를 시간 따위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야. 휘민아. 75 있냐?”
75. 일명 스프레이형 재접착제.
나도 건축과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이딴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
는데, 이제는 이런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산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파왔다.
“여기.”
모형 작업에 한참 열중하던 휘민이가 서랍을 뒤적이더니 내게 검은색 알
루미늄 원통을 건넸다.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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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스프레이는 냄새가 지독하고 여기저기 바닥에 묻을 경우흉한 자국이
남기 때문에 밖에서 뿌리고 와야만하는 것이 규정.
나는 하는 수 없이 겉옷을 챙 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후우. • . ”
새하얀 입김이 나온다.
딱 삼 일만 버티면 된다. 민호야.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새벽 꿓시 임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팩트가
주는 좆같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건물 밖 한 구석 에 서 비 닐을 펴놓고 스프레 이통을 위 아래로 흔든 나는 출
력된 도면 위에 분사를 시작했다.
치이이익.
골고루 스프레 이 가 잘 묻었는지 확인한 후 그대로 종이를 모형 재료 위 에
꼼꼼히 꾸욱꾸욱 눌렀다.
잠깐 나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손 너무 치렵네.
후다닥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는 기분 전환도 할 겸 나은이 자리로
향했다.
“나큹은큹쟝큹”
평소에는 절대 부르지 않을 호칭이었지만 나의 박살난 멘탈을 달래줄 사
람은 내 여 자친구밖에 없다고 생 각했다.
“아. 오빠. 내 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죠. 씹덕 같다고.”
“그래.나 씹덕이다. 중학생 때부터 씹덕이었다.”
분명 나는 내 설계 진행도에 화가 나 있었을 텐데 꼬장은 여자친구한테 부
리고 있었다.
칼질을 하고 있던 나은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의자를 갖
고 오라며 살짝 옆으로 빗겨 앉았다.
“많이 했어요?”
담담하게 물어보는 나은이.
“일단평면은완성해 놨고 지금모형 중:’
a
모델링은요?”
“기 본은 다 됐고, 디 테 일은 그냥 렌더샷 찍는데 만 추가해 서 어 케 어 케 해
보려고.”
“그렇군요. 으으으”
기지개를 쭉 켜는 그녀.
내 여자친구 눈에도 나와 비슷한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영 양제 라도 챙겨 먹어야 하는 것 아냐?”
내 가 그녀의 볼을 쭈욱 잡아 당기며 물었다.
“얼씨구.오빠 가서 거울이나보고와요. 나보다두 배는 심해 보이니까.”
..그거 야 나는 지금 투잡이 니 까.
아직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 신캐인 송한별의 일러스트는 맡기지 않은
상태였다.
내 글 쓸 정신도 없었다.
일러스트 신청한다고 또 구도 짜고 소품 뭐 넣을지 찾아보고 이럴 시간이
있을 리가.
안 그래도 소설을 밖에서 쓸 수는 없으니 집 에 있는 시 간 동안 잠도 못자
고 계속 글만 쓰다가 온 참이 었다.
“ 자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게 내미는 그녀.
“뭐 야?
“영양제.”
“헐. 설마 나 주려고 가져온 거야?”
와. 진짜 한나은 너란 여자는...!
나는 복에 겨운 놈이 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던 그 순간이 었다.
“아뇨.그냥저 만날마감시즌에 챙겨먹는 건데요?”
..그냥그 말은 하지 말지 그랬어. 좋다 말았네.
그래도 나은이 가 줬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싱글벙글이 었다.
뭔가 고생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내조하는 여자친구라... 순애물 같고 좋
잖아?
사실 최근에 나는내 머리가점점 이상해지는것같은 기분이 자꾸들었다.
분명히 알콩달콩 평범한 연애를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나은화 됐다고 해
야하나.
점점 더 과감해지고 과격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여태까지는
잘 참아왔다고 생 각했다.
그냥 판타지 는 판타지 인 거고, 현생 은 현생 이 지 라고 생 각했는데 , 자꾸 이
판타지스러운 여친님이 나의 멘탈 가드를 무너트리고 있었다.
아니. 새벽에 학교 세미나실에서 그 짓거리를 하게 될 줄 상상이나했겠냐
고.
미친년...
내 여자친구는 미친년이었다 근데 이제 나랑 무척 잘 어울리는...
“안 먹고 뭐 해요. 준 사람 무안하게.”
멍하니 얼마전 학교에서의 정사를떠올리고있자나은이가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먹을게. 지금.”
“여기 물.”
나은이와 잘 어울리는 핑크색 텀블러를 건네주었다.
아쉽게도 간접 키스 같은 것을 의식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우리 였다.
분명 사귄 기간은 이제 1달좀 넘어갔는데 말이지.
뭔가 엄청 오래된 연인 같은 느낌이 었다.
“자. 이제 가서 다시 오빠할일 해요.나이거 잘라야해.”
얇은 베스우드 원목 판에 방안지를 붙여 놓은 나은이 가 다시 자를 집어들
었다.
“나 너무하기 싫어. 나은아.”
옆자리 휘 민 이 는 내 가 징 징 거 리 면 좆같다고 안 받아준단 말이 야.
팔짱을 끼고는 빤히 나를 바라보는 나은이.
잠시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던 그녀는 내게 다가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
다.
그녀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자 그녀는 갑자기 내 귀를 잡아다가 자기 입으
로 끌어당겼다.
뭔 가 말을 하려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 었다.
한 손으로는 귓속말을 하듯이 가림막을 쳐놓은 나은이는 내 귀를 애무하
기 시작했다.
쪽. 쪼옥.
귓불부터 달팽이관까지.
그녀의 말랑한혀가 침을 묻히며 야한 소리를 냈다.
ASMR 영상 같은 것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왜 찾아서 듣고 있는지 알 것만
같은기분이었다.
짧은 애무였음에도 내 아랫도리는 반쯤 부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하아... 오빠...”
야릇한 교성을 내는 나은이.
나는 행 여 누가 볼까봐 한쪽 눈으로 반대 편을 살폈지 만, 다들 작업에 열중
하는 중 아무도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두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섹스 마렵다.그쵸? 나은이 자궁에 정액 싸지르고싶죠.”
거의 야설 대사나 다를 것 없는 나은이의 속삭임.
나은이의 손바닥이 내 허벅지 위를위아래로쓰다듬었다.
또... 나랑 같이 학교 안에서 어디선가 하려는 건가?
걱정이 되면서도 그 맛을 알아버린 나는 가슴 속에서 기대감이 들끓는 것
이 느껴졌다.
하지만 귀에서 손을 떼자마자 그녀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
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감을해야그 다음이 있죠. 이제 가서 다시 칼질이나해요.”
이게 정상이기는 한데...
나는 괜시리 그녀 가 미워 지고 있었다.
노래 가사들보면 ‘이럴 거면 잘해주지 말지.’ 이런 것 많던데.
나는드디어 그런 가사들을 가슴속 깊이 이해할수 있었다.
“후... 그래…! 간다...!”
이거 끝내고 진짜 집에서 파티를 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는 자리로 돌
아갔다.
절대로 30분 후에 그대로 엎어져서 잤다는 소리는 나은이에게 할수 없었
다.
…
하... 드디어 이번 학기도 끝이 오는 구나.
화장이 이상하지 않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나는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나은아. 나 지금 네 복장이 내 취향인 것 같아.”
“뭐에요.그건 평소에는취향이 아니었다는소리에요?”
웃기는 남자네. 이거.
자기가 평소에 어떻게 하고 돌아다니는지는 생각도 안하고.
안 그래도 지 난번에 잠시 통화로 옷 좀 제대로 사 입고 다니 라고 했 었는데
• ••
어 머 니 가 사주셨다는 가불기 를 쓰다니.
근데 오빠가 입고 다니는 옷들 보면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 같기
도해서 그 이상의 비난은불가능했다.
그래 도 오늘은 마감날이 니 만큼 오빠 또한 말끔하게 하고 나왔다.
검정색 폴라티 위에 짙은 갈색 코트.
확실히 키가 있으니까 비율이 엄청 좋지는 않아도 옷빨이 났다.
“오늘 몇번째에요?”
“나는 우리 반에서는 嬖번. 너는”
하>아... 부럽다아...
嬖번이라니.
모형과 인쇄물. 모든 결과물을 제출한 이후에는 먼저 끝나는 놈이 무조건
이득인 구조였다.
일반적으로 최 종 평 가는 인당 10분에 서 1 嬖분 정도 받게 되 는 것 같은데
학생이 한학년에 50명이 넘어가보니 시간이 여간걸리는것이 아니었다.
그냥 대충 계산을 해봐도 500분. 12시에 시작해도 낗시에 끝난다는 소리
였다.
나는 이 페 이스대로라면 아마도 한 閌시 7시쯤 받지 않으려나 싶었다.
“저는 우리 반에서는 11번이요.”
“아이고야...”
오빠도 바로 내 슬픔을 이해했는지 이마를 탁 쳤다.
“내 발표끝나면 옆에 같이 있어줄게.”
“아니에요. 집가서 쉬어요. 뭘 옆에 있어.”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뭐하러 나 혼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옆에서 듣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솔직히 내가 교수님들께 깨지는 모습을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멋진 모습은 못 보여주더라도 망가지는 꼴은 진짜 보여주기 싫은데...
“아냐아냐.오늘 이거 끝나면 종강인데. 기쁜 날이잖아.”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음에도 그가나를 향해 활짝웃어주었다.
“우리 같이 축하해주자고. 열심히 버틴 서로에게.”
...왜 멋져 보이냐.
이진성처럼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지도, 자지를 꺼내면서 희롱해주지도
않는데.
상냥한 말을 해주는 오빠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 리는 것이 느껴 졌다.
“…끝나고뭐 먹을건데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저녁 메뉴를 물었다.
...아무래도 나는 고장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