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86화 (86/276)

땘 86화 > #86. 야작

“하... 인생리얼.”

설계실 빈자리에 터를 잡은 네 명의 사람들.

나. 한나은. 이휘민. 김시은.

도시계획 팀플의 인연으로 가까워진 우리 네 사람은 야식으로 시킨 치킨

의 포장을 뜯고 있었다.

“야. 민호야 가서 치킨무물 좀 버리고 와.”

휘민이가 일회용 젓가락을 나눠주며 내게 명령했다.

“그냥 먹으면 안되냐. 귀 찮은데.”

그거 꼭 물 빼야해?

마시 지 는 않았지 만 그래 도 복도까지 기 어 나갈 기 운조차 없는 나였다.

“내가갔다 올게요. 오빠.”

리뷰 이벤트를 쓴다며 휴대폰만 붙잡고 있던 나은이 가 의 자에 서 일어 났

다.

“와. 이민호. 자기 여자친구를 저렇게 보내네.”

“맞아요. 민호 오빠그렇게 안봤는데.”

대놓고 야유하는 휘민이. 옆에서 거드는 시은이.

원래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한다는 소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냐. 같이 가자. 나은아. 어차피 손도 씻어야 하는데.”

“그래요. 그럼.”

슬리퍼를 직직 끌고 설계실을 탈출한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아오피곤해.”

“아직두 시인데요?”

야야. 새벽 두 시까지 철야 작업을 하는데 ‘아직’이라는 말을 붙이면 너무

섭섭하잖냐.

이 건 도대체 무슨 삶이란 말인가.

시험과 설계 마감이 겹치는 시기의 설계실은 불이 꺼지는 시간이 없었다.

학년의 반 이상 되는 인원들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쉼 없이 작업을

해나갔다.

“그래도 피곤한 건 피곤한 거지. 진도는 어때?”

“진도가괜찮은사람들은 이미 집에 갔죠. 말해 뭐해요.”

그녀의 말이 옳았다.

우문현답이었다.

설 계 가 잘 되 는 사람이 존재 할 확률 따위 는 정 말 극히 드물었다.

한스튜디오에 1〜씁 명정도?

그 마저도 다음날 아침에 맨정신으로 보면 거지 같이 해놨다는 생각이 드

는 경우도 허다했다.

“근데 왜 따라왔어요? 화장실 어차피 남녀 따로인데?”

“나? 너랑 같이 둘만 있고 싶어서.”

솔직히 나은이와는 한 공간에 계속 오래 같이 있기는 했지만 자리가 멀었

기 에 잡담을 주고받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자리는 저 가장 구석 자리.

나는 비교적 안쪽 자리.

책상 10개는 넘어가야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다.

“으...오글거리는 말좀하지마요.”

탈건과 항상 따라다니 는 또다른 줄임 말 야작.

야간작업.

내 여 자친구는 야작 국룰 복장인 후드티 에 추리 닝 차림을 하고 있었지 만

그럼에도 얼굴에 서 광이 났다.

.....

텔레그램 최대 소설 공유방!..

드씨, 웹툰, 소설, 등등 10만개 이상의 파일이 존재!.....

인터넷 주소창에 따라치세요........

복도끝에 위치한화장실에 앞에 선 우리 두 사람.

“가위바위보?”

“...진심이에요?”

“아니 그럼 이걸 각자 하나씩 들어가서 까야 해?”

경제적 손해라고. 이건.

“흠 • •• ”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나은이는 이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짝 쳤다.

“아.그러면이렇게 해요.”

“어떻게?”

“오빠가 치 킨무 물 빼 오면 제 가 오빠 물 빼 줄게 요.”

저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약간의 딜레이가 있었다.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던 나는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앞으로 치킨 시킬 때마다무만 10개씩 추가해야겠다.”

“음식 갖고 장난치면 못써요.”

대놓고 정색하는 나은이.

그런 것 치고는 너 극장에서 콜라고의로 쏟았잖아.

그것도 두 입 먹은 라지 사이즈.

“아무튼 어때요?”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손에 있었던 치킨무를 받아들었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손을 우선 비누로 깨끗이 씻었다.

손끝마다 남아있는 본드자국을 떼어내는 과정은 딙년이나 했음에도 여전

히 불쾌한 작업이었다.

치킨무의 비닐을 꿓분의 1 정도 뜯고 물을 빼낸 나는 곧바로 다시 나은이

가 기 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옛다.”

내가두팩 중한팩을 나은이에게 건넸다.

“우리 오빠 착해. 흐.”

한 손으로 내 엉덩이를 팡팡 때리는 그녀.

배가고팠던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얼른 다시 설계실로돌아갔다.

콜라까지 먹기 편하게 세팅을 다해둔 시은이와휘민이는 조잘조잘 잡담

을 나누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오빠 작년에 그 건축가초청 강의를 들었다고요?”

“어.교수님께서 관심 있는 사람은 연락주라고하셔서.”

“와. 대박. 저 진짜 그사람엄청 좋아하거든요.”

아오. 뭔 쉬는 시간까지 대화가 저래.

나은이도 나의 말에 동감했는지 치킨무를 다소 격정적으로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잘 먹겠습니다〜”

나은이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의 자에 앉았다.

“그래. 많이들 먹고 지옥 가야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곳은 인세의 지옥이었다.

치 킨을 먹으며 우리는 어김 없이 신세 한탄을 하며 탈건을 외 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짜 이번 학기만 하고 탈건 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제

법 멀리 와버린 우리들이었다.

남은 것은 嬖학년 졸업 설계 하나 뿐.

여기까지 와서 졸업장 안 받겠다고 때려치우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

었다.

“집 가고 싶어...”

음식을 먹으면 분명 힘이 나야 했으나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안타까운

탄식뿐이었다.

“…저도요.”

내 옆에 앉아서 콜라를홀짝이던 나은이도 내 말에 공감해 주었다.

“…집 갈까?”

새벽 꿓시쯤되면 찾아오는 스멀스멀 밀려오는 귀가의 유혹.

사실 이 타이밍을 넘기면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새벽 嬖시에 집을 가면 두세 시간정도밖에 집에서 못 자기 때문에 그냥설

계실에서 쪽잠을 잔다는 마인드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에이. 집 가면 다음날 무조건 후회하는 것 알잖아요.”

나은이는 애써 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붙잡아주었다.

“대신 졸리면 내 자리 찾아와요.내가 잠깨게 해줄게.”

“어떻게?”

나은이는씨익 웃더니 내 허벅지 위에 손을올렸다.

“맛있게.

...그냥 지금 졸리다며 바닥에 누워버리릴까 싶은 충동이 밀려왔으나 쓰레

기를 정리한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후우. 진짜로 내일까지 도면 정리 다한다.”

이미 다시 작업을 시작한휘민이는 내 화면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 정도 해갖고는 내 일까지는 힘들 것 같은데 ?”

물론 아직 창호도, 가구도, 레벨 표현도 아무것도 되 어 있지 않지 만 이 정도

면양반.

저번에는 이것보다도 더 촉박한 스케쥴 속에서 마감을 해냈다.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이 기만자 년아.”

괜히 심술이 난 나는휘민이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다시 작업에 몰두

했다.

04:37

대충 버스 첫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겨울이라그런지 아직 해는보이지 않았다.

두 시까지만 하더라도 제법 소란스러웠던 설계실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좀비처럼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었고, 서렌 버튼 누

르고 머 리 박고 자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나은이 쪽을 바라보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엇박으로 리듬을 타는 나은이의 고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편히 자라고 말해주려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 옆자리에서 빈 의자를 끌고 온 나는 턱을 괴고 나은이의 얼굴을 가만

히 바라보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흔들리는그녀의 얼굴.

검지를 든 나는 아주 살살 그녀의 볼을 콕 눌렀다.

“...아!”

그녀는 낯선 감촉에 날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뭐에요. 언제 왔어요.”

“너 졸고 있길래 방금.”

“아씨... 나 얼마나 졸았어요?”

“나야모르지. 내꺼 하느라.”

나은이는 시간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망했당.”

노트북 화면을 덮은 나은이 는 그대로 책 상 위 에 두 팔을 쭈욱 뻗 었다.

“오빠는 많이 했어요?”

“많이 했으면 집에 갔겠지.”

“그 말이 맞기는 하네요.”

축 늘어진 그녀를 지켜본 나는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전해 주었다.

“잘 거면 편하게 자. 라꾸라꾸라도 빌려줄까?”

내 자리 뒤 편에는 휘 민이와 내 가 구해온 간이 침대 가 하나 있기는 했다.

“아뇨. 나 이 거 해야 해. 대신 같이 바람이 나 쐬러 가죠.”

“그것도 좋지.”

이럴 때는 시원한 바깥 공기 한 번 마시고 오는 것도 잠을 깨우는 좋은 방

법이었다.

“그래요.그럼 가요.”

“아니. 근데 옷 안 입고가?”

지금은 12월.

겉옷을 안 입고 나갔다가는 동사할 지도 몰랐다.

“네. 밖에 나가지는 않을 건데.”

“그럼 실내에서 돌아다니자고?”

“설계실 밖이면 충분하죠. 추워 죽겠는데 뭐 하러 나가요.”

내 손을 붙잡은 나은이는 그대로 나를 끌고 복도로 나갔다.

새벽이라 그런지 일부만 불이 켜져 있는 복도는 공포 영화와도 같은 분위

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냥 복도를 좀 돌다가 들어 가려 나 싶었는데 나은이는 어 딘가 목적 지 가

있었는지 나를 끌고는 한 층 아래로 내 려갔다.

“…어디 가?”

“좋은데:

이 저주 받은 건축대 건물에서 좋은 데가 어디가 있단 말인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던 나는 그저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몸을 맡길 뿐이

었다.

“...여기는?”

308호.

가끔씩 크리틱을 때 오게 되는 작은 세 미 나실.

나은이는 어째서인지 그곳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띠로리.

이윽고 잠금이 해제되 었고 나은이는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안으로 들어

갔다.

“여기 비밀번호는 어케 알아?”

“잠깐과사에서 일했을 때 있었어서요.”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

유를 좀처럼 짐 작할 수 없었다.

암전된시야속.

시력을 잃게 되면 다른 감각이 배로 예민해진다는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듯싶었다.

“오빠. 이제 같이 잠 좀 깨워 볼까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나은이.

“뭐 하려고.”

“아까 물 빼줬으니까 이제 내가 빼줄 차례잖아요.”

“그 말진심이었어?”

나는 그냥 농담으로 한 소리 인 줄 알고 웃어 넘 겼는데 말이 지.

스륵. 스르륵.

옷가지 가 바닥에 떨 어 지 는 소리 .

“어디다 뺄래요?”

“야.두개 깠으니까두번이냐?”

“으에? 99

바보 같은 소리를 내는 나은이.

앞으로 냉 장고에 치 킨무가 마를 일은 없겠구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