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83화 (83/276)

<83화 >#83.음문

나는 고장이 나버린 걸까.

자꾸 오빠가 나를 향해 말해줬던 ‘좋아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박아줄게.’, ‘따먹어 줄게.’, ‘다리 벌려.’

늘 오빠가 내게 해줬으면 하는 말들보다 나는 저 좋아해’라는 단어에 마

음이 흔들리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살짝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볼.

...순정 만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았다.

사랑에 빠진 소녀와 흡사한 나의 모습.

분했다.

이대로 꺾인다는 것은 내가 오빠에게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연애가 죄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가슴을 간질이는 듯한 몽글몽글한 느낌이 그렇게 불쾌하

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페이스라면 오빠는 절대로 이진성이 히로인을 대하듯이 나를

대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점점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며, 사랑이 넘치는 섹스를해대

겠지.

...싫었다.

...그것만큼은진짜 싫었다.

이런 연애를 할 것이었으면 나는 그 오랜 기간 처녀를 지킬 필요도 민호 오

빠를 짝으로 택할 이유도 무엇 하나 없었다.

저항해야 했다.

나는 오빠 안에 있는 가학적인 짐승을 일깨워줘 야만했다.

“정신 차리자! 한나은.”

양 손으로 뺨을 두어번 두드린 나는 옷장을 열었다.

이 카드는 조금 나중에 쓰려고 생각했는데 ...

아마 이 걸 본가에 서 배 달시 켰다가 혹시 나 엄 마 아빠가 내 용물을 보게 되

셨다면 기절하실 수도?

마음을 다잡은 나는 휴대폰을 집 어 들었다.

[네. 오빠. 전데요.]

진짜로 참을 수 없게 만들어 줄게요.

민호오빠.

“아. 현대건축 피티진짜 존나 많네.”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는 슬라이드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이. 역사과목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요.”

나은이네 동네에 위치한유명 카페 체인점.

그녀의 권유에 따라 함께 시 험공부를 하기 로 한 우리는 각자 노트북을 싸

들고 한적한 꿓층에 자리를 잡았다.

대대로 건축과에서 진행하는 역사 수업들의 피티는 너무나도 페이지 수

가 많았다.

심할 경우 한수업에 100장을 넘기는 경우들도 있었다.

일반적인 역사 수업이라면 어느 정도 텍스트가 있었겠지만 계속 건물과

그 건물들의 특징을 설명해야하는 수업 구조 상 여타 수업에 비해 그림이 배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몇 시까지 할거야?”

짜증나는 마음에 종이 빨대를 잘근잘근 씹던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나

은이에게 물었다.

“우리 아직 온지 1시간지났는데요.”

“남자애들끼리 오면 20분이 멕시멈인데.”

“우리 수다 떨러 온 것 아니잖아요.”

실제로 남자애들끼리 오면 음료를 嬖분 컷하고 대충 10분 떠들다 나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꿓시간 앉아있는 사람들은 자린고비라도 한다는 말인

가.

“그래서 언제 갈건데.”

나은이는 휴대폰 화면을 두드려 시간을 확인하더니 검지로 테 이블을 두

드렸다.

“ 1 시 간만 더 하다 가요. 10주차까지 만 다 보고 가게.”

“그래그래.1시간 정도면 뭐...”

말은저렇게 했지만 1시간이나더 있어야하다니.

아. 공부하기 싫다.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두고 장 누벨 아저씨의 건축물 특징을 봐야 하다

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노트북모니터로 시선을 옮긴 나는 어서 1시간이 금방

지나가기 만을 기도했다.

“후우우〜 입김나온다.”

확실히 12월 이 시작되 자 훅 추워진 것이 체감되 었다.

“오빠. 우리 집 들렀다 갈 거죠?”

“응. 네가뭐 알려줄 것 있다며.”

오늘의 용건은 시 험공부만 있는 것이 아니 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새로운 히로인인 일러스트레이터 묘사를 위해

나은이 가 이모저모 알려주기 로 한 날이 었다.

“맞아요. 이거 진짜현직 아니면 절대 모를 만한것들이니까경청해요. 알

았죠?”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팔짱.

“메모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듣겠습니다.선생님.”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집중 안하면 벌줍니다.”

혀를 낼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나은이는 먹잇감을 노리는 뱀을 연상시켰

다.

무슨 벌 일까 무척 이 나 기 대 가 됐 지 만 나는 애 써 그녀를 무시 했다.

“빨리 들어가기나하자. 춥다.”

嬖분 정도 걸어서 나은이네 집에 도착하자 나은이는 옷 좀 갈아입고 오겠

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제법 많이 와봤기에 늘 겉옷을 두는 장소에 코트를 벗어둔 나는 소파에 축

늘어졌다.

아... 종강 마려워...

습관성 종강 증후군.

자꾸의식을 하지 않으면 입에서 ‘종강하고 싶다.’라는 말이 튀어 나오는

치명적인 질병이 다시 도진 나였다.

“오빠.”

문을 열고 나온 나은이 가 나를 불렀다.

배꼽 라인 위로 살짝 걸치는 검정색 나시티와 분홍색 돌핀 팬츠.

전에 도 비 슷한 복장을 여 러 번 봤었지 만 이 건 정 말 든든한 국밥과도 같은

패션이라고 생각했다.

실패가 없네. 실패가.

아닌가? 내 여자친구가 나은이라서 그런 걸까?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어딘가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일로 들어와요. 내가 장비부터 하나씩 설명해줄게요.”

내 손을 붙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 가는 나은이.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보다 내가 방금 목격한 ‘그것’이 몹시도 신경쓰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싶어서 눈을 비빈 나는 다시 한 번 나은이의 복부 쪽

으로 눈을 돌렸다.

저게 뭐야…?

돌핀팬츠의 허리고무줄 위로 조금씩 보이는 검은 자국들.

“일단 이 거는 오빠도 알겠지 만 제 가 쓰는 컴퓨터. 제 일 많이 쓰는 프로그

램은 포토샵이 고요...”

“ 야. 나은아.”

“질문은 나중에 받을 생각인데요.”

내가 말을 끊자 나은이는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나가려

고했다.

“너.이거 뭐야.”

나는 책상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던 나은이의 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 오빠〜 나지금 설명하잖아요. 들어요.”

“이거 뭐냐고. 한나은.”

자꾸 회피하려고 드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그녀의 하의를 붙잡았다.

내가 슬며시 허리끈을 살짝 아래로 내리자 검은 자국들은 서서히 더 모습

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형태는...

단순히 뭐가 묻은 것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구조적으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무언가를 묻히 기에는 상

당한 난이 도가 있는 위 치 였다.

바지와 속옷이 절대적으로 보호해주는 부위 였으니까.

분노가 차오른다.

“빨리 설명해. 이거 뭐냐고.”

“아...그게요...”

내 가 조금은 격한 어조로 말하자 나은이 는 당황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

을 더듬었다.

왜냐하면 저 무늬는 나도 여기저기서 익히 봐온 문양이었기 때문이 었다.

완벽한 좌우대칭을 맞추고 있는 검은색 선들.

마치 한 마리의 나비를 떠 올리는 듯한 모양이 었으나 가운데 에는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언제 한거야.”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왜화를 내냐고?

화가안나게 생겼어? 지금?

어느 남자친구가 이걸 보고 가만히 ‘오구오구 이쁘네〜 아주 잘했다〜’ 라

고해주겠냐고.

그녀의 아랫배에 새겨진 것은음문이었다.

음문.

야한 문신을 일컫는 말로써 여러 동인지나 야설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는

소재였다.

일반적으로 야한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장치였으며, 내 작품 [그

녀를 감금했습니다.] 같은 경우에는 조교가 끝났다는 증거로 이진성이 히로

인에게 하사하는 상과 같은 것이 었다.

이 장치에 무척이 나 진심이 었던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할 수가 없었

다.

“야.한나은. 너이건아니지.”

“...왜요. 내 가 내 몸에 문신하는 것. 오빠 허락이 라도 받고 해 야 된다는 소

리에요?”

“야짤 작가인 네 가 이 게 무엇인지 모른다고는 생 각 안하는데 ?”

그녀도 숱하게 망가를 봤을 것이 었다.

저 문양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을 터.

“어차피 내 몸이잖아요.”

나은이가 불쾌하다는 말투로 내게 대꾸했다.

“내 생각은 안해?”

“아.왜 이렇게 선비처럼 굴어요. 야설 작가 주제에.”

아니? 야설 작가니까 이러는 건데?

그냥 저게 무슨 의 미 인줄도 모르는 독실한 종교인 이 었다면 오히 려 화가

덜났을 것이리라.

이건 전쟁 선포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나시티를 입고 나왔다는 것은 이걸 나한테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진짜... 너는 말로 해서는 안 통하는구나.”

그녀를 두 팔로 번쩍 안아든 나는 거칠게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진짜 기뻤는데.

드디어 우리의 정상적인 연애에 발을 들이밀 수 있게 되 었다고 생각했는

데.

나은이의 행동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그녀의 동의 없이 하의를 쭈욱 당겼다.

나은이는 별로 거부할 생각도 없었는지 분홍색 돌핀팬츠는 내 손에 의해

침대 밖으로퇴장 당했다.

바지를 벗기자 한층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검정색 선들.

현기증이 나서 뭐라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어때요? 야하고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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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듯이 그녀는두손으로하트

를 만들어 자신의 문신을 한층 더 부각시 켜주었다.

“오빠도 꼴리 잖아요. 아니 에요?”

야릇한 미소를 짓는 그녀.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나의 표정은 풀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너는 벌을 좀 받아야겠구나.”

너한테 그 문양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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