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77화 (77/276)

<77화 >#77.피티

“어.그래. 이번에 민호구나.’,

"네.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때. 작업 좀 많이 해 왔어?”

개인적으로 크리틱 시작하기 전에 저 멘트가몹시도 싫었다.

떳떳하게 ‘예’라고대답한것은 1학년 1학기가마지막이었다.

작업을 많이 한다는 말에는 많은 의 미가 함축되 어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작업을 많이 한 것은 절대 아니며 그렇다고 손을

무조건 많이 움직여서 뭔가를 만들어 가도그것이 무조건 많이 했다는 것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합리적이고 유의미하게 디벨롭 과정에 맞춰서 작업물들을 많이 뽑아내왔

냐는 것이 저 질문에 숨겨진 의미였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네... 뭐... 일단이렇게 해봤는데요...”

어수룩한 답변.

이 런 내 가 싫었지 만 밑밥이 라도 깔아놔야 살살 맞는 법.

“그래. 한번 보자.”

이어지는 잔소리.

그래도 이제 진도가 제법 나가서 교수님은 아예 다 뒤집 어엎으라고 강하

게 이야기하시지는 않았다.

간혹 어쩌다 한 번씩 약 1달 반의 작업물을 무로 되돌리고 새로 해오라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이도 나는 아직까지는 당해본 적 없었다.

여 자애들은 그런 극딜을 한 번 당하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 었다.

“그래도 형태감은 많이 좋아졌어. 지난 시간에 해온 것도 그렇고 말이야.”

일러레님. 감사합니다.

지 난 시 간 나은이 에 게 피 드백 을 받았던 부분은 대 호평 이 었다.

사람이 달라졌네. 이걸 왜 이제야보여주네.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이건 온전한 내 실력은 아니었는지라 머쓱한 웃음

으로 일관할 뿐이 었다.

“감사합니다. 더해오겠습니다.”

“그래. 마감까지 열심히 한 번 달려보자고.”

“넵.

99

강의실을 나온 나는 휴대폰을 들어 나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끝났어.]

[5시까지 우리집 와요.]

[엥 ? 학교 아니야?]

[저지금 집가는길.]

아니. 데이트하자며.

왜 혼자집 가버리는 건데.

하물며 집에서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같이 집에 가는 편이 낫잖아.

[그건 좋은데 왜 먼저 갔냐.]

[아.오빠오기 전에 준비할것이 좀 있어서요.]

[밥 안해줘도돼. 내가뭐 사갈게. 그러면.]

[참나. 누가 밥 해준다고 했어요? 그럼 오는 길에 다이어트 콜라 하나만

사다줘요.]

[알았다. 그럼 음식은 나 먹고 싶은 것 사감.]

[맘대로 하셈.]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뚝 끊겼다.

허... 하여튼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여자친구님이셨다.

짐 을 챙 기 려 고 설 계 실 에 올라가자 휘 민 이 가 퀭 한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밤샘?”

“아. 말걸지 마. 나 순서 다다음이 야.”

얼핏 그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봤는데...

“야. 이런건어케 만드는 거냐?”

“이거 그냥그래스호퍼 돌리면 대충 이렇게 뽑아줘.”

현대 과학은 위대하긴 하구만.

“야. 그럼 나 먼저 간다. 수고해라.”

“와이프 만나러 감?”

휘 민이는 이 제 야 화면에 서 눈을 떼고 나를 올려 다 보았다.

“아. 또 와이프는 무슨 와이프냐.”

“임신시켰으면 와이프지 뭘. 책임져. 임 마.”

“아.진짜아니라고.”

나는 정색을 하며 불쾌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물론 될 뻔했지만 말이지.

“새끼 발끈하기는. 가라.”

휘민이는 피식 웃으며 내 등짝을 한 대 쳤다.

“오냐. 간다.”

아... 휴학 마려워.

:k * *

소설 캐릭 터를 생 각해오라는 말을 한 이후로 나은이는 좀처럼 나와 소통

하지 않았다.

물론 평 일 이 라 바쁠 수도 있다고 생 각은 들었지 만 뭔 가 소홀해 진 느낌.

평소 같았으면 밥도 같이 먹자고 하고 문자도 더 많이 하고 그랬을 것 같

은데 시원찮은 그녀의 행동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오늘 집으로 오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나에 대한 악감정 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버스에서 내린 나는 저녁으로 무엇을 사갈까 고민했다.

음... 뭐가 좋으려나...

나은이 가 좋아하는 음식 이 뭐 가 있었지.

생각해보니까 극장갔던 날떡볶이 먹자고 했었구나.

그닥 선호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나는 인근 떡볶이 가게에서 씁인분을 포장

하고 다이 어트 콜라를 편의 점에 서 하나 구매했다.

嬖시 15분.

조금 늦기는 했네.

띵동띵동.

그녀의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발소리 가 들려온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나은이가 나왔는데.

“…뭐냐.”

“뭐가요.”

“뭐겠냐. 네 복장이지.”

조금은 작아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

그녀의 골반 라인의 훤히 드러나는 검정색 미니스커트.

그리고 그 밑으로는 검 정색 스타킹 .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 강수연을 연상시키는오피스룩에 나는 이건 또

뭐지 싶었다.

심지어 오늘은 동그란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일단들어와요.”

오피스텔 안쪽으로 들어가자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실의 배치

였다.

“…식탁이 왜여깄어?”

원래 부엌 앞쪽에 배치되 어있었던 식탁은 오늘은 어째서인지 거실한 가운

데 놓여있었다.

“일단음식 저기 싱크대에 두고 와봐요.”

“뭐야.밥먼저 안먹어?”

“밥이야 이따 먹어도 되죠.”

나는배 별로 안고파서 상관없기는한데 식으면 맛없을 것 같은데.

나은이는 식탁의자에 나를 앉히더니 커튼을 쳤다.

“커튼은 왜?”

“오늘따라왜 이렇게 질문이 많으실까요. 이사장님.”

이사장은 또 뭐야.

그녀는 짧은 다리를 분주하게 움직 여서 모든 불을 껐다.

“자.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위이잉.

컴퓨터가 부팅되는 소리.

얘가뭐를 하려고 이러나 싶었던 나는 헛기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쿨럭쿨럭.

“아니. 야. 이건 또 뭔.”

“그럼 발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조명을 다끈 나은이는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하얀 벽 위에 노트북

화면을 띄워 놨다.

제법 어 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템플릿의 피피티 슬라이드.

근데 골때리는것은저 페이지의 제목이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히로인 기획안.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이 은은하게 내 여자친구의 하얀 피부를 비춰주

었다.

a

...흐.”

자기도하면서 웃겼는지 입꼬리가쌜룩거리는나은이 .

“그럼... 발표...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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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웃참을 하는 나은이를 위해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하긴 한데,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이 기도 하고, 내 가 부탁한 거기

도하니까.

이 정도 맞춰주는 것 쯤이야충분히 가능했다.

“진행하도록.”

나는 거만한 사장님 마냥 다리를 꼬고 그녀의 발표를 듣기 시작했다.

“흠... 흠! 우선 첫 번째 후보입 니 다!”

슬라이 드가 넘 어 가자마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 너 이거 직접...!”

“어허 ! 질문은 나중에 뱥 뫘 璘 때 받도록 하겠습니 다!”

“아...네…”

근데 진짜로 깜짝 놀란 것이 나은이. HNE 작가님께서는 물론 선화이기는

하지만 직접 러프를 그려주셨다.

다른 후보도 있을 것을 생 각하면 이 런 그림들이 몇 장은 더 있을 거 란 소린

데...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그림 속 여캐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첫 번째 후보는 의 사 캐 릭 입 니 다.”

“물론 간호사도 한 번 하신 걸로 알고 있지 만 의 사와 간호사는 좀 느낌 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한 번 가져와 봤습니다.”

흠... 의사라...

확실히 동인지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간호사와 함께 세트로 묶여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성격이나특징까지 구상한 것 있어요? 외형을 제외하고.”

그림이야 어떤 캐릭터를 가져와도 나은이는 꼴리게 그려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히로인들의 성격. 가치관. 행동 패턴이었다.

“그러니까 얘는 말이죠...

99

나은이는 주섬주섬 가슴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우선 컨셉으로는 완벽주의자. 결벽증이 있는 것을 특징으로 잡았고요, 병

원 안에서는 몹시 인정받는 부류에 속하지만 차가운 성격으로 다들 다가가

기 어려운 이미지라고 생각을 해 봤어요.”

준비한 내용을 끝까지 읽은 나은이는 경계심 많은 새끼 고양이 마냥 내 눈

치를 보고 있었다.

일단 내용을 떠나서 나은이가 너무 귀여웠다.

아니.왜 내 눈치 보는데.

피피티랑 그림도 개고퀄로 준비해놓고서 빈손으로 설계 크리틱을 간 듯

한 반응을 보이는 나은이.

조금 더 이 분위 기를 만끽하고 싶었던 나는 까칠한 사장님처럼 낮은 톤으

로 입을 열었다.

“ 다음.

99

내 가 아무런 피드백 도 주지 않고 다음 후보로 넘 기 라고 하자 나은이 는 이

런 반응이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좀 굳은 듯 했다.

“다음은... 비서입니다.”

오 이건 나도 생각했던 건데.

와. 근데 진짜 잘그린다.

화면 속 비서 모습을 한 히로인은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고 있었다.

남자들이 보면 환장을 할 것 같은 비쥬얼.

러프만 봐도 이렇게 가슴이 웅장해지는데 완성이되 면 어떨까.

“캐릭터 설정 얘기해보세요.”

“네. 이 비서는요...”

다시 주섬주섬 메모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나은이.

메모를 할 거면 조금 더 큰 곳에다 하지 글씨도 잘 안 보이겠다.

“파릇파릇한 사회초년생으로 대기 업에 입사한 것에 몹시 들뜬 듯한 분위

기라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그러다 이제 진정한 사회생활이란 무엇인지 차

차 알아가는...”

흐음... 내용 자체는 그럴싸했다.

엄 청 차별화되 거 나 새로울 것은 없었지 만 든든한 국밥 같은 느낌.

“독자들이 남자 사장 밑에서 일하면 비처녀일 것 같다고 하차하면 어떡하

죠?”

나도 잠시 했던 고민.

근데 이 건 사실 여사장이 라고 가정하면 아무런 문제 가 없는 질문이 기는

했다.

나은이의 순발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싶어서 질문을 던졌던 나는 그녀의

반응에 점점 더 입꼬리가 올라갔다.

“...힝.”

속상한 듯한 표정의 나은이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거 기까지는 생 각 안 해봤단 말이 에요.”

동그란 테의 안경이 그녀의 뽀짝한 표정을 두 배로 더 귀엽게 만들어주었

다.

아. 진짜 널어쩌면 좋을까. 나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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