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62. (물리)
무척이나 어수선한 분위 기 속.
다행이도 휘민이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무사히 발표를 끝마쳤다.
물론 딱히 직접적으로 나나 나은이가 피해를 준 것은 없었지만 뭐랄까...
괜히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솔직히 발표 중에도 수강생 들 중 반 정도는 스크린 이 아닌 우리 를 바라보
고 있는 느낌이 었다.
“그래요. 준비 잘했네요.”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은 분위 기를 세탁하기 위해서 였는지 다른 조에
비해 약 두 배 정도 짧은 피드백을 주시고는 우리를 빠르게 돌려보내주셨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다시 주섬주섬 목도리를목에 둘렀다.
목도리를 다시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나은이를 팔꿈찌로 쿡쿡 찔렀
다.
“야.목도리 좀해.”
“어차피 다 봤는데 그냥두죠. 뭐 어때요.”
내 귓속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는 나은이.
아무리 다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애들이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니...
이민호 존나 야무지게도 빨았네. 이 생각하겠지?
하아...
하지만이로써 먹버남 논란은 아마 높은 확률로 종식될 것이었다.
대신 우리 두 사람은 정신 나간 커플 타이틀을 얻기는 하겠지 .
솔직히 우리 이후의 발표한 사람들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 이 거 끝나고 집으로 튀 어 갈 생 각 밖에 없었다.
“자. 다들 너무 잘 준비해줬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교수님이 수업을 끝내주시자휘민이가 우리 앞에 섰다.
야. 이민호』
“어.휘민. 발표 수고했다.”
“너희. 도대체 뭐야.”
휘 민이는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앉아있는 나를 내 려다보았다.
“아... 그게...”
“아니. 나중에 연락 해준다고 해놓고 문자 한통 없더니 대뜸 나은이랑 팔
짱을 끼고 나타나지를 않나.”
...미안하다. 나도사정이 있었다.
“아... 그게...”
“그래서 뭔데. 너희 딱말해.”
내가 슬며시 나은이의 눈치를 보자 나은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스르륵.
목에 감아놨던 목도리가나은이의 손길에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은이의 입술이 내 피부에 남긴 선명한 자국들이 다시금 바깥공기에 노
출되 었다.
목에 느껴지는 따듯하면서도 말랑한 감촉.
낼름.
나은이의 혀가 내 목에 남은 키스마크를 다시 훑었다.
“…자기야?”
나는 바보 같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나은이 가 정해준 호칭을 불렀다.
벙찐 것은 나와 휘 민이 만이 아니 었다.
주위 에 서 우리 를 동물원 관객 마냥 지 켜보던 다른 수강생 들도 그녀의
행동에 흠칫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됐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나은이.
“가자. 자기야.”
야. 나는 아직 짐 안쌌는데...
나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의실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허겁지겁 짐을 챙긴 나는 휘민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어깨를 두
어번 두드리 고는 그녀를 따라 달려 나갔다.
:k * *
“나은아.”
“왜요.”
나은이네 집 소파위.
우리는 나란히 일렬로 앉아 아무 의미 없는 광고가 흘러나오는 티비 화면
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개 수작으로 섹스를 노리 던 나은이 는 오늘 만
큼은 나와 마찬가지로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고맙다.”
둘 다 극심한 현타에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
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번 건은 솔직히 나은이 가 캐리한 것이 맞기는 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나를 위해 오피
셜한 미친년이 되 어주었다.
이게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야만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 었다.
사실 누구보다 잘못한 사람은 우리 허락 없이 영상 유포한 놈인데... 씹새
끼...
“아니에요. 내가 미안하죠. 뭘.”
여전히 시선은 티비에 고정한나은이가 천천히 옆으로 몸을 기대왔다.
“오빠.”
“으 99
O•
“우리 이번 한 달만 이렇게 버티고 시원하게 휴학하죠.”
“...진심으로?”
대부분의 건축학과는 嬖학년까지 있었기에 스트레이트로 졸업하는 학생
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嬖년이라도그냥 할 만한 것 아닌가?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천만에 말씀.
건축학과 嬖년 이후 탈건에 실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게 되는 곳은 바
로... 건축사사무소.
물론 월급도 받고 학부 때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는 하지만 내리 嬖년 학교
를 다니고 바로 방학 없는 설계 지옥으로 자기 발로 기 어들어 간다라...
나 같으면 자살한다.
물론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런 테크를 타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
는 했다.
미 안하지 만 나에 게 는 해 당 사항이 없었다.
휘민이 같은 건축 빌런 녀석들에게나허락된 세계선.
저에게는 무리입니다.
그런 맥 락에 서 내 년 휴학은 나도 고민한 부분이 기는 했다.
“나는 어차피 하려고했던 참이라.”
“왜요?”
“그냥.좀쉬고 싶기도 하고.글에 전념하고 싶기도 하고.”
어디 가서 내놓기 부끄러운 소설이 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인기는 절정.
설계사무소에서 야근해가며 벌어들이는 금액보다 훨씬 더 큰 수입을 기
록하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 일 신경 안 쓰고 글에 전념하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 었
다.
“그래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나은이는 점점 더 무게 중심을 내 쪽으로 이
동시키더니.
“…뭐하냐.”
“오빠 이런 것 좋아하는 것 아니었어요?”
나은이가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얹었다.
나를 올려 다보는 나은이 .
그녀를 내려다보는 나.
“이 자세. 오빠가사준 책에서 나오던데.”
내가 사준 책…?
아... 너를 사랑하는 1이가지 이유였나.
거기서 무릎베개 장면이 나오나보지?
“읽어봤어?”
“…오빠가 처음 준 선물인데 내 다 버 리 기 라도 했을까 봐요.”
의외의 답변.
“그래서 이렇게 있어보니까 어때.”
손을 들어 올린 나는 천천히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
다.
“나쁘지는 않네요.”
나은이는 내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빠.”
“왜.”
“나 잠깐이러고자도 돼요?”
내 허 벅 지 는 생 각보다 훌륭한 베 개 인 모양이 었다.
“어.자라.”
암만 나은이의 머리에 나사가 풀렸다고 해도 그녀는 연하였다.
당돌하고 똘끼 넘친다고 해도 사실 속으로는 분명 무서운 점도 있었을 텐
데.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히 해줄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는 잠시.
소설보다도 더 어지러운 현실에서부터 눈을 돌렸다.
:k * *
으음.
어우. 개운해.
눈을 뜬 나는 기 지 개를 쭉 켜 며 몸을 일으켰다.
몇 시냐. 지금.
시계는 오후 낗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은이는…?
내 무릎 위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던 그녀는 먼저 일어났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침실에 있나 싶어서 나는 천천히 그녀의 방 쪽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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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또
“나은아.”
“들어와요.”
역시 나은이는 자기 방에 있었나보다.
연분홍색 나시티.
검정색돌핀팬츠.
나시티는조금 짧아서 그런지 매끈한그녀의 허리 라인이 조금씩 보였다.
“먼저 일어난 거야?”
“일어난 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머 리를 묶은 나은이는 평소와는 살짝 다른 느낌 이 었다.
“뭐하고 있었어?”
내 가 그녀에 게 묻자 나은이는 말없이 스크린을 살짝 돌려서 내쪽을 향하
게 해주었다.
“...일하고 있었구나.”
음. 그래. 열심히구만.
잠에서 깬 나은이는 소설 속 [한나은] 일러스트를 작업하고 있던 모양이었
다.
“색감어때요?”
지난번에는 흑백의 선화였었는데 나은이는 어느덧 1차채색을 거의 다해
가고 있었다.
“좋아.”
말해 뭐하겠습니까. HNE 작가님 .
“그럼 이거 이대로그냥계속할게요?”
“내가 언제 너 한다는 것 뜯어말린 적 있니.”
실제로 나는 그녀의 정체를 알기 전에도 그녀의 그림에 토를 단 적이 거의
없었다.
지적...사실지적도아니지.
그냥 단순 소품이 나 세세한 디 테 일만 고쳐 달라고 말했을 뿐.
나은이의 작업물은 내 기준에서는 언제나 완벽에 가까웠다.
“밥.먹어야죠.”
“그러게.”
학교를 탈출하듯이 나온 우리는 그냥 바로 나은이 네 집으로 돌아와버 렸
다.
아침에 샌드위치 한쪽 먹은 것이 전부였는데...
배에서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뭐 만들어 주고 싶기는 한데 집에 재료가 없어서...”
나은이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냐. 그럼 나그냥 집에 가서 먹을게.”
집 가서 시켜먹지 뭐.
번거롭게 나은이를 귀찮게 할생각은 없었다.
“...집에 간다고요?”
나은이가항의 하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나도 집에 가야지. 원고도 쓰고. 설계도 하고.”
“하. 진짜 오빠. 이런 사람이 었어요?”
...내가 내 집 가겠다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건데.
휴대폰을 집어든 나은이는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를 내게 내밀었다.
“봐요.”
[진짜저 먹버남 집착녀 씹레전드네.]
[걔네 존나 떡치고왔는지 목에 키스마크 가득한것 실시간으로봄거 키
[아. 남자존나 부럽다. 나한테 집착해주는존예녀는 왜 없냐.]
...역시나곱창이나있구나.
그래도 정말 다행 인 점은 그냥 내 가 일방적 인 가해 자라고 여겨 지는 글은
거의 다 사라진 모양이었다.
여 론은 그냥 우리 를 특이 점 이 와버 린 커플로 취 급하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한몸 바쳐서 남자친구를 위해 살신성인 했는데 자기는 이제
볼 일 없다고 집에 가시겠다?”
“근데 나여기 붙잡아둬서 뭐하려고.”
그 순간이었다.
나은이의 눈이 먹이를 사로잡은 뱀처럼 느껴졌달까.
“...오빠도 한몸 바쳐야죠.”
한몸(물리)이냐.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