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37화 > #37. 딸기
샤워기를 킨 나는 일단몸에 묻어있는 여러가지 체액들을 닦아냈다.
땀이며 침이며 그리고 허벅지 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정액까지.
보지 안쪽으로 살짝손가락을 집어넣어보자오빠의 꾸덕한 정액이 대량
으로 묻어나왔다.
내 계획은성공적이었다.
오빠.
오빠가 아무리 이악물고 버티려고 해봤자 이게 버텨지겠냐고.
유소연은 여자인 내가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일반 독자도 아니라 그 캐릭터를 창조해낸 한겨울 작가님이 이 공세
를 버텨낼 수 있을 리가만무했다.
그는 내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낮에 내가그렇게까지 했는데 날 버려두고 가...?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해야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쁘잖아. 귀엽잖아.
모쏠 새끼 따위가 마다하기에는 내 얼굴은 너무 고퀄이었다.
진짜 내가 쫌만 못생겼더라면 아마 집에가서 나를 탓했을 수도 있었겠지
•
그냥 내가 못나서, 내가 먹음직스럽지 않아서 오빠가 도망갔겠구나 하
고 서럽게 울었을 수도 있었다.
...이건 민호 오빠가 악질인 것이 맞았다.
그건 그렇고 설마 질내 사정까지 할줄이야.
아무런 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였다면 이건 대형 엑시던트였지만 여기
까지도 내계획 안쪽이었다.
피임약도 미리 복용하고 왔고, 완벽한 연기를 위해 오빠의 집앞에서 소
주반병을 원샷 때린 나였다.
아무리 내가 철면피를 잘 깐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대
사를 맨정신을 읊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알코올의 기운
을 빌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보람있
는 일이었던 것 같았다.
하서아… 상상 속 이진성이 실제로 현현한 듯한 느낌.
자지 사이즈도. 말투도. 행동도.
내 이상형 그대로였다.
내 안을 가득채워주던 그 느낌.
자연스럽게 내 손이 아랫배로 올라갔다.
바디워시 통을 꾹꾹 누른 나는 보글보글 거품을 내 몸을 닦기 시작했다.
이게 오빠가 평소에 쓰는 바디워시...
향긋한 느낌보다는 약간 시원한 느낌이나는 아저씨스러운 픽.
...다음에 올때는 그냥 내 전용으로 대용량 하나 사와야지.
하지만 이런 경험도 새롭고 나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질내사정을 해놓고 피임약을 N빵하자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도 다른 남자랑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걔는 이랬는데 오빠
는 어쩌구 할 그것도 없기는 했지만 보통 걱정... 해주지 않나?
하다못해 병원을 같이 가자든가. 같이 약국을 가자든가.
뭔가 책임지는 멘트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오빠는 대뜸 피임약 비용
을 반띵하자는 말을 섹스 이후에 꺼냈다.
물론 열이 받은 나도 그에 걸맞는 대답을 해주고 오기는 했다.
[안 먹어. 아들 낳아버릴거야.]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솔직히 만약 오빠와 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면 나 같은 딸아이가 태어날까봐 좀 두려웠다.
아닌가... 오빠 같은 아들도 좀...
그건 그것대로 또 어지럽네...
그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끝낸 나는 다시 타올로 몸을 가리고 욕실을 나
왔다.
"...가서 씻어요.’,
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오빠에게 말했다.
근데 어째 오빠의 표정이...
"나은아.’,
이불로 하반신을 가린 오빠가 엄청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뭐요.’,
"...요즘 애 한 명 낳으면 씁억 이상 든대.’,
"그래서요."
"얼마 있냐?’,
"...예?’,
"모아둔 돈 얼마 있냐고.’,
오빠는 다짜고짜 내 자산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건가?
"2000 조금 넘게요."
물론 벌기는 그것보다 많이 벌기는 했지만 학자금도 내고 이사도 하다
보니 모아둔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하아..."
오빠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
다.
"그럼 내가 모아둔 돈이 이정도 있으니까. 음...’,
...이보세요.
당신 진짜로 자녀 계획 세우고 있는거야?
오빠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오자마자 미리 피임약 먹고 왔다는 사실을 공개하려고 했는데 민호 오
빠의 반응을 보니 조금 더 골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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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마치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혼 부부같은 호칭으로 내가 그를 불
렀다.
그리고 민호 오빠의 반응은 역시나...
"...네?’,
정사가 끝난지 이미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이마에 삐질삐질 땀
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멘붕이 온듯한 그의 목소리.
그는 조금 전까지 잘만하던 반말 대신 존댓말로 나를 불렀다.
아. 개웃겨.
"...우리 애가 딸기가 먹고 싶다네."
내가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그에게 싱긋 웃음을 지었다.
"...야. 걔... 아직 정자야. 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잖아.’,
없는 건 아는데요.
"여보... 지금. 나랑 장난해? 우리 아이가 딸기가 먹고 싶다잖아!’,
웃음을 꾸욱 참느라 죽을 것 같았지만 오빠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나
는 이를 악물고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오빠는 언어를 상실했는지 바보같은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 병원 가서 확인 먼저 해보고... 아니. 그냥 피임약을 먹는 편이...
!"
"나... 우리 애. 못 지워. 어떻게 지워!’,
마치 삼류 아침 드라마에 나올 듯한 대사를 생각나는대로 읊어보았다.
"오빠... 설마 우리 애... 억지로 지우게 할 셈이야…?’,
내가 양손으로 배를 삼쌌다.
"아니지…?’,
와.
오빠의 지금 표정 사진으로 꼭 남겨주고 싶은데 말이지.
세상 댕청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
이런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이진성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낸 걸까.
참신기했다.
섹스를 할 때의 오빠와 평소의 오빠는 정말 다른 인격이라고 생각될 정
도로 온도차가 극심했다.
사람이 이럴수도 있구나.
오빠는 현기증이 난 것인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딸기... 사올게…’,
아. 귀여워.
내 이상형과는 전혀 반대 느낌이었지만 오빠의 이런 구석도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선생님. 바지는 입고 가셔야죠."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지갑부터 찾고 있었다.
허둥지둥하는 그의 움직임.
"아... 그러네...가 아니라 시발! 무슨 딸기야!"
오빠는 정신을 차린 것인지 바로 소리를 질렀다.
"푸흡.’,
그의 반응에 결국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요. 우리 애가 먹고 싶다잖아요."
내가 그의 손을 내 배에 가져다대게 했다.
"야. 딸기를 사올게 아니라 피임약 사올게.’,
진짜로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는 그를 보자 나는 이제 장난을 그만할 때
가왔음을 직감했다.
"가지 마요.’,
"아냐. 조금이라도 일찍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은...’,
"먹고 왔으니까요. 괜찮아요."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있던 오빠의 행동이 일시정지 화면처럼 멈췄다.
"그럼 딸기는...?’,
"그냥 제가 먹고 싶어서요.’,
이 집 리액션 좋고요!
오빠의 벙찐 표정은 정말이지 일품이었다.
하아...오늘 아침 내가 지었던 표정보다한층 더 어이가 없어 보이는표정
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 씻을게…’,
오빠가 다시 바지를 스르륵 내리고는 화장실로 걸어들어갔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려오자 침대에 혼자 앉아있었던 나는 급격히 피로
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읽다보면 히로인들이 섹스 이후에 반쯤 기절
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게 그런 느낌이려나...
오빠를 더 놀려주고 싶은데...
유소연 말고 다른 캐릭터 연기하면 씁회전 해주려나...?
와. 그러면 오늘이 내생일인데.
하지만 생각과 달리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다.
남자 주제에 왜 이렇게 오래 씻는거야…
아... 졸리다...
* * *
샤워기에 물을 틀어둔 나는 정말 오랜만에 냉수로 샤워를 했다.
군대 다녀온 이후로 처음으로 하는 냉수 샤워였다.
차가운 것을 싫어하는 나는 언제나 온수로만 샤워를 했다.
하지만 이 정도 충격 요법 없이는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나은...
낮에 그녀를 한 번 골려줬더니 그녀는 내게 배로. 아니 어쩌면 두 배 이상
으로 강렬한 충격을 줬다.
나는 진짜로 이대로 내가 아빠가 되나 싶었다.
피임약 안 먹는다.
딸기가 먹고 싶다.
...미친년.
미친년이 따로 없었다.
아... 생각해보니 아직 원고도 다 쓰지 못했는데...
아직 마무리 해 야할 한나은 파트가 남아있었다.
일단 나은이 돌려보내고 다시 써야지.
차마 나은이 앞에서 나은이 이름으로 야설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녀는 마치 침대의 주인이 자신인 것 마냥 작은 숨소리를 내며 곤
히 잠들어 있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 다보았다.
그런 악질 장난을 하기에는 너무 청순한 얼굴 아니냐고.
깨워서 집에 보낼까 싶었지만 너무 편안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나
는 그녀의 어깨를 흔드려던 손을 멈췄다.
하아... 그래. 오늘만이다.
어차피 내일 설계 오후니까 그전까지만 깨워서 보내면 되겠지.
잠옷을 입은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일 설계 준비도 아직 안했는데.
몰라몰라.
우리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실제로 섹스를 한 직후라서 그럴까.
나의 필력은 싱싱한 활어 마냥 미쳐 날뛰었고 소설 속 진성이는 나은이
를 또다시 개처럼 따먹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맛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