땘 30화 > #30. NTR
아이씨... 다음부터는 노벨월드 바탕화면에서 지우던지 해야지.
괜한 오해를 사서 하마터면 오빠에게 나의 정체를 들킬 뻔했다.
아직 그에게 내 정체를 공개하기에는 일러도 한참 일렀다.
내가 그의 애독자이며 그의 소설 내용을 모두 꿰고 있는 것을 오빠가 알
게 된다면 그건 나의 패배나 다름 없었다.
나는 앞으로 오빠가 내게 해줄 조교를 완벽히 모르는 척 해야했다.
영화관에 가서 보지가 후벼지고 화장실에서 따먹히는 것도.
바닷가에 놀러가서 음부만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게되는 것도.
모두 모르는 척을 해야만했다.
그래야 오빠가 더더욱 보람차게 나를 조교해줄테니까.
그리고 나도 연기 따위가 아닌 오빠의 진심 조교를 맛볼 수 있을테니까.
일단 오빠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해야했던 나는 생각나는 아무 작품이
나 불렀는데 어째 민호 오빠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 사람... 진심으로 화내고 있어...?
어째서...?
사실 [소꿉친구.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과선배.]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 가 노벨월드에 서 지금 보는 작품은 오빠의 소설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소설들도 찍먹해보기는 했는데 다른 야설들은 너무 떡에만 집중
을 하고 스토리를 놓아버리는 경향들이 짙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다.
맛있는 야설이란 탄탄한 빌드업과 심리묘사가 일품이어야 제맛을 내
는법.
히로인들이 자지만꺼냈는데 '헤으응〜,하며 눈을 까뒤집는 것이 뭐가 재
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오빠의 소설은 더더욱 완벽했다.
사랑과 증오.
즐기는 몸과 거부하는 마음.
한 줄 한줄의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사람들도 많은 버스에서.’,
"하... 나은아... 진짜 너…’,
민호 오빠가 어지럽다는 듯이 이마를 붙잡았다.
"내 것 안 읽어도 상관없어. 근데 어떻게 네가 그걸 나한테 재밌다
고할 수 있어?’,
나는 순간 내가 불륜을 저지른 애인인줄 알았다.
"왜요. 재밌기만 한데.’,
일단본다고 지껄여놨으니 대충 재밌다고는 해야될 것 같은데 오빠가소
설 내용이라도 물어보게 된다면 바로 내 말은 거짓임이 들통나고 말 것이었
다.
"너... 너...!’,
오빠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다왔어요. 내려요.’,
나는 그런 그를 살짝 밀치며 스쳐지나갔다.
이번에 새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주소에 도착한 우리는 박물관 주위
를 빙글빙글 돌았다.
민호 오빠는 여전히 내가 그대로 뱉은 말에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옆
에서 계속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한나은. 내가 진짜 노벨월드 다른 소설 추천해줄게. 걔보다 재밌는게 얼
마나 많은데.’,
"왜 자꾸 남의 취향 갖고 그러는 거에요. 얼른 건물 사진이나 찍어요. 교
수님한테 인증샷이라도 보내야지 덜 혼나죠.’,
그놈의 [소꿉친구.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과선배.]가 뭐라고 자꾸 저러
고 있는건지.
오빠는 내 말에 휴대폰을 꺼내들어서 촬영을 시작했다.
"하아... 근데 제법 경사가 있는게 콘타 만들 때 개짜증날 것 같은데요?’,
역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박물관이 아니라서 그런지 우리는 제법 구비
진 경사로를 올라와서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건축 모형을 만들 때는 언제나 주변 대지의 모형을 본뜬 콘타라는 것
을 만들어야만 했다.
평지면 언제나 별 부담이 없었지만 이런 경사진 땅이라면 일거리는 적게
는 두 배. 많게는 세 배 늘어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지는 그야말로 극혐.
수작업으로 했다가는 온종일 걸릴 것만 같았다.
"몰라. 레이저컷팅 맡길거야.’,
새초롬하게 현질로 노동을 대체하겠다고 대답한 오빠는 사진을 다 찍
고 필요한 정보를 메모하는 듯 했다.
"볼일다 봤죠? 이제 내려가요.’,
"...나은아.’,
오빠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왜요.’,
"오늘 설계 끝났으니까 집에 가서 할 일 없지?’,
두근두근.
첫 만남 이후로 처음으로 오빠가 내게 먼저 무언가를 하자고 권유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드디어 조교 시작인건가...!
고개를 돌려 오빠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진성을 연상케하는 살벌한 표정.
"잠깐 우리 집 좀 들러서 얘기 좀 하자.’,
"오빠랑 할 얘기 없는데요."
"아니. 내가 있어.’,
심장아. 그만 나대라.
터질 것만 같은 심장 소리 가 오빠에게 들릴 것 같아서 나는 더 큰 목소리
로 그에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부터 너를 완벽하게 개조해줄테니까. 닥치고 따라오라고.’,
헤으응.
이번에는 다행히도 간신히 입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뽀짝한 의성어
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좀전에는 무심코 입밖으로 흘러나와 버려서 몹시도 당황해버린 나였다.
"...뭘 어떻게 개조할건지 설명도 안하고 그렇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
는 것 진짜 하나도 안 무서운데요?"
더 화내줘요.
더 혼내줘요.
이런 괘씸한 후배를 그냥 가만히 냅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오빠.
"난 말로 안해. 그냥 봐."
오빠의 말 한 마디에 자궁에 신호가 오는 것만 같았다.
손목이 붉게 부어오를 정도로 강하게 나를 붙잡은 민호 오빠는 나를 또
다시 그의 궁전.
후인동의 자취방으로 이끌고 갔다.
* * *
"이해했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민호 오빠의 책상 앞에 나란히 앉은 우리 두 사람
은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왜. 이해 안되는 부분이라도 있어?’,
"이걸 제가 왜 듣고 있어야하는데요.’,
"...내가 말했잖아. 너를 개조시켜주겠다고."
..오빠.
저 진지하게 왜 오빠가 모쏠아다인지 알아버릴 것만 같아요.
사실 민호 오빠가 모쏠아다일 이유는 외 견상으로는별로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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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훤칠한 편이고, 얼굴도 그럭저럭 봐줄만한 편이라 1번 쯤은 연애
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거구나.
물론 나도 미친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민호 오빠의 이런 면
모는... 광기였다.
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사탄과도 같은 얼굴로 그는 [소꿉친구.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과선
배.]가왜 병신 소설인지 내리 1시간 동안 설명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무려 200화까지 연재된 작품을 그는 한 화 한 화 해체시키면서 어
디서 개연성이 박살났는지 짚어주고 있었다.
"봐. 여기서 고은하가 남자한테 고백하는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 어? 시발. 차라리 최면 어플 당해갖고 뇌가 녹았다고 하는게 맞지. 이게 어
떻게 정상인의 사고방식이야! 이러면 주인공한테 몰입이 돼요. 안돼요."
"...안돼요.’,
졸지에 나는 관심도 없는 소설의 등장인물들 이름을 외워버리게 생겼다.
이제 슬슬 인내심의 한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나는 그에
게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빠... 이제 이거 안볼테니까... 그만해주면 안될까요?’,
"뭐 ? 그럼 너 지금 여기서 선호작 취소하는 것. 인증해. 그럼 보내줄게.’,
...예?
그럼 지금 내 휴대폰으로 노벨월드를 접속하는 거잖아?
비상. 비상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노벨월드 내서재에 담겨져 있는 작품은 단하나.
민호 오빠의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야! 선작 취소하고 가라고!’,
그의 말을 무시한 나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들었
다.
노벨월드 앱을 킨 나는 내서재로 들어가서 하트 버튼을 클릭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선호작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하L. 우리 조금만 있다가 다시 만나요. 한겨울 작가님. 진성씨.
눈물을 머금고 취소 버튼을 누른 나는 다시 한번 랭킹권을 뒤적일 수밖
에 없었다.
아... 이 좆같은 작품 어디갔어.
나와 민호 오빠의 시간의 러브러브 조교시간을 망쳐버린 작품.
[소꿉친구.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과선배.]
나는 단 한글자도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 진짜 괜히 기대했다가 김만 빠지게 이게 뭐야...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작품을 내 선작리스트에 넣은 나는 화장실
을나왔다.
"왜. 차마 선작은 취소 못하겠냐? 응?’,
오빠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잠깐만... 이런 전개라면...
좋은 생각이 났다.
내가 따먹히는 생각.
"오빠. 오빠가 그렇게 남의 소설지적질 할만큼 잘났다고 생각하시면 말
이에요.’,
의자를 슬그머니 오빠 곁으로 조금 더 붙인 나는 그의 허벅지 위에 손
을 얹었다.
"뭐...뭐야.’,
역시나그는 아직도 내 스킨쉽에 적응이 되지 않는모양이었다.
"알려줘요.’,
"뭘.,.
"오빠소설이 더 재미있고 탄탄하다는 걸요.’,
"...네가 죽어도 읽기 싫다며.’,
오빠가 게슴츠레 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오빠가 이렇게까지 소설에 진심인 것을 보니까. 자기는 얼마
나잘 써서 이렇게 얘기하나 싶더라고요.’,
점점 더 오빠의 눈에서 이글거리던 분노가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되려 오빠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도 직감한 것이겠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한겨울 작가님.
지금부터 당신은...
"그럼 오빠. 방금 전에 했던 것처럼 오빠 소설도 한 화 한 화씩 뜯어보죠!’,
내가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빠가 극혐하는 그 소설한테서 독자를 뺏어버리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