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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러레님!-27화 (27/276)

땘 27화 > #27. ATM

덜컹. 덜컹.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코인 세탁방.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불시트를 나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나은이를 강간했다.

잘못했다고 내게 빌던 그녀의 입에 자지를 쑤셔넣었으며 그녀의 눈물

을 보고서도 고통스러운 비명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의 처녀보지

에 내 몽둥이를 쑤셔넣었다.

나는 선을 넘고 말아버린 것이었다.

나은이가 내 방에서 쫑알대던 그 순간에는 내 행위가 옳다고 생각했었

다.

그녀는 나를 줘도 못먹는 바보 취급했으며 내 소설도 엉터리 취급한 여

자였다.

거기서 아무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면 나는 도대체 남자로써 무

슨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아가야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은이 가 처녀 였다는 것은 변수...

몹시도 큰 변수였다.

아니 근데 암만 생각을 해봐도 어떻게 그게 처녀냐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무슨 처녀가 [한심한 저를 따먹어주세요.]라는 플랜카드를 목에 메

고 남자를 집에들여.

솔직히 점을 하나 뗀 치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나은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이런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겠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실 관계.

야설 작가 이민호가동의 없이 성 경험이 전무한 한나은을 범했다.

넥서스가 파괴됩니다〜 쥐〜 쥐〜

시발.

유명 게임의 캐스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쥐쥐 맞네 이거.

세탁기가 멈추자 나는 축축해진 빨래들을 건조기에 넣었다.

후우... 그나저나 나은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그녀는 내가 질내사정을 안하는 대신 신고를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었

다.

아직까지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은 것을 보면 진짜로 안할 것 같기는 한데

• ••

나은이와의 마지막 대화는 오히려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 켰다.

[오빠. 저는 혼전순결주의라서요.]

[뭐…?]

[저 이제 시집 못가요.]

[아니... 네가 어떻게 혼전.]

나은이는 손을 뻗어 침대 위 격렬하게 남은 정사의 흔적을 어루만졌다.

성교로 인한 분비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붉은 자국들이 그녀가 처

녀였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책임져요.]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나은이.

[...어떻게.]

[잘 생각해봐요.]

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정통 일본 라노벨 같은 세상이었다면 ■아하하

! 이러면 결혼할 수밖에!,라며 그녀를 공주님 끌어안기로 들고 한바퀴 돌겠

지만...

이곳은 현실.

강간마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정신나간 년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다른 의미가숨겨져있다는 건데...

설마...

경제적으로 부양하라는 건가!

오늘 낮에 나은이와 먹 었던 참치 가 떠올랐다.

나은이는 이미 경제적으로 나를 착취하는데 성공한 여자였다.

무려 인당 15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의 식사.

작가인 내 주특기인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오빠. 이번 달. 400밖에 못 벌었네 ?]

[아니... 나은아... 그게...]

[이래가지고는 신상 가방 못사잖아! 연참해! 연참하라고!]

내 가 나은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 이미 비축분까지 다 풀었어... 다음 스토리도 더이상 생각이 안나...]

[장난해? 지금? 뇌에는 섹스 밖에 안들어있는 버러지 새끼가! 얼른 써

! 얼른 쓰라고!]

[나은아... 그 가방은 내가 어떻게든 다음달까지 마련해줄 테니까. 화 풀

어라. 응?]

[하아... 이보세요. 이 민호 씨. 앙탈 부리 지 마. 내 가 네 여자친구야?]

[아닙 니다. 죄 송합니 다. 쓰겠습니 다.]

[그래. 그렇게 대답 빠딱빠딱 하라고. 알겠지. 응?]

[알겠습니다.]

[오늘 밤까지 두 편 업로드 안되어있으면 나랑 손잡고 경찰서 갈 줄 알아

.]

[넵.써두겠습니다.]

..오우. 시발.

그냥 자수할까.

저렇게라도 생명을 연명하는 삶은 의미가 있는 삶인걸까.

어느덧 멈춘 건조기에서 이불 커버를 빼낸 나는 힘없이 터덜터덜 집으

로 돌아갔다.

다시 침구류를 정리하고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다시 내 유서를 꼼꼼하

게 점검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인간 실격,이란 작품의 첫 줄.

인생 요약하기에 이만한 한줄이 없었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 나는 노벨 월드 페이지에 접속했다.

최근들어 댓글창을 그렇게 열심히 확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최

신화인 [한나은 (7)]에 달린 200개 남짓한 댓글을 하나하나 읽 어보았다.

[작가님. 진짜 한나은 개머꼴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은이 몸매 죽이긴 해.

[와 진짜 지렸닼거 거 거 거 거 거 한나은 개천박해지네.]

미안하다. 소설 속 걔는 조교가 가능했는데 우리 후배님은 불가능

할 것 같다.

[작가님 진짜 너무 좋아요...]

익숙한 닉네임. [하얀 눈꽃]님이셨다.

대댓을 달아볼까 싶었지만 그 사람 댓글에만 대댓을 달면 혹시나 다

른 독자들이 그걸로 기분이 상할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추천 버튼

만 한번 꾸욱 눌러주었다.

독자 센세. 언제 연중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했

습니다.

마치 먼 곳을 떠나기 전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소중한 독자님들

과 마지막 시 간을 음미했다.

이제 뭘 해야하나 싶었던 나는 문득 내일부터 설계가 다시 시작된다

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설계 준비나 소설을 쓸 멘탈이 남아나지 않았지만 나는 다

시 내 방 한구석에 쌓아둔 모형 재료들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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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는 박물관 리노베이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들은 일반적인 건축 프로젝트들과는 좀 접근방식

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신축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새로운 건물을 어떻게 짓느냐가 중요했다

면 리노베이션은 기존 건물을 얼마나 어떻게 잘 살리냐가 관건이었다.

일단 늘 그래왔듯이 레퍼런스 분석을 좀 하다보면 좋은게 나오겠지.

인터넷에 서칭을 해본 나는 대충 맘에 드는 이미지를 몇 개 가져와놓

고 그와 비슷하게 컨셉 모형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크래프트지로 만들까... 우드락으로 만들까...

원래대로라면 대충 하루를 넘기는데는 아이소핑크만한 것이 없었지

만 오늘은 진득하게 모형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나은이를 잊고 싶었다.

내앞에 닥친 암울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컨셉 모델이라

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퀄리티가 좋은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 * *

"민호야. 이게 맞냐?"

발표를 마쳤는데 교수님의 표정이 영 시원찮았다.

"...네?’,

"이게 맞냐고. 지금."

아. 이런 화법. 진짜 너무 싫었다.

"트레이싱지 가져와봐.’,

내가 노란빛 트레이싱지를 뜯어서 교수님께 드리자 교수님이 스케일

을 대고는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도면 몇대 몇으로 뽑았어."

"200 대 1이요.’,

"모형 스케일은 얼마로 잡고 만든건데.’,

..컨셉 모델이라고 생각해서 실제 사이즈는 고려하지 않은 나였다.

"한... 300대 1...? 정도요?"

"하아... 너 4학년이야. 민호야. 정신 좀 차려라. 이게 300 대 1이라는게 말

이 되니? 그러면 여기 이렇게 어떻게 들어갈건데. 응?’,

"죄송합니다.’,

"야. 필요없고. 대지분석부터 다시 해와. 사이트 가봤어. 안 가봤어."

"아직...’,

"너는 설계한다는 애가 사이트도 안 가보고 뭘 어떻게 하자는 거니

? 오늘 이거 끝나고 거기 다녀오고 대지 분석한 것 나한테 피티 다시 보내.’,

"네…’,

분명 어젯밤에 새벽 꿓시까지 모형을 만들었으나 교수님은 모형 자체

에 대한 평가는 해주지도 않았다.

좆같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강의실을 벗어난 나는 커피를 마시러 지하

에 있는 카페로 내려갔다.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이 뭐라도 마셔야겠다 싶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로 하나요."

카드를 내미는데 갑자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딸기 프라푸치노 하나요.’,

"같이 해드릴까요?"

직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으나 계산은 나의 몫임이 확실했다.

"언제 왔어?’,

내가 애써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오늘의 나은이도 역시나 잡지 속 모델 같은 페션으로 학교에 입고 나타

났다.

베이지톤 체크 자켓 안으로는 그녀의 가슴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하

얀 목폴라.

가을에 입기에는 조금은 추워보이는 고동색 플레어 스커트.

그녀의 앙증맞은 체구에 딱 어울리는 미니 체인백이 그녀의 코디를 완성

시켜주고 있었다.

"조금 전에요. 설계 끝났죠?’,

"어.’,

음료를 받아든 내가 그녀에게 내 돈으로 산 딸기 프라프치노를 건넸다.

나는 2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은이는 5600원짜리 딸기 프라프치노.

벌써 시작되었단 말인가.

"어디 가요?’,

솔직히 바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핑계

로자리를 벗어날 속셈이었다.

"아아... 나 사이트 분석 좀 다시 하러 가보려고.’,

"그래요?’,

빨대로 음료를 쪼옥 빨아먹은 나은이가 싱긋 웃었다.

"응. 그래서 지금 빨리 처리하러 가볼."

등을 돌리고 카페를 탈출하려던 그 순간.

나은이 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 나은아?’,

"가긴 어딜가. 이 강간마새끼야.’,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눈웃음.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상큼한 웃음에 벌벌떨 수밖에 없었다.

히끅.

이번에는 내 입에서 딸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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