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24화 (24/276)

<24화 >#24.강림

...내 방에 한나은이 들어온다니.

초대 받지 않은 손님. 그것도 여자 손님에 대해서는 전혀 면역이 없는 나

였다.

그녀를 계속 밖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허겁지겁 방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무렇게나 벗어둔 속옷을 포함한 옷가지를 빨래통에 던져놓은 나

는 책상을 바라보았다.

어제 먹다 남은 배달 도시락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왜 이렇게 치울게 많은 거냐고.

아씨... 어제 좀 치우고 잘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나는 남은 플라스틱 용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

다.

원래는 건축 작업을 위해 큰 맘을 먹고 구매했던 듀얼모니터였으나 지

금 내 화면 속에는 어제 쓰다 남은 한나은 에피소드의 원고와 참고 자료

인 동인지 페이지인 히로미가 띄워져있었다.

이걸 그대로 나은이가 목격했더라면 나는 분명 그녀에게 한

껏 매도당할 것이었다.

보나마나 한 30분 뒤에 '와〜 오빠〜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런 소리

나하고 앉아있겠지.

그대로 마우스에 손을 가져가 창을 끄려던 나는 문득 한가지 안이 떠올

랐다.

...이거. 그냥 켜둘까?

한나은은 내 약점을 잡은 이래로 계속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쏠

아다븅신 취급하고 있었다.

방에서 음습하게 야설이나 쓰는 한심한 놈 취급이나 하고.

그렇다면 역으로 '진짜,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이 야설계의 기어다니는 혼돈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면 그녀도 질려버려

서 나를 그만 귀찮게 하지 않을까?

물론 그녀가 내게 건네는 농담이나 나은이가 그리는 그림들을 보면 그녀

도 어느정도 이쪽에 대한 항마력이 있겠지만 나는 충분히 그 이상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한나은. 어디네가 '심연,을 들여다보고도 나한테 겁을 먹지 않을 수 있

을까.

준비를 마친 나는 문을 열고는 나은이를 들여보냈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그녀는 내 방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좁네요.’,

"야. 좁다고 했잖아.’,

"근데 진짜 이렇게 좁을 줄은 몰랐죠. 돈도 많이 벌면서 그냥 이사 가라

니까요.’,

"네가 뭔데 자꾸 이사가라 마라야.’,

글을 쓸 때도 꼭이런 독자들이 있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꼭 쓸데없는 부분을 걸고 넘어지는 녀석들

나은이는 내 허락도 없이 털썩 침대에 앉았다.

"오빠."

"왜.’,

"여기서 맨날 야설 쓰고 있는 거에요?’,

그녀가 내 책상 쪽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어.’,

"그렇단 말이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내게임용 의자에 앉더니 의자를 빙글빙글 돌려

보았다.

손님용 간이 의자를 펼친 나는 그런 그녀 옆에 앉았다.

"하... 그래. 일단 작업을 빌미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컴퓨터 좀 켜봐.’,

"이거 누르면 되는 거죠?’,

나은이가 내 전원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

렀다.

계획대로다...!

이윽고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고 화면에는 내가 고의적으로 틀어둔 각

종 자료들이 띄워져 있었다.

"이건...’,

나은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한층 더 크게 확장되었다.

내가 띄워둔 것은 내가 최근에 본 망가 중 가장 하드한 망가.

심지어 히로인도 살짝 나은이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그녀를 질리게 만들

기에는 아주 딱이라고 생각했다.

입. 보지. 후장.

여성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정액이 흘러나오는 조금은 역한 장면

을 띄워놓은 나는 나의 승리를 직감했다.

꺼져!

어서 보고 그냥 내 욕해도 상관 없으니까 너네 집으로 꺼지라고!

하지만 나은이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하우우..."

갑자기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좋아하는 남학생을 뒤에서 지켜만 보는 소녀와도 같은 표정으로 나

은이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오빠가 좋아하는 거에요?’,

"어! 이거 진짜 꼴리더라! 몇 발을 뺐는지 모르겠어!’,

사실 그냥 좋아한다고만 말해주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그녀

에게 혐오감을 조성하고자 더 과장되 게 말해보았다.

"...몇 발요?’,

이걸 진짜로 물어본다고?

"한... 세 발?’,

물어본 그녀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대답해주고 있는 나도 레전

드라고 생각했다.

"그래요?’,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난 몹시 위화감을 느끼기 시

작했다.

뭐... 뭐야. 꼴에 야짤작가라고 저 정도도 우습다. 이런 건가.

하지만 일반적인 여대생의 반응이라면 적어도 눈살은 찌푸려야 하

는 것 아닌가?

다시 봐도 저 짤은 무척이나 하드코어한 짤이었다.

너 닮은 애가 온몸이 정액 범벅이 됐는데 조금 더 리액션이 있어야 정

상아니야?

"이거는 일단 우리 작업에는 참고할 수 없을것 같으니까 끌게요. 상관 없

죠?’,

너무나도 태연하게 나의 계략을 넘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

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 계획은 그녀에게 아무런 유효타를 날리지 못한 모양이었

다.

의자를 내쪽으로 돌린 나은이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나은에 대해 말해주세요.’,

"너에 대해 말하라고?"

"아뇨. 소설 속 오빠가 만들어낸 캐릭터 한나.은! 오빠가 저 생각하

면서 딸치려고 만든 그 캐릭터 말이에요.’,

저 소리를 본인한테 들어버리니 나는 어디라도 좋으니 숨어버리고 싶

은기분이었다.

아. 여기 우리 집 이 라 더이상 도망칠 곳도 없겠구나.

"..너 생각하면서 만든 캐릭터 아니야.’,

"근데 어떻게 귀신같이 저랑 모텔 다녀온 날에 이어지는 에피소드 히로

인 이름이 한나은이에요?’,

"자꾸 쓸데없는 소리하면 그냥 내쫓을 줄 알아.’,

원래 바른 소리를 하는 충신들은 목이 빨리 잘린다고들 하지 않나.

자꾸 맞는 말만 하는 그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나은 일러스트. 오빠는 어떤 컨셉으로 가고 싶었는데요.’,

기존 원고에서의 한나은은 진짜 실존 인물과 마찬가지로 여대생 그림작

가였다.

하지만 전면 수정 이후에는 한나은이라는 캐릭터의 역은 발령을 기다리

는 예비 교사 역할이었다.

"자꾸 한나은. 한나은. 이름 부르면 너 같으니까 그냥 신캐라고 할게.’,

이름을 부르니까 자꾸 눈앞에 있는 그녀를 부르는 것만 같은 느낌

이들 것 같아서 나는 미리 장치를 설정해두었다.

"이번 신캐는 교사야. 정확히는 교사 지망생.’,

"음... 근데 금발 육덕인데 조금 잘 안 어울리지 않아요?’,

솔직히 그녀의 말은 굉장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했다.

고전적인 야설에서 교사의 이미지를 떠올릴 경우 대부분 검은 긴 생머리

와 필요하다면 안경까지도 착용하고 나오는 것이 전통적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너한테 안 걸리려고 어거지로 설정 바꾸다가 이렇

게 됐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시대는 변했다. 개방적인 교사도 필요한 법이야.’,

나은이는 뭐 이딴 새끼가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슬슬 그

녀의 경멸어린 시선에 익숙해져가는 나였다.

"그래서요. 그러면 원하는 복장 같은 것 있어요?’,

"그거 원래 너가 알아서 잘 해줬잖아.’,

사실 HNE 작가님과 작업할 때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그녀가 내가 적

당히 키워드만 던져주면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느낌 그 이상을 가져와준다

는 점이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말해줄수록 오빠가 원하는 느낌으로 나온단 말이요

• ’’

나은이는 검색 포탈에 접속하더니 [교사 데일리룩]을 검색했다.

하나같이 내가 중고등학교때 만났던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 입었던 것 같

은 옷들이 화면에 가득 띄워졌다.

"이 중에서 제일 입혔으면 하는 것 골라봐요.’,

오오... 이런 식으로 하는 거구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그냥 척하면 척하고 바로 작업에 착수하는 줄 알았

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이거.’,

내가 하나를 지목하자 나은이가 피식 웃었다.

"오빠는 선생님들이 이런 옷 입었으면 좋겠나보죠?"

내가 고른 것은 흰색 블라우스와 조금은 딱 달라붙는 검은 미니스커트였

다.

"그건 아니고. 그래야 독자님들이 좋아하신다고."

"뭐래요. 그냥 오빠가 좋아서 저한테 그려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사실 일러스트는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사심을 채우

는것도 있기는 했다.

내 돈 내고 내가 그려달라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복장은 뭐... 대충 이거랑 비슷하게 가져간다고 치고. 포즈는요?"

나은이의 얼굴에는 벌써 장난기가 가득했다.

"지난번 제가 보내준 사진. 그걸로 할까요?’,

"네가 가슴 뒤집어까고 있는 그 사진 말이냐?’,

"네! 오빠가 못 참고 잔뜩 저질러버린 그 사진이요.’,

자꾸 나은이의 가슴 사진이 눈에 아른아른거 렸다.

지금 저셔츠 안에...

꿀꺽.

지난번 그녀의 집에서 주물렀던 그녀의 가슴의 감촉이 떠올랐다.

푹신한 니트 위로 느껴지던 말랑말랑한 복숭아 같던 그 감촉.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아랫도리에 반응이 오

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시연 한 번 해줄까요?’,

"하지마. 나 진짜 안 참는다고 했어. 그딴 짓 하면."

이미 그녀에게 사전 경고를 마친 나였다.

"오빠 보나마나 고자새끼 마냥 참을 것 다 아는데 왜요.’,

나은이 가 슬금슬금 자신의 블라우스를 위로 올리 기 시 작했다.

"너 진짜 그러다가 후회한다. 나은아."

"아다가 허세를 부려봐야 아다죠.’,

어느덧 그녀의 블라우스는 배꼽을 아득히 넘어 브라가 보일 것만 같

은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오빠 소설 속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서 아

무것도 안해요? 내가생각하는 그런 컨셉이 아닌가?"

"아아〜 아무런 개연성도 없는데 여자가 냅다 좋다고 달려들어서 허리

를 흔드는 그런 류의 소설인가보죠?’,

"하긴... 경험도 없는 사람이 방에서 쓴 소설이 뻔하죠. 불쌍하다. 불쌍.’,

나은이는 말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야.’,

이곳은 내 성역이었다.

내 소설이 탄생한 방이였으며 내가 정말 공들인 주인공인 이진성이 탄생

한자리였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서 그녀는 내 소설을 모욕했으며 이진성을 남역세

계에서 따먹히는 병신 주인공 취급을 해댔다.

그래... 이 방 안에서만큼은 나는 작가 한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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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로 싸대기 맞아봤냐?’,

그리고 그렇게 내 성역 안에서 나의 또다른 에고인 이진성은 내게 강림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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