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16.포즈 (2)
민호 오빠가 한겨울 작가님이든 아니든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나는그를 위해 상을 차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대신 이번에는 전보다는 훨씬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좀 어렵기는 했
다.
이미 신고한다는 명목 하에 민호 오빠를 이리저리 휘저은 나였다.
그가 '신고,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잊혀질 만큼 아찔한 자극을 준비해
야 됐다.
■인생이 나락을 가더라도 한나은은 따먹고 간다.,
이런 생각을 그에게심어줘 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재량.
나는 그가 스스로 바지를 내리게끔 만들어야 했다.
근데 여기서 포인트는 이제 내가 그에게 호의를 내비치지 않은 상태
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점.
솔직히 그냥 학교에서 마주칠 때도 옆에 가서 앉아서 아양도 떨고 싶
은 기분이었지만 그래서는 안됐다.
내 첫경험은 완.벽. 해야했다.
그렇게 밍숭맹숭한 러브러브 섹스를 할 거면 뭐하러 지금까지 이
악물고 처녀를 지켜왔단 말인가.
민호 오빠가 돌아간 뒤 나는 계속 옷장을 뒤적였다.
오빠의 취향이라도 물어볼걸...
그냥 그를 내쫓은 내가 한심스러웠다.
분명 모쏠이라면 여자애에 대한 환상이 확고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나또한 희망하는 남자에 대한 상이 매우 뚜렸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주인공. 이진성.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그가 실존한다면 나는 그와 지금 당장이라도 혼인 신고 도장도 찍을 생
각이 있었다.
민호 오빠도 분명히 원하는 여성상이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짐작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왜냐하면 소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는 남자는 이진성 단 한 명이지
만 히로인들은 몹시 많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빠가 진짜로 한겨울 작가님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졌
다.
작가 후기 등을 읽어보면 작가님은 언제나 히로인 한 명 한 명에 대해 진
심 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실제로도 글에서 묻어나왔다.
강수연. 지서윤. 한희정. 유소연. 에이미. 주민지.
그녀들은 한 명 한 명매력이 있는 히로인들이었다.
강수연의 경우 엘리트 오피스 레이디였으며.
유소연은 작은 도서관의 말없는 수줍은 사서 였다.
...누가 민호 오빠의 취향인 걸까.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이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는 그딴 개변태 소설은 읽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으니까.
그에게 들키지 않아야만 했다.
내가 야설에 환장하는 미친년이라는 것을.
우음.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페이지를 클릭한 나는 일러스트 모음집을 눌
러보았다.
내가 정성을 듬뿍 담아그려준 표지가 한 장 한 장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야릇한 복장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하고 있는 히로
인들.
...오빠도 언젠가 나를 저렇게 만들어주는 걸까.
그 생각이 들자순간 굉장히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소설 속 히로인들은 어디까지나 이진성에 의해 조교되어 개발된 것이지
,처음부터 야한 여자들이 아니었다.
만약 민호 오빠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소설과 100프로 일차하는 전개
라고 함은 나는...
이진성은 야한 여자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지 이미 야한 여자한테
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과정에 중심을 두는 남자였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전환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남자였으며 비일상
이 일상이 자리잡았을 때 비로소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이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작중 인물이었다면 분명 이진성은 나를.
[뭐야. 이거. 불량품이네.]
관심 없다는 눈초리로 나를 불량품 취급할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민호 오빠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야한 것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여기저기서 굴러먹다온 년으로 인식
되고 싶지 않았다.
네 번째 히로인인 유소연과 비슷한 착장을 발견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
할 수 있어. 한나은.
할수 있어.
나는 그를 유혹하되 절대로 기분 좋은 티를 내지 않을 것이다.
埌埌埌
평소와는 다르게 나은이는 조금은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목에는 플랜카드가 데롱데
롱 흔들리고 있었다.
눈이 자꾸 거기로 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애써 시선을 돌린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야. 여기 뷰가 좋다.’,
"보나마나 오빠 같은 사람들은 여기서 창문 활짝 열어놓고 이상한 짓
할 생각이나 하겠죠.’,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어? 내가 그렇게 생각을 아랫도리로 하는...
...생각해보니까 창문에 대고 노출 플레이를 하는 씬을 쓰기는 했구나.
뭔가 반박을 하려했는데, 나의 자랑스러운 작업물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
"일단그 공모전 준비 하기 전에 사진 몇장 찍어줘요."
나은이는 내 손목을 붙잡더니 나를 자기 침실로 이끌었다.
두 번째로 와보는 그녀의 침실.
이건 방향제 냄새려나.
남자의 방에서는 절대 날수 없는 향긋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
었다.
"자요.’,
한나은이 자신의 휴대폰을 카메라를 켠 상태로 내게 내밀었다.
"일단 내가 포즈를 취할테니까. 오빠가 가장 꼴리는 구도라고 생각되
는 방향으로 찍어주세요.’,
내가 그녀의 휴대폰을 받자 그때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으음... 일단은 이것부터 해볼까.’,
침대 위에 누운 그녀는 머리를 흩으러트리고는 눈의 힘을 탁풀었다.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 수 없는 동공.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슴 위에 플랜카드를 꼬옥 쥐고 있었다.
[한심한 저를 따먹어주세요횞]
...혼자 이 방에 앉아서 저 플랜카드를 마카로 꾹꾹 눌러 썼을 나은이
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화끈한 자극이었다.
그녀는 의도한 것인지 의도하지 않은 것인지 상의가 조금 더 아랫쪽으
로 내려가 있었다.
나은이의 검은색 브라자가 삐쭉 튀 어나왔다.
...이걸 찍으라고? 나보고?
사진을 찍기 전에 아랫도리 관리가 너무 힘들었다.
모쏠 아다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한 자극.
그래. 그녀는 어디까지나 내 일러레 작가님.
이건일이다.
지금은 업무 시간이다.
완벽하게 내 소설에 도움이 되는 구도를 잡아주자고 마음을 고쳐먹
은 나는 천천히 카메라를 들고 움직였다.
지금과 같은 포즈라면 두 가지 구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가슴골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
는 방법.
살짝 튀어나온 브라자가 독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것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아래쪽 측면에서 찍어서 팬티가 보일 듯 말듯하게 플랜카
드를 강조하게 찍는 법.
찰칵찰칵.
나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그녀를 찍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가 마음껏 찍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번 봐볼래?’,
같은 포즈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내가 나은이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
다.
"...이리와서 같이 앉아서 봐요.’,
몸을 일으킨 나은이가 자신의 침대 옆을 팡팡 두드렸다.
나은이의 침대에... 내가?
막상 나은이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
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옆에 앉자 그녀는 스크린을 가로로 돌려서 내가 찍은 사진을 찬
찬히 들여다보았다.
"...좋아요?’,
나은이가 화면을 보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사진 얘기하는거야? 이 정도면 잘 나온 것.’,
"아뇨. 그거 말고요.’,
나은이가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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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이런 사진이나 찍고 있으면 좋냐고요.’,
"야. 너가 도와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잖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야릇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
자 조금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진짜 싸가지도 정도껏 없어야지.
"오빠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윈윈 아니에요? 왜 성질을 내고 그래요.’,
그녀 가 내 게 화면을 앞으로 들이 밀었다.
"봐요. 오빠. 오빠가 찍은 사진. 내 허벅지 다 보이고 팬티가 보이기 일보
직전이잖아요.’,
"그런 야설이나 읽는 개변태가 이런 상황을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반쯤은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 그냥 빨리 하고 가고 싶으니까. 마저 찍자. 포즈 취해봐.’,
"그거 봐요. 또 나한테 야한 자세나 시키면서 흐뭇해 할거면서.’,
다시 포즈를 취하라는 내 말에 그녀는 입에 플랜 카드를 앙 물었다.
[한심한 저를 따먹어주세요횞]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앞을 짚은 그녀 가 나를 올려 다보았다.
글자가 정확하게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안 먹고 뭐하냐는 듯한 도발적인 자세.
찰칵.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주었다.
마치 일탈계 트위터 계정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사진들이 한 장두 장 나
은이의 휴대폰에 쌓여갔다.
그 이후로도 포즈를 한 세네번 정도 바꿔 촬영을 마친 나은이는 내가 찍
어준 사진들이 만족스러웠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요. 오빠. 이제 가보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유용하게 써라.’,
"네. 오빠. 집에가서 저 반찬삼아서 이상한 짓 하지 마시고요."
"뭐...?’,
"모쏠인 오빠. 지금 여기서 꾹꾹 참았다가 집에 가서 욕구 해소 하려
는것 아니였어요?"
그녀는 웃기다는 듯이 키득키득 손을 가리고 웃었다.
"뭣하면 사진 한 장 정도는 보내줄 수 있는데.’,
..너.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모쏠이라고 만만하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도와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이렇게 없어도 괜찮은거야?
뚝.
다시 한번 나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들렸다.
"말 다했냐. 씨발련아.’,
히 끅.
나은이는 깜짝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