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3.수정
첫 부분을 읽자마자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민호 오빠가 설명해준 캐릭터와는 도입부부터가 달랐다.
머리색. 분명 백금발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스크롤을 내린 나는 점점 눈살이 찌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성은 나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딱 봐도 남가연보다 빨통은 작아 보였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크기
의 가슴.]
[터질 것만 같은 폭유도 좋았지만 이런 슬랜더계도 때로는 그 이상의 맛
을 내기 마련.]
스크롤을 내 리면 내 릴수록 느껴 지는 위화감.
나는 이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는데 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
았다.
이거 완전.
나자아
기기?
| Lo
I ••• • • • • •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댓글창을 누른 그 순간이었다.
[삭제된 글입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최신화였던 [한나은 (1)] 은 삭제되어있었다.
어?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뭐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약 嬖분 후 한겨울 작가님의 공지글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작가 한겨울입니다.]
[우선 새로운 히로인 등장을 기다리셨을 독자님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
씀 올리고 시작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인해 오늘자 한나은 (1) 에피소드는 캐릭터 자체
에 전면적인 수정이 있을 예정이라 내일까지는 휴재임을 알려드립니다.]
[기존에 써놨던 분량도 좀 다시 수정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鑩鑩]
[혼란을 드려 정말 죄송하고 다시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잠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인과 관계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다.
민호 오빠는 내게 한나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그가 말해주었던 외형은 모두 거짓이었다.
왜냐하면 소설 속 한나은의 묘사는 거의 지금의 내 모습과 흡사했
으니까.
민호 오빠가 우리 집을 벗어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차는 삭제되
었다.
그리고 한겨울 작가님은 사과 공지문을 업로드했다.
정말 기적같은 확률로 한겨울 작가님이 딱 그 절묘한 타이밍에 마음
이 바뀌셔서 캐릭터를 수정하고자 하실 수도 물론 있겠지.
확률이 0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게 최근 일어났던 마법 같은 일들.
민호 오빠의 당황한 듯한 표정.
한겨울 작가님의 공지글 시간대.
내 가설이 맞다면... 어쩌면 민호 오빠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작가.
대문호.
한겨울 선생님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埌埌埌
"아오. 진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사과문을 작성한 나는 서둘러 집으
로 향했다.
한나은...
이가까드득 갈렸다.
그녀의 말에 거역할 수는 없었던 나는 그녀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었
다.
나은이의 동네까지 끌려갔지만 내가 그 집에 있다가 나온 시간은 30분
도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나보고 쓸모없다며 나를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나는 혹시나 그녀가 내 소설을 다시 읽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회차를 삭제해야만했다.
참...뭐랄까…
신고는 안해서 다행이기는 한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
심지어 그녀는 회차들이 조금 더 쌓이면 다시 집으로 부르겠다고 선언했
다.
한나은이 라는 이름은 이 미 그녀 가 봐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집에 가
서 내용은 전면 수정에 들어가아만 했다.
이미 오늘 공개되었던 떡씬은 삭제를 해야만 했다.
마음씨 고운 백금발의 육덕 처녀 한나은.
으... 마음에 안들어...
하지만 상황을 모면해야만 했던 나는 그냥 최대한 나은이 같지 않은 캐
릭터를 만들어내야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자리에 앉아 팔짱을 낀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진성이는 그런 애들 안 따먹는데...
어떻게 억지 전개를 해야하는 거지.
만약 한나은이 나를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나은 에피소드들은 높
은 확률롤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미 작성해둔 약 嬖화분의 비축분.
나은이가 주인공 이진성에 의해 자존감을 파괴당하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내 개인적인 경험과 실존하는 인물 모델이 있었기 때문
에 묘사 면에서도 자신이 있었다.
진짜 소설을 쓰면서도 개꼴린다고 생각했는데 폐기 처분을 해야한다
고 생각하니까 피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흐어어어.
언제 다시 다 쓴단 말인가.
좌절. 압도적 좌절이었다.
현관물을 힘없이 밀고 들어오자 나은이네 집과는 대비되는 초라한 나
의 자취방이 눈에 들어왔다.
털썩.
침대에 누운 나는 무기력증 환자마냥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이 느껴졌다.
"내 원고 돌려줘요. 시발.’,
나은이가 미웠다.
처음으로 여자 집에 간다고 설렜던 내가 병신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냥 내 소설의 테러리스트나 다름 없었다.
첫만남 때 내 소설이 한심하다고 욕했으며.
두 번째 만남 때 그녀는 내 원고를 갈아엎게 만들었다.
민심을 살펴보기 위해 다시 휴대폰을 든 나는 노벨 월드 사이트에 접속
했다.
익숙한 닉네임의 독자들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프지 마세요! 작가님!]
고마워요. 독자님. 사실 아무데도 아프지 않고 손가락도 멀쩡하지만 마
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 거 거 오늘자 머꼴이었는데 아쉬게 됐누.]
나도 인정하는 바였다.
진짜 잘썼는데... 크흡...
눈물이 앞을 가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밑에 익숙한 닉네임의 독자 아이디가 보여였다.
하얀 눈꽃님. 내 소설 초창기부터 꼬박꼬박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던 애
독자님.
[저 오늘 내용 못봐서 그런데 뭔 내용이었음?]
아무래도 그는 오늘 회차를 읽어보지 못한 모양이 었다.
[개꼴이었음. 그냥 만나자마자 입에 쑤셔넣던데 거 키
갑자기 저 댓글을 보니까 또다시 나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개 같은 년이기는 한데...
예쁘기는 더럽게 예쁘기는 했다.
오늘 그녀가 보여줬던 복장이 눈에 아른아른 거렸다.
이게 야설 속 세계였다면 그녀의 옷차림은 그린라이트.
무조건 그린라이트였다.
혼자 사는 자취방에 남자를 데려와서 끈나시를 입고 있는다는 것 자체
가 '저를 따먹어주세요.,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녀의 집에 방문하게 된 사유가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경로였더라
면 그녀를 눕히는 일도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
두 번은 에바였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살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컴퓨터 부팅 버튼을 눌렀다.
커피를 한 잔 탄 나는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원본 파일을 저장해두는 폴더를 클릭한 나
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한나은 (1)
한나은 ⑵
한나은 (3)
한나은 (4)
한나은 (嬖)
한 화 기준 매출이 수십만원인데...
이건 정말 돈을 바닥에 내다버리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천천히 마우스를 드래그해 파일을 일괄 선택한 나는 오른쪽 버튼을 눌렀
다.
[삭제하시 겠습니까?]
내 안의 또다른 자아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이민호! 너도 알잖아. 이번 에피소드 필력 미쳤다는 거.,
■솔직히 너도 쓰는 내내 대박 예상했잖아. 이거 한 화에 100만원도 찍
을 수 있을 거라니까?,
'한나은 걔 어차피 직접 안 봐. 응? 외모만 바꾸더라도 내용은 살리자
'어휴 시발 지금 인생 좆되게 생겼는데 그깟 매출이 문제냐 지금.,
'이거 걸리는 순간 그냥 네 소설도 너도 지옥 가는거야. 뫫시 뉴스에서 후
드티 뒤집어쓰고 마스크 쓰고 계 란 맞는거 지.'
'한 번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일 그르치지 말고 롱런해. 걍.,
그래. 이게 맞다.
결국 나는 삭제 버튼을 누르고 내 마음의 미련 또한 비워내기 위해 휴지
통 비우기까지 눌렀다.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자.
새롭게 쓰면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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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잖아.
위이이잉.
휴대폰이 진동이 울렸다.
기분도 안 좋은데 누구 불러서 술이나 먹자고 할까.
뭔가 소설 따위는 잊어버리고 오늘은 푹 쉬고 싶었다.
휴대폰을 집어든 나는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휘민이나 재훈이 같은 친한 애들이 게임이나 하자고 부르는 것 같았는
데 전혀 의외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오빠. 지금 통화 괜찮아요?]
너를 잊기 위해 술을 찾는 나였는데 귀신도 곡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
그리고 그렇게 매몰차게 내쫓았으면서 뭐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전화
란 말인가.
[1자 표시 사라졌는데 왜 답장 안해요? 제 말이 우스워요?]
...아직 1분도 안 지나갔는데.
전화번호를 클릭한 나는 나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어번 흘러가자 나은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딘가... 조금은 흥분한 것만 같은 그녀의 목소리.
뭐야. 얘 왜이래.
[여보세요.]
그에 반해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민호 오빠. 나 진짜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니까. 거짓말 하면 안돼요
. 알겠죠?]
무슨 대단한 질문을 하려고 또 저렇게까지 밑밥을 깐단 말인가.
[어. 얘기해. 뭔데 그러는데.]
이어지는그녀의 질문에 나는쿨럭쿨럭 헛기침을 할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