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11화 (11/276)

<11화 >#11.자취방

[콘스탄트의 뉴 바빌론에 대해 서술하시오.]

오. 발표했던 내용이다. 이건 어떻게든 대충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체주의 건축이란 무엇이며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거장 프랑크 게리

의 작품들의 특징들을 서술하시오.]

아... 수업을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아이씨...

피티 좀 보고 올걸.

시험지를 받은 나는 애꿎은 볼펜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옆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답안지를 작성하기 바빴지만 나는 멀뚱멀

뚱 시계만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나은은... 공부는 잘 하는 편이려나?

멀찍이 앉아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뭔가를 꼬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보다는 준비를 해온 것 같은데...

만약 공부를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머리를 쥐어짜면서 기억해내라고 주

문이라도 걸텐데 이건 뭐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기억이 날 리도 없었다.

결국 시험지를 먼저 제출한 나는 강의실 밖에서 나은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닥칠 위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나는 병신인가.,

아무리 그날 나은이와의 헤프닝이 꼴렸어도 그렇지.

그걸 그냥 못참고 히로인 이름으로 박아버린 이틀 전의 내가 무척이

나한심했다.

사실 나은이는 언제 내 소설을 보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엿한 내 그림 작가.

더 좋은 일러 작업물을 위해 내 소설을 읽어준다면 소설의 작가인 나

는 무척이 나 감사해 야 마땅한 상황이 었다.

거기다 떡하니 그녀의 이름의 이름을 박아넣을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

지. 미쳤어.

하아...

그나저나 같이 그걸 읽어보자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낯뜨거운 소

설을 어디서 읽겠다는 소린지.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서는 절대 무리였다.

자지가 어쩌구. 보지가 어쩌구.

아무리 내가 내 작품에 애정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때가 있고 장소가 있

는 법이었다.

진짜 뭘 어쩌자는 건지를 모르겠네.

하나 둘 시험을 마무리 지은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한 반절 정도

가 퇴실 했을 때 나은이가 강의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가요. 오빠."

"어디로 가는데.’,

"일단 배고픈데 밥이나 먹죠.’,

오후 嬖시.

우리는 학교 앞 햄버거 가게에 마주보고 앉았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햄버거를 먹는 그녀는 마치 한 마리의 햄스터 같

았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밥만 먹기 그랬던 나는 뭐라도 이야기를 꺼내보

고자 했다.

"그... 시험은 잘봤어?’,

"아뇨."

마치 나와 말도 섞기 싫다는 듯한 단답.

하긴... 나랑 지금 친목 도모를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기

는 하니까...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든 그녀가 내게 질문했다.

"오빠는요? 금방 나가던데.’,

이런 것 물어보는 것 보면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답을 다 쓸 수 있었으면 그 시간에 안 나갔지."

쓴웃음을 지으며 콜라를 한모금 빨아먹었다.

"근데 어차피 저는 건축에는 그닥 뜻이 없어서요.’,

"왜? 그때 최종 발표 때 보니까 모형 예쁘게 잘 만들었던데?’,

"그거라도 잘 만들어야지 졸업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며 남아있

는 감자튀김을 깨작거렸다.

"오빠 다 먹었으면 일어나죠.’,

이미 내 쟁반에는 쓰레기 밖에 남아있지 않았는지라 고개를 끄덕인 나

는 정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나은아. 내가조금 전부터 신경 쓰이는게 있었는데.’,

"뭔데요.’,

"그... 도와준다는 거 있잖아...’,

"네.’,

"어디서도와줘?’,

공공장소에서 낭독회를 하면서 공개처형 당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던 나

였다.

다행히 그녀의 대답은 공공장소는 아니었지만 나를 더 당황시키는 데

는 성공했다.

"제 자취방이요.’,

예?

지금 강간 미수인 저를 본인 자취방에 들이시겠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되지 않았다.

나은이는 내가 무섭지 않은 건가? 아니면 지난번 헤프닝 쯤이야 그녀에

게 사실 별것 아닌 그 정도의 일이였다는 건가?

얘가 무슨 의도로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에요 그 표정은. 설마 그런 개변태 소설 얘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하자

는 거에요?’,

나은이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건 아닌데..."

"다른 조용한 장소 돈 내고빌리기도 아까워요. 그냥 군말 말고 따라와요

n

어차피 선택권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나는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26세 모쏠아다 이민호.

여자의 자취방 같은데 들어가 본 적 있을 리가 만무했다.

소설을 쓸 때 묘사를 위해 인터넷에 ■여자 자취방,을 검색해서 브이로

그 몇 개 정도 본 것이 전부.

현실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한나은의 자취방이라니.

버스에 탄 이후에도 내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아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나은이의 이목구비가 눈

에 들어왔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도저히 야짤 따위는 그리지 않을 것 같은...

오히려 야짤의 모델이 될 것만 같은 그녀의 미모였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나은이가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틀었다.

"왜요.’,

"아냐. 그냥 뭐 보나 싶어서.’,

머쓱한 표정으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 역에서 내려요.’,

나은이는 벨을 누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녀를 따라 내린 곳은 우리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동네였다.

하지만 모텔들만 득실득실한 우리 집 주변과는 달리 이 동네는 깔

끔한 아파트 단지들과 오피스텔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딱 봐도 가격대가 제법 있어보이는 신축 오피스텔.

...HNE작가님 . 부자시군요.

사실 나도 이사를 하려면 할 수는 있었지만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서 그냥 별 생각 없이 지내는 중이 었다.

혼자 사는데 그닥 불편한 것은 없었으니까. 저렴하기도 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한 이후 함께 엘레베이터에 탑승하자 엇그제처럼 또다

시 그녀의 샴푸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오렌지 향이 내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내 아랫도리에 반응

이 오는 것을 억제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미친놈아. 들어가기도 전에 세우면 어쩌자는 건데.

고작 뫫층인데 왜 이렇게 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걸까.

이윽고 엘레베이터가 정지했고 나은이가 카드키를 가져다대자 드르

륵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꿀꺽.

어머니. 아버지. 아들. 처음으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와봤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루트는 아니지만 아들이 해냈습니다!

뭔가 웃픈 상황이기는 했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하기는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깔끔한 원목 재질의 바닥에 눈길이 갈 수밖

에 없었다.

나나 나은이 두 사람 모두 건축학과.

좋으나 싫으나 이곳 밥을 4년 정도 먹다보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을

지에 대한 견적이 얼추 보이게 된다.

조명도 가구들도 하나같이 직접 고른 것이 분명했다.

신경 진짜 많이 썼구나... 가격도 비싸보이고…

"일단 손 닦고 소파에 잠시 앉아 있어봐요.’,

"으"

O•

"나 옷 좀 갈아입을테니까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말고요.’,

그녀가 탈의한다는 말에 현실감이 씁배 꿓배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나 지금. 진짜로. 한나은 방에 와있구나.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닦은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는 마인드로 찬물

을 얼굴에 끼얹었다.

정신차려. 이민호.

아기자기한 느낌의 오피스텔이기는 했지만 여기는 엄연히 호랑이굴이었

다.

내가 긴장의 끈을 풀고 지난번처럼 망나니처럼 행동했다가는 꼼짝없

이 잡아먹히는 그런 공간이 었다.

좋았어.

그냥 딱 시키는 일만 깔끔하게 하고 무사히 귀가한다.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다. 비즈니스 관계.

그렇게 딱 정신무장을 하고 나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남심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아이템 중 하나인 돌핀 팬츠.

배꼽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것만 같은 흰색 끈 나시티.

새하얀 목선이 훤히 드러나게 머리를 묶은 나은이었다.

"...들어와요."

무슨 남자의 로망만 떡칠해 놓은 듯한 그녀의 복장에 나는 사고가 마비

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쟤 입에다가...

정신차려어!

또다시 음욕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나는 내 뺨을 힘껏 때

렸다.

나은이는 나의 행동에 놀랐는지 내쪽으로 다가왔다.

"왜 그래요? 뭐 무슨 일 있어요?’,

그녀의 나시티 사이로 아찔한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허... 이 상태로 내 소설 낭독회를 가졌다가는 거짓말 안하고 이 집 안

에 있는 시간 내내 풀발기 상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아냐. 들어가자.’,

나은이는 '뭐지 이 병신은.,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은 것 맞죠?’,

"응응. 빨리 후딱 끝내자.’,

나는 그녀의 등을 침실 쪽으로 떠밀었다.

한나은의 침실.

과연 이 곳에 들어와본 남자는 얼마나 있을까.

분명 할 일만 하고 끝내자고 마음을 먹었으나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

은이의 침실을 훑어보게 되었다.

하얀색 톤의 깔끔한 옷장과 수납장.

연분홍 색의 이불커버와 배게.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아기자기한 인형들.

"...구경하라고 부른 것 아니니까 여기와서 앉아봐요."

내가 두리번거리자 나은이는 간의 의자를 꺼내와서 나를 컴퓨터 앞

에 앉혔다.

"한겨울 작가님이 다음 캐릭터도 제게 일을 맡긴다고 했으니까 이번

에 신캐릭터에 대한 컨셉이나특징을 더 디테일하게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서 오빠를 불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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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씨, 웹툰, 소설, 등등 10만개 이상의 파일이 존재!.........

인터넷 주소창에 따라치세요..

"근데 그냥 네가 읽어보면 되는 것 아냐?’,

"이렇게 존나 긴 변태 소설을 나더러 다 읽으라고요?’,

...많이들 읽어.

하루에도 수 만 명 씩 라이브로 따라와준다고.

"그럼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

"오늘 올라온 새로운 회차. 이거 읽어주세요.’,

"낭독을 하라고?’,

"낭독을 하든 내용 정리를 하든 저한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달라

고요."

인터넷 페이지를 연 그녀가 노벨 월드의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히트작이니만큼 페이지 대문에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가장 최신 표

지인 남가연의 일러스트가 띄워져 있었다.

남가연의 그림을 클릭하자 그곳에 띄워져 있었던 것은...

[한나은 ⑴]

...나은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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