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10화 (10/276)

<10화 > #10.조건

건축학과는 참으로도 독립적이고 기이한 생태계를 지닌 학과다.

지난 딙년간 축적된 데이터로 미루어보아 여기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외부

인에게 들려줄 경우 뫫할 정도는 고개를 갸웃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해볼 대표적인 현상은 바로 시험기간에 오는 번아

웃 증상이다.

번아웃 증상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셢 정

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칭하는 말인데 놀랍게도 건

축학과 학생 중 반절 이상은 이 현상을 시험기간 중 경험하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무릇 학생이라고 함은 시험 공부에 열정을 모두 불태우고 그 이후에 현

타가오던지 할텐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설계 '마감.,

도면. 다이어그램. 3d 모델링. 렌더링. 리터칭. 플롯.

교수들 앞에서 실기 결과물을 발표하기까지 필요한 너무나도 많은 공정

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건 ,공부,같은 것이 아니었다.

순수한 노동의 집약체 그 자체였다.

도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주차장의 회전 반경 계산을 위해 계산기를 꺼내

들어야만 했으며.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mm단위의 계단을 눈이 빠질때까지 썰어서 핀

셋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붙여야만 했다.

이 과정에 지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것은 무척 이 나 무식한 작업 이 며 반복의 연속이 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학생들은 극심한 번아웃 증상에 시달리

게 된다.

왜냐하면 언제나 최종 평가에서는 교수님들의 날카로운 지적만이 기다

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비같이 칭찬을 하사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 10분 평

가중 뫫분 45초 정도는 푹푹 찌르는 난도질 타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저렴하지도 않은 등록금을 내놓고 개같이 작업해서 등에서 먼지 하나 나

오지 않을 정도로 두드려 맞는 것이 바로 이 [건축 설계]라는 실기 과목이었

다.

이렇게 설명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나는 지금 극심한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아... 하기 싫다... 휘민아…’,

[현대 건축] 중간고사 시작까지 약 꿓시간.

설계실 의자에 앉아서 책상 위에 발을 올린 나는 의자를 뒤로 재끼며 하

기시러를 복창하고 있었다.

"망할거면 좀 혼자 망해라.’,

휘민이가 궁시렁거리는 나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시러어... 너도 같이 망해애...’,

벗이란 무엇인가. 친구가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힘들어해주는 것

이 벗 아니겠는가.

만으호 이 타이밍에 '아냐 할 수 있어!1 이딴 소리를 하는 친구가 있다

면 그 친구는 아마 당신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 물론 남자애들 끼리 한정이기는 하지만.

휘민이는 나의 방해 공작에도 기어이 이를 악물고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개새끼... 설계도 잘하고... 공부까지 열심히하면... 나는 뭐해서 먹고 살라

고...

...야설이나 써서 먹고 살지. 뭐.

뭔가 실제로 가능하기도 하고, 지금 벌이도 괜찮았지만 괜시리 씁쓸해지

는이유는 무엇일까.

아. 그러고 보니 유사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애도 우리 과에 있기는 하구

나.

고개를 돌린 나는 한나은의 자리 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멸종 위기 동물과도 같은 그녀는 마감 기간이 아니면 거의 이곳에

서서식하는 일이 없을텐..데...

응?

"민호 오빠.’,

응 …?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왜 한나은이내 책상 앞에 있는 걸까.

"민호 오빠.’,

흰색 가디건.

분홍색 테니스 스커트.

얇은 테의 동그란 안경.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휘민이가 나를 툭툭 쳤다.

"야. 민호야. 너 부르잖냐.’,

휘민이는 무척이나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

다.

"진짜 한나은이야?’,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이상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럼 저 말고도 아는 나은이가 또 있는 건가요? 오빠는?"

한나은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안경을 살짝 들어올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무슨 일이야?’,

그녀가 내 앞에 실존한다는 것을 인지한 그 순간 내 등에서 폭포수 같

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설마... 신고...? 그것도 아니면... 그밖에 무언가를 요구하러 온 것일까?

돈... 만약 돈을 달라고 하면 얼마까지 줘 야하는 거지 ?

머리 위에 숫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말고 나가서 좀 이야기 할까 하는데... 시간 괜찮아요?’,

어떡하지... 대화에 응해야하나?

아냐아냐. 일단 최대한 버텨보자.

"아... 나 곧 시험이라 공부하고 있었거든. 혹시 현대 건축 시험 끝나고 이

야기하는게.’,

하지만 내 말을 끊은 것은 한나은이 아닌 나의 친우. 이휘민이었다.

"지랄 노. 야. 나은아 이새끼 아까 전부터 하기 싫다고 노래노래

를 하던데 네가 좀 끌고 바람이라도 쐬고 와라.’,

"라는데요?’,

한나은이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와... 개같은 새끼. 도움 1도 안되는 새끼 같으니라고.

내 손목을 붙잡은 나은이 가 나를 자리 에서 일으켰다.

"자꾸 꾸물대시면 저도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요?’,

일어나는 나를 향해 그녀가 살며시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의 말에 나는 척추가 자동으로쫘악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그래〜 우리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지금의 한나은은 내 게 폭탄이 나 다름없는 존재 였다.

그녀가 큰 목소리로 [이민호가 저를 협박하더니 자지로 제 목구멍을 쑤

셨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개고생한 나의 대학생활 4년. 아니지. 내 인

생 씁閌년은 그대로 물거품 행이었다.

"음〜 저는 딸기 프라프치노가 좋은 것 같네요〜"

...비싼것도 고르네.

"그래그래. 우리 나은이 먹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다 사줘야지. 하하..."

휘민이는 우리의 대화를 무슨 외계 종족을 바라보는 것마냥 바라보

고 있었다.

"너희 언제부터 친했냐?’,

"왜. 친할수도 있지. 뭐. 네가 해준게 뭐가 있는데.’,

애꿎은 휘민이한테 까칠하게 군 나였다.

"새끼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야빨리 꺼져. 옆에서 공부 방해할거면.’,

"가요. 오빠."

복도를 향해 걸어나가는 나은이를 나는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내딛을때마다 발에 추가하나씩 달리는 기분이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나은이가 나를 데려간 곳은 지하 1층에 위치한 카페였다.

"딸기 프라프치노 하나요.’,

등을 돌리고는 내 쪽을 돌아본 그녀가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오빠는요?"

"나도 똑같은 걸로.’,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였지만 오늘은 웬지... 단 음료

가 땡기네...

앞으로 그녀가 내게 꺼낼 이야기가 무엇인지 상상해보면 굳이 음료까

지 쓴 맛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앞에서 점원이 묻자 나은이는 자기는 자리를 잡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

만 혼자 남겨두었다.

"이걸로 해주세요.’,

그래. 이거라도 사야지 형량을 좀 줄여주겠지.

음료를 받아든 나는 휴대폰 화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은이 맞은편

에 착석했다.

내가 앉자 그녀는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나를 빠안히 바라보

았다.

n

"시험도 있고 하니까. 짧게 끝낼게요.’,

꿀꺽.

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얘기해.’,

"전에도 말했지만 신고는 하지 않을게요.’,

다행이다. 진짜다행이다.

"오빠가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인드로 내 정체를 학교나 주변에 다 소문내

고 들어 가면 나도 곤란해지는건 사실이 니까요.’,

그럴 생각은 없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

내가 정신줄을 반쯤 놔버리고 한나은이 HNE 작가라는 것을 소문내

고 다닌다면 그녀 또한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도.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질 것이니 말이다.

그래. 너도 일단 쫄리기는 한다. 이거구나.

"그래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기는 하죠. 오빠가 저지른 것

은 엄연한 범죄니까.’,

자. 여기서부터가관건인데.

"대신 내 작업 좀도와줘요.’,

"네 작업?"

"네. 오빠도 제가 하고 있는 일. 알고 있잖아요.’,

나은이가 하는 일이라면... 야짤 그리기? 나더러 그걸 도와달라고?

"내가 잘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데 내가도대체 뭘 도와.’,

"안 도와줄거에요?"

싸늘한 표정.

누가우위에 있는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듯한 한쪽으로 꼰 다리.

그녀의 제스쳐가 말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게는 거부권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는걸.

"...도와줄게.’,

하지만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

이었다.

그녀는 이미 스타 일러스트레이터. 업계 내에서도 호평이 자자한 사람인

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단 말인가.

말대꾸하는 것이 좋을 것이 하나 없는 상황임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럼

에도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오빠가 허구한날 집에서 읽고 있는 소설. 그거.’,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를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 이건.

음... 내가 작가니까 검수할 때 읽어보기는 하지.

"그 작가 취향을 내가 좀 알아야 해서요.’,

...작가님. 이미 충분히 200퍼센트 잘 하고 계십니다만.

"근데... 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렇기는 한데... 너 충분히 잘 그리는 것...’,

쿵.

한나은이 테이블을 자그마한 주먹으로 내리쳤다.

"오빠가 뭘 아는데요. 오빠가 작가도 아니잖아요.’,

...작가 맞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그녀에게 내가 이 사실을 밝힐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나는 그녀를 무리하게 덮칠 뻔한변태 새끼.

여기서 야설 작가라는 사실까지 그녀가 알게 된다면 그녀가 어떤 시선으

로나를 볼지는...

어쩌면 현대 사회의 잠재적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이름 하에 마음을 고쳐

먹고 나를 감방에 쳐넣을 수도 있으리라.

후우... 일단은 최대한 그녀한테 협조적으로 구는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알겠어. 그럼. 내 가 구제적으로 뭘 해주면 되는데."

"오늘 시험 끝나고 별일 없죠?’,

오늘 업로드분인 한나은 ⑴은 이미 예약을 걸어 놓은 상태였다.

딱히 흐^교 마치고 일정은 없기는 한데...

"으"

O•

"잘됐네요.그럼 나랑 같이 그 작가최신화나뜯어보죠. 참고나좀 하게."

..오우 마이 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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