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4화 (4/276)

<4화 >#4.취향

최고의 시다.

그것이 내가 건축학과에 입학한 이후로 처음으로 생긴 별명.

처음에는 그 말이 칭찬인줄 알았다.

그야 시다는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

내 가 최고의 도우미 라는 소리 였으니 까.

선배들과 동기들은 내 손재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진짜 나은아. 너는 어쩜 네 얼굴만큼 손재주도 곱냐.]

[나은이는 내 졸업 전시 무조건 같이 하자. 진짜 딴 애가 채가

면안될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선배. 저 선배의 작업을 도우러 열심히 뛰어다녔다.

선배들이 이야기해주는 꿀팁이나 학교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며, 밤샘 작

업을 꼬박한 이후 선배들의 완성된 모형을 보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

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 결함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은 학생. 나은 학생은 왜 이렇게 구체적인 컨셉에 대한 방향성

을 못 잡아요?]

컨셉. 한국어로는 개념.

나는 매 설계 프로젝트마다 컨셉에 대한 지적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건축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면 아마 내가 설계한 건물의 외형에 대

해서 극찬했겠지만 교수들의 평은 언제나 박했다.

제대로된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느니. 이건 그저 예쁜 껍데기에 불구한다

느니.

...지긋지긋했다.

도대체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애시당초 건물이 보기 좋으면 그만이지 '개념, 이딴게 쓸모 있기나 한 것

일까.

안타깝게도 나를 괴롭히던 지적은 계절이 몇 번을 지나갔음에도 떨어지

지 않았다.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아둥바둥 노력을 했으나 나를 거쳐가는 지도교

수님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 없는 애 취급 받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졌다.

방안에는 예쁜 쓰레기 취급당한 모형들이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시다를 그만둔지도 오래.

더이상 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다.

■설계 능력은 떨어지면서 손재주만 좋은 애.,

'자아 없고 칼질이나 시키기 딱인 애,,

씁학년 씁학기.

내가 탈건을 결심한 시기.

더이상 이런 취급을 받아가면서 이 일을 계속해 나가야할 필요가 있을

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나는 과감하게 부모님에게 자퇴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 담했다.

[나은아. 너 도대체 뭐해서 먹고 살라고 그래. 응? 대학 졸업장

도한장 없이.]

[이러려고 뼈빠지게 학원비 들여서 대학 보낸거 아니다. 그냥 어떻게

든 졸업은 해라.]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당장 나는 자생력이 전혀 없는 성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고졸일 뿐

이었다.

..활로.

이 지옥 같은 건축을 탈출할 길이 필요했다.

핵금손. 이쁘게 만들고 그리는데에 모든 재능을 타고난 나는 얼마 지나

지 않아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없는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埌埌埌

4학년 정도 됐으면 익숙해질 법만 했음에도 발표 때 들은 혹평은 어김없

이 나를괴롭혔다.

교수들의 목소리 가 아직도 생생하게 귓가에 울려퍼졌다.

또다시 반복되는 똑같은 지적.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 나는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허겁지

겁 휴대폰 화면을 켰다.

최신화 업로드 됐나?

노벨 월드 사이트에 접속한 나는 빠르게 알림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제발...제발... 올라와 있어라...

오! 무려 두 편이나...!

학교에서의 평가에 우울해져 있던 것도 잠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휴대폰 편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무려 이번 에피소드의 제목은…

[아가리 벌리라고. 개보지년아.]

...진짜 너무 좋아.

제목부터 만족. 대만족이 었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고양감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오늘 완성해서 보내준 일러스트의 주인공. 남가연은 처참하게 무너

져내리고 있었다.

[남가연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진성은 멈추지 않았다.]

[수컷이란 무엇인지를 뇌리에 각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진성이 거대한 자지로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남가연의 뺨을 툭

툭 두드렸다.]

[아가리 벌리라고.개보지년아.]

아... 못 참겠어.

이미 분주해진 손을 잠시 멈춘 나는 옷장 속 깊숙히 숨겨둔 투명한 색

의 딜도를 집어들었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다른 한 손으로는 딜도로 입 안

을 쑤셔넣기 시작했다.

[남가연의 머리채를 잡아든 진성이 반쯤은 눈이 풀린 그녀의 입을 사정없

이 유린했다.]

나도... 나도...

목젖에 딜도가 닿아서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주인공. ■이진성,이라면 절대 이 정도 선에

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니까.

[남가은은 본능에 몸을 맡기는 쪽을 택했다.]

[진성의 격렬한 움직임에 그녀 또한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진성의 우악스러운 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의 손길에 무자비하게 무너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아... 하아... 제발 저를...’,

분명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나는 상대가 있는 것처럼 계속 저속

한말들을 입에 내뱉었다.

이미 너무 격렬하게 딜도로 입을 쑤셔넣은 탓에 티셔츠에도 침이 주르

륵 흘려내렸다.

스크롤이 더이상 내려가지 않자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서... 여기서 끊는다고?

뜨겁게 달아오른 비부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물을 토해내고 있었

다.

이런 명작 소설을 써준 작가님에게는 늘 감사하는 바였지만 이럴 때마

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짖궂나 싶었다.

물론 한 명의 사업자로써 당연히 매 화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

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야속한 것 아니냐고요.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나는 다시 정주행이나 하며 자위를 즐겨볼까 싶

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마음을 돌렸다.

...어차피 끝까지 가지도 못할텐데.

딜도로 사정없이 목을 쑤시는 것이야 익숙했지만 놀랍게도 나는 손으로

만자위할뿐.

직접 보지에 딜도를 삽입한 적은 없었다.

야설을 읽을 때마다 삽입에 대한 욕망을 참기 힘들어지는 때가 있었지

만 그래서는 안됐다.

그야...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주인공 이진성은 처녀충이었으니까.

그는 처녀가 아닌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먹잇감으로 취급하지

도 않았다.

물론 그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소설

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있었다.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많은 남성들이 여자

들의 ■처음,에 집착하며 그것에 엄청난 흥분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24살.

경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아직도 처

녀인 상태였다.

축축해진 침대를 대충 정리한 나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솨아아.

온수를 틀어둔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먹음직스러운 것 같은데. 아닌가?

하긴... 이런 정신 나간 취향을 맞춰줄 남자가 어디에 있겠냐고.

일반적인 남자친구를 원했다면 이미 10명도 넘게 사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시시한 연애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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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지근하게 시작해서 가슴이 콩닥거리는 썸.

나한테 그것만큼 하찮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이진성 같은 남자를 원했다.

내가 암만 튕기며 고고한 척 하지만 결국 나를 무릎 꿇릴 남자.

정상인인척 하지만 변태적인 취향인 가진 나를 이끌어줄 남자.

아마 여기까지가 조건이라고 함은 상대를 만날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니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런 남자를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다는 것.

내가 먼저 발정난 암컷 마냥 주인님을 찾아 헤메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여자로서의 질을 떨어트리는 품위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서 직접 박아달라고 앙앙거리는 것이 꼴릴 리

가 없잖아!

팥 빠진 단팥빵 먹을 바에는 안 먹는 것이 나았다.

샤워를 하고 나온 나는 한숨을 푹 쉬 었다.

이렇게 노처녀로 늙어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풀썩 앉은 나는 컴퓨터를 켰다.

..아 맞다.

제대로 사과해야하는데 .

내 마감을 챙긴다고 작가님께 제대로 사과 메시지를 못 보낸 것이 떠올

랐다.

혹시나 이번에 지각 때문에 다른 작가로 갈아타신다면...

우으... 싫어...

다른 일이 들어와도 언제나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의 한겨울 작가님 일

러스트를 1순위로 두고 작업을 하던 나였다.

그만큼 그 작품에 진심 이 었고, 펜이 었다.

소설 내용을 다 꾀고 있으니 언제나 작가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작가님. 오늘은 늦어져서 정말 죄송.]

메일을 어떻게 보내지 하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리

기 시작했다.

[이민호.]

잠시 잊고 있었던 새벽의 일이 떠올랐다.

맞다. 이 사람. 오늘...

일러스트 마감과 설계 마감. 그리고 교수님들의 쓴소리 폭탄까지 맞았

던 나는 그의 존재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다.

...받아야 하나?

그냥 무시하면 다시 안 걸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너무 안일

한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일단 받아보자.

[여보세요?]

[야.]

중저음의 그의 목소리.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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