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7)

심 봤다

그날로 난영과 범은 묘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난영은 전처럼 살갑게 다가가지를 못하였다. 예전에 그가 그랬듯 내외하기 시작하는데, 그럴수록 범의 애타는 속이 문드러졌다.

어떤 밤은 끓는 속을 달랠 겸 혼자 광에서 새끼줄을 꼬고 있는데 난영이 들어왔다.

“이 늦은 밤에 무얼 하니?”

평상시처럼 여상한 투로 물었으나 몸은 왜 범의 손에 붙들린 새끼줄처럼 배배 꼬고 있는지. 목덜미도 저리 붉고 말이다.

눈치가 빤했던 범이 벌떡 일어나 난영의 허리를 낚아채려 했으나 어찌나 재빠른지. 난영은 토끼처럼 광 밖으로 튀어 나가 버렸다.

“토끼 고기를 자셨나? 앞으로 토끼는 잡아다 주나 봐라.”

좀 모르는 척 넘어와 줄 것이지. 어찌나 야속한지. 홀로 씩씩대며 쓸데도 없는 새끼줄을 산더미처럼 꼬아놓고, 그것도 모자라 2년 치 장작을 패어 놓는 밤이 계속됐다.

난영은 범이 매일 밤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는 소리를 들으며 장작처럼 쪼개진 제 다리 사이를 어루만졌다.

“범이가 이리 만져주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을 되짚어가며 범이의 손길을 따라 해 보았으나, 아무리 해도 그가 해 주었던 만큼 시원하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이 손가락은 범이의 굵고 거친 손가락이다, 읊조리면서 제 쪼개진 틈을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감질만 날 따름이었다.

“하아… 이 무슨 짓이람.”

난영은 젖은 손을 거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가의 여인이 정숙하지 못하게 외간 사내와 살을 맞대는 상상을 하며 매일 밤을 지새우다니.

그나저나 그 팔뚝만 한 양물을 여기에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은 한데 말이다.

“아아, 참말로 경을 칠 일이로구나….”

창밖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쓸쓸하고, 장작 패는 소리와 사내가 힘을 쓰는 소리가 아찔하다. 난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오늘 밤도 잠들기는 글렀다.

***

“잡아드릴까요?”

먼저 개울을 건넌 범이 뒤따라오는 아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허나 개울 한가운데의 돌 위에 위태롭게 선 난영은 극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됐다.”

돌 사이 간격이 난영의 보폭보다 넓었다. 그래서 건너오지를 못하고 있으면서 됐기는 무엇이 되었나. 저러다 미끄러져서 또 엉덩방아를 찧으려고.

“거,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마시오.”

범은 성큼 다가가 난영의 허리를 한 팔로 휘감았다.

“앗!”

발이 공중에 뜨자 놀란 난영이 버둥거리며 그의 목덜미에 매달렸다. 마른 땅에 발을 디디고 나자 그제야 제가 범이와 얼싸안고 있는 꼴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맞닿은 가슴께가 쿵쿵 울렸다.

고개를 들었다가 범이와 눈이 마주쳤다. 과연 이름값 하는 사내구나. 저 새카만 눈동자가 사냥감을 노리는 범과 다름없다. 곧바로 제 옷을 찢어발기고 한입에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얕은 숨을 할딱이는데, 입술을 이쪽으로 내리는가 싶던 범이 느닷없이 난영을 툭 놓아주었다. 그러더니 제 손을 툭툭 털고는 홀로 깊은 산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게 아닌가.

“어쩜 주인 아씨를 두고 너 혼자 가니?”

야속할 일이 아닌데 어찌 이리도 야속한지. 얄미운 뒤통수에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허나 기대했던 뚱한 대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묘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게 꼭 엉큼한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아 난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발을 총총 놀렸다.

범이와 둘만 남는 일은 피하려 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산나물과 약초를 캐야 하는데 산에는 호랑이와 곰이 득시글하니 저 혼자 올 수가 없다.

범의 발뒤꿈치만 닳도록 노려보며 산길을 걷다 보니 뒷덜미가 아리다. 고개를 들어 좌우로 돌리던 난영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범아, 저기, 저기!”

앞서가던 범의 저고리 자락을 잡아당기며 재빠르게 속닥거렸다. 범이 뒤돌아보더니 뭐가 그리 마뜩잖은지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그 시선이 산비탈을 가리킨 난영의 손끝이 아니라 옷자락을 잡은 손끝이라는 걸 그녀는 몰랐다.

“왜 그러시오.”

“저기 토끼굴 있다. 올무는 가져왔지? 얼른….”

“이제 토끼는 안 잡소.”

범이 옷자락을 잡은 손을 뿌리치더니 등을 홱 돌렸다.

가을이라 토끼가 한창 살을 찌울 때였다. 오동통한 토끼 고기로는 탕을 해 먹고 가죽으로는 방한모를 만들어 겨울에 쓰면 좋을 것인데 왜 안 잡는다는 것인지.

“어째서 그러니?”

“저번 밤에 광에서 놓친 토끼 때문에 다시는 안 잡기로 했소.”

범은 다시 무심한 발걸음을 옮기고, 난영 홀로 우두커니 서서 뺨을 새빨갛게 붉혔다.

“그러다 해 다 지겠소.”

“가, 간다, 가.”

망태기가 그득히 차도록 산나물과 약초를 캐었다. 이제 슬슬 해가 넘어갈 터이니 산에서 내려가야 했다.

“아씨, 그만 가십시다.”

난영이 웅크리고 앉은 쪽으로 소리쳤더니, 다급히 저를 부르는 소리가 돌아왔다.

“범아, 범아!”

“또 뭐요.”

오늘따라 왜 자꾸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러대나. 범은 구시렁대며 난영이 웅크리고 앉은 나무 아래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번에는 토끼 사촌이라도 나왔소?”

“그런 것이 아니고….”

난영이 몸을 일으키더니 손에 든 풀을 자랑스레 내밀었다. 세 갈래로 뻗은 줄기마다 잎은 다섯 개가 나 있고 뿌리는 난영의 팔꿈치까지 닿아 있었다.

“이거 산삼 아니니?”

범이 풀을 건네받고 유심히 살펴보는데 난영이 벌써 저 혼자 좋다고 손뼉을 치며 때 이른 셈을 했다.

“산삼이….”

“이걸 팔아서 네 색시를 데려오면 되겠구나.”

“아니오.”

“뭐라?”

“이게 무슨 산삼이요? 더덕이구먼.”

난영이 뭐라 묻기도 전에 범이 풀을 망태기에 대뜸 집어넣더니 저 혼자 비탈을 내려가 버린다.

“아주 사람 속 썩어 문드러지라고 고사를 지내시는구먼.”

위아래를 모르고 구시렁대기까지 했다.

‘잎이 다섯 개에 손바닥처럼 펼쳐져 있으면 삼 아니던가?’

멍하니 서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범이 멈춰서더니 또 볼멘소리를 했다.

“안 오실 거요?”

오늘따라 왜 저리 심술이 났나. 난영이 뾰로통하니 입술을 내밀며 범을 따라갔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저도 오늘 심술을 부려놓고 말이다.

“아휴, 아쉬워라.”

산을 거의 다 내려오고도 난영은 산삼 타령이었다. 저게 진짜 산삼인 줄 알고 그 짧은 시간에 혼자 온갖 셈을 다 끝냈는데 말이다.

팔아서 나무할 사내아이도 하나 사고 밭 갈 소도 한 마리 사고. 그럼 범이도 고된 일을 덜 할 터인데. 이리하면 범이에게 어여쁜 색시를 얻어 줄 돈은 남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더덕은 별미 아닌가. 아주 손해 본 것은 아니다.

“범아, 오늘 저녁에 더덕구이를 해 주련?”

“됐소.”

그럼 대체 뭘 먹여야 저 심술보를 뚝 떼어버리려나. 콩국수를 하기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는데.

실은 저 한입 먹여주면 되는 걸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범의 발뒤꿈치를 따라 산기슭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비가 오려나? 초조히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나, 마을 어귀 서낭당이 보일 즈음에는 하늘이 말 그대로 우르릉 울기 시작했다.

“아휴, 이제 다 왔는데.”

“아씨, 어서 이쪽으로 오시오!”

두 사람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서낭당의 자그마한 당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사를 지내는 당집은 비를 피하기에는 넉넉했으나 거구의 사내를 피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한쪽 벽에 제사상이 세워져 있어 그렇지 않아도 좁은 것을. 난영은 애써 몸을 웅크리고 벽에 붙어 섰다.

“언제까지 쏟아지려나….”

난영의 초조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범은 좁은 문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짧은 사이에 비가 폭포처럼 쏟아 내린 탓에 그의 등이 푹 젖어 있었다. 바지도, 그 속의 속곳도.

‘아휴, 또 경을 칠 짓을.’

고된 일로 잘 단련된 튼실한 둔부를 훔쳐보다 저도 모르게 범을 돌려세우고 싶었던 난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못지않게 물에 빠진 꼴이라. 적삼에 가슴가리개까지 푹 젖어 속살이 다 비쳤다.

실은 가슴가리개는 하늘이 말랐을 때부터 이미 푹 젖어 있었다. 웅이가 없으니 젖이 퉁퉁하게 차다 못해 새어 나왔던 것이다. 범이는 앞서 걷느라 그 꼴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을 봤으면 제가 또 빨아주겠다고 했으려나.’

혼자 또 볼을 붉히며 옷고름을 손에 감았다 풀었다 했다. 한데 범은 돌아보지 않고 뒷짐을 진 채 밖만 내다보았다.

“웅이가….”

그제야 범이 돌아보았다.

“나를 기다릴 터인데.”

그러니까 나는 아들이 있는 몸이라, 이것이다. 하여 외간 사내와 살을 맞대는 건 안 될 일이다.

난영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소리를 속으로 읊고 또 읊었다.

“어서 비가 그쳤으면 좋겠네요.”

범이 당집의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가 곧 그칠 것 같지 않으니 등에 멘 망태기도 벗어버렸다.

그런 그를 난영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선 채로 멀뚱히 보더니 슬금슬금 웅크리고 앉았다. 이런 데서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벽에 꼭 붙어 내외하고 있는 것이 얄밉다.

“눈앞에 웅이의 낯이 아른거리는구나.”

난영이 한숨을 푹 쉬는데 우두커니 앉아 있던 범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웅이 도련님이 훤칠하니 인물이 좋지요.”

“너도 그리 생각하니? 인물만이 아니라 머리도 어찌나 좋은지.”

이제 난지 반년도 안 된 아들이 신동이라며 종알종알 떠드는데, 범이 아까 산에서와는 달리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주는 게 아닌가. 우물가에서 아낙들에게 떠들면 핀잔만 들을 소리인데.

“곧 어머니 소리도 할 것이야.”

“곧 할거요. 나도 그때쯤 했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랬으니까.”

어째 범이는 제가 아들 자랑을 해도 투기하거나 지겨워하지를 않고 즐거워하는 것이 신기하다.

“너도 아이 갖고 싶지 않으니?”

또 슬쩍 찔러 보았는데 범은 배부른 호랑이처럼 웃을 따름이었다.

“내가 말했잖소. 웅이 도련님이 쑥쑥 크는 것만 봐도 내 배가 부르다고.”

잠시 당집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밖은 여전히 빗소리가 요란했다. 혼자 곰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 저고리 고름을 쥐고 말아대던 난영이 다시 말을 붙였다.

“너… 내가 장가보내주면 정말 갈 것이냐?”

범은 잠시 난영의 의뭉스러운 낯을 뚫어져라 응시하다 무심하게 답을 툭 내뱉었다.

“가야지요. 종놈 주제에 주인이 가라면 가야지. 안 갈 재간이 있나.”

범은 모르는 척 고개를 들고 볼 것 하나 없는 당집 천장만 둘러보았다.

“네가 가기 싫다면 굳이….”

“아씨가 그랬잖소. 긴긴밤 정을 나눌 처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

대답이 없다. 다섯을 세고 고개를 내렸더니 난영의 낯이 못난이가 되어 있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붉으락푸르락, 울먹울먹. 아주 난리가 났다.

“하, 그러는 각시, 아, 아니 아씨는 산송장이라도 서방 두고 있으면서….”

“너 금방 날 뭐라 불렀니?”

“…무슨 소리요? 내 아무 말 안 하였소.”

만날 속으로 ‘각시, 어여쁜 내 각시’ 하고 불러 젖혔더니 이 망할 주둥이 밖까지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범은 답지 않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얼버무리고 손톱으로 죄 없는 돌바닥만 긁었다.

고개를 푹 숙인 범이의 목덜미가 새빨갛다. 여기 땡볕이 내리쬐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그 의미를 알아버린 난영이 풋 웃다 수줍게 속삭였다.

“샛서방(남편 있는 여자가 남편 몰래 관계하는 남자)도 서방은 서방이라더라….”

범은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운우지락이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아씨가 저런 소릴 다 하나?

난영은 눈을 못 맞추고 고개를 숙이더니 앵두처럼 빨간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산나물 캐러 가는 아씨가 연지는 왜 발랐나.

오호라, 요것 좀 봐라. 미련한 곰인 줄 알았더니 앙큼한 여우 같은 짓도 할 줄 아는구나.

“아씨, 샛서방이랑 뭘 하는 줄은 아시오?”

“…….”

저 입으로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오리처럼 삐죽 내밀기만 할 뿐이다. 그럼 그렇지. 알 턱이 있나. 피식 웃었더니 뭐가 그리 분한지 아씨가 씩씩댔다.

“그럼 잘난 척할 새에 네가 가르쳐 주지 그러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범이 난영에게 달려들었다.

“아씨 입으로 가르쳐 달라 하였소. 무르기 없기요.”

범은 난영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 바람에 놀란 그녀가 그의 목덜미를 두 팔로 단단히 휘감으며 매달렸다.

“이제는 뿌리쳐도 안 놓아줄 거니까.”

사내대장부이니 한 번 내뱉은 말, 지키고야 만다는 결심을 보여주듯, 난영의 둔부를 움켜쥔 손힘이 여느 때보다도 굳셌다.

제사상에 놓인 제기가 돌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범은 난영이 젯밥이라도 되는 양 떡하니 제사상 위에 앉혔다.

“버, 범아….”

“가만히 좀 있으시오.”

저고리 고름을 잡아 뜯을 듯 풀고 치맛자락을 훌렁 걷어 올리는 손길에 참을성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 조금 전 점잔 떨며 내외하던 그 사내는 어디로 갔는가.

“누가, 누가 오면 어쩌니.”

“비가 이리 쏟아지는데 누가 온다고 그러오.”

아직도 그치지 않는 걸 보면 하늘도 필시 도와주는 것인데.

범은 난영의 손을 떼어내고 가슴가리개를 확 끌어 내렸다. 판판하니 눌려 있던 젖가슴이 출렁, 쏟아져 나오더니 하얀 젖 방울을 사방으로 튕겼다.

“젖이 이만큼이나 찼으면 말씀을 하셨어야지.”

범이 손등에 튄 젖을 핥아 먹더니 대뜸 젖꼭지를 물었다. 두꺼운 혀로 꼭지 아래를 단단히 받쳐 들고 볼이 움푹 패도록 쪽쪽 빨아댄다. 이따금 혓바닥으로 돌기를 둥글게 굴리고 혀끝을 세워 후벼 파는 것을 보면 난영을 도와주려고 젖을 빠는 건 필시 아니다.

“아흐… 범아….”

손으로는 다른 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젖이 떡 반죽도 아니고 어찌나 세게 주무르는지. 무지막지한 힘에 못 이긴 젖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까무잡잡한 손등으로 하얀 젖이 끝없이 타고 흘렀다.

약 올리듯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톡톡톡 치고 꾹 누르기까지 하는데, 어째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니라 가랑이가 찌릿찌릿 울었다. 이 샛서방질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몸에 좋은 건 알겠다.

난영이 느닷없이 가슴을 애무하던 손을 탁 잡고 떼어냈다. 어리둥절해서 젖꼭지를 뱉던 범이 피식 웃었다. 제 손이 난영의 둔덕에 턱 하니 얹힌 탓이었다.

만지지 말라는 줄 알았더니 만지라는 것이었다. 아랫도리를.

“내 재주를 이리도 좋아하시니….”

그런데 흡족하게 웃으며 아랫도리를 더듬던 범이 버럭 역정을 냈다.

“아, 거, 연지 찍을 꾀는 있으면서 속곳 벗고 올 꾀는 없으셨소?”

“아니, 그 무슨 망측한 소리니?”

“하아, 참말로 많이도 껴입었네. 돌아버리겠구먼.”

단속곳에 속바지에 속속곳에 다리속곳까지. 주기 싫은 사람처럼 잘도 꽁꽁 감싸뒀다. 구시렁구시렁 입을 삐죽이며 다 벗겨 던진 범은 돌바닥에 냉큼 무릎을 꿇었다.

“요것이 더 좋으실 거요.”

난영이 막을 틈도 주지 않고 둔덕을 쫙 벌리고 분홍빛 구슬을 입에 물었다.

“아, 아니, 거기 입을 대면… 아흣!”

역시나다. 혀끝을 뾰족이 세워 구슬을 굴리고 또 굴렸더니 난영이 허벅지를 바르르 떨며 경기를 일으켰다.

“하윽, 윽, 아흐흑.”

벌어진 잇새로는 옥구슬 같은 교성이 연신 굴러 나온다. 발름대는 음문으로는 새콤한 과즙이 뚝뚝 흘렀다.

안 좋을 리가 없는데. 아씨는 뭐가 그리 싫은지 범의 머리채를 대뜸 움켜쥐고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은 엉덩이를 요리조리 빼기까지 하니 제사상이 저리 삐걱대다 주저앉을까 걱정이었다.

범은 난영의 볼기를 두 손으로 세게 틀어쥐었다. 일부러 혀를 아래로 쭉 내려 음문 속으로 처박았다. 보들보들한 속살을 혀끝으로 할짝할짝하였더니 난영이 곧 숨이 끊어지는 양 할딱할딱하였다.

“버, 범아, 흡, 범아!”

결국 난영은 범의 입속으로 꽃물을 터트렸다.

“아씨, 기분이 어떻소?”

범이 드디어 입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 흐른 맑은 물을 손등으로 스윽 닦더니 활짝 웃는다. 필시 넋이 빠져나간 제 낯이 천치 같아 보이리라.

“응? 어떻소?”

자꾸 어떻냐고 물어보는데 난영은 좀처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몸이 연처럼 둥실둥실 뜨더니 난영의 눈앞에 별천지가 펼쳐졌다. 무릉도원에 온 것만 같아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꼭 무릉도원에 있는 기분 아니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난영은 밭은 숨을 할딱이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 기분도 그렇소.”

총기가 사라지고 열기가 자리를 차지한 눈을 내려다보며 범이 뜨겁게 속삭였다.

눈을 뜬 아씨와 남녀의 정을 함께 쌓는 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범은 열락의 꽃이 만개한 여인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난영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살포시 감더니 입술을 스르륵 벌렸다.

참으로 어여쁘지 않은가.

결국 범은 참지 못하고 난영의 윗입과 아랫입에 제 살덩어리를 모조리 밀어 넣었다.

“으읍, 흡….”

정결해야 할 당집에 제사상 삐걱대는 소리와 연인의 억눌린 교성이 울렸다. 어디 그뿐인가. 맑은 향냄새는 탁한 땀 냄새와 젖 내음, 그리고 음액의 향취에 묻힌 지 오래였다.

위아래로 한참 살을 섞어대던 두 사람은 숨이 가빠 입술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입술 대신 이마를 맞댄 채 허리 짓과 요분질을 잠시도 쉬지 않고 이어나갔다.

‘하아, 저것이 이런 곳에 들어가는구나.’

난영은 제 다리 사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흉흉하고 거대한 살기둥이 제 배 속으로 사라졌다 나왔다 하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여기로 몸집이 남다른 아이도 낳았는데 범의 양물이 제아무리 크다 해도 받지 못할 것 뭘까.

“아흐, 범아….”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였다. 어째 아이를 낳는 길에 이런 쓰임새가 있을까. 뭉툭하고 두툼한 귀두가 배꼽 바로 아래를 퍽퍽 쳐올릴 때마다 배 속이 지글지글 끓었다. 조금 전 범이가 제 다리 사이로 혀를 놀렸을 때처럼 눈앞이 번쩍번쩍 빛나는 게 또 별천지가 펼쳐지려 했다.

신성한 당집에서, 그것도 제사상 위에 앉아 무엇을 하는 거람.

이것은 경을 칠 일이다. 벼락을 맞을 일이고.

허나 이미 벼락을 맞았는지 하나로 포개진 두 몸뚱이가 바르르 떨었다.

“으읏, 난영 아씨….”

그렇지 않아도 이미 좆을 빈틈없이 물고 오물대던 난영의 속살이 아주 한 몸이 되자는 듯 쩍쩍 들러붙는다. 살기둥을 뽑을 때마다 복숭앗빛 진한 속살이 요놈 어딜 가냐며 딸려 나올 정도였다.

“아씨, 읏, 날 놓지 마시오. 나도 아씨를, 놓지 않을, 터이니.”

“아씨, 말고, 하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난영의 의중을 놓치지 않은 범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각시, 어여쁜 내 각시.”

“하아, 내 서방….”

샛서방도 서방이라. 허전했던 난영의 몸과 마음을 이리도 꽉 채워주니 어찌 아니라 할 수 있겠나.

난영은 제 서방의 품에 안겨 다시 한번 무릉도원 속을 거닐었다.

범은 열락에 이미 녹아내린 난영의 몸을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허리를 짓쳐 올렸다.

‘아씨, 장씨 집안 대를 이으려고 시집온 거 아니오. 그러니 아씨는 실로 내 각시가 아니겠소.’

이내 열락의 정점을 알리는 파정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바야흐로 진정한 운우지락이 꽃핀 것이다.

양손에 남의 떡

허리가 추를 단 듯 무거운데 어째 발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야 허리띠 아래에 꽁꽁 동여맨 묵직한 돈주머니 탓이다.

범은 날이 밝자마자 산나물과 약초를 팔겠다며 장으로 나왔다. 난영이 저도 오랜만에 장터 구경을 하고 싶다며 웅이까지 업고 따라오려 했으나, 괜히 부산을 떨며 나갈 채비를 하는 사이 몰래 줄행랑을 쳤다.

저도 세 식구 함께 나들이를 하는 날만 그리는데 싫을 리가 있나.

이건 다 난영 몰래 산삼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삼이라고 했으면 난영은 판 돈으로 그 썩을 가짜 서방놈의 약을 샀을지도 모른다. 이 귀한 돈은 그런 쭉정이한테 들이부을 게 아니라 잘 모아 뒀다 웅이랑 난영에게 써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어제 더덕이라고 거짓부렁을 친 것이다.

물론, 색시 데려온다는 말도 거슬렸고.

뭐 그것도 알고 보니 사실 난영의 거짓부렁이었지만.

하여간에 미련한데 앙큼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터를 지나며 범은 난영의 달덩이 같은 얼굴을 떠올렸다.

돌아가면 두고 갔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 그런데도 바가지 긁히는 게 달곰하기만 하다. 바가지도 서방만 긁히는 거 아닌가.

천치처럼 웃으며 걸음을 옮기던 범은 문득, 도자전(刀子廛: 패물을 파는 점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물건을 곰곰이 뜯어보던 그는 잠시 고민하다 허리춤에서 빛바랜 은가락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범아, 잊어라. 너는 노비가 낳은 노비일 뿐이다.’

어머니는 잊으라 말하면서도 현감 나리가 고릿적에 준 이 은가락지 하나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를 밴 그날 밤 받은 가락지 말이다.

투기가 심한 마님은 어머니가 장씨 집안 씨를 받고 나오자마자 사내종 하나와 동침하게 했다. 그 탓에 범이 태어났을 때에는 누구의 씨인지 몰라 얼자(孼子:양반과 천민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다.

허나 자라면서 누가 보아도, 아니 돌쇠 아재처럼 비리비리한 원규 도련님보다도 장씨 집안 핏줄을 타고난 게 드러났으나 집안의 분란이 귀찮았던 현감 나리는 그를 끝끝내 외면했다. 차라리 싸움도 못 하고 몸집도 작고 비리비리했더라면. 쓸데없이 귀한 피를 타고난 탓에 원규 도련님과 마님의 질시만 사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놓지 못하였고 저도 신물이 나도록 싫었으면서도 팔아버리지 못하였던 가락지를 범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가락지의 이름은 원(怨)인가보다.

결국 장씨 집안의 대를 이은 건 그이니 이제는 원이 없다.

범은 좌판 너머에서 저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응시하는 상인에게 은가락지를 주저 없이 내밀었다.

“이걸로도 값을 치를 수 있소?”

***

“돌아오기만 해 봐라.”

난영은 건넌방에 누워 웅이에게 젖을 먹이며 씩씩거렸다.

어제는 뿌리쳐도 안 놓아줄 거네, 어여쁜 내 각시네, 입에 꿀 바른 소리를 하더니만. 어느 서방이 어여쁜 각시를 집에 홱 버려두고 혼자 가버리나.

“쉰밥만 줄 테다.”

부지런한 난영의 부엌에 쉰밥이 있을 리가.

“콩국수는 내가 다 먹을 테니 냄새만 맡으라지.”

오늘 낮에 분을 못 이겨 씩씩대면서 삶은 콩을 세 되나 갈았다. 보란 듯 제가 다 먹을 심산이라지만 콩국수를 싫어하는 난영이 그럴 리가.

“아씨, 소인 왔습니다.”

뜰에서 범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는 뭐 뭐 하오, 뭐 뭐 했소, 말끝이 가볍더니만. 깍듯한 말투가 얄밉다. 아니, 날 버리고 간 다음부터 다 얄밉다.

묵직한 발소리가 대청마루를 울리기 시작하자 난영은 자는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고는 저를 몇 번 또 깍듯하게 불렀다. 그러다 사위를 살피는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슬며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워 어미의 젖을 빨던 웅이가 범을 알아보고 반가웠는지 옹알옹알하였다.

“아이쿠, 어여쁜 내 새끼….”

실눈을 뜨고 보니 범이 웅이를 안아 든 채 어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웅이의 아비인 원규도 한 번 지어준 적 없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노비가 감히 반가의 손에게 내 새끼라니. 경을 칠 일이다. 그러나 서방이라면 또 모르지.

“네 어미는 자나?”

난영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요가 부스럭대는 게 웅이를 다시 내려놓았나 보다.

“아씨….”

부르는 소리가 심히 가깝다 싶었더니 두 번째는 아주 귓가에 입술이 닿을락 말락, 간질간질했다.

“각시….”

그래도 여전히 모른 척했더니 쪽 진 머리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뭐 하는 거지?’

비녀가 뽑혀 나갔나 보다 싶었는데 다시 쑥 들어왔다.

“내가 우리 각시 줄 선물 사 왔으니 좀 일어나 보시오.”

고집스럽게 눈을 뜨지 않았더니 이마와 뺨에 입술을 쪽쪽 대는 게 성가시다. 결국 난영은 눈을 번쩍 뜨며 범의 얄미운 낯짝을 밀어냈다.

“선물이 어디 있다고 그러니?”

범의 두 손이 비어 있었다. 거짓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잘도 하는구나. 몸을 일으키려던 난영이 칫, 토라진 소리를 내며 다시 누우려는데 그의 두 팔이 제 몸을 단단히 옭아맸다.

“혼자 장에서 재미 좋았니? 어여쁜 낭자랑 몰래 만나기라도 하였어?”

난영은 심통이 단단히 난 얼굴을 하며 쏘아붙였다. 속없기만 해 평생 투기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이러는 것이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울상만 지을 따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은 장에서 뭘 잘못 주워 먹고 천치가 되었는지 싱글벙글하였다.

“이거나 보시오.”

범이 손끝으로 비녀를 톡톡 쳤다. 제 머리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 볼 수가 없었던 난영이 비녀를 뽑아 들었다.

“이게 뭐야?”

난영의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래졌다. 여태 범이 대충 깎아 준 목비녀만 꽂았는데 손에서 느닷없는 은비녀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 이걸 장에서 샀니?”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묻기 전에 범이 먼저 선수를 쳤다.

“팔아버리지 마시오. 그럼 다시는 안 사 줄 테니까.”

“내가 이걸, 왜 팔겠니….”

난영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보조개가 점점 깊어졌다. 비싼 패물을 난생처음 가져본 게 믿기지 않는지 꽂으라고 준 비녀를 꽂지는 않고 이리 돌려보고 저리 쓰다듬어 본다.

“이리 주시오. 내가 꽂아 줄 터이니.”

범은 비녀를 빼앗았다. 난영의 가냘픈 등으로 흘러내린 댕기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단단히 꽂아주었다.

귀밑머리를 올리는 건 꽃잠을 잔 서방의 몫이니.

아들을 먼저 보고 나서야 함께 꽃잠을 자고, 그러고 나서야 비녀를 꽂아주다니. 참으로 요상한 연이다.

그래도 이보다 더 끈끈한 연이 천지에 어디 있나.

서로 마주 보고 초승달처럼 눈을 휘며 웃던 남녀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덮쳤다.

“아흣, 범아….”

“으읏, 아씨, 아, 아니지, 각시….”

웅이는 배가 부른지 진즉에 새근새근 잠이 들었고 뜰 너머의 덕이 할멈은 귀가 먹었다.

얄따란 벽 뒤에서 나리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기는 하나. 오늘은 저 쭉정이 나리, 쭉정이 서방놈이 어깃장을 놓으려고 요에 실례를 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이 떡은 이제 내 떡이다, 이 말이다.

범이 채어 간 아씨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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