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다.
재채기를 불러일으키는 꽃가루가 잔뜩 흩날리던 봄이 지나고, 후덥지근한 태양이 아스팔트 위를 지글지글 내리쬐는 여름이 찾아왔다.
정은 멍하니 창문 너머를 보며, 이제는 흐릿해진 세아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떠올렸다.
-오빠, 오빠. 대학 가면 정말 선배들이 술 강제로 마시게 해? 막 군기 잡아? SNS 보니까 과 단톡에서 다나까만 쓰라 그러고 엄청 무섭던데.
-오빠도 대리출석 같은 거 해봤어? 안 걸려?
-근데 조별 과제가 왜 헬이야? 궁금해. 재밌을 거 같은데!
새터를 앞두고 들뜬 얼굴로 제게 조잘조잘 대학 생활에 대해 묻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는 걸까.
정은 씁쓸하게 웃으며 나직이 한숨을 토했다.
파릇파릇한 나무들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언젠가 여름은 땀 때문에 화장이 무너져 싫다고 투덜거리던 세아가 떠올랐다.
-아, 진짜 더워. 화장 다 번졌네…….
-안 해도 예쁘다니까, 왜 예쁜 얼굴에 쓸데없이 분칠을 해.
-오빠 눈에만 예뻐 보이는 거거든?
-우리 눈에만 예뻐 보이면 됐지. 다른 새끼들한테 예뻐 보여서 뭐 하게?
뭘 해도 세아, 세아, 세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굴지는 말걸. 조금 후회스러웠으나 이제 와 후회한들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미 일은 모두 일어난 후였고, 세아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다른 날은 다 잊혀져도, 그날만큼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배에 식칼을 꽂아 넣은 채 쓰러진 세아의 모습. 그리고 근처에 놓여 있던 두 줄짜리 임신 테스트기.
그게 무얼 뜻하는지는 알아채기 어렵지 않았다. 그걸 모를 만큼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자신들의 아이를 밴 게 죽을 만큼 싫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들에게 겁탈당한 게 죽을 만큼 실었던 걸까. 어쩌면 그 둘 다였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내려줄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넋을 놓고 있었을까. 멍하니 앉아 있던 정의 뺨에 웬 차가운 음료수가 맞닿았다.
“뭐 해.”
정과 똑같은 목소리. 사 준이었다.
“아…… 왔냐.”
“어.”
그에게 다가간 준은 탄산음료 하나를 정에게 건네며 물었다.
“연구관은?”
“곧 도착한대.”
대답하기 무섭게, 핸드폰 진동이 울리며 문자 한 통이 날아온다. 그들이 말하던 연구관의 도착을 알리는 문자였다.
* * *
“주말인데 감사합니다, 김 연구관님.”
“뭘요, 내가 공짜로 오는 것도 아닌데.”
김 연구관이라 불린 남자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링거에 걸린 약물을 바꿨다.
병실에 누워 있는 세아의 안색은 퍽 좋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비쩍 야윈 모양새다.
세아의 팔에 꽂힌 링거 약물을 바꾼 연구관이 슬며시 그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사무관님들도 아시죠? 이…… 기억 억제술이 완벽한 건 아니거든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 잊었던 기억과 유사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네, 압니다. 그리고 굳이 기억 억제술이 아니더라도 그 기억은 이미 잊은 상태예요.”
눈을 가늘게 뜨며 저들을 보는 연구관을 향해 정이 말을 덧붙였다.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린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럼 뭐…… 어지간해서 기억을 되찾을 일은 없을 겁니다.”
김 연구관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정과 준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나저나 본청 관리팀 에이스라 불리시던 두 분께서 동시에 제주지청으로 가신다니…… 많이 아쉽네요.”
“……괜히 서울에 있어 봤자 기억만 헤집어 놓을 거 같아서요.”
“뭐…… 아무래도 그건 그렇죠.”
그 기억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는 연구관은 씁쓸하다는 듯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괘념치 마세요. 동생분께서도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초자연적 현상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산하 특이현상관리청, 이하 특관청의 일산 연구소와 본청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였다.
괴한에게 겁탈당해 스스로 숨을 끊으려 한 준과 정의 여동생 이야기.
그도 그럴 게 본청 관리팀의 에이스라 불리던 사 준과 사 정. 그들이 동시에 장기 휴가를 신청했으니, 다들 의아해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일까. 둘이 함께 본청에서 제주지청으로 발령 신청까지 했으니 이런저런 말들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연구관은 다시금 짐을 챙겨 자리를 비켰다. 그들은 연구관을 향해 살짝 고개를 까딱이고는 세아의 곁에 힘없이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까지 그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은 신은 세아를 살렸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는 흥건한 피와 함께 사라졌고, 세아는 그들에게 겁탈당한 기억을 스스로 지워낸 상태였다. 게다가 한동안은 음식마저 거부한 탓에 몸이 무척 약해져 있었다.
-오빠, 우리 여름에 제주도 가자. 수학여행 때 이후로 한 번도 못 갔단 말이야.
-그래, 그럼 올여름엔 제주도 가자.
-아싸, 가서 비키니 입게 다이어트해야지.
-비키니? 비키니는 왜 입어? 아니…… 그리고 뺄 살이 어디 있다고 다이어트는 무슨…….
한참 고롱고롱 잠에 빠져 있던 세아가 뒤척이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다 머지않아 눈꺼풀이 들린다. 그녀가 깬 걸 눈치챈 정이 곧장 다가가 물었다.
“세아, 깼어?”
“으응…….”
작게 하품을 한 번 한 세아는 빈혈기에 어지러운지 미간을 찌푸렸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정말?”
“응.”
세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총명하게 빛나던 눈동자에 초점이 흐릿했다.
본능적인 감은 남아 있는 건지, 그날의 기억이 모두 지워졌음에도 세아는 예전처럼 그들에게 살갑게 굴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앉아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는 그녀를 보며 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란 세아가 몸을 화들짝 떨며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해. 세아, 놀랐어?”
“아, 아…… 그, 어…… 가, 갑자기 손 뻗어서…….”
세아 또한 스스로가 왜 이렇게까지 그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 저에게 유일한 가족인 오빠들인데.
“미안해……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할 게 뭐 있어. 괜찮아. 세아, 뭐 먹고 싶은 건 없고? 오빠가 초코우유 사다 줄까?”
다정한 물음에도 그녀는 그저 힘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괜찮아…….”
“정말?”
“응…….”
세아 또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오빠들 말로는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 괴한에게 안 좋은 일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기억을 지워낸 거라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남자라면 다 불편해진 건지, 이상하게 정과 준이 전처럼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괜찮은데…….’
온통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정과 준에게 무어라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제가 기억을 되찾지 않길 바라는 눈치였으니까.
“……오빠.”
“응, 세아야.”
“우리 언제 제주도 가?”
“다음 달. 왜? 제주도 가기 싫어?”
정이 다정하게 웃으며 세아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세아가 불편하다는 듯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한다. 그녀가 애꿎은 이불만 뚫어져라 보며 웅얼거렸다.
“아니…… 그냥…… 빨리 가고 싶어서.”
“빨리 가고 싶어?”
세아는 그들과 제 추억으로 가득한 집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응, 얼른 이사 가고 싶어.”
이상하게 그 집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왜일까. 그 집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해서 그런 걸까?
잘게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정이 쓰게 웃었다.
“그러자, 얼른 이사 가자.”
“……응, 고마워.”
정말 이상하게 전과 달리 껄끄러워진 그들이었지만, 세아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정과 준은 세아의 하나뿐인 가족이자 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든든한 오빠들이었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외전
제주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서울보다 더 더웠고, 비가 올 때는 서울보다 더 많이 왔다.
해변가 인근에 제법 그럴싸한 전원주택을 구한 그들은 넓은 마당에서 세아가 키우고 싶어 했던 강아지들을 키우며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긴 했으나, 대학마저 자퇴한 세아는 더 이상 외출할 곳도 없었다. 이따금 필요할 때만 오빠들의 도움을 받아 나가면 되니 크게 거슬릴 것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세아를 혼자 집에 두기 불안했던 정과 준은 상의하에 결국 한쪽이 퇴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에게 세아는 세상의 전부였고,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잃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설령 평생 마음을 보답 받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아를 억지로 묶어서라도 자신들의 곁에만 둘 수 있으면 된다고 정과 준은 생각했다. 그것이 그녀를 망가트리는 길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희미해졌던 세아의 미소가 새로운 가족을 들인 후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코코와 비비.
그들이 제주도에 오며 입양한 유기견 이름이었다.
“세아, 코코 목줄 채웠어?”
“응! 얼른 가자! 코코가 나가고 싶어서 난리야!”
한 달 전에 비하면 많이 밝아진 세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준이 운동화를 신었다. 세아는 이미 마당에서 코코와 함께 이리저리 뛰어노는 중이었다.
“뛰지 말고. 세아야, 그러다 넘어져.”
“내가 7살짜리 애도 아니고…… 과잉보호야.”
세아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살포시 웃었다. 그들에게는 유독 더 박한 미소였다.
아침 일찍 정이 출근하면, 그 후로는 준이 세아를 돌봤다. 그는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를 돌보듯 세아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수준이었다.
과한 관심에 세아도 조금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래도 제게 있었던 안 좋은 일 때문에 걱정되어서 그러겠거니, 하며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손잡아.”
준이 세아 앞에 제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세아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툴툴댄다.
“고작 개 산책하는데 뭘.”
“그래도, 혹시 차가 세아 덮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차가 덮쳐오는데 오빠 손 잡고 있으면 뭐 괜찮나?”
은근히 저와의 접촉을 피하는 세아를 보며 준이 옅게 웃었다.
“응, 그럼 내가 우리 세아 대신 치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줄 수 있지.”
부담스러울 만큼 물러서지 않는 그를 보며 결국 세아는 마지못해 준의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 더운 제주의 여름 바람을 느끼며 세아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었다.
그녀의 배에는 여전히 과거의 자신이 남겨 놓았던 깊은 흉이 남아 있었다.
세아가 상념에 젖으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비비와 코코가 월월 짖으며 해변가를 향해 정신 사납게 달리기 시작한다.
해변가에는 여름 휴가를 온 듯한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제법 보였다.
“우와! 강아지다!”
잠시 코코와 비비에게 물을 주던 세아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놀라 들고 있던 물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
안 그래도 동그란 세아의 눈이 더욱 동그랗게 뜨인다. 세아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를 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상했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아이가 싫다. 어린애들만 봐도, 아니 임산부들만 봐도 몸이 굳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세아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고, 식은땀이 뺨을 타고 뚝뚝 흘렀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준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세아! 세아야!”
헐떡이는 세아의 등을 토닥이며 그가 어서 빨리 아이를 데려가라는 듯 부모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아이의 부모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세아를 보며 괜한 일에 휘말릴까 헐레벌떡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괜찮아? 응? 애기 갔어. 괜찮아, 괜찮아, 세아. 숨 쉬어. 천천히. 들이마시고…… 뱉고…… 옳지, 그렇게…….”
준은 창백하게 질린 채 손을 벌벌 떠는 그녀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큼직한 손이 세아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리길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아, 세아.”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던 세아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괜찮아…… 오빠 있잖아. 응? 괜찮아…….”
가끔 이렇게 세아가 과거의 잔상에 젖어 벌벌 떨기 시작할 때면 준은 불안했다.
혹시라도 기억을 되찾을까 봐. 기억을 모두 되찾고 자신들 곁을 떠나려 할까 봐.
만약 세아를 잃는다면 정도 준도 미련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세아는 저들의 숨통이나 다름없었다.
어려서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신들의 하나뿐인 동생. 사랑스럽고 어여쁜 세아.
자신들의 애정이 세아에게 폭력일지라도,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세아를 붙잡아야, 세아가 곁에 있어야 저들이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숨을 쉬듯, 그들 또한 살기 위해 세아를 붙잡을 뿐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세아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준을 밀어냈다.
“나…… 나, 괜찮아 오빠…….”
“정말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물 좀 줄까?”
세아는 작게 도리질하며 제 곁에서 헥헥대고 있는 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잠깐 아이 때문에 놀랐나 봐.”
그런데 왜 아이를 보면 놀라는 걸까. 왜 임산부만 봐도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까.
이제는 괜찮다는 듯 어설프게 웃는 세아를 보며, 준이 걱정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세아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코코의 목줄을 쥐었다.
“괜찮아, 다시 산책하자.”
애써 웃는 그녀를 보며 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대신 조심해서, 뛰지 말고.”
“응.”
* * *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준과 세아는 마당에 앉아 수박을 잘라 먹으며 정의 귀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소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오는 정의 차가 시야에 담겼다. 재빠르게 마당에 주차를 마친 정이 둘을 향해 다가오며 손에 웬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세아, 오늘도 잘 있었어?”
“응! 뭐 사 온 거야?”
“오면서 치킨 사 왔지. 세아 요즘 통 밥을 잘 못 먹는 거 같아서.”
그 일이 있던 후로 제대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적이 없는 그녀였다. 정은 걱정스럽다는 듯 점점 말라가는 세아를 보며 속상함을 숨기지 못했다.
“더운데 왜 나와 있었어. 안에 들어가서 먹을까?”
“앗, 나는 괜찮아. 여기 앉아서 먹는 게 좋아.”
세아가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해 지는 바닷가 보고 싶어.”
그녀가 먼저 무언가 하고 싶다 말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정과 준은 둘 다 놀란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노을 지면 예쁘잖아.”
묘하게 어색해진 분위기에 세아가 말을 덧붙이며 배시시 웃는다.
그들에게는 산삼보다 귀한 세아의 웃음이었다.
“그래, 그럼. 그러자.”
“세아 하고 싶은 대로 하자.”
팔불출처럼 구는 그들을 보며 세아가 민망하다는 듯 머리칼을 배배 꼬았다.
어느새 마당 평상 위에는 치킨이 세 마리나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얼음 잔에 담긴 콜라를 호로록 마시며 세아가 멍하니 해변가를 응시했다.
예전이었다면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렸을 텐데. 그날 후로 말수가 줄어든 세아는 별다른 말이 없다.
치킨의 대부분이 뼈만 남을 때쯤이 되어서야, 쨍쨍하던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푸른빛이 돌던 하늘은 어느새 주황빛으로 물들어 세아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노을을 보여주고 있었다.
멍하니 해변을 보는 세아의 모습은 여전히 예뻤다. 비록 야위었을지언정, 그들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여전히 소중한 존재였다.
허리에서 찰랑이는 반곱슬 머리카락과 해를 잘 보지 않아 투명한 피부. 도톰하니 사랑스러운 입술과 나비가 팔랑이는 것처럼 제법 긴 속눈썹.
세아는 해변가를 바라봤고, 형제들은 세아를 바라봤다.
지금 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넋 놓고 그녀를 보던 준이 무의식중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세아.”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앱을 켜 화면에 노을 진 하늘과 세아의 뒷모습을 담았다.
“예쁘다.”
찰칵, 셔터음 소리가 들린 순간.
‘찌, 흑, 찍지 마아……. 흑, 흐끅…….’
‘하지, 흑, 하지 마, 흑…….’
‘오빠, 제발…… 제발, 제발…… 흑, 제발 그만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