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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D
여행의 끝
그날 밤 나타샤는 또 한 번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윙슈트와 다른 의미로 죽을 뻔한 그녀가 촉촉해진 눈으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서주환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한국에 박혀 있을 거라서.”
“…너무 단호한 거 아니야? 나는 이제 당신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타샤가 불만스럽게 눈을 흘겼다. 첫 만남부터 튕기기만 하던 여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다. 하룻밤 사이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서주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이게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야?”
그는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상태다. 팬티를 슬쩍 내려서 물건을 보이자 지난밤의 기억이 떠오른 나타샤가 침을 꼴깍 삼켰다.
본래 섹스에 큰 흥미가 없던 나타샤다. 그녀는 성적인 쾌감보다 목숨을 걸고 비행하는 윙슈트의 자유로운 쾌락을 더 선호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바람과 일체가 되는 감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밤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서주환이 보여준 섹스의 쾌락은 윙슈트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전신을 달구고 뇌를 짜릿하게 만들던 그 느낌이 아직도 선명했다. 자지만 봤을 뿐인데 반사적으로 비부가 젖었다.
서주환은 연신 목울대를 꿀렁이는 그녀를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내가 아니라 이게 좋은 것 같은데?”
“그, 그거나 이거나 아니야? 어차피 당신한테 달린 건데!”
“흠.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러니까 가끔이라도 보자. 윙슈트 재밌었잖아? 당신도 비행 후에 섹스 또 하고 싶지 않아?”
서주환은 부정하지 않았다. 해보기 전까지만 해도 왜 이런 데 목숨을 거나 싶었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윙슈트는 엄청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선사했다. 죽음을 감수하고 도전할만한 중독성이 있었다.
“나만큼 예쁜데 같이 비행할 여자 있어? 없을 텐데.”
자신감을 얻은 나타샤가 바짝 붙어서 애교를 부렸다. 얇은 옷 너머로 매끈하고 탄력적인 피부가 느껴졌다. 그녀의 손이 유혹하듯 서주환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서주환은 그녀의 손을 쳐내는 대신 마주 손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그녀의 허리를 휘감은 손이 뱀처럼 복부를 타고 내려가서 비부로 파고들었다.
찌걱, 이미 젖어 있었던 듯 물기가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동굴 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꿈틀거리며 몇 차례 움직였다.
“아, 으흑! 아, 잠깐, 환, 아으으응!”
“입 벌려.”
“하아…….”
도톰한 입술에 살점을 맞대고 혀를 집어넣었다. 스릅, 휘감긴 혀가 그녀의 입안을 희롱하다가 쏙 빠져나왔다.
“아…….”
나타샤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몸을 바르르 떨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고작 손동작 몇 번으로 가볍게 가버리고 만 것이다.
서주환이 낄낄거리며 그녀의 머리를 헤집었다.
“정원 꽉 찼다고 했잖아.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그리 말한 서주환은 짐을 챙겨들고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에 나타샤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협박하듯 부르짖었다.
“버리고 가면 다 소문 낼 거야! 당신, 찾아보니까 엄청 유명한 연예인이라던데!”
순간 서주환의 얼굴이 굳었다.
생명의 은인을 향한 협박이라. 그것도 합의하에 한 섹스로.
서주환이 힐끗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해봐.”
단조로운 한 마디를 남긴 그가 방을 빠져나갔다.
이내 쿵, 문이 닫혔다.
나타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봤다. 순간 자신을 돌아본 눈길이 너무나 싸늘해서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
서주환은 찝찝한 기분으로 호텔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너무 심하게 말했나?’
사랑이라고는 일절 주지 않고 원나잇 상대로 나타샤를 대했다. 마지막 헤어짐도 화가 나서라기보단 그녀가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더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세계를 방랑하며 만난 여자가 몇이던가. 그는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맺고 끊음을 확실히 하게 됐다.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저승문을 이용하지 않고 온 참이다. 당연히 돌아갈 때도 비행기를 이용해야 출입국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슬슬 시간이 됐을 즘이었다.
‘나타샤?’
블론드색 머리칼의 흑인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서주환을 찾지 못하고 연신 공항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가 인식방해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타샤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그렁그렁 물기 어린 눈이 기어코 눈물을 쏟아냈다. 울음을 참는 듯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이 자못 애처로웠다.
서주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선글라스를 슬쩍 들어 올리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타샤.”
“화, 환? 어디 있었어?”
“눈물이나 닦아. 예쁜 여자가 울고 있으면 다들 쳐다본다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주니 나타샤가 눈물을 닦았다. 그리곤 뾰로통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반항적으로 코를 팽 풀었다.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서주환을 향해 나타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 손수건 나 줘.”
“그, 그러던가.”
굳이 콧물 묻은 손수건을 돌려받고 싶진 않았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타샤가 손수건을 고이접어서 품에 넣었다. 그리곤 서주환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미안해. 소문낸다고 한 건 거짓말이야.”
“…….”
“홧김에 한 말이었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그래. 고맙다.”
“고맙… 나야말로 구해줘서 고마워.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이야. 더 이상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
그리 말하는 나타샤의 눈에는 여전히 미련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겠다는 듯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주환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눈꼬리를 긁적였다. 숱한 여자를 만나왔지만 진심을 건네준 상대를 거절하는 건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마음을 받아주는 건 더 못할 짓이다.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그를 사랑해서 기다려주는 여자들에게도.
서주환은 이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너 별스타 아이디 있지?”
“어, 어어.”
“내놔봐. 나중에 티켓 보내 줄 테니까 콘서트에 놀러오던가.”
“저, 정말? 당신 콘서트 가기 엄청 힘들다던데.”
“하룻밤 새 많이도 알아봤네. 처음엔 전혀 모른다고 하더니.”
서주환은 세계적인 유명인이다. 지난 시간 온갖 분야에서 놀라운 활약을 한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스타였다.
하지만 나타샤는 드물게도 서주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윙슈트에만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내 탑승시간이 되자 서주환이 짐을 챙겨들며 말했다.
“그냥 놀러오라는 거니까 오해하면 안 된다?”
“아, 안 해!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하하. 인사는 할 생각이었는데. 네가 싫다면 뭐.”
“뭐? 싫다고 한 적 없잖아!”
격한 반응에 서주환이 낄낄댔다. 그는 역시 놀림당하는 것보단 놀리는 쪽이 취향이었다.
그가 정말로 가야겠다는 듯 돌아서며 말했다.
“아무튼 잘 지내라. 콘서트 언제 할지 모르니까 너무 목 빠지게 기다리지는 말고. 아, 그 전에 비행하다 죽지도 말고.”
약간의 걱정을 담아 그리 말하니 나타샤가 빽 소리쳤다.
“콘서트 볼 때까지는 안 죽을 거니까 걱정 마시지!”
*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서주환은 기지개를 켜고 안내를 따라 공항 안쪽으로 들어섰다. 여권을 보여주니 안내원이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란 소리를 냈다.
“서, 서주…!”
“쉿!”
그가 다급히 손가락을 올리자 직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들을 사람은 모두 들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찾고 있던 인파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서주환이다!”
“어디?!”
“저기 선글라스!”
한 번 이목이 집중되자 인식방해 선글라스도 소용이 없었다. 입국 때문에 ‘천의 얼굴’을 사용하지 못한 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에게 기자들과 인파가 몰려들었다.
“서주환 씨, 이번에는 윙슈트에 도전했다고 들었는데요!”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오오!”
“서주환 씨, 이번 열애설에 대해 한 마디만 해주시죠!”
“나타샤 스탈린과 연애 중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환 사마! 사랑해요!”
“혀어엉! 밀리언 스텝 잘봤어요!”
“서주환 씨!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기자들과 팬들의 목소리가 한 데 뒤섞였다.
서주환은 항상 경호인력 없이 다녔기에 인파가 난잡하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기자들의 마이크와 팬들의 손이 날아들었다. 실물을 한 번 만져보겠다고 손을 뻗는 극성 팬도 있었다.
서주환은 작게 한숨 쉬며 걸음을 멈췄다. 안내원의 부주의로 일이 복잡해졌다. 이러다간 누구 한 명 자빠져서 크게 다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에게 부딪쳐서 위태롭게 보이던 여자 한 명이 꺅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그 순간 서주환이 손을 들어올렸다. 입술과 코에 손가락을 댄 그가 주위를 쓸어보며 읊조렸다.
“다들 진정하세요. 쉿.”
“…….”
놀랍게도 나지막한 말 한 마디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언변’ 재능의 특수능력 ‘언령’ 덕분이었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일어난 ‘카리스마’재능과 특수능력 ‘프레셔’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기자와 팬들은 순간적으로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숨 쉬는 것도 잊고 서주환을 바라봤다. 곧게 세워진 손가락 하나가 지휘봉처럼 현장을 통제했다.
이내 손가락을 내린 서주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순간적으로 장내를 압도했던 ‘카리스마’가 치명적인 ‘매혹’ 재능으로 바뀌었다. 그에 압박감을 느끼던 사람들의 표정이 멍하니 풀어졌다.
“하나씩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질서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거기 조심.”
서주환이 비켜서라는 듯 손짓하자 인파가 갈라졌다. 갈라진 틈사이로 휩쓸려서 넘어졌던 여자가 보였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가서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고, 고맙습니다!”
서주환을 지근거리에서 마주본 여학생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여자는 많이 쳐줘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그래도 서주환은 여전히 존대를 사용했다.
“저 보러 오신 거예요?”
“네, 네!”
“나이가 어떻게?”
“열여덟이요…….”
여학생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여기 온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으음. 내년이면 수험생이네요? 나중에 공부 망쳤다고 제 탓하는 거 아니죠?”
“아, 아닌데요. 절대로.”
“못 믿겠는데…….”
“저, 정말이에요.”
여학생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서주환이 픽 웃으며 말했다.
“대학 어디 가고 싶어요? 학과는?”
“어, 그게… 그냥 인서울… 학과는 간호학과요.”
“역시 학과는 정해져 있구나. 그럼 목표만 더 구체적으로 잡아 봐요.”
“네?”
“스카이나 서성한 쪽 간호학과 들어가고 인증하면 나중에 티켓 줄게요. 어때요?”
여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요?!”
“네, 정말로요. 제 팬이면 가끔 랜덤으로 티켓 뿌리는 거 알 텐데?”
“알아요. 네! 아, 그런데 서성한…….”
들떠있던 여학생의 얼굴이 순간 시무룩해졌다. 스카이는 당연히 높디높은 벽이고 서성한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도 서성한 중 간호학과가 있는 곳은 한양대 뿐이었다.
“어허. 스카이를 목표로 해야지 벌써 그러면 어떡해요? 공짜티켓인데 이 정돈 극복해야지. 나 좋아하면 할 수 있죠?”
두 손을 꽉 쥐고 눈을 찡긋하니 여학생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학교로 가서 공부한다, 실시.”
“네? 지금요?”
“실시!”
“시, 실시!”
여학생이 화들짝 놀라며 되돌았다. 아쉬운 듯 돌아보는 그녀에게 서주환이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가요.”
이내 여학생이 허리를 숙이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서주환은 흐뭇하게 웃으며 뒷모습을 바라봤다.
‘의료계 인재를 한 명 살렸구만.’
놀랍게도 여학생은 간호 관련 재능이 두 개나 있었다. 그리고 각각 A+와 A등급 잠재력을 보였다. 지금처럼 연예인에 너무 한 눈 팔지만 않는다면 크게 될 인재였다.
그때 눈치를 보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저, 서주환 씨. 그래서 인터뷰는……?”
“아, 해야죠. 시간 없으니까 10분만 할게요.”
*
절대로 어디에도 알리지 않겠다던 나타샤였으나 결국 열애설은 터졌다. 분명 그녀가 알린 것은 아닐 테고 누군가 제보했거나 파파라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열애설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은 좀 뜸했지만.’
특수능력 ‘천의 얼굴’을 얻기 전에는 서주환만큼 열애설이 자주 터진 연예인도 드물었다. 아무리 인식방해 선글라스가 있더라도 파파라치의 눈길을 모두 피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워낙 여자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기도 했고 말이다.
이 때문에 한때는 서주환의 이미지가 비호감으로 찍힌 적도 있었다. 문란한 사생활이 어쩌고 하며 워낙 말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사생활로 나락을 가기에는 서주환이 보인 행보가 너무나 대단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스카상 수상자. 얼굴 없는 화가 판타지의 정체. 천상의 목소리. 세계 100대 부자. 추정 개인 재산 30위의 남자.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Best3. 사람을 구하는 영웅. 신이 실수로 만든 완벽한 인간.
서주환을 지칭하는 호칭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났다. 참고로 그 중 가장 유명한 별명은 ‘만능인간’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고작 열애설 따위는 서주환에게 큰 흠이 될 수 없었다. 더불어 워낙 사건사고를 많이 달고 다니는 몸이라 그만큼 선행도 많이 한 그였다.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싶으면 붕괴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화재 건물에서 어린아이를 구출했다는 기사가 세계 각 나라에서 돌아가며 나오곤 했던 것이다.
비단 재난상황이 아니라도 서주환은 최대한 베푸는 삶을 실천했다. 가진 게 워낙 많으니 도리어 욕심이 줄었다고 해야 할까. 쓸 데도 없이 많은 돈을 처리하기 위해 직접 재단을 설립해서 고아원을 만들거나 재능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다. 대학시절 이석찬과 얘기했던 헤드헌팅 재단의 연장선인 셈이었다.
다만 그런 서주환이라도 두려워하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누나, 오해야. 아니야. 열애설 아니라고 해명했어. 개새끼들이 증거도 없이 그냥 내가 여자랑만 있으면 그런 기사를 막 써댄다니까? 구라 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사실 마지막 조각을 갖고 있는 여자여서 어쩔 수 없었어. 알았어, 이따 봐…….”
정소라를 비롯한 서주환의 여자들은 그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시스템은 물론 루시의 존재까지도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 할 여자들이기에, 또 그의 선택 때문에 나라를 떠나야할 지도 모르는 여자들이었기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어, 하연아. 미안……. 신경 쓰지 말라니. 너 그러면서 혼자 맘 상할 거잖아. 차라리 욕을 해. 그런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어.”
여자들에게 차례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정을 밝힌 만큼 모두가 그를 이해해주고 있었지만 한 가지 약속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을 알고 있어도 역시 기사로 확인하는 건 화가 난다. 그러니까 해도 걸리지 않게 해라. 우리 눈에 들어오게 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여자들과의 약속이었다. 참으로 착해빠진 여자들이 아니고 무엇인지.
서주환은 연신 비굴하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그에게 져주고 맞춰주는 여자들도 이런 일에 있어서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따지고 보면 남편의 외도를 허락한 건데… 이 정도는 달게 받으셔야죠? 더 정성을 담아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뭐야, 이제 루시도 갈구는 거야?’
[흥, 입니다.]
‘귀엽긴.’
사람이 될 때가 되어서일까.
장난스럽게 질투를 내보이는 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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