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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결국 12월이 되어 버렸군요
한파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그나저나 다래끼가 더 심화 돼서 불편하네요ㅠㅠ
빨리 병원을 가던가 해야지...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여행의 끝
한 시도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녀서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서주환의 이번 삶은 제법 다사다난(多事多難)한 면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난(多難)이란 말은 빼야할 지도 모르겠다. 타인이 보기엔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사건 규모에 비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가 쓴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하는 문제로 일본 현지의 제작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그는 일본 정계의 기둥이라 불리는 하야시 타로의 독녀, 하야시 하루를 노리고 있었다. 그녀가 S급 재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야시 하루가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섹스도 하기 전인데 호감도가 A+까지 치솟더니 그야말로 사랑에 빠진 소녀가 되었다. 그 이유인 즉, 붕괴된 건물 안에 갇힌 하야시 하루를 그가 멋지게 구출해냈기 때문이다.
그 날 서주환은 하야시 하루 외에도 불길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 13명의 사람을 구출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일본의 영웅이 되었고, 하루의 부친인 하야시 타로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함을 표했다. 더불어 딸의 마음을 안 하야시 타로는 서주환에게 약혼을 제의하기까지 했다.
이미 여자가 아홉 명이나 있는 서주환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조각을 얻고 하룻밤 관계로 끝을 내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일이 꼬인 것이다.
뭐, 결국 특수능력 ‘천의 얼굴’로 모습을 바꾼 뒤 어떻게든 꼬셔서 조각을 얻어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일이 있었다.
사막에서 조난당한 여자를 구조한 다음 오아시스에서 떡을 친 일이라거나. 북한에서 그의 씨를 얻기 위해 온 간첩을 역으로 꼬셔서 노예플을 한 일이라던가. 일본의 닌자 조직, 이탈리아의 마피아 조직을 괴멸시킨 일이라거나.
서주환의 삶은 특별한 능력과 방랑자의 운명을 감안해도 사건사고가 많았다. 회귀를 하면서 잘못 부여됐던 업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원래도 범상치 않은 삶을 살 운명이었던 것 같다. 아마 스케일이 이만큼 커진 것은 시스템 때문에 활동범위가 넓어져서일 터였다.
아무튼 그런 서주환인지라, 남은 조각을 모으기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 마지막 조각은 말이다.
*
윙슈트(Wingsuit).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서도 위험도가 높기로 악명이 자자한 종목이다. 스치기만 해도 죽기 일쑤니까 ‘부상자가 발생할 확률이 가장 적은 안전한 스포츠’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스릴에 미친 인간들은 고작 슈트 하나에 의지하여 수천M 상공에서 최대 250km/h가 넘는 속도로 낙하한다,
비행 중 스치면 최소 반신불수. 삐끗하면 사망.
그 스릴 속에서 좁은 바위틈을 통과하는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낄낄대는 광기란 서주환마저도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님에 어떻게 목숨을 걸고 비행하는 건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수천 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인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서주환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아래를 응시하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였더라?’
물론 S급 재능 조각을 얻기 위해서다.
좀 더 정확히는 이제 딱 한 개 남은 조각을 얻기 위해 세계를 방랑하던 중 ‘탐지’ 재능의 특수능력 ‘목표지정’이 옆에 있는 이 빌어먹을 여자를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여자, 나타샤가 히죽거리며 그를 놀렸다.
“헤이, 환. 표정이 안 좋은데? 거시기가 쪼그라든 거 아니야?”
그 말에 가만히 있을 서주환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 긴장했냐는 듯 씩 입꼬리를 올리며 응수했다.
“궁금하면 확인시켜줄까? 쪼그라들었는지 어떤지.”
“캬캬컄. 하여간 환은 재밌다니까. 곱상하게 생겨서 겁이 없어.”
“내가 곱상하게 생겼다고?”
농담이라도 서주환의 외견은 곱상한 편이 아니다. 매끄러운 피부와 날카로운 턱 선을 갖고 있긴 했지만 미소년이라기보단 거친 남성미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외형이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따지고 들만큼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고 나타샤와 같은 흑인들에 비하면 곱상하다는 표현이 마냥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사실은 곧 구름 아래로 뛰어내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은 익숙하지만 윙슈트라니.’
언젠가 아크로필리아(Acrophilia-고소 기호증) 하급 페티시를 가진 여자를 꼬시기 위해 스카이다이빙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해보니 자유낙하 하는 맛이 제법 취향이라서 C-라이센스까지 땄다.
하지만 윙슈트는 다르다. 스카이다이빙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긴장감이 올라왔다. 아크로필리아 최상급 페티시를 가진 나타샤가 아니었다면 도전할 일 따위는 결단코 없었다.
‘젠장. 차라리 K2산맥을 등반할 때가 나았어.’
K2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자 등반 난이도가 히말라야보다도 높은 산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보유한 서주환에겐 정복하기 어려운 산이 아니었다. 각종 아이템을 사용해 냉기저항을 높이고 ‘탐험’ 재능과 특수능력을 사용해 길을 찾으면 정상까지 헤매지 않고 단번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는 조난당한 S급 재능 보유자를 구출하며 동굴 안에서 떡을 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윙슈트는 K2산맥과 다르다. 수천 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교육을 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 팀장이 말했다.
“다들 준비됐지? 차례대로 출발해!”
“오케이!”
신호와 함께 스릴에 미친 인간들이 하나둘씩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그들은 능숙하게 윙슈트를 펼치고 날아갔다. 하늘다람쥐를 모티브 삼아 만든 슈트가 인간에게 없는 날개를 대신했다.
이제 곧 서주환의 차례.
그에 바로 앞서 나타샤가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말한다.
“환. 죽으면 찝찝하니까 조심해.”
“미친년아. 플래그 세우지 마!”
“캬캬컄! 살아서 보면 찐하게 키스해줄게!”
“뭐? 야, 어디서 약을 팔아!”
키스가 아니라 섹스였잖아, 썅년아!
욕설을 내뱉기도 전에 타나샤가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캬하하하! 역시 이 느낌이 최고ㅇ……!”
바람을 타고 날아간 나타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서주환은 씨발, 하고 욕설을 내뱉으며 곧장 그 뒤를 따라갔다.
“어딜 도망 가!”
“자, 잠깐! 환?!”
그 망설임 없는 점프에 대기하고 있던 팀장이 오히려 놀란 목소리를 냈다. 한순간에 점이 된 서주환을 보며 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투덜대더니… 역시 저 녀석도 미친놈이라니까.”
*
수천 피트 상공에서 뛰어내린 서주환의 기도가 비명처럼 울러 퍼졌다.
“루시, 만세에에에에에─!”
[갑자기요?]
“아무튼 루시 덕에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야 죽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주인님이 기절해도 제가 아이템을 사용할 테니까요.]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뛰어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시스템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절대 사망할 일은 없다는 보험이 용기를 줬다.
“그런데 보험도 없는 저 새끼들은 뭐냐고!”
서주환은 몸을 휘감는 바람을 느끼며 소리쳤다. 까딱하면 곤죽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스릴을 찾는 미친놈들은 살짝 맛이 간 그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님, 앞을 잘 보세요.]
“뭐?”
욕설을 마구 내뱉던 서주환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고글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하얀 구름 아래 펼쳐진 광경. 말로 표현하기 힘든 대자연의 웅장함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아…….”
긴장이 풀리며 시야가 점점 더 확장됐다.
넓게 펼쳐진 기암괴석과 그 너머로 보이는 산천초목.
위험요소로 생각했던 바람결이 대자연의 풍경과 더불어 엄청난 해방감으로 치환된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내달렸다.
“하, 하하. 으하하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 터져 나왔다. 저 미친 연놈들이 목숨을 내놓고 이 지랄을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스카이다이빙을 처음 할 때 느꼈던 것보다도 엄청난 환희가 차올랐다.
그때부터 서주환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자유를 만끽했다. 두 눈을 활짝 뜨고 풍경을 아로새겼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온갖 재능을 동원하여 윙슈트의 성능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비행하고 있을 때였다.
후우우우웅─!
돌연 엄청난 강풍이 불어 닥쳤다.
환하게 웃으며 비행하던 서주환은 헉, 놀란 숨을 토하며 다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바람의 영향권을 벗어나서 금세 정상적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먼저 출발한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강풍에 완전히 말려들었다.
- 꺄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렸다.
거친 바람 때문에 희미하긴 했지만 나타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나타샤!”
서주환은 육안으로 나타샤를 식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녀를 따라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 덕분이다. 강풍에 휘말린 그녀의 몸이 균형을 잃고 몇 차례나 뒤집어지는 게 보였다.
“젠장! 루시!”
이름을 위치는 순간 루시가 즉각 반응해서 ‘집중의 축복’을 사용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다른 아이템 중에 마땅히 사용할 만한 게 없습니다! 주인님이 해야 해요!]
서주환의 목숨을 구하는 거라면 문제없다. 충격완화와 관련된 아이템이 있으니까. 하지만 당장 추락하고 있는 타나샤를 따라잡기 위한 방도가 없었다.
‘저승문을 사용하면……!’
순간이동 하듯이 나타샤의 곁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안 될 일이다.
그보다 늦게 뛰어내린 사람도 있다. 나타샤의 헬멧 달린 카메라도 문제다. 저승문의 존재가 일반인에게 밝혀져서는 안 된다.
‘괜찮아. 아이템 없이도 할 수 있어.’
서주환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집중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방랑하며 습득한 재능이 몇 개던가. 정신만 차린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바로 그였다.
쐐애애애애액!
팔과 다리를 접은 서주환의 몸이 급강하한다. 비스듬히 비행하던 몸체가 추락하듯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타샤는 몇 번이고 뒤집어지며 균형을 잃은 상태. 작정하고 떨어지는 그보다 추락속도가 느렸다.
문제는 그녀와의 X축 거리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중에서 요동치며 떨어지는 사람을 붙잡기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물론, 보통 사람에게는 말이다.
‘집중해!’
서주환은 스스로를 다그치며 온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과 관련된 재능과 특수능력을 동시에 사용했다. ‘박투’ 재능의 특수능력 ‘슬로우 비디오’가 시간을 쪼갠다. 스킬, ‘마안’이 가야할 길을 알려준다. ‘비행’ 재능의 특수능력 ‘바람길’로 풍향을 파악한다.
서주환은 뇌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과도한 능력의 사용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렇게나 여러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은 그로서도 드문 일이었다.
[아이템, ‘고통경감’을 사용합니다.]
[아이템, ‘멘탈케어’를 사용합니다.]
[아이템, ‘자가회복’을 사용합니다.]
루시가 아이템을 제멋대로 사용하며 보조했다.
고통과 시원함이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그 와중에도 완벽하게 동작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으로 인한 경이로운 집중력 덕이었다.
“나타샤!”
“끄으윽. 화, 환?”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며 바짝 붙은 서주환이 공중에서 나타샤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접촉을 할 시 자세가 무너지고 추락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나타샤의 등허리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정신 차리고 자세 잡아!”
단 한 번의 손짓이 나타샤의 무게중심을 되돌렸다. 정신없이 뒤집어지던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되찾았다.
나타샤도 몇 번이고 비행을 해본 베테랑이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곧장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바람으로 이루어진 길에 탑승했다.
‘살았어?’
나타샤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중심을 잡아준 서주환은 언제 강하했냐는 듯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가 좁은 절벽 사이를 통과하는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무어라 외치는 게 들려왔다.
“살았다! 씨바아아아아알!”
나타샤가 처음으로 배운 한국어였다.
*
서주환과 나타샤가 무사히 착륙에 성공했다.
새삼스럽게 살아있음을 실감한 나타샤가 풀밭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이! 나타샤!”
어느새 윙슈트를 벗은 서주환이 뛰듯이 달려왔다. 생명의 은인을 본 나타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환!”
“살아 있… 읍?”
몸을 일으킨 나타샤가 저돌적으로 입술을 맞췄다. 블론드색 머리카락이 서주환의 볼을 간질였다.
이내 키스를 마친 나타샤가 흥분어린 숨결을 토해내며 말했다.
“환, 이거 봐.”
나타샤는 서주환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을 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리를 꼬며 말했다.
“나 지금 완전히 흥분했어.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밑이 엄청 젖어버렸다고.”
서주환은 헛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이.”
“나랑 결혼 할래, 환?”
“뭐? 이게 죽다 살아나더니 돌았나.”
“나랑 하고 싶다면서. 나 예쁘지 않아?”
나타샤는 무척이나 뛰어난 미모의 여성이었다. 밝게 빛나는 블론드 색 머리카락과 그에 대조되는 구릿빛 피부.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두 인종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이목구비까지. 솔직히 말해서 서주환의 여자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아쉬움도 없이 이렇게 대꾸하며 그녀의 이마에다 손가락을 튕겼다.
“떡만 치자, 떡만. 결혼은 딴 놈이랑 하고.”
“왜!”
대체 이유가 뭐냐는 듯 반발하는 나타샤.
서주환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줬다.
“정원 꽉 찼어.”
정원은 열 자리.
이미 그의 곁에는 아홉 명의 여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자리 또한 오래 전부터 예약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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