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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월희의 디저트
서주환은 잠에 빠진 정소라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많이 길었네. 역시 이 머리가 잘 어울려.’
시리아에서 복무할 당시의 정소라는 여군임을 감안해도 굉장히 짧은 머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대장 시절처럼 목을 반쯤 덮는 리프컷으로 돌아왔다. 애써 접었던 서주환에 대한 마음이 이어진 것을 계기로 열심히 기른 성과였다.
한동안 정소라를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던 서주환은 침대에 몸을 묻었다. ‘몽마신의 특제 정력제(中)’를 사용한 덕에 별로 피곤하진 않았지만 잠에 들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특수능력, ‘자각몽(自覺夢)을 활성화합니다.]
[꿈속에서도 미몽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각몽의 반작용으로 피로회복이 저하됩니다.]
익숙한 시스템음과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
꿈속 세상으로 들어온 서주환은 자신의 집을 상상했다. 그러자 새하얬던 공간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음. 적당히 커피랑 디저트도 만들까?”
직접 요리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커피와 디저트 또한 가볍게 상상하는 것만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사실 꿈속에서 무언가를 먹어봤자 실제로 포만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시각, 청각을 비롯한 오감은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제법 생생한 체감이 가능하다. ‘교접몽’에서 현실과 다름없는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다과 준비를 마쳤을 즘이었다.
공간 한쪽이 일그러지며 새까만 구멍이 열렸다.
이내 구멍 안쪽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여성이 유유자적 앉아 있는 서주환을 보고 다급히 인사했다.
“아, 서주환 님. 생각보다 보고가 길어져서 늦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구멍에서 나온 사람은 서주환의 담당 저승사자 월희였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카만 두루마기와 갓을 쓰고 있었다.
서주환은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월희 누님. 일단 앉으시죠. 지쳐 보이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해요.”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인사한 월희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세팅된 커피와 디저트를 보고 눈을 빛냈다. 이와 같은 식도락이야말로 그녀의 고단한 저승사자 생활의 낙이었다.
‘오늘 디저트는 마카롱이구나. 그것도 얼마 전에 나온 신 메뉴.’
저승은 기본적으로 현계보다 변화가 느리다. 식문화도 마찬가지. 저승의 존재는 아무래도 이미 한 번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천 년이라는 길고 긴 수명 때문인지 지나치게 느긋한 면이 있었다. 그나마 서주환의 회귀를 계기로 각성한 염라대왕의 개혁(改革)이 시작된 후에는 업무적인 면에서만큼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서주환이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월희도 기다렸다는 듯 마카롱을 집었다. 이내 마카롱을 한입 야무지게 배어먹은 그녀가 행복한 얼굴로 풀어졌다.
‘달콤하기도 하지!’
역시 현계의 디저트는 저승의 밋밋한 음식과 비교해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함에 극락왕생이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 이미 한 번 죽었지만.’
월희는 마카롱 세트를 모두 먹어치우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헉, 하고 앞을 바라보니 서주환이 특유의 낄낄거리는 표정으로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추태를 보였네요.”
“뭘요. 한두 번도 아닌데.”
“우윽…….”
“하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세요. 얼마든지 더 드셔도 되니까.”
“…….”
잠시 갈등에 빠진 월희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럼 저번에 먹었던 카이막으로 부탁드려요.”
“그러죠.”
“꾸, 꿀도 듬뿍…….”
“큭큭. 얼마든지요.”
서주환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월희의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카이막이 나타났다. 자각몽 안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였다.
“언제 봐도 신기하네요. 꿈속임에도 현실과 똑같은 체감이라니. 맛도 향도 너무 좋아요. 과연 몽마신께서 부여한 능력이에요.”
빵에 치즈와 꿀을 발라먹은 월희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서주환은 열심히 먹는 그녀를 흐뭇하게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포만감은 없지만요.”
“오히려 그래서 좋은 걸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하하. 월희 누님은 먹는 걸 진짜 좋아하네요.”
“아, 그게…….”
월희의 창백한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그녀는 살아생전에도 식욕이 많았으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조선시대에서 오남매 중 막내로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에 언제나 형제들이 먹고 남은 잔반을 먹어야 했다.
서주환이 월희와 알게 된 지도 어느덧 3년 째. 서주환은 진즉 그녀의 과거를 들은 바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나마 그녀를 챙겨주고 있었다.
어느덧 카이막까지 모두 먹어치운 그녀가 아쉬운 눈으로 빈 접시를 바라보다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이, 이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오늘은 기쁜 소식이 있어요.”
내용을 짐작한 서주환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월희가 그에게 전해줄 소식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월희가 그 예상이 맞다는 듯 살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주환 님의 제안이 통과됐어요. 앞으로 서주환 님께서는 자유롭게 저승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서주환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면서 건넨 제안이 무사히 통과된 것이다.
함께 듣고 있던 루시가 축하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조각을 모으기가 더 수월해지겠군요. 원할 때 여자들을 만나러 갈 수도 있을 테고요.]
‘그래. 시간을 더 앞당길 수 있겠어.’
저승문은 보통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는 문을 일컫는다. 그러나 저승문에는 한 가지 용도가 더 있다. 바로 저승사자들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이동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월희와 같은 저승사자들은 저승문을 통해 전 세계 어디로든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서주환이 일전에 정소라를 구하기 위해 시리아로 단번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저승문 덕분이다. 당시 정소라의 위험을 알게 된 서주환은 월희에게 부탁해서 저승문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본래 현계의 인간이 저승문을 이용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저승의 능력을 현계의 생자가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인과율에 적지 않은 비틀림 생기고 만다. 그럼에도 그의 부탁이 통했던 이유는 반쯤 협박을 곁들인 데다 딱 한 번뿐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명계를 다스리는 염라가 전언을 철회하고 서주환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그의 제의가 통과된 이유는 그에 상응하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이라 함은 시스템과 관련이 있었다.
‘예상이 들어맞아서 다행이야. 결국은 인과율 문제다.’
그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는 사이 월희가 당부했다.
“서주환 님, 알고 계시겠지만 계약은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능력은 물론 앞으로 얻을 능력 또한…….”
“걱정 마세요. 약속한 건 지킬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번 계약은 서주환 님이 직접 제의한 것이기 때문에 몽마신께서도 관여할 수 없거든요. 만약 계약조건을 어기면 사후에 곤욕을 치르실 거예요.”
그 말에 서주환은 긴장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계약을 어길 생각은 없었지만 사후(死後)를 이야기하자 새삼스럽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계약을 지키기만 하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그는 이내 자신 있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맹세하죠. 나 서주환은 시스템으로 얻은 이과적 재능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 물론 특수능력도 마찬가지. 제가 문명의 발전을 과도하게 앞당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과적 재능이라 함은 물리학, 화학, 동물학, 식물학, 생리학, 지질학, 천문학 등 자연계의 원리와 현상과 관련된 학문을 말함이다.
이러한 재능과 특수능력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저승문의 이용과 맞바꾼 조건이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오히려 이득만 있는 거래다.’
애초에 서주환은 이과적 재능을 개발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분야는 문학을 비롯한 노래, 연기, 격투 등 예체능 계통이지 수학이나 과학이 아니었다.
‘흥미도 없을뿐더러 이과 계통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려.’
이과 계통은 천재적인 이해력이 있더라도 밑바탕이 되는 지식의 습득이 필수불가결하다. 원리를 모르는데 결과만 도출해낼 수는 없는 법. 재능 조각을 모아야하는 그로서는 진득하게 공부를 하거나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했다.
반면 예체능은 상대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감각이 중요한 분야다. 재능을 갖고 있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
시스템을 통해 재능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서주환에게 보다 접근이 쉬운 분야는 단연코 후자다. 물론 예체능 계통도 그 재능을 100%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한편 서주환의 맹세를 들은 월희는 안심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서주환에게 이과적 능력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명계에 있어서는 그 가능성 자체가 엄청난 불안요소였던 것이다.
‘서주환 님이 마음만 먹으면 문명발전을 몇 세기 정도 앞당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렇게 된다면 안 그래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명계의 행정이 마비될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과율을 감당하는 것은 몽마신 러스트지만 잡다한 행정업무는 해당 차원의 관리자인 명계의 몫이었으므로.
월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 한편 새삼스럽게 러스트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
‘저승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인과율만 해도 대왕께서 파랗게 질리실 정도인데 몽마신께선 도대체…….’
회귀를 제안한 것은 염라대왕이지만 시스템을 몰래 준 것은 몽마신 러스트다. 즉 시스템으로 일어난 모든 변화의 인과율을 그가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소원석’의 존재까지 감안하면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신인지 가늠조차 힘들었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월희는 이내 복잡한 생각을 털어냈다. 말단 저승공무원인 그녀가 신경 써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월희는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위대하신 몽마신 덕분에 부정부패하던 명계가 변혁을 맞았다. 그리고 서주환의 담당으로 배정된 그녀는 이번 계약을 성사시킨 공으로 또 한 번의 승진이 예정된 상태였다. 그녀로서는 몽마신 만만세를 외칠 일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월희 누님, 어때요? 오랜만에 드실래요?”
어느새 발가벗은 서주환이 꼿꼿하게 일어선 물건을 들이밀며 말했다. 물건 끝에서 점성을 띈 쿠퍼액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부디.”
월희가 꼴깍 침을 삼킨 후 입을 벌렸다.
<월희>
성별: 여성
나이: 17(+368)
키: 157cm
몸무게: 43kg
호감도: A
현재 성욕: B+
페티시: Hygrophilia(中)
보유 재능: 암살(F/S), 행정(B+/A+), 학습(B+/A), 충동(B/A)
[Hygrophilia(하이그로필리아)란 눈물, 타액, 땀, 소변, 배변, 정액, 질액 등의 신체 분비물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페티시입니다.]
언제나 월희가 마지막으로 먹는 디저트는 서주환의 정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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