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93화 (49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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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정소라

6개월 전.

정소라가 국제평화지원단에 소속되어 시리아로 파병을 나가있을 때의 어느 날이다. 느닷없이 국제 테러리스트로 취급받는 ISIL의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이 시작됐다.

탕! 타아앙! 탕탕탕!

총탄이 빗발쳤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순식간에 주변을 물들이고 붉은 피와 함께 비명이 튀어 올랐다.

“끄아악!”

“내 팔!”

“저 미친 테러범 새끼들이!”

ISIL. 좀 더 정확히는 시리아 내전에서 반정부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 급진 수니마(Sinni) 무장단체, 알누스라 전선(جبهة النصرة لأهل الشام:자브하트 알누스라).

이들은 알 카에다의 시리아 지부로서 레반트 지역에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듯 평화지원단과 대치하고 신경전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작전의 일환일 터.

하지만 정말로 총탄을 주고받으며 교전을 하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평화지원단의 주 임무는 실제 전투가 아닌 지역 안정화와 재건이었기 때문이다.

‘젠장, 너무 안일했어. 내가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소라는 무능력한 지휘자에게 분노하는 한편 교전으로 인한 공포와 흥분을 다스리려 이를 악물었다.

테러리스트의 행동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ISIL의 공격은 전조도 없이 갑작스러웠고 총탄이 빗발치는 교전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민간인의 피해는 없었지만 마냥 다행이라고 여기기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갔다. 어둠을 틈타 기습한 테러리스트가 기어코 평화지원단을 무력화시키고 제압, 포박하고 만 것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접경지역, 골란고원 전투.

그렇게 국제평화지원군 30여명이 인질로 붙잡혔다. 그나마 사망자가 없는 것도 언제나 FM(Field Manual:야전교범-정석대로 한다는 뜻)을 기치로 삼는 정소라의 신속한 초기대응 덕이었다.

“──!”

교전에서 승리한 무장단체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평화지원군을 발로 차고 때렸다. 부상당해 신음하는 이들의 취급조차 험악했기에 사람들은 눈치껏 그들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정소라 또한 손발이 묶인 채 아무렇게나 봉고차에 실렸다. 봉고차에는 그녀와 비슷한 몰골로 실린 인원이 일곱 명, 무장을 한 테러리스트가 다섯 있었다. 나란히 달리고 있는 다른 차에도 인원들이 비슷하게 나뉘었다. 그 중 몇 대는 지프차였는데 그 차량에는 테러리스트들만 모여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심지어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조차 병나발을 부는 중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도대체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국제평화지원단 소속 군인을 납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일을 키워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내 정소라는 허탈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다.

그녀 자신을 비롯한 군인들을 납치한 집단은 국가적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반군단체다. 본인들은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인정도 받지 못한, 그저 군사 장비를 보유한 조직폭력배에 불과하다. 이슬람 교리를 따른다고 말하는 주제에 군기와 질서라곤 일체 찾아볼 수 없고 술과 마약에 쩔어서 폭력과 강간을 일삼는 인간쓰레기들인 것이다.

‘이런 놈들이 인도적인 대우를 해주진 않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던 교전의 흥분이 식고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평화유지단을 죽이거나 고문한다면 각 국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머리가 제대로 달렸다면 어느 정도 인도적인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다. 석방을 조건으로 걸고 무언가 요구하는 게 최선일 터.

하지만 술과 마약에 찌든 놈들이 그런 상식을 가지고 있을까? 애초에 기습을 벌인 것부터가 난센스다.

정소라는 문득 수년 전 ISIL이 인질로 잡은 민간인을 공개처형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겁먹지 마…….’

한 번 공포에 빠지면 끝이 없다. 안 그래도 위험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뻔히 보이는 기회도 놓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정소라가 아무리 냉정침착하다고 해도 실제로 전투를 경험해본 것은 처음이다. 그녀는 스스로 여자 이전에 군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지만 그 군인도 결국은 나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녀가 애써 떨리는 호흡을 정돈하고 있을 때.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췄다.

‘어디지?’

어둡기만 하던 사방이 제법 밝아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설프게 친 텐트를 비롯한 막사가 있었다. 테러범들의 임시 주둔지인 듯했다.

정소라를 비롯한 인질들이 구석에 옹기종기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옴짝달싹할 수 없이 묶인 채 눈을 굴렸다.

‘인원은 대략 60명 정도인가?’

그 중 10명 정도는 납치당한 민간인으로 보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남자가 셋, 여자가 일곱 정도. 모두 어쩔 수 없이 테러범들을 따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즉 테러범들의 총 인원은 대략 50명 정도. 교전에 나왔던 인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질을 40명이나 잡아? 미친놈들. 아니지, 근처에 동료들이 더 있는 건가?’

그것이 유력한 추론이었으나 마약과 술을 마시는 행태를 보면 그저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소라는 부디 후자이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만에 하나의 기회가 왔을 때 탈출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

시끄럽게 먹고 마시며 떠드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다 테러범 몇몇이 병나발을 불며 인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조롱을 하려는 듯 일관되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차례 떠드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주먹과 발이 인질들의 몸을 장난스럽게 두들겼다. 힘이 그리 실리지 않았다지만 저항할 수 없는 상태. 얼굴을 잘못 맞은 인질의 코에서 피가 흐르는 일도 우습게 생겼다.

그때 어떤 테러범 하나가 인질들을 둘러보다가 정소라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

남자가 소리치자 테러범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곤 정소라를 보며 손가락질하더니 짧게 자른 머리를 틀어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테러범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정소라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유추할 수 있었다. 짧은 머리와 위장으로 감추고 있던 성별이 드러난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정소라의 예상은 옳았다.

“으하하! 이 녀석 여자였어!”

“게다가 자세히 보니까 엄청 예쁘잖아! 어느 나라 년이지? 동양인 같은데.”

“거기 마크가 있어. 저건 꼬레아다, 꼬레아!”

“꼬레아? 핵쟁이 국가를 말하는 건가?”

“병신아, 거긴 북이고 저 년은 남쪽이야.”

“아무튼 횡재했군. 요즘 케이팝이 유명하다던데 과연 그럴만해. 이렇게 예쁜 년은 본 적이 없어.”

“간만에 재미 좀 보겠군.”

“어이, 순서 지켜! 내가 먼저라고!”

짧게 친 머리에 군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정소라의 미색은 뛰어났다. 잠시 후 테러범들이 그녀의 황토색 위장을 대충 지워내자 그 미모가 더욱 도드라졌다.

“우와! 이거 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잖아!”

“저번에 잡은 프랑스 년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비교할 걸 비교해, 멍청아!”

테러범들의 얼굴에 음심이 차올랐다. 안 그래도 술과 마약에 취한 상태. 평소에도 여자를 겁탈하던 그들이 아름다운 여자를 눈앞에 두고 자제할 리가 없었다.

“어이, 벗겨봐. 아니, 내가 벗기지.”

테러범 하나가 정소라의 상의를 잡았다. 당연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순식간에 전투복이 벗겨지고 스포츠브라 하나만 걸친 상태가 됐다.

“오오! 몸매도 죽이는 걸. 빨통도 크고.”

“쩝. 여자치곤 근육이 붙은 게 좀 흠이지만.”

“뭘 모르는 자식이군. 말라빠지거나 뱃살만 있는 것들보단 이런 년이 진짜라고!”

“그래서 누가 먼저 하지?”

“당연히 나다. 내가 발견했잖아.”

“지랄 마. 난 네가 박은 년 보지에 박을 생각 없어.”

“그럼 넌 구경하면서 딸이나 쳐, 병신아.”

“뭐? 죽고 싶냐? 그 좆같은 대가리에 네 좆을 박아버리기 전에 닥쳐.”

남자 두 명이 서로 먼저 하겠다며 으르렁댔다.

다른 남자가 그들을 진정시켰다.

“어이! 다 닥쳐 봐. 이러다 다른 놈들도 몰려온다고.”

“…….”

“그러지 말고 이 년한테 정하라고 하자. 어때?”

그리 말한 남자가 바지춤을 만지작대더니 흉측한 물건을 드러냈다. 진정하라던 말과는 달리 진즉 발기를 했던 듯 쿠퍼액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거 좋은 방법이군.”

“좋아. 여자, 네가 원하는 걸로 선택해봐.”

“고민할 게 뭐 있어? 딱 봐도 내가 제일 길고 굵잖아. 날 선택하면 위대하신 알라 곁으로 보내주지.”

“뭐, 어차피 결국은 전부 상대해야 될 테지만 말이야. 으하하하.”

남자 세 명이 저마다 물건을 내놓고 정소라의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그 행태를 지켜보는 평화지원군의 눈이 벌게졌다. 동료애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소라는 평화지원단에 몇 없는 여군이다. 평소 강인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발이 묶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욕밖에 없었다. 저마다 각국의 언어로 욕설을 쏟아내는 가운데 테러범들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 너희한테도 좋은 구경거리잖아. 지켜보고 있으라고.”

“으하하. 딱 봐도 기가 세 보이는 년인데 진귀한 구경을 시켜주지.”

“이 년은 얼마나 버티려나? 저번엔 앙앙대기까지 몇 시간 걸리지도 않았지?”

그때 희롱의 당사자인 정소라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어차피 희망은 없어진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살아 돌아가더라도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될 터였다.

이내 정소라가 코웃음을 치며 영어로 씹어뱉었다.

“하나같이 쥐좆만한 새끼들이 뭐가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거야? 그것도 좆이라고 달린 거냐?”

“…….”

순간 싸늘한 정적이 맴돌았다.

평화유지군은 물론 테러범 중에도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 듯 얼굴이 시뻘개졌다.

정소라는 퉷 하고 테러범의 면상에 침을 뱉으며 쏘아붙였다.

“그딴 걸로 울어댈 여잔 없으니까 너희들끼리 냄새 나는 엉덩이에 박지 그래. Buffoon(좆밥) 새끼들아.”

영어를 알아들은 테러범이 험악해진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이런 씹년이! 언제까지 지껄이나 보자!”

“윽!”

테러범이 더러운 손으로 정소라의 얼굴을 틀어쥐었다. 심상치 않은 악력이 그녀의 볼을 찌부러트렸다. 그러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테러범은 여러 번 해본 듯 익숙한 동작으로 그녀의 벌어진 입을 향해 좆을 들이밀었다.

정소라는 점점 다가오는 물건에 구역질이 치솟았지만 마지막 반항을 하기 위해 독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저 더러운 물건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어떻게든 씹어버릴 생각이었다.

“안 돼!”

“멈춰, 개자식들아!”

“이 쓰레기들이!”

인질로 잡힌 평화유지군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정소라는 독기에 찬 눈으로 테러범을 노려보면서 한편으론 절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째서 이런 때마저 그가 떠오르는 걸까. 특별한 계기도 없었건만 언제 이렇게 마음을 빼앗긴 것인지. 그렇게 잊으려 애썼는데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떠오르는 얼굴은 결국…….

그렇게 막 테러범의 물건이 정소라의 입에 닿으려던 때였다.

‘중댐, 눈 감으십쇼.’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새하얀 빛이 터졌다.

까맣게 물들었던 밤하늘의 색이 반전됐다.

직후,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정소라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림자에서 솟구치듯 튀어나온 남자가 순식간에 테러범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

흩어져 있던 테러범들이 소란의 근원지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유로운 태도로 복면을 올려 썼을 뿐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 타아앙! 탕탕탕탕!

총성이 울렸다. 총구가 불을 뿜고 총탄이 허공을 격해서 남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놀란 정소라가 피하라며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남자는 정말로 총알을 피했다. 그리고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손바닥 크기의 칼을 사방으로 던져댔다.

쐐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단검이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테러범들의 몸뚱이에 틀어박혔다.

쐐애애액-!

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남자의 손에서 칼이 끝도 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정소라는 멍하니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봤다.

대부분의 테러범들은 인질을 방패로 내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몇몇이 정신을 차리고 인질을 향해 달려오면 그보다 빠른 속도로 등판에 칼이 날아와 꽂혔다. 어떻게 된 건지 칼이 총을 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으아아악!”

“끄억……!”

남자는 그림자에 스며들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테러범들을 칼로 찌르고 베거나 주먹과 발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빠각! 우드득! 뻐어억!

쐑쐑 바람 가르던 소리는 점차 둔탁한 소음으로 변해갔다. 팔다리 혹은 갈비뼈 등이 부러진 테러범들이 게거품을 문 채 속절없이 기절했다.

“…….”

어느덧 테러범들의 주둔지에는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무장한 인원 50명을 홀로 때려눕힌 것이다. 그것도 한 명의 사망자도 만들지 않고 삽시간에.

정소라는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했다.

어느덧 그녀의 앞에 선 남자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너 맞지?”

“헉. 여기 상처 났잖아. 기다려봐, 금방 치료해줄게.”

“너 주환이 맞냐고!”

정소라가 울먹임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 남자가 깜짝 놀랐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복면을 벗었다. 서주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어우, 놀래라. 네, 우리 정소라 대위님의 영원한 부하 서주환 맞습니다.”

“네가,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방금 그건…….”

“기다려봐.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고.”

서주환은 정소라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린지 뺨 한 구석이 울긋불긋하게 올라와 있었다.

[스킬, ‘성스러운 손길(Rank:S)’를 활성화합니다.]

[최상급 ‘치유의 손길’을 사용합니다.]

그에게만 보이는 빛이 손에 맺혔다. 이내 빛은 정소라의 상처부위로 스며들어 흉터를 말끔히 치료했다.

정소라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뺨을 쓸었다. 거울을 볼 순 없었지만 촉감으로 상처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이게…….”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일단은 사람들 깨워서 도망가.”

“……깨워?”

정소라는 이게 무슨 말인가 주변을 둘러봤다. 쓰러진 테러범들을 깨우란 소리는 아닐 테고. 이내 뒤를 돌아본 그녀는 기절하듯 잠에 빠져 있는 평화유지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주환이 말했다.

“금방 깨어날 거야. 여기 키 줄 테니까 다들 일어나면 차 타고 복귀해.”

“자, 잠깐만. 너는? 어디 가는데?”

정소라는 급히 서주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가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한 기색으로 말해서였다.

서주환이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 복잡해지기 전에 튀어야지.”

“다,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뭐? 하하,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다 설명해준다고 했잖아.”

그리 말한 서주환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맞췄다.

“아…….”

정소라는 거부하지 않고 그를 받아들였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혀가 얽혔다. 이내 그가 입술을 떼어내자 아쉬운 마음이 치솟았다.

그가 입맛을 다시며 눈을 찡긋했다.

“어우, 모래 맛.”

“뭐? 너…….”

“다음에는 레몬 맛으로 부탁해. 원래 첫 키스는 레몬 맛이라잖아. 내 첫 키스 상대는 누나거든.”

“자, 잠깐만!”

“깨어난다. 나 갈게.”

그리 말을 남긴 서주환이 바람결에 흩어지듯 사라졌다.

홀로 남은 정소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중에 다 설명해준다고 했지.’

어차피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당장 할 수 있는 걸 할 때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소라는 조금 전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남자 셋에게 다가갔다. 그들 또한 다른 테러범과 마찬가지로 게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좀 다른가? 이놈들은 팔다리가 다 부러졌네? 얼굴도 뭉개졌고.”

서주환이 일부러 더 심하게 손을 쓴 듯했다.

당연하지만 동정심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발을 들어 올린 후 세 차례 거세게 내리찍었다. 이내 군홧발에 짓밟힌 무언가가 터져나갔다.

“좆같은 새끼들, 뒤지든 말든.”

어느덧 깨어난 평화유지군이 서릿발처럼 뇌까리는 그녀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누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정소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곳에는 테러범들도 없고 총과 피가 난자하지도 않았다.

다만 늑대처럼 웃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늑대가 음흉하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알았다. 빨리 하고 싶어서 그러지?”

“어, 어어.”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바로……!”

늑대가 돌연 웃통을 벗었다.

반사적으로 대답했던 정소라는 이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급히 정정했다.

“아, 아니, 잠깐! 잘못 말했어. 그거 아니야!”

물론 한참 늦은 외침이었다.

이미 팬티까지 벗은 서주환이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올렸다.

정소라는 품에 안은 채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손길을 느끼고 비명처럼 외쳤다.

“내려놔! 안 내려놔? 야, 영원한 내 부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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