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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정소라
장덕훈이 입대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서주환과 일행들은 부대 앞까지 가서 장덕훈을 배웅했다. 참고로 장덕훈은 9사단 백마부대 신병훈련소로 입대했다.
서주환은 지금쯤 열심히 훈련받고 있을 장덕훈을 떠올리며 웃었다.
“짜식, 늦은 나이에 가서 고생하고 있겠네.”
장덕훈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넷이다. 보통 21살에 입대하는 것을 생각하면 훗날 들어올 후임은 물론 현재 병장 중에도 장덕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몇 살이나 어린 동생들한테 면박 받으며 생활할 거라고 생각하니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끅끅끅.”
[웃고 계신데요?]
“무슨 소리. 울고 있는 거야.”
사실 장덕훈은 22살에 진즉 입대를 하려고 했는데 300편 이내로 끝내려 했던 신작이 500편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입대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24살에 입대하는 것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쯤 되면 막 임관한 소위, 하사들과 비슷한 나이인지라 사석에서는 친구나 형, 동생으로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장덕훈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오히려 군대가 체질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복무 기간도 줄어들었고.’
사실 4학년이 되어 뒤늦게나마 휴학하고 입대하려던 장덕훈을 말린 사람이 서주환이었다. 이때쯤 복무기간이 단축되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대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정소라. 그의 현역시절 중대장. 동정을 떼어준 여자. 그가 처음으로 고백하고, 처음으로 차인 누나.
그리고 지금은…….
*
김포공항.
정소라는 실로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 내부로 들어간 그녀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면면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역시 한국이 좋아.’
2년 4개월 전 겨울.
그녀는 특전부대에 지원, 특전보병으로 전향하여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들어갔다. 이후 시리아로 파병을 나가서 평화유지와 안정화를 위해 복무하다가 이제야 한국에 완전히 돌아온 참이었다.
정소라는 단출한 짐을 챙겨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함께 한국으로 복귀한 동기가 의아하다는 투로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어.”
대충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는 정소라.
다소 쌀쌀맞은 대꾸였지만 김두성은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다는 듯 정소라를 바라봤다.
‘오늘은 꼭 데이트를…….’
짝사랑만 하기를 2년 째.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두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정소라의 차가운 태도는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남자들에게 일관된 모습이었으니 딱히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뜻.
애당초 평화유지군의 모든 인원을 통틀어 FM의 화신이라 불릴 정도로 똑 부러지고 강인한 여인이 정소라다. 동시에 보기 드문 미색까지 갖춰서 사관학교 시절은 물론 평화유지군 내에서도 인기가 절정에 달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몇 번의 좌절 쯤 신경 쓰지 않을 줄 아는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게 김두성의 생각이었다.
매번 거절해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김두성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는 정소라와 사관학교 동기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도 여잔 여자란 말이지.’
김두성은 언젠가 얼핏 봤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물기가 살짝 맺혔을 때의 그 처량한 눈동자란!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던 정소라였기에 예상치 못한 모습은 엄청난 반전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김두성은 자나 깨나 정소라를 생각하게 되었다.
‘후우. 일단 마음 가다듬고. 이 근처 맛 집도 미리 검색해놨으니까…….’
그렇게 심호흡을 한 후 정소라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던 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정소라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앗! 하고 하이톤의 여린 음성을 냈다. 2년을 함께 지냈음에도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여자다운 음색이었다.
“소, 소라야?”
무슨 일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김두성은 이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두성이 다시 한번 사랑에 빠져서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때.
이가 보이도록 환하게 미소 지은 정소라가 앞으로 달려갔다.
“왔구나! 보고 싶었어!”
멍하니 있던 김두성은 그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경악했다. 저런 애교어린 목소리라니. 저 여자가 정말 FM의 화신이라 불리는 그 정소라란 말인가? 그는 뻔히 보고 들었으면서도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정소라가 어떤 남자의 품에 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카만 선글라스를 꼈음에도 잘생김이 묻어나는 남자가 작게 미소 지으며 정소라의 등을 토닥였다.
“오랜만이야, 누나.”
“치.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본인이 말하면서도 애교가 어색한 듯 얼굴을 붉히는 정소라.
그 모습에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말했다.
“보고 싶었어, 소라야.”
“…이게 누나 이름을 함부로 불러? 혼날라고.”
“큭큭. 오랜만에 경례라도 할까?”
“됐네요. 그보다 빨리 가자.”
정소라가 새빨개진 얼굴로 남자를 재촉했다.
남자, 서주환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연신 낄낄 웃음을 흘리며 그녀와 발걸음을 맞췄다.
한편 홀로 남겨진 김두성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허탈하게 내뱉었다.
“남자친구… 진짜 있었구나…….”
*
호텔 룸에 들어선 서주환이 짐짓 질투난다는 듯 물었다.
“아까 그 남잔 뭐야? 누나 이름 친근하게 부르던데.”
“아, 걔? 있어, 사관학교 때부터 나 졸졸 따라다니던 애.”
“딱 봐도 누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애인 있다고 말 안 했어?”
“어머, 너 지금 질투하니?”
정소라가 묘한 눈으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진짜 뻔뻔하다. 누가 누굴 질투하는 거야?”
“하하…….”
서주환은 멋쩍게 눈꼬리를 긁적였다. 정소라의 말이 백 번 맞았다. 여자를 한두 명도 아니고 아홉 명이나 사귀고 있는 그가 질투할 군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여자에게 다른 수컷이 집적거리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서주환이 차마 말로 따지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정소라가 키득거리며 답했다.
“당연히 애인 있다고 말했어. 그런데 믿지를 않더라.”
“지가 뭔데 안 믿어?”
“믿게 생겼니? 지원단 들어갔을 때 이미 없다고 말했었는데.”
당시의 그녀는 서주환에 대한 마음을 애써 접고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심란한 마음 때문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한 번쯤은 해외로 파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겸사겸사 마음을 정리할 겸 간 것이었다.
그렇게 정소라는 지원단에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복무했다. 당연하게도 해외로 파병을 나가면 운신이 자유롭지 않다. 그 시간 동안 갑자기 없던 애인이 어떻게 생긴단 말인가?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해봐야 귀찮아서 둘러댄다고 생각하지 순순히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진이라도 보여 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럼 네가 곤란해지잖아.”
지원단에서 복무하는 동안 우연히 서주환의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잘 나가는 소설가인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배우데뷔를 하더니 청룡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받았다지 않은가? 일부러 관심을 끄려고 해도 ‘올해의 음악상’을 받았다느니 세계적인 댄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절로 들어왔다.
그런 서주환과 연애하는 중이라고 어찌 주변에 알린단 말인가. 심지어 정상적인 연애도 아니었으니…….
정소라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항상 침울해 있던 부하였는데 지금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듬직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살만 좀 더 찌우면 좋을 텐데.’
그녀는 보기 좋게 슬림하거나 듬직한 근육질의 남자보단 적당히 살집 있는 남자가 취향이었다.
뭐, 이제는 취향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그가 좋아져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서주환이 물었다.
“그 사람도 평화유지군이야?”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정소라는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도 본 적 있을 걸? 작년에.”
“아, 그때 같이 있었던?”
“맞아. 네가 구해준 사람들 중 한 명이야.”
“그랬구나. 사실 그때는 누나 말곤 안중에 없었어가지고 잘 기억 안 나.”
“으, 으흠.”
정소라는 왠지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했다.
그때로부터 몇 달이나 지났음에도 기억이 생생했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서늘하고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동시에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서주환과 다시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빗발치는 총탄과 매캐한 화약 냄새. 그리고 비릿한 피 맛.
정소라는 문득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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