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졸업식
서주환이 인식 방해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하자 곳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서주환이 왜 여기 있어?”
“뭐지? 위튜브에 이탈리아 브이로그 올라왔는데?”
“녹화본이겠지, 바보야.”
“아무튼 우리 학교가 서주환을 어떻게 부른 건지 모르겠네. 축제도 아니고 졸업축하 공연에.”
“그러게. 돈이 어디서 났지?”
학생들과 참석자들의 의문은 당연했다.
서주환은 작가로서는 물론 배우, 가수, 댄서 등 각종 분야에서 정상급으로 취급받는 유명인이다. 하지만 예능을 비롯한 방송에는 잘 출연하지도 않고 툭 하면 여행을 하겠답시고 해외로 나돌아 다니는 괴짜이기도 했다. 그리고 워낙 활동반경이 넓은 데다 신출귀몰해서 섭외가 힘들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바로 서주환이었다.
그런 서주환을 어떻게 대안대학교에서 축제도 아닌 졸업식에 초대했을까?
모두가 기쁨 섞인 의문을 보이는 가운데.
금세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 역시 주환이 형. 의리 쩐다니까.”
“지금 우리 졸업한다고 축하해주러 온 거 맞지?”
“뭐, 메인은 하연 언니랑 지경이, 덕훈이겠지만.”
“아하하. 자퇴 안 했으면 주환 오빠도 오늘 같이 졸업했을 텐데.”
이렇듯 반가운 기색으로 떠드는 사람들은 서주환과 잠시나마 대학생활을 같이 한 출판콘텐츠학과 학생들이었다.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 서주환이지만 그는 지금도 대학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과 가끔이나마 안부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편 무대 위에 있는 서주환과 은율을 황당하다는 눈으로 쏘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정하연을 비롯한 서주환의 여자들과 절친들이었다.
유지경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 오빠, 진짜. 한국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으하하. 형님이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했나 보다.”
“흐음. 율이랑 같이 있는 거 보면 율이는 알고 있었는데 숨긴 모양이네.”
그 말에 유지경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율이 언니 요즘 연기연습도 한다더니 거짓말이 능숙해졌어. 무대 내려오기만 해봐라. 하연 언니, 이번엔 말리지 마.”
“뭐, 별로 말릴 생각은…….”
정하연도 꽤나 뿔이 난 지라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합세하여 오랜만에 성격 좀 드러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주환과 은율을 노려보며 벼르고 있을 때였다.
- 하하. 제 근황은 이쯤 떠들고, 이제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노래인지는 들으면 바로 아실 거예요.
직후, 은율의 기타 연주가 시작됐다.
띠리링,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한 음씩 튕기는 아르페지오. 그 사이로 어느새 피아노 앞에 앉은 서주환의 연주가 얹어졌다.
기타와 피아노가 어우러진 멜로디는 다소 무거웠다. 조금은 암울하게 느껴지는 음색. 어째서 빛나는 졸업식에서 이런 곡을 선택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으나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곡의 정체를 알아채고 금세 미소를 띠었다.
이윽고 짧은 전주가 끝나고 은율이 목소를 냈다.
- 아~!
먹구름 비 개인 듯 맑은 허밍. 음정 자체는 높지 않지만 청아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 아~!
시간차를 두고 서주환의 허밍이 은율의 목소리와 섞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마치 이 순간의 듀엣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절묘하게 어울렸다.
[특수능력, ‘씽 필링’을 활성화했습니다.]
[재능, ‘노래(S/S)’가 은율의 ‘노래(A+/S)’와 공명합니다.]
[특수능력 ‘씽 필링’과 은율의 ‘몰입(A+/A+)’이 공명합니다.]
서주환은 또 한 단계 성장한 은율의 실력을 느끼고 미소를 머금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A급이었던 노래가 어느덧 A+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 어제도 한 걸음 걸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낮지만 맑은 음색.
은율의 청아한 목소리가 무거운 멜로디 위로 나아갔다.
- 오늘도 한 걸음 걸었어요. 숨을 풀풀 내쉬면서.
서주환도 주고받듯 목소리를 냈다. 저음 파트는 은율보다 그의 음색이 더 귀를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 내일도 몇 걸음 걸어갈 거예요. 팔을 휘휘 흔들면서.
노랫말이 이어진다.
비로소 후렴구에 들어섰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의 고단을 쌓아서
오늘의 고단을 지나서
내일의 고지를 올라서─!
이번 생에 다시 발매된 ‘한 걸음’은 리액트 엔터와 서주환의 지원에 힘입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연간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었다. 덕분에 강당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함께 노래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주환이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팔을 들었다. 그리고 지휘봉이라도 든 것처럼 손을 움직였다.
[특수능력, ‘마에스트로(Maestro)를 활성화합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갔다.
‘한 걸음’의 노랫말은 졸업식 분위기와 제법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대학이라고 하면 얼핏 즐거운 캠퍼스라이프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찌 공부를 위한 곳에 즐거움만 있을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더미 같은 과제와 공부로 인해 얼굴이 거멓게 죽어가는 학생들이 참 많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사회인들이 보면 공부하는 게 무엇이 그리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본디 그 나이대의 힘듦이란 저마다 다른 것이 아니던가.
대학생의 고난이란 어쩌면 졸업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졸업하기 위해 달려왔으면서도 막상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나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은연중에 있기 때문이다.
희끄무레 보이는 불빛을 향해
어슴푸레 비추는 저 빛에 달해
자랑스레 웃음 진 나를 마주해
그럼에도 사람들은 희끄무레하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자랑스럽게 미소 짓기 위해서.
말해줄 거예요
너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나 정말 열심히 했다고
강당 안의 졸업생들,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뤘다. 그리고 단연 그 하모니의 중심에는 서주환과 은율이 있었다.
두 사람은 노랫말을 빌어 졸업생들에게 응원을 건넸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지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열심히 했으니 사회에 나가서도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 정말, 수고했다고─!
그렇게 노래를 마친 후.
“대안대학교 학생 여러분, 졸업 축하합니다!”
“졸업,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졸업식이 끝났다.
“다들 죄송해요. 일행이 기다려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 졸업 축하드려요!”
서주환과 은율은 졸업생들을 비롯한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다가 간신히 탈출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서주환이 다가와 인사하자 여기저기서 타박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백강호가 달려가서 그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인마, 넌 한국에 들어왔으면 형한테 말을 해야지!”
“억. 형님, 숨 막혀요! 형님이 장난치면 살인미수라니까요?!”
“짜식이, 엄살은.”
“엄살 아니에요! 형수님, 저 좀 살려주세요!”
그에 이혜리가 다가와서 백강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백강호는 아프지도 않으면서 잔뜩 엄살을 부리며 물러났다.
서주환을 비롯한 일행은 우선 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행들은 서주환이 미리 예약해둔 식당에 도착하여 담소를 나눴다. 최근 연락이 잘 되지 않은 그에게 이런저런 타박이 다시 한번 쏟아졌음은 물론이었다.
서주환은 지은 죄가 있어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은 그런 서주환을 보며 저마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동안 연락이 끊긴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서주환만큼 주변인을 챙기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얼굴 봤으니까 됐다. 비싼 밥도 얻어먹었으니 이쯤 해야지.”
“호호. 주환이가 워낙 바쁘잖아요. 어쩌겠어요.”
“주환아, 조만간 운동 나와라. 실력 안 녹슬었는지 함 보자.”
“형님, 제가 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어쭈. 너 그런 식이면 앞으로 수환이 볼 생각 마라.”
“윽. 알았어요. 조만간 한 번 들를게요.”
백강호의 으름장에 서주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피가 이어진 조카는 아니지만 백수환은 그에게도 감흥이 남다른 아이였다. 다름 아닌 그의 도움으로 빛을 본 아이였으니 말이다.
갈 때가 되자 백수환이 배꼽에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주화니 삼촌, 안녕계세요.”
“아들, 안녕계세요가 아니라 안녕히 계세요.”
“안녕계세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백수환.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4살임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빠른 편이라고 봐야겠지.
서주환이 픽 웃으며 백수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그래, 수환아. 조만간 삼촌이 선물 들고 갈게.”
“우와아! 삼촌 체고!”
그렇게 백강호네 가족이 먼저 떠나고 장덕훈과 유지경의 가족도 차례대로 인사를 건넨 후 집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일행들만 남게 된 후.
벼르고 있던 여자들이 서주환에게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퍽, 퍼억!
“어억! 갑자기 왜 때려?!”
서주환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다섯 여자의 타박이 쏟아졌다.
“몰라서 그래?”
“오랜만에 물려볼래?”
“환이 오빠, 바보!”
“서프라이즈는 개뿔이.”
“치사하게 율이 언니한테만 알렸다 이거지?”
“유, 율아, 나 좀 살려줘!”
서주환은 비명을 지르며 은율의 뒤로 숨었다. 자연스럽게 다섯 여자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 은율이 힉 소리를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저는 연락하려고 했는데 오빠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해서!”
“유, 율이 너?!”
은율이 등에 달라붙은 서주환을 털어내고 빠져나갔다. 한 쪽 눈을 찡긋하며 혀를 쏙 내미는 게 3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에 서주환은 황당해하면서도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제 의존증이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야.’
트라우마 때문에 공황장애, 함묵증 등 각종 정신질환을 앓았던 은율이다. 이후 서주환을 만나며 모든 증상이 완화됐지만 대신 의존증이 생겨버렸었다.
그러나 지금의 은율은 지속적인 치료와 상담, 서주환의 도움을 받아 홀로서기를 이룩했다. 단, 여전히 호감도는 A~S를 오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데 그 미소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는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어머, 얘 봐라? 뭘 잘했다고 실실 웃어?”
“노래 잘 들어서 이쯤 넘어가려고 했더니 갑자기 화나네.”
짐짓 가시 돋친 말로 면박 주는 여자들.
서주환은 이내 낄낄 웃음을 흘리며 뻔뻔하게 말했다.
“다들 반응이 너무 격한 거 아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저게…….”
여자들은 욱 하면서도 말을 흐렸다. 실제로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려니 아직 장덕훈과 서주희 등 사정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서주환은 얄밉게 웃는 얼굴로 장덕훈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나중에 욕하자, 나중에. 덕훈이한테는 지금 일분일초가 소중한 거 알잖아.”
“형님 저를 팔아먹는 겁니까…….”
“팔아먹다니? 말을 그렇게 하냐. 형이 꿀팁 주려고 그런다, 인마. 군생활 꿀팁. 으하하핳!”
“…….”
차마 스승님에게 대들 수 없던 장덕훈은 인상만 찡그렸다. 빡빡머리가 된 장덕훈은 이틀 뒤 입대 예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