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90화 (4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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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드디어 카니발을 버린 서주환

정확한 차종은 이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ㅎㅎ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졸업식

2020년 2월 27일.

대안대학교의 풍경이 여느 때와는 조금 달랐다. 아직 개강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밝게 웃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대체로 동일했다.

검정 가운과 학사모.

오늘은 대안대학교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으음. 하연아, 지경아.”

김주연 교수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이내 그녀는 양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각기 부여잡으며 거듭 제안했다.

“정말 대학원에 갈 생각 없니? 혹시 이상한 소문 때문에 그런 거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요즘은 옛날이랑 많이 달라요.”

김주연 교수는 어떻게든 정하연과 유지경을 자신의 밑으로 들이고 싶었다. 그간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토록 열성적으로 공부에 임하는 학생들을 본 적이 없었다. 학과 1등과 2등을 나란히 차지한 이 두 여자는 그녀가 진심으로 아끼는 제자였다.

정하연과 유지경은 세상 어색한 미소로 교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벌써 몇 번째 거절인지도 잊어버렸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따로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쩔 수 없구나…….”

김주연 교수는 안타깝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이 마지막 제안이었다.

“둘 다 졸업 축하한다. 이따 강당에서 보자꾸나.”

“네, 교수님.”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래. 아, 혹시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교수님, 저희 가족들이 기다려서 이만 가볼게요!”

“이따 봬요!”

정하연과 유지경이 도망치듯 연구실을 나갔다.

이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멋쩍게 웃으며 도리질을 쳤다.

“어휴, 드디어 졸업이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몇 번이나 자퇴하고 싶었는지 몰라!”

“아하하. 그냥 노벨다이스에 입사하면 되니까?”

“응. 석찬 오빠가 제대로 졸업하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바로 자퇴했을 거야.”

“뭐, 지금은 이미 사원이잖아? 그쪽에서 편의도 많이 봐줬고.”

“그건 그렇지.”

유지경은 3학년 때 노벨다이스로 현장실습을 나가고 4학년이 되자마자 취업계를 내고 입사했다. 노벨다이스 측에서 편의를 봐준 덕분에 비교적 학교와 회사를 자유롭게 다니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러는 언니는 졸업하고 여행 다닐 거라고 했지? 우선은 일본이라고 했던가?”

“응. 한동안은 일본에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중국에 갔다가 미국도 좀 돌아다니려고. 현지에서 사용하는 일상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언니도 정말 사서 고생한다니까. 지금도 훌륭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면서.”

유지경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정하연을 추켜세웠다.

정하연은 지난 3년간 영어는 물론 일본어와 중국어까지 세 개의 외국어를 습득했다. 그리고 벌써 여러 소설을 번역한 바 있어 업계에서 꽤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안주하는 법이 없었다.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를 가진 그녀는 이제 이탈리아어까지 공부하는 중이었다.

“너도 주환이가 쓴 소설 봐서 알잖아. 걔 문장을 다른 나라 언어로 전달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만만한 작가들 소설부터 번역하고 계시다?”

“쓰읍. 말 예쁘게 안 할래, 너구리? 혼난다.”

“캬악! 날 너구리라고 부를 수 있는 건 한 명뿐이다!”

“꺅! 너 지금 진짜 물려고 했지!”

정하연이 기겁하며 손을 빼냈다. 순간적으로 유지경의 이가 닿았던 것이다.

유지경은 장난이었다는 듯 메롱 혀를 내밀며 복도를 뛰어갔다. 저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수아야, 주희야!”

“지경아아아! 하연 언닝!”

한수아가 반갑게 손을 흔드는 한편 서주희는 달려오는 유지경을 보고 기겁한 얼굴로 물러섰다.

“우왁! 달려들지 마! 수아 방패!”

“으에에에엑?!”

앞으로 밀쳐진 한수아가 유지경과 뒤엉켰다.

서주희가 간신히 살았다는 듯 이마를 훔치며 정하연에게 다가갔다.

“하연 언니, 졸업 축하해요.”

“고마워.”

“에휴. 1년 차인데 왜 이리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빨리 졸업하고 싶어요.”

“아하하. 지금 3학년 수석이라면서? 내년에는 내가 축하해줄게.”

한수아와 서주희는 두 사람의 1년 후배로 올해로 4학년이 된다.

“그러고 보니 주희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지경이처럼 취업계로 노벨다이스 들어갈 거야?”

“조금 고민이에요. 위튜브 편집자로 있을지 노벨다이스 홍보팀으로 들어갈지. 사실 수입은 위튜브 관리하는 게 더 좋거든요.”

서주희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한수아의 위튜브는 어느덧 구독자 130만의 대형 채널이 되었다. 당연히 초창기부터 함께 한 서주희의 보수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돈과는 별개로 회사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좀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도 한몫 했고 말이다.

그때 한수아가 다가와서 말했다.

“주희는 내 건데! 도망가지 마!”

“누가 네 거야! 나는 우리 덕훈 오빠 거거든?”

“헐. 주희 완전 닭살이야!”

올해로 연애를 시작한지 4년차 가 된 서주희와 장덕훈은 여전히 깨를 볶는 중이었다. 학과에서 유일하게 깨지지 않은 캠퍼스커플이기도 했다

유지경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덕훈이는?”

“오빠는 화장실… 아, 나왔네. 자기, 여기!”

서주희가 붕붕 손을 흔들자 웬 빡빡머리 거한이 헤벌쭉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장덕훈이 변치 않는 예의를 갖춰 정하연에게 인사했다.

“누님, 드디어 탈출하신 겁니까? 아니면 대학원 진학?”

“히익. 끔찍한 소리 마. 대학원은 절대 안 갈 거니까.”

“으하하. 연구실에서 일하는 모습도 잘 어울리시는데 말입니다.”

“이게! 덕훈이 너 요즘 말투만 예의바르지 알맹이는 능글맞아졌다? 점점 서주환 닮아가네.”

“엇, 정말입니까? 칭찬 감사함다.”

“칭찬 아니거든?”

“언니! 남의 남친한테 무슨 악담이에요!”

칭찬으로 받아들인 장덕훈과 달리 서주희가 발작적으로 반발했다.

정하연이 헛웃음을 흘리다가 물었다.

“주희야, 그래서 너희 오빠는? 주환이 걔 아직도 연락 안 돼?”

“몰라요. 저보다 언니 연락을 더 잘 받을 걸요?”

서주희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녀와 서주환은 나름대로 우애 좋은 남매였지만 그렇다고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서주희의 말에 정하연과 유지경, 한수아의 표정이 순간 아쉬움을 띠었다.

“아직 이탈리아에 있나 보네…….”

졸업 후 각종 분야에서 활약하며 바쁜 삶을 이어간 서주환이다. 덕분에 대학을 다닐 때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벌써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갔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졸업식이 진행될 건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어쩐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연예인이라도 왔나?”

가만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을 향해 있었다. 일행들의 시선도 이목이 집중된 곳으로 돌아갔다.

“어?”

“앗!”

“우와! 못 온다더니 왔구나!”

정하연을 비롯한 일행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이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연 언니! 얘들아!”

“아, 드디어 찾았네. 여기 언덕이 왜 이렇게 높니?”

“오오, 학사모다, 학사모. 아우, 나도 자퇴 안 했으면 작년에 썼을 텐데.”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온 세 여자는 은율과 최미화, 그리고 도유이였다. 그녀들은 워낙 미색이 출중해서 어딜 가나 이목이 집중되곤 했다.

특히나 2년 전 연예계로 복귀하고 스타덤에 오른 은율을 향한 시선이 굉장했다.

“헉, 저 사람 리메디지?”

“리메디가 왜 여기 있어?”

“와, 미친. 오늘 계 탔다. 은율 님 영접 미쳤다.”

Remedy(치료약)는 서주환이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은율이 쓰던 예명이다. 리메디의 팬이었던 서주환은 이번 생에도 은율이 사람들의 치료약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에게 이전과 동일한 예명을 지어주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도 연예인인가? 엄청 예쁜데?”

“나 저 분 알아. 스텝 크루 댄서 도유이 님이야. 춤 개 잘 춤.”

간혹 도유이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시간 재능을 갈고닦은 그녀는 기대 받는 유망주에서 천재 댄서로 주가를 올렸다. 이제는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았다.

반면 최미화는 미색과 별개로 연예계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인지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함께 있는 두 사람 때문에 덩달아 시선을 받아서 굉장히 피곤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최미화가 일행을 만나 들뜬 은율에게 말했다.

“율아, 너 선글라스 벗지 말라니까.”

“아, 죄송해요, 언니. 그래도 벗고 인사하는 게 예의인 거 같아서…….”

“다 아는 사이끼리 무슨 예의를 그렇게 차려. 아우, 피곤해.”

“죄, 죄송해요오…….”

“그렇게 미안해하지도 말고, 좀. 얘는 연예인 된 애가 아직도 소심해!”

“힉!”

최미화의 타박에 은율이 목을 움츠렸다. 그에 오히려 더 화가 난 최미화가 으르렁댔다.

“누가 때리니? 잡아먹어?!”

“죄, 죄송해요오!”

“미화 언니, 율이 언니 그만 괴롭혀요.”

“유이 너도 마찬가지거든! 남 말 하는 줄 알아? 팍 씨!”

“야근 대문에 그런지 언니 성격 점점 괴팍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화내면 팔자주름 생길 텐데!”

“뭐얏?!”

“으악! 하연 언니, 살려줘요!”

도유이가 정하연의 뒤로 도망쳤다.

정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최미화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에 최미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연아, 애들 좀 뭐라고 해봐. 쟤네는 어째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를 않는지 몰라.”

“쟤가 뭐라 해도 그 순간뿐이에요. 포기하면 편해요, 언니.”

“에휴. 그래야겠다. 아무튼 졸업 축하해. 아직 졸업식 시작 안 했지?”

“네, 딱 맞게 왔어요. 와줘서 고마워요.”

“우리 번역가님 졸업식인데 당연히 와야지.”

최미화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일행의 인원이 불어날수록 집중되는 시선도 많아졌다. 장덕훈을 제외한 모두가 평균을 한참 상회하는 미색의 소유자다보니 더욱 그랬다.

한편 서주희는 울고 싶어졌다.

‘다들 더럽게 예쁘네.’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서주희는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리에 껴있으려니 쭈꾸미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내년에 있을 자신의 졸업식에는 이 더럽게 예쁜 여자들을 부르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데 놀랍게도 합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웬 번쩍거리는 스포츠카 한 대가 오더니 일행들 앞에서 창문을 내렸다.

“이야, 다들 학사모 썼구만. 오, 우리 미화 씨도 왔네?”

“엑, 대표님?”

이석찬을 본 최미화가 새된 소리를 냈다. 졸업식에 와서까지 회사대표를 마주해야한다니!

정하연을 비롯한 일행들도 반응이 떨떠름했다. 차가 너무 요란해서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석찬이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사람 얼굴 보고 표정이 그게 뭐임? 강호 형님이랑 형수님도 왔으니까 표정 좀 풀지?”

“어? 그럼 수환이도?”

“오냐. 우리 수환이도 여기 있다, 이 년아.”

그 말에 거리를 두던 일행들이 순식간에 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4살이 된 남자아이가 창틈으로 보였다.

그 상반된 반응에 이석찬이 혀를 차며 말했다.

“셋은 여기서 내리세요. 저 주차하고 올게요.”

잠시 후 백강호와 이혜리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으하하. 오랜만이다, 얘들아.”

“호호. 셋 다 학사모가 잘 어울리네요.”

산적 같은 외모의 백강호와 단아한 기품의 이혜리가 상반된 분위기로 인사를 건넸다.

일행들도 저마다 인사를 건넸는데, 서주희 꽁냥거리고 있던 장덕훈의 반응이 격렬했다.

“가, 강호 형님? 형님이 왜 여기를…….”

“장덕훈이! 요즘 운동 안 나와서 잡으러 왔다, 이 자식아!”

“허억!”

장덕훈이 백강호와 드잡이를 하는 동안 여자들은 이혜리와 백수환에게 몰려들었다.

“어머, 어떡해. 수환이 너무 예쁘다.”

“언니랑 똑 닮았어요. 남자애가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나중에 연예인 시켜야 되는 거 아니에요?”

“호호. 수환아, 언니들한테 인사해야지?”

아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이혜리가 백수환의 등을 살포시 두드렸다. 그에 백수환이 손을 모으고 배꼽인사를 했다.

“안냐세요, 누나들.”

그 한 마디에 여자들이 꺅꺅대며 자지러졌다. 고작 4살 밖에 안 된 아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백수환의 외모가 이혜리를 빼다 박아서 워낙 예쁘장했다.

“헉. 얘들아, 이동하자. 우리가 길 엄청 막고 있다.”

정하연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잠시 후 주차를 한 이석찬이 합류하자 정하연이 물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복잡하니까 다 오지 말라고 했음.”

“오빠들도?”

“어. 대신 나중에 집에서 따로 축하파티 하재. 그거까지 거절하면 두 분 우실지도 모름.”

“주, 주말에 하자고 해야겠다. 일단 오늘은 애들이랑 뒤풀이 하고.”

“오케이. 그렇게 전달함.”

이석찬이 곧장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막 입학했을 적과 달리 두 사람 모두 부모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난 이제 뒤쪽으로 가 있을게.”

“응. 와줘서 고마워.”

이석찬이 픽 웃으며 뒤쪽으로 멀어졌다. 졸업생과 참석자들의 좌석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유지경과 장덕훈의 가족도 시간을 두고 강당에 도착했다. 졸업생들 사이에 껴서 움직이기 힘든 두 사람을 대신해 한수아와 서주희가 그들을 맞이했다.

서주희는 부리나케 튀어나가서 장 씨네 가족을 모셨다.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아, 덕자 언니도 안녕하세요. 세 분 여기 앉으시면 돼요.”

“으하핫. 하여간 우리 며느리가 최고여.”

“어머, 여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그러면 주희가 불편해해요.”

“그, 그런감?”

“아뇨, 전 너무 좋은 걸요?”

“으하핫. 그 봐라. 좋다잖어!”

서주희는 이미 장 씨네 며느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 유일하게 장덕자만 조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으나 그것도 이제는 옛일이었다.

‘우리 막둥이 혼삿길을 막을 수는 없지.’

서주환과 장덕자는 육체관계를 가진 사이다. 한데 두 사람의 동생인 서주희와 장덕훈은 결혼까지 생각하며 사귀는 사이다. 까딱하면 순식간에 개족보가 될 수도 있었다.

‘뭐, 딱히 주희 때문이 아니어도 서주환 걔가 나랑 만날 것 같지도 않고. 흠.’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서로 즐기기 위해 관계를 가진 엔조이. 그게 서주환과 장덕자의 관계였다.

이미 옛적에 감정을 털어버린 장덕자는 친근하게 서주희의 등을 두드렸다. 서주희가 깜짝 놀라서 바라보자 장덕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주희 동생, 우리 막둥이가 속은 안 썩여? 눈치가 영 없어서 답답할 때가 많을 텐데.”

“네? 아, 아뇨.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그럼 다행이고. 혹시 답답할 때는 말해. 내가 혼내줄게.”

여성 페더급 세계랭킹 9위 장덕자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서주희는 기겁해서 도리질을 쳤다.

한편 한수아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지경의 가족을 대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지도 어느덧 5년 째. 당연히 서로의 집에도 놀러가 봤고 진즉에 부모님들과 인사도 드렸다.

“아줌마, 아저씨. 여기에 앉으시면 돼요!”

“호호. 수아는 참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허허허. 고맙다, 수아야.”

유지경의 부모님도 한수아를 딸처럼 대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고.

- 2020년 대안대학교 제 43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졸업식이 시작됐다.

*

- 존경하는 이수현 총장님, 여러 교수님.

오늘의 주인공인 졸업생 여러분과 가족, 친지 여러분…….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 졸업장을 수여하겠습니다.

약간의 훌쩍임이 들리는 가운데.

- 이상으로 수여식을 마치고 축하 공연을 진행하겠습니다. 특별한 분들을 모셨으니 여러분께서는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짝짝짝짝, 형식적인 박수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무대 위에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놀란 목소리를 냈다.

“헉, 은율이다!”

“리메디?”

“와, 미친! 우리 학교 졸업식 축하공연에 왜 리메디가 와?”

“남자는 누구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 그런 걸까?

까만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가만히 서있을 뿐인데도 어쩐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때 누군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잠깐만. 리메디랑 듀엣하는 남자면…….”

“헉!”

숨넘어가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질 쯤.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씩 웃으며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서주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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