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88화 (488/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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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송별회

여행에서 돌아온 서주환은 곧장 이석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글램핑 시설의 철거를 부탁했다. 사정이라고 해봐야 꿈에서 귀신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기에 당연히 미친놈이냐는 욕을 들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이석찬은 욕을 하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서주환의 대한 신뢰와 더불어 이석찬 특유의 직감(A/S)에 의거한 결정이었다.

이석찬이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곤 해도 글램핑 시선 철거와 유해를 파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서주환은 대학 지도교수와 면담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 후 자퇴서를 제출했다. 개강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석찬과 장덕훈을 비롯한 일행들은 서주환의 자퇴결정을 미리 알고 있었다. 같은 대학이 아닌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서주환은 조용히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개강 당일이었다.

- 주환 오빠!

“어, 소정아. 웬일이야?”

갑자기 걸려온 전화의 주인은 그가 정 트리오라 부르는 세 여자 중 하나인 유소정이었다.

유소정이 빽 소리쳤다.

- 웬일은요! 오빠 자퇴했다면서요? 정말이에요?

“아, 그거. 진짜야.”

- 학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그냥 대학에 더 다닐 필요를 못 느껴서 그래.”

- 엑.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졸업도 안 하고 뭘 하겠다고… 아, 이 오빠 잘 나가는 작가였지.

유소정은 스스로 말하다가 납득했다. 그녀가 서주환의 재력을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유명한 작가라는 건 학과 내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서주환은 학과를 넘어 대안대학교의 유명인이었다.

- 그래도 섭섭해요! 어떻게 우리한테 말 한 마디도 안 해요? 하연 언니랑 지경이가 알려줘서 알았네!

“하하… 미안. 글 쓰느라 미처 신경을 못 썼다.”

- 치. 그래도 우리가 나름 떡정이 있는데.

“야, 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 히히. 괜찮아요. 지금 수정이랑 미정이밖에 없어요.

“그래도 좀 조심하자. 응?”

그리 말하는데 들려오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임수정과 김미정이었다.

- 이 오빠 지금 유명해지니까 쫄려서 그래. 과거 세탁하겠다는 거지.

- 맞아, 이번에 영화도 개봉 예정이잖아. 티저 잘 뽑혔더라.

“이것들이. 내가 뭐 못할 짓 했냐? 합의하에 떡친 건데 뭘 세탁해.”

그렇게 대꾸했더니 세 명이 답을 했다.

- 아하하하. 암튼 걱정 마요. 우리도 어디 가서 가볍게 입 놀리는 사람은 아니니까.

- 오빠 곤란하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 하지만 송별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엉? 송별회?”

의아함에 되물으니 세 여자가 차례대로 버럭 소리쳤다.

- 우와! 송별회도 안 하려고?

- 자퇴했다고 쌩 깐다 이거지?!

- 죽었어. 이 오빠 미투 무서운 줄 모르네.

“미, 미투?”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 미친년아! 농담이라도 그건 아니지!

- 야이씨! 오빠랑 인연 끊으려고 환장했냐? 김미정 쳐내!

- 미, 미안해! 꺄악! 미안하다니까!

- 닥쳐! 일단 이년 묶어놓고 주리 틀어!

욕설과 함께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김미정이 훌쩍거리며 사과를 해왔다.

- 오빠, 잘못했어요. 농담이야. 진짜로. 나도 좋아서 떡친 건데 그런 거 할 리가 없잖아…….

- 주환 오빠, 영상통화로 전환해봐. 미정이 무릎 꿇고 있는 중.

그 말을 따라 영상통화로 전환 해보니까 김미정이 산발이 된 머리로 무릎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서주환은 큭큭거리며 손가락을 휘적댔다.

“죄를 사하노라. 손 내려. 한 번 더 그런 소리 하면 국물도 없다.”

- 감사합니다, 나으리…….

김미정이 내시 같은 표정으로 손을 싹싹 빌었다.

하여간 유쾌한 트리오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물었다.

“아무튼 송별회 하자는 거지?”

- 넵!

“나야 좋지. 언제 할 건데?”

그에 정 트리오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씩 웃었다.

- 오늘이요!

*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특별이 바쁜 일도 없었기에 오늘 밤으로 약속을 잡았다.

통화를 마친 서주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자퇴가 별 거냐는 생각에 따로 소식을 전하지 않았었는데 정 트리오의 말을 들어보니 지인들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안부나 전하지 뭐.”

마침 슬슬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안부전화를 하기에 제법 괜찮은 날짜였다.

- 오, 뭐야! 먼저 연락을 주고 웬일이래?

“잘 지냈냐?”

- 으히히. 잘 지내다 못해 날라 다니지. 나 다음엔 랭킹 1위랑 붙을 듯?

장덕자가 여전히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격투계로 복귀한 그녀는 3전 3승 3KO로 화려하게 커리어를 올리는 중이었다.

“벌써 1위랑 붙어?”

- 으하핳. 이게 바로 파죽지세라는 거지.

“이야, 장덕자가 사자성어를 쓰네.”

- 뭐야, 그게 왜 신기해? 갑자기 꼴 받게 구네.

“하하. 미안, 미안.”

“아무튼 갑자기 전화는 왜 한 거야? 나랑 하고 싶어서? 그러고 보니 요즘 안 한지가 꽤 됐지?”

“야이씨, 내가 뭐 하고 싶을 때만 연락한 줄 알겠네.”

- 아니야?

“그건 네 얘기겠지! 너야말로 너 꼴릴 때만 연락하잖아.”

- 앗, 들켰네.

“숨기긴 했었냐?”

그렇게 몇 마디 잡담을 떨다가 자퇴 소식을 전했다. 굳이 그녀에게 알려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애초에 안부인사가 목적이고 자퇴소식은 덤이었다.

- 아하. 그럼 대학 때려치우고 뭐하게? 너도 이쪽으로 오려고?

“내가 그쪽으로 왜 가?”

- 그야 잘 할 것 같으니까?

장덕자는 서주환의 실력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직접 붙어보기도 했고 언젠가 서주환이 백강호와 대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과는 별개로 서주환이 격투계로 갈 일은 없었다.

“난 글쟁이야. 격투 쪽으로는 안 가. 뭐, 단발성 이벤트라면 모를까.”

- 헛소리 하시네. 이쪽은 그런 이벤트 거의 없어. 일반인이나 연예인 불렀다가 다치면 복잡해지거든.

“인생 혹시 모른다.”

- 참내. 모르긴 뭘 몰라. 아무튼 그래서 용건은 그게 끝이야?

“그래, 이년아.”

- 그럼 끊어. 나 이제 다시 운동해야 돼.

“매정한 년. 오냐. 열심히 해라. 시합 일정 잡히면 연락하고. 응원하러 갈게.”

- 알았어. 아, 하고 싶을 때도 가끔 연락해도 되나? 아, 몰라. 내 맘대로 할게. 빠이!

장덕자는 그렇게 제멋대로 할 말만 하고 끊었다.

서주환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어우, 이 짐승 같은 년.”

그리 말하는 서주환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어중간한 재능 때문에 좌절했던 그녀가 벌써 1위와의 시합을 생각하고 있다니 감개무량했다. 물론 여성 격투계가 워낙 좁아서 가능한 일이고, 훗날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지만… 아무튼 행복해보이니까 다행이었다.

이후 서주환은 몇 시간 동안 연락을 더 돌렸다. 간단하게 소식만 전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알고 지내는 인연이 많았다.

군대 후임이자 의지하는 형이었던 이정훈.

안양 제일의 옷가게 스완의 사장 윤서라.

어느덧 만삭이 가까워진 이혜리와 백강호 부부.

중학생 시절 담임 유민서.

성우 공채에 합격한 주경은.

한때 양아치였으나 지금은 노벨다이스에 취직한 양혜지.

친구라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대학을 자퇴했던 박도희.

현재 박도희와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동료작가 우서윤.

우서윤의 스승이자 서주환의 선생님이기도 한 존경하는 문학가 김현영.

김현영 못지않게 존경하는 사람이자 그의 웹툰을 그려주고 있는 강필춘.

강필춘의 손녀이자 사촌동생 서정호의 여자친구인 강나루.

“으아, 왜 이렇게 많냐.”

일일이 통화하기 힘들 정도여서 도중부터는 까톡과 문자로 안부를 전달했다.

서주환은 배성근과 이채희, 민선하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마쳤다. 함께 <스토커>를 촬영한 배우와 스텝들에게도 안부를 전했음은 물론이었다.

“고작 안부 연락인데 엄청 힘드네…….”

그럼에도 서주환은 뿌듯하게 웃었다. 단칸방에서 홀로 글만 쓰며 살던 놈이 참 많이 컸다 싶었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외로움에 비하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인님, 슬슬 시간이 됐습니다.]

“그래. 이제 준비하고 나가야겠다.”

*

송별회 장소는 대학교 후문 쪽에 위치한 ‘시크릿’이란 술집이다.

시크릿은 평소 서주환 일행이 자주 가던 까마귀 포차보다 맛이 좀 떨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넓고 쾌적한 데다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시끄럽게 떠들고 마시기가 좋았다.

서주환은 건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방향을 꺾었다.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배준호?”

“누구? 아, 주환아!”

담배를 피우던 배준호가 반가운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언젠가 리더십 캠프에서 친해진 연극 영화과 학생으로 미래에 명감독이 되는 남자였다.

[아마 주인님께서 커플로 만들어준 남자기도 하죠?]

‘응. 지금도 별이랑 잘 사귀고 있는 것 같더라. 아마 결혼까지 하겠지.’

배준호와 유별은 회귀 전에도 감독, 배우 커플로 유명했다. 둘 다 빛나는 재능을 갖고 있어서 이른 나이에 천만감독, 천만배우를 달성했었다.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너 송별회 한다기에 왔지!”

“그래? 아까 전화도 했는데 뭘 송별회까지.”

그는 안부소식을 전하는 중에 배준호와 유별에게도 연락을 돌렸었다. 하지만 자퇴 얘기만 했을 뿐 송별회에 관한 건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건지 모르겠다.

배준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출콘과 애들 몰려가기에 혹시 싶어서 물어봤지. 송별회 한다길래 석찬이랑 애들한테 부탁해서 나도 끼워달라고 했어. 아, 건물 안에 별이도 있다.”

“그래? 둘이 잘 사귀고 있는 모양이네.”

“당연하지.”

“국수는 언제 먹여주냐?”

“어? 아, 그건 좀 나중에… 하하. 아직 졸업도 못했는데 벌써 결혼은 힘들지.”

“할 생각은 있는 거고?”

“그거야 물론.”

배준호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담뱃재를 털어낸 그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 보고 인사를 못했네. 민 감독님 소개해줘서 고맙다, 주환아. 내가 진즉에 밥이라도 한 끼 샀어야 했는데.”

“됐어, 인마. 내가 바빴던 건데 뭘. 그보다 선하 누나가 많이 안 갈궈? 그 누나 현장에서는 좀 빡빡한 성격인데.”

순간 배준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말도 마라. 나 요즘 담배가 엄청 늘었다니까.”

“큭큭. 꽤 고생인가 보네.”

고개를 끄덕인 배준호가 이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재밌어. 졸업도 전에 민 감독님 같은 분 밑에서 배울 수 있다니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다 네 덕분이야.”

“나야 소개만 해준 건데 뭐. 너한테 재능 없었으면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야.”

“그 재능도 네가 찾아준 거잖아. 성공하면 꼭 갚을게! 아니, 성공 못해도 어떻게든 꼭!”

배준호가 몇 번이고 다짐하듯 말했다.

서주환은 낯간지러운 기분에 그의 등을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만하고 들어가자. 사내새끼가 계속 그러니까 징그럽다.”

“으하하. 그럼 들어가서 별이한테 감사인사 받아. 별이도 너한테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 절이라도 할 기세던데?”

일전에 서주환은 배준호를 민선하 감독에게, 유별을 배성근에게 소개해준 바 있다. 배우 보는 눈이 남다른 배성근은 유별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존 소속사에 위약금까지 물어주며 리액트로 빼내왔다.

하지만 유별이 그렇게나 고마워하고 있다는 건 좀 의외였다. 리액트가 배우로 유명한 엔터긴 하지만 계약한지 얼마 안 된 유별이 뭔가 득을 보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준호가 설명을 덧붙였다.

“주환이 너랑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이채희 배우님께서 신경을 좀 써준 모양이야. 별이가 이채희 배우님 광팬이거든. 항상 롤모델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어.”

“아, 채희 누나가.”

“응. 언니동생하기로 했다면서 좋아죽더라.”

“잘됐네. 채희 누나가 연기는 잘하니까 배울 게 많을 거야. 아, 대신 다른 건 못 배우게 잘 감시해라.”

“다른 거? 뭐를?”

“뭐, 술이라던가…….”

…남자 홀리는 방법이라던가.

서주환은 뒷말을 삼켰다. 사실 이채희가 그를 홀렸다기보단 그가 이채희를 홀린 거였으므로 조언할 주제가 아니었다.

“아무튼 들어가자.”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바글바글하게 보였다.

“엇! 주환이 형 왔다!”

“야, 야! 주인공 납셨다! 폭죽! 폭죽!”

“오빠, 어서 와요!”

펑펑펑펑펑펑!

머리 위로 형형색색의 색지가 흩날렸다. 아무래도 전세를 낸 듯 시작부터 요란했다.

서주환은 머리에 엉겨 붙은 색지를 떼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와 특히 친한 일행들은 물론이고 출판콘텐츠학과 2학년이 모두 모여 있었다. 1학년도 적지 않게 보였고, 나름 친하게 지냈던 조교와 교수님 몇 명도 자리해 있었다.

‘엇, 유이도 있네?’

정하연, 유지경과 함께 앉아있는 도유이가 보였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쭈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벌떡 일어나 소리친 이석찬이 여보란 듯 500cc맥주잔 두 개에 소주와 맥주를 폭탄처럼 들이부었다. 그러더니 서주환에게 다가와 한 잔을 넘기며 말했다.

“쭈환, 너 때문에 다들 모였는데 한 마디 해야지!”

“뭐? 아니, 나 지금 왔는데 무슨 말을…….”

“자, 모두 박수!”

이석찬이 호응을 유도했다. 진즉 이목이 집중돼 있던 터라 순식간에 박수가 쏟아졌다.

- 와아아아아아!

- 한 마디! 한 마디! 한 마디!

- 울어라! 울어라! 울어라!

서주환은 맥주잔을 든 채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보니 그가 조금 늦게 온 듯했다. 다들 이미 술을 적잖게 마신 듯 저마다 홍조가 피어있었던 것이다.

그가 황당함에 가만히 있자.

이석찬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여러분! 아무래도 쭈환이 이 놈 긴장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먼저 포문을 열겠습니다! 자, 자, 박수!”

- 휘이이이익!

- 썩찬 햄 므시따!

“남자 놈들은 닥치시고!”

- 오빠 멋져요!

“아싸, 좋고! 호응 더 해줘!”

- 으하하하하하!

- 꺄하하하하하!

익숙하게 분위기를 띄운 이석찬이 맥주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키기 시작했다.

꿀꺽꿀꺽꿀꺽꿀꺽!

숨도 안 쉬고 마시는 퍼포먼스를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울렸다. 이내 크하! 하고 거품을 훔친 이석찬이 잔을 머리 위로 털었다.

“자! 출콘과 16학번 이석찬, 한 마디 하겠습니다!”

-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적절한 분위기에서 이석찬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나쁜 쉐에키들아!”

- ……?

난데없는 비난에 환호성이 뚝 멎었다.

이석찬이 벌게진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

“나도 자퇴하는데 주환이만 주인공이냐! 섭섭하다, 진짜!”

순간 곳곳에서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자퇴생은 서주환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교적 서주환보다 빨리 자퇴소식을 말한 터라 뒷전이 된 이석찬이었다.

그때 교수와 조교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흠흠. 석찬아, 이 지도교수님은 안 잊었어요. 아까 따로 얘기도 나눴잖으냐.”

“이 대표님, 저도요.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노벨다이스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뒤이어 노벨다이스로 현장실습이 예정되어 있는 3학년 조경준이 꽃다발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 꽃다발, 우리 이 대표님 겁니다. 여기 카드에 대표님 성함 쓰여있는 거 보이시죠? 사실 전 주환이 말고 대표님 보려고 온 거예요.”

이석찬이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조 인턴, 방학동안 편집 알바도 했었지? 일 잘한다고 아주 칭찬이 자자해. 졸업하고 꼭 우리 회사로 오게.”

“넵!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조경준이 과장되게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석찬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주변을 쓰윽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국물도 없어.”

이석찬의 자퇴를 까맣게 잊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노벨다이스는 출판콘텐츠학과 학생들이 졸업 후 노릴 수 있는 회사 중 단연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노벨다이스의 대표로 얼굴을 알린 건 서주환이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실세는 이석찬이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학생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석찬의 이름을 연호했다.

- 이석찬! 이석찬! 이석찬!

- 이 대표님 만세!

- 형, 제가 존경하는 거 알죠?!

- 석찬 오빠, 사랑해요!

그에 이석찬이 낄낄거리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숨어있던 건 그였으므로 딱히 서운할 게 없었다. 그저 장난을 쳤을 따름이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이석찬이 서주환의 등을 두드렸다.

“쭈환, 너도 한 마디 해야지.”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술잔을 든 채 둘러앉은 사람들을 한 번씩 쓸어보았다.

‘정말로 끝났구나.’

자퇴서를 제출한 지는 며칠 지났지만 묘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한데, 송별회라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을 보니 이제야 대학생활이 끝났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대학에 다닌 건 고작 3학기. 2학년조차 끝까지 마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추억이 너무나 많았다.

입학, MT, 축제, 하다못해 산처럼 많았던 과제까지.

대학에 다니면서도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어쨌든 대학생활을 시작으로 수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이내 씩 입꼬리를 올린 서주환은 앞서 이석찬이 했던 것처럼 술을 단번에 비웠다. 그리고 빈 잔을 높이 들고 머리 위로 털며 소리쳤다.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회귀 후 1년 9개월.

짧지만 길었던 그의 대학생활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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