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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87화 (48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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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선택의 순간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다.

꿈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서주환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듣는 순간에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소원석’의 제작 조건이 너무나도 까다로웠다.

‘재능석 열 개? 그걸 어느 세월에 모아.’

S급 재능석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각이 10개다.

다시 말해, 소원석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S급 재능을 가진 여자 90명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재능석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지?’

회귀 후 지금까지 대략 1년 9개월.

단순하게 계산하면 앞으로 90개의 재능 조각을 모으는 데 15년하고도 7~8개월 정도가 더 걸린다.

대략 16년.

서주환의 현재 나이가 24살이니 40살이 되어서야 소원석을 제작할 수 있는 셈이었다.

서주환은 골몰히 생각했다.

‘시간이야 어떻게든 단축할 수 있어.’

그는 자신이 있었다.

1년 9개월이란 시간은 그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걸린 시간이다.

반면 지금은 이미 대학을 자퇴하기로 마음먹은 상황.

본격적으로 S급 재능을 지닌 여자를 찾아다닌다면 몇 년 정도는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몽마신의 축복을 상시 적용한다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있겠지.’

몽마신의 축복은 1일에 100,000LP가 소모된다. 이를 상시 적용하게 된다면 부담이 무척 클 터. 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다면 그만큼 벌어들이는 소득도 많아질 테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지금만 해도 달마다 몇 백만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신통한 예언력을 지닌 가브리엘라의 조건을 적극 활용한다거나 아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물색하는 방법이다.

서주환은 문득 은율과 만났을 적 가브리엘라가 했던 예언이 떠올랐다.

- 방랑벽 한 번 참 대단하네요. 무슨 약속을 지키겠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건지.

지금에서야 그 말이 온전히 이해됐다. 그는 ‘소원석’을 제작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운명이었다.

아무튼, 시간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줄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서른 살 전에 소원석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서주환은 다시 한 번 재능석의 설명을 차분히 읽었다.

【S급 재능석】

▶ 효과1: 재능 하나를 선택하여 잠재등급 한계치를 S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단, A+급 재능에만 적용 가능하다.

▶ 효과2: 재능석 10개를 모아서 ‘소원석’을 제작할 수 있다. 단, 소원석은 한 번만 제작할 수 있다.

효과 2번에 주의사항처럼 붙어 있는 설명. ‘단, 소원석은 한 번만 제작할 수 있다’는 바로 이 문구가 문제였다.

단 한 번의 제작.

즉, 이룰 수 있는 소원도 단 하나.

반면, 소원석에 대해 알게 된 순간 서주환이 떠올린 간절한 소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히 루시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모두와 함께 사는 것인데…….’

누군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원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고작 개인의 여색을 위해 루시와 저울질을 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서주환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 비단 이 소원은 그의 개인적인 욕망 때문만이 아니었으므로.

- 있잖아, 주환아. 사실 난 지금이 좋아. 그냥 계속 이랬으면 좋겠어.

정하연이 했던 말이다.

그녀는 지금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다수의 여자가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는, 언젠가 이 말도 안 되는 관계가 맞이하게 될 파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서주환은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비단 정하연 뿐만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끔 농담처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중동에 가자고 했었지……’

사실 반은 진담이었다. 최후의 보루 정도로 생각했다고나 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다.

결혼이란 인륜지대사라 부를 만큼 큰일이다. 비단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이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의 여자들만 설득한다고 선뜻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 뜻. 여느 하렘소설에 나오듯 ‘중동에 가서 다 같이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전개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모든 부모님을 설득하고 중동으로 가서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걸로 문제가 끝나겠는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21세기에 일부다처제라니. 세간의 시선이 어떠할지 불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소원석을 제작할 때쯤이면 전 세계 어딜 가도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져 있을 터. 그렇다고 누구 한 명만 선택하고 다른 여자들을 버리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처럼 티를 내진 않았지만 서주환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소원석’의 존재를 알게 됐으니 갈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서주환이 혼란스러운 상념에 잠겨있을 때.

루시가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소원석을 만든다고 끝이 아니랍니다.]

서주환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다소 맥 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가 더 있어?”

[소원석은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줄 수 있습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LP가 소모됩니다. 주인님이 바라는 소원이 인과율에 미치는 정도에 따라서 필요 LP가 달라질 거랍니다.]

“포인트가 많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냥 많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에요. 주인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로 잡아도 조 단위가 필요하답니다. 그러니 앞으로 부지런히 모으셔야 해요!]

최소로 잡아도 조 단위.

안 그래도 극악한 난이도인데 소모되는 포인트까지 까마득하다.

하지만 서주환은 그런 역경보단 너무나도 태연한, 오히려 쾌활해 보이기까지 하는 루시의 목소리가 더 신경 쓰였다.

“내 소원……?”

[네, 주인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자퇴는 아주 잘 한 선택입니다. 마침 몇 달 후면 이번에 찍은 영화 <스토커>도 개봉하니까 그 기회를 살려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서주환이 그녀의 말을 끊고 되물었다.

“루시가 생각하는 내 소원이 뭔데?”

[그야…….]

루시가 말끝을 흐렸다.

서주환은 그 반응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너는 이미 포기하고 있었구나.’

문득 언젠가 루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주인님, 저를 사람으로 만드는 건 주인님께 폐가 될 거예요.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 훗날 정보 제한이 풀리고 그 방법을 아셨을 때, 지금의 발언을 철회하셔도 저는 절대로 주인님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 루시는 지금 주인님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감동 받았답니다.

루시는 처음부터 자신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먼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아니, 모두 그가 캐물어서 대답한 것일 뿐이었다.

잠시간의 침묵.

정적을 깬 것은 루시였다. 그녀가 여상한 투로 말했다.

[주인님,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루시는 주인님께서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

서주환은 선뜻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두 가지 소원 중 어느 하나도 쉽사리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잠깐, 잠깐만 기다려. 생각 좀 할게.”

[주인님…….]

서주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루시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했지만 충동적으로 단언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서주환은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한참동안 눈을 감은 채 사색했다. 새벽녘 어스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비출 때까지.

이내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뜬 서주환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루시, 난…….”

*

늦은 아침이 밝았다.

서주환은 여전히 기운 찬 몸을 이끌고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요리를 하고, 여자들을 깨운 뒤 단란한 식사를 마쳤다.

일행들이 차에 오른 것은 해가 중천에 뜬 오후가 되어서였다.

서주환이 여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탔지? 안 탄 사람 손 들어봐.”

조수석에 탄 정하연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안 탔는데 손을 어떻게 들어, 바보야.”

“아, 맞네.”

“오늘 아침부터 왜 그래? 너 나사가 좀 빠져있는 것 같다?”

“어제 너무 무리했나봐.”

“아…….”

정하연은 바로 납득했다. 다른 여자들도 그럴만하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주환아, 그냥 내가 운전할까?”

여자들 중 유일하게 면하가 있는 최미화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서주환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 정돈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다 탔으니까 출발하자. 안전벨트 다 맸지?”

“네에!”

“환이 오빠, 노래 틀어줘!”

“그래, 선곡은 수아가 맡아. 블루투스 연결해.”

“오케잉!”

한수아가 곧장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노래를 틀었다. 참고로 그녀는 서주환과 음악 취향이 비슷했다.

- 푸~른 언덕에! 배~낭을 매고!

서주환은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언제쯤 떠날까…….’

여행을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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