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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85화 (48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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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열 번째 조각

월희(月熙)는 죽은 지 300년 하고도 65년이 된 명계의 저승사자다. 그녀는 인간으로 살 적 워낙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생전의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윤회를 거부했다.

윤회를 거부하는 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순리를 거스르면 영이 혼탁해져서 악귀가 되거나 혼백이 완전히 소멸하는 영멸을 맞이하게 된다.

허나 윤회를 거부하고도 이런 최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명계에서 열리는 공채에 통과하여 저승사자가 되는 것이다.

월희는 조선시대에 여인으로 태어나 머리 쓸 일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타고난 머리가 나쁘지 않았는지 20년 만에 저승사자 공채를 통과했다. 이후 현장직 9급 저승사자가 된 월희는 그야말로 성실하게 일해서 대략 300년 만에 8급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

이쯤에서 월희는 한참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됐다.

‘이런 육시랄. 그냥 윤회할 걸 그랬나.’

그러나 한 번 저승사자가 된 이상 1천 년을 채우기 전까지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공채를 통과하기도 무척 힘들지만 그만두는 것은 더 힘든 게 저승사자란 직업이었다.

기본적으로 저승사자의 수명은 더럽게 길고 끈질기다. 평균 1천 년은 지나야 혼백에 무리가 온다면서 퇴직하고 윤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이러하니 저승공무청의 상황이 어떻겠는가. 300년이 되지 않은 저승사자들은 젖먹이 취급을 받고, 500년 이상부터나 비로소 1인분을 하노라 취급받는다. 더불어 콘크리트 층이 멘틀만큼이나 두터운 만큼 인간세상보다 인맥과 기수문화가 더욱 악랄하게 발전했다.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는 정상적으로 승진하기가 요원한 일이었다.

한데, 대략 1년하고도 9개월 전.

그런 명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차원계 또라이로 유명한 몽마신 러스트가 제 형에게 잘못 부여된 업을 정상화하라며 깽판을 친 사건이 계기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분노한 염라대왕이 대대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며 물갈이를 시작한 것이다. 인맥과 기수문화로 이루어진 저승공무청이 개혁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명계가 한바탕 뒤집어졌지만 성실한 말단 저승사자 월희에게는 기회였다.

뒷주머니를 차거나 패악을 부리던 선배 저승사자들은 단체로 영멸을 맞이하거나 팔열지옥에 내던져졌고, 월희처럼 성실하게 일하던 저승사자들에게는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평소 성실하게 공무를 집행하고 업무 외 시간에도 짬을 내어 억울한 혼백의 사연을 해결해주었던 월희다. 덕분에 그녀는 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행적을 인정받아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됐다. 한편 그녀보다 연차가 오래된 고위직 선배들은 10년 회귀의 여파로 개판이 된 행정업무에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그녀가 맡은 임무라 함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서주환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월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조리 있게 답하고자 노력했다.

“감시… 가 맞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0년 회귀자인 서주환 님께서는 특급에 해당하는 특이점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몽마신께서 염라대왕님 몰래 욕망 시스템이라는 것을 부여한 사실이 뒤늦게 발견된 지라 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음.”

서주환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강하게 나가려고 했는데 ‘욕망 시스템’을 언급하니 속이 뜨끔했던 것이다. 월희의 말대로 욕망 시스템은 러스트가 몰래 찔러준 선물이었다. 업을 잘못 부여한 것에 대한 배상에 포함되지 않은 불법적인 능력이란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눈에 힘을 빡 준 뒤 무릎정좌를 하고 있는 저승사자를 사납게 노려봤다. 새카만 갓을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 월희는 경국지색이란 말이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어여뻤다.

[주인님……?]

서주환은 크흠! 굵게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내가 회귀한 그 시점부터 졸졸 따라다니면서 감시하고 있었다는 거군요. 그런데 왜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소혜 씨가 자아를 잃고 소멸해가고 있는 걸 봤을 텐데요. 그리고 날 감시하는 것과 저승의 업무 실수는 다른 문제 아닙니까. 도대체가! 명계는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나만 해도 잘못 부여된 업 때문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통 받았습니다. 여기 황소혜 씨는 24년을 혼령 상태로 있었고요. 이게 맞아요? 아니, 애초에 소혜 씨가 죽은 것도 명계 쪽 실수인 건 아닌가요? 억울하게 죽은 거 아니냐고요.”

그가 분노를 담아 말하자 월희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격한 반응에 의도를 갖고 몰아친 서주환이 되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월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두려움이었다. 그도 그럴 게, 눈앞의 남자는 몽마신을 뒷배로 두고 있는 남자였다. 더군다나 그가 진정 화가 난 이유는 감시가 아니라 억울하게 고통을 받은 영혼 때문이었다. 이는 명명백백한 명계의 잘못이었으니 말단 저승사자인 자신까지 엮여서 영멸(永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월희는 그렇게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하나씩 답변을 했다.

“제가 늦게 나타난 이유는 명계에 들렀다 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주환 님을 감시하던 저는 이틀 전 황소혜 님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명계에 돌아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이후 윗선에 즉각 보고를 올렸고, 명계는 24년 전 저승문을 열지 않은 인사를 색출해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정정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정정?”

“황소혜 씨의 영혼이 방치된 것은 명계의 실수가 맞습니다. 다만 죽음 자체는 명계와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사람이 언제 죽는가는 정해진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승사자가 관리하는 명부(名簿)에는 죽을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그 이름을 확인하고 사후처리를 하는 것이지요.”

황소혜의 죽음 자체는 결국 불행한 사고였을 뿐이다.

월희가 그렇게 선을 그었다.

개개인에 따라 지난 과보에 의한 가능성과 기회를 다르게 부여받지만 인간의 생사 자체는 명계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승사자의 말일 따름이고.

억울하게 방치되어 있던 영혼에게는 당장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말없이 떨고 있던 황소혜가 원통함 가득한 눈으로 월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죽은 건 당신들 탓이 아니라는 거군요.”

“…….”

“그렇다면 됐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야겠습니다. 실수를 했다던 그 저승사자는 어떻게 되는 거죠? 나는 그 실수 때문에 24년이나 방치되어 있었어요. 혼자서,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그저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고독하게……!”

황소혜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해서 기묘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동안의 외롭고 고독했던 나날이 단순한 사무적 실수 때문이라고 하니 분노가 솟구친 탓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이룬 영체가 위태롭게 일렁였다.

그녀를 본 월희가 대경실색하여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러다 혼백이 상하면 윤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부디 분노를 가라앉혀주세요. 악귀가 되시면 안 됩니다.”

월희가 지극한 태도로 황소혜를 달랬다.

서주환은 그런 월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 여자를 탓할 게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월희가 황소혜를 대하는 태도는 서주환을 대할 때보다도 절실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월희는 가여운 영혼이 올바른 윤회의 길로 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서주환은 오갈 데 없는 분노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황소혜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살짝 뒤로 끌어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 소혜 씨, 아예 울어요. 서럽게. 화는 내지 말고요.

순간 황소혜의 시뻘갰던 눈이 의아함으로 일그러졌다. 달래주긴 고사하고 더 서럽게 울 것을 장려하니 그럴 만도 했다.

서주환이 씩 웃으며 속삭였다.

- 피해보상 뜯어내야죠. 다음엔 부잣집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거나 원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도록. 아니면 절세미녀나 미남으로 태어나는 건 어때요?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지만 배상은 제대로 받아내야죠.

그 순간.

“흐윽, 흐어어어엉! 내가, 고작 그런 실수 때문에! 으아아아앙!”

황소혜가 그야말로 서럽게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피를 토할 것만 같은 원통함이 담긴 울음이었다. 굳이 서주환의 말이 아니어도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씩씩대고 있었으니 울어재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주환은 이 틈을 타서 저승사자와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몽마신이라는 뒷배를 들먹이며 반쯤 협박을 깃들여서라도 말이다.

한데 저승사자 월희의 표정이 이상했다. 지극한 태도로 황소혜를 달래던 그녀가 떨떠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저…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제가 상부에 제대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어떻게든 합당한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순간 황소혜의 울음이 뚝 멎었다. 호통을 일발장전 했던 서주환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되삼켰다.

과연 저승사자라고나 해야 할까.

‘귀 한 번 더럽게 밝네.’

서주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제를 돌렸다. 애초에 이것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실수를 한 그 저승사자는 이름이 뭡니까?”

“네?”

“원래 명부가 갱신되면 죽은 사람이 있는 곳에 저승문을 열어야 되는 거라면서요. 그런데 소혜 씨가 있는 곳에는 실수로 문을 안 연 거고.”

“그,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 새끼 이름 좀 말해주세요. 일을 뭣 같이 했으면 처벌 받아야죠. 당사자도 알고 싶다잖습니까. 무엇보다 월희 씨는 딱히 잘못도 없는데 괜히 중간에 껴서 고생만 하는 것 같고…….”

“아!”

월희가 탄성을 발하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환이 이렇게 나왔으니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엮일 일은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답했다.

“그 선배… 아니, 그 새끼는 이미 초열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네? 벌써 처벌 받았어요?”

명계의 일처리가 이렇게 신속정확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병신 짓거리는 무엇일까.

월희가 자세히 설명했다.

“서주환 님께 업을 잘못 부여한 저승사자와 황소혜 님에게 제때 저승문을 열지 않은 저승사자가 동일인입니다.”

“…아, 그 새끼.”

서주환은 번쩍 생각나는 게 있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 염라대왕에게 직접 부탁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업을 잘못 부여한 놈을 색출해서 엄벌에 처해달라고 말이다.

“본래는 서주환 님이 불행했던 세월인 32년만큼 초열지옥에서 고통받을 예정이었습니다만, 까면 깔수록 나오는 게 많아서 이미 형량이 이백 년을 넘겼습니다. 황소혜 님의 사건도 밝혀졌으니 또 추가되겠군요. 그 외에도 잘못을 저지른 다수의 선배님들이 죄업에 따라 팔열지옥에 던져졌습니다. 더불어, 죄질이 특히 나쁜 몇몇은 아예 윤회의 자격을 박탈당하여 형량을 마친 후 영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몇몇에는 두 분께 잘못을 저지른 저승사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명계는 개혁을 맞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누락된 혼들을 회수하는 중이고요. 아마 제가 아니었어도 한국지부의 다른 저승사자가 조만간 황소혜 님을 모셨을 겁니다.”

일목요연한 말에 서주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느덧 완전히 진정한 황소혜도 다소곳이 배꼽에 손을 모으고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월희는 여전히 지극한 태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황소혜 님. 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와서 안심을 시켜드려야 했는데…….”

“아, 아니에요. 월희 님이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이쯤 되니 황소혜도 월희에게 따지기가 뭐했던지 예의를 갖췄다. 어찌 보면 그녀의 억울함을 말해줄 유일한 저승사자였으니 당연한 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월희는 못내 미안한 눈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사실 저도 잘못이 있습니다.”

“네?”

“그, 두려워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늦었습니다. 사실은 서주환 님께서 돌아가신 후 몰래 접촉할 생각이었던지라…….”

월희가 서주환의 눈치를 봤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서주환과 얽혔다가 경을 치를까봐 조심한 것이었다. 애초에 생자와의 접촉은 안 되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한데 갑자기 서주환이 몽마신에게 부탁해서 명계를 다 뒤집어엎을 거라고 말하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10년 치 회귀로 인과가 꼬이는 바람에 행정이 마비상태에 이를 정도로 인력이 갈리는 중이다. 또 한 번 몽마신이 깽판을 치면 저승사자들이 과로 때문에 단체로 영멸할 판이었다.

서주환은 그런 월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세요. 제가 월희 님을 좀 오해했던 것 같네요.”

“니, 님이라니요. 말씀 낮춰주십시오.”

월희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녀에게 서주환은 맞선임보다도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서주환은 이미 그녀에게 안 좋은 감정이 사라진 상태였다. 엉망으로 일처리를 하여 피해를 주는 저승사자에게 화가 났는데, 눈앞의 월희는 말 한 마디마다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저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 월희 누님이라고 부를게요. 아줌마나 할머니라고 부르긴 좀 그렇잖아요.”

“아, 네에…….”

월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사자로 보낸 세월만 300년이 넘은 그녀였지만 여전히 외양만은 20대였던지라 할머니라고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생전에도 자식이 없었는데 할머니는 무슨.

그렇게 월희가 손을 맞잡고 일어나는데.

‘어?’

순간적으로 서주환의 표정이 변했다. 월희의 상태창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월희 누님이 소혜 씨 편의 좀 잘 봐주세요.”

“네. 그야 물론입니다.”

월희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도 억울한 혼백의 사연을 잘 들어주었던 그녀인지라 사명감이 남달랐다.

서주환이 작게 웃으며 그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앞으로도 제 담당은 월희 누님이 하는 건가요? 그, 감시 및 보고요.”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한 번 접촉을 하게 되었으니 담당이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원하신다면 아예 감시가 사라질 수도 있고요.”

“감시가 사라져요?”

“네. 서주환 님께서 능력을 가지고도 잠잠히 지내주셔서 명계도 한 시름 놨거든요. 눈에 띄는 악행도 없고 크게 인과를 비틀지도 않았으니… 게다가 시스템 능력으로 인한 인과율은 전부 몽마신께서 감당하시더군요.”

서주환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감시가 사라지거나 담당자가 바뀌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놓고 말했다.

“제가 월희 누님을 계속 담당으로 해달라고 부탁하면요?”

“네?”

월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주환이 말을 이었다.

“누님한테 곤란한 건가요?”

“아, 아니요. 이 일은 필요 능력대비 업무 중요도가 높기 때문에 오히려 저에게는…….”

“좋다는 거죠?”

“그,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월희 누님이 계속 담당해주길 바라노라고 윗선에 전해주세요. 아니다. 아예 자필로 편지라도 써드리는 게 좋을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아, 편지는 여기서 써도 괜찮나요? 아니면 현실로 돌아가서?”

“여기서도 괜찮습니다.”

서주환은 그 자리에서 편지지와 펜을 불러내어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조금 전 말했던 대로 월희를 담당으로 해 주십사 하는 부탁과 황소혜의 억울한 세월을 배상해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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