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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76화 (47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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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11월의 시작은 연참으로!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소원을 말해봐

꼬물꼬물.

서주환은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따라오는 꼬물이를 바라봤다. 처음 발견했을 때 1m도 되지 않던 녀석은 어느새 130cm정도로 자라 있었다. 더불어 당장 흩어질 듯 나풀거리던 몸체도 슬슬 사람 같은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간신히 팔다리가 구분될 뿐이었지만 말이다.

‘얘가 귀인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가 이 꼬물거리는 영혼을 달고 다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동정심.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운명이 가련해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라고 베푸는 동정심이었다.

둘째는 기대감. 가브리엘라의 예언에 따르면 귀인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십중팔구 그 귀인이란 꼬물이라 이름붙인 이 영혼을 가리키는 것일 터. 사실 꼬물이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이유가 훨씬 컸다.

‘그런데 귀인이 찾아온다고 했던 장소는 따로 있었단 말이지…….’

별이 보이는 천장 아래.

가브리엘라는 그곳에 귀인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한데 꼬물이의 존재를 처음 느낀 곳은 건물 내부의 중앙계단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앙계단 천장은 별이 보이지 않았다.

‘별이 보이는 천장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언질을 받았는데 여태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나름대로 건물 내부를 모두 조사해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별이 보이는 곳은 없었다.

서주환은 고개를 내젓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정하연을 만나러 가야한다. 노래방에서 고삐 풀고 노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오늘 내로 못 찾으면 더 머물지 뭐.’

어차피 이곳은 이석찬의 별장이다. 전화 한 통이면 얼마든지 더 머물 수 있다. 여자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진상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선 서주환은 조금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하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나?”

수영장에서 본 유지경을 시작으로 두 곳을 더 돌고 왔다. 게임방에선 한수아와 관계를 가졌고, 노래방에선 민가희와 은율을 괴롭히며 질펀하게 놀아났다.

수영장에 모이기로 한 이후 대략 4시간이 경과한 상태.

정하연이 지루함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큰일이네. 폰도 안 가져왔는데.”

나체로 걸어 다니는 중이어서 폰을 들고 다니기가 여의치 않았다. 현재 그의 폰은 최미화가 있는 침실에 있다.

“하연아~!”

서주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당구장을 돌아다녔다. 당구장에는 포켓볼, 4구, 3구까지 종류별로 총 세 테이블이 있다. 시설은 좋지만 그리 넓지는 않아서 금방 내부를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아…….”

서주환은 3구 테이블 옆에 배치된 소파를 보고 작게 감탄을 흘렸다. 정하연이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채로 소파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돌겠네.”

그는 저절로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된 건지 정하연은 아침에 봤던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 아니었다. 그가 벗긴 것도 아닌데 그녀는 이미 비키니 차림이었다.

정하연이 입고 있는 비키니는 검정 일색의 홀터넥 비키였는데, 허리를 X자로 가로지르고 있는 끈이 무척 섹시한 포인트로 다가왔다.

서주환은 잠시 정하연을 깨울까 고민하다가 이내 숨을 죽인 채 손을 뻗었다. 그녀는 자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아, 내가 그래도 명색이 스타 작가인데 상투적인 묘사밖에 안 떠오르다니.’

비단 같은 흑발. 가늘고 긴 속눈썹. 뚜렷한 이목구비. 틴트를 바르지 않았음에도 붉고 생기 있는 입술.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

처음 봤을 때부터 연예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뻤던 그녀는 ‘성스러운 씨주머니’의 효과를 받고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당장 여느 방송에 나와도 어색함이 없을 지경이다.

“내 여자친구지만 진짜 예쁘다…….”

서주환은 순수하게 감탄을 흘리며 정돈되지 않은 그녀의 머릿결을 한 차례 쓸어 넘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까이하여 입술을 맞추고…….

“푸우!”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부으읍?! 콜록콜록!”

정하연이 눈을 부릅뜨며 몸을 일으키고 기침을 토해냈다. 이내 그녀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뭐, 뭐하는데 미친놈아!”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볼에 바람을 채우고 말했다.

“붕어.”

“또라이야!”

“아니면 호빵?”

“이 미친놈이?”

“사실 죽은 줄 알고 인공호흡한 거야.”

“뒤진다, 진짜.”

정하연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서주환은 여전히 낄낄대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누가 자는척하래? 연기도 못하는 게.”

“…뭐야. 눈치 챘어?”

정하연이 쳇 하고 혀를 차며 그를 흘겨봤다.

서주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쯧쯧 혀를 차줬다.

“내가 이래봬도 배우 데뷔를 한 몸이라 이거야. 어? 무려 탑배우 이채희랑 호흡을 맞췄다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씨. 그래, 네 똥 굵다.”

“당연하지. 얼마나 굵은지 보여줘?”

“아이씨, 더럽게!”

“누가 먼저 똥 얘기 했는데?”

“그 소리가 아니잖아!”

역시 정하연은 말장난으로 놀려줘야 제 맛이다. 툭툭 쳐주면 왁! 하고 반응이 돌아오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연아, 설렜어?”

갑작스러운 애칭에 정하연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뭐래. 너 같음 갑자기 바람 불어넣는데 설레겠냐?”

“설렌 거 같은데.”

“개소리 하지 말고.”

“연이 너 귀 엄청 빨개졌다. 너 긴장하면 귀 빨개지는 거 알아?”

“뭐?”

깜짝 놀란 그녀가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서 귀를 붙잡았다.

“응, 구라야.”

“너 진짜!”

“사실 방금 한 말이 구라야.”

“아씨, 어느 쪽이 구라야?”

“일단 좀 전에 너 예쁘다고 한 건 구라 아니야.”

“…….”

근본 없는 농지거리에 휘말린 정하연이 입술을 앙 다물었다. 뭐가 억울한지 홉뜬 눈으로 노려보는데, 서주환은 그 모습마저도 예뻐서 웃음이 나왔다.

“뭔데, 왜 웃어.”

“예뻐서.”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귀여워서.”

“…뭐래.”

서주환은 큭큭대며 정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여간 사람의 말버릇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부끄러운 티를 감추려 해봤자 뭐래, 한 마디로 틱틱대는 말투가 귀엽게 느껴졌다.

뭐, 굳이 말투가 아니어도 애인이니까 그 정도는 다 알아본다. 특히 귀밑머리를 이렇게 뒤로 넘겨주면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어 빨갛게 물든 귀가 뻔히 보여서 모르기도 힘들었다.

“아, 왜 이렇게 귀엽냐.”

“그만해라 좀. 나한테 귀엽다고 하는 사람 너밖에 없을 걸.”

“예쁘다고 하는 사람은?”

“쌔고 쌨지. 한두 명인 줄 알아?”

그리 말한 정하연이 흥, 하고 도도하게 코웃음 쳤다. 실제로 그녀는 재학 중 선배, 후배, 동기, 타과를 가리지 않고 많은 남자들에게 엄청난 대시를 받았다.

사실 그건 정하연 외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서주환은 그녀가 바라는 대로 질투심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지?”

“…말로 해야 알아?”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관계를 붙들고 있었겠는가.

서주환은 불만스럽게 노려보는 정하연에게 씩 웃어 보였다.

“아니, 이미 다 알고 물어보는 거야.”

“재수 없긴…….”

정하연은 울컥 차오르는 짜증을 삼켜야 했다. 씩 올리는 입꼬리가 얼마나 얄미운지. 그런데 또 그 모습이 왜 이리도 보기가 좋은 건지.

서주환은 조금 더 그녀를 놀릴까하다가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어깨에 두른 손을 당기고 그녀의 볼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입술을 맞췄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당연히 혀가 들어올 줄 알았던 정하연은 웬일이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는 실실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도 입을 맞췄다.

그에 정하연이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그를 보며 괜스레 이마를 문질렀다. 그녀 나름대로 자는 척을 하면서 예상했던 바가 있었는데 내심 그리던 그림과 너무 다른 상황이라서 계속 말려들게 됐다.

“아, 얘를 귀여워서 진짜 어쩌지.”

“아니, 아까부터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귀여운 척이라도 했나…….”

계속 귀엽다고 말하며 웃어서일까.

정하연은 칭찬을 받는 건지 놀림을 당하는 건지 좋은 듯 싫은 기분에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서주환은 한참을 큭큭대다가 그녀의 X자 허리끈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 비키니 새로 산 거지?”

“응. 애들이랑 같이 가서 샀어.”

“나 보여주려 산 걸 테고?”

“웃겨. 애들 사는 김에 같이 산 거야. 서라 언니가 추천해준 거고.”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는 게 아니라…….”

“아무튼 여기에 이 차림으로 누워있던 건 나 보여주려고 그런 거 맞잖아?”

“뭐? 아니, 그건 나름대로 이유가…….”

정하연은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화났을까봐 입은 건데.’

본디 수영장에 모이기로 했던 걸 흩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녀였다. 내기라는 옵션은 유지경이 추가한 것이지만 그녀는 각자 원하는 장소로 흩어져서 서주환을 엿 먹인 계획을 짠 주범이었다.

그래서 혹여 삐쳐버린 서주환이 복수한답시고 나올까봐 기분을 풀어주려고 미리 옷을 갈아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자는 척 서프라이즈까지 준비한 것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또 서주환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무슨 이유가 됐던 결국은 그에게 보여주려고 입고 있었던 건 맞으니까.

말문이 막힌 정하연은 뭔가 요상한 기분에 휩싸여서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였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반론을 펼치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자니 또 서주환의 기분이 좋은 것 같아서 이대로 넘어가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서주환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연아, 네 소원은 뭐야?”

“내 소원? 아, 내기 말하는 거구나.”

“응. 수아랑, 가희, 율이는 소원 들어주기로 했어.”

“으응? 그거 내기 이기면 들어주는 거 아니었어? 전부 네가 이겼다고 들었는데.”

“율이한테는 졌어. 꼼수에 당했거든.”

“꼼수?”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다들 별 거 아니길래 내기에서 진 사람 소원도 들어주기로 했어. 지경이랑 미화도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고. 내 여자들이 해달라는데 뭐 어려운 거라고 싫다하겠어? 그러니까 연이 너도 소원 있으면 말해봐.”

“으음. 말은 그럴듯한데…….”

정하연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아는 서주환은 이렇게 순순히 들어주겠다고 하는 남자가 아니란 말이지? 해줘도 한껏 놀려먹고 해줄 놈인데.”

“…남친한테 놈이라니. 나 상처받는다. 내가 너한테 년이라고 부르진 않잖아.”

“아, 미안. 그렇네. 조심할게.”

정하연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성장기 전반에 거쳐 입에 달라붙은 거친 말씨는 쉽게 교정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 서주환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연이 얘는 나를 너무 잘 알아.’

한 번 진지하게 연애를 한 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사람 자체가 그러한 걸까. 정하연은 유독 번뜩이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는 허당인 주제에 종종 속내를 꿰뚫는다고나 할까.

“아, 아무튼 네 소원은 뭔데?”

“으음. 나는…….”

정하연은 정해둔 소원이 없는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가 또렷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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