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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소제목 미정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주환이 지난 새벽 간 느낀 인기척은 잘못 된 게 아니었다. 계단을 내려올 적 등 뒤에서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는 바로 이 새벽안개 같은 희뿌연 덩어리였다.
‘루시의 조언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지.’
까맣게 잊고 있던 스킬, ‘마안’을 사용해보라던 루시의 조언. 그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이 정체불명의 연기덩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새벽에 복도에서 또 한 번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저승사자라도 나타난 줄 알았으니 말이다.
[이미 염라대왕도 만난 마당에 저승사자를 두려워하시다니…….]
루시가 짐짓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주 시건방진 도우미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꼭 인간으로 만들어서 혼내주마.
하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게, 서주환은 실제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뿐인가? 심지어 루시가 말한 염라대왕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었다.
그리 생각하니 두려움 대신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이 연기덩어리는 무엇이고 왜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일까?
“…….”
서주환은 희끄무레한 연기를 빤히 바라보다가 슬쩍 손을 내밀었다.
스륵, 연기를 통과하는 손.
손에는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휘저었을 뿐이다.
‘역시 만질 수는 없구나.’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있게 해준다던 마안(魔眼)의 효과가 온전치 않았다. 적용되는 것은 전자 뿐. 이 연기에는 어떤 물리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저쪽에서도 이쪽에게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일까. 밤새 관찰한 결과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다지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연기덩어리는 그에게 호의적인 기색이었다. 마치 애완동물 같다고나 할까. 쓰다듬어달라는 듯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그대로 통과되자 좌우로 갸웃대는 게 사뭇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크기는 고작 1m 남짓에 형태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덩어리라서 전혀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 으응, 하는 신음이 들렸다.
서주환은 순간 연기덩어리가 낸 목소린 줄 알고 움찔했으나 다행히 목소리의 주인은 그를 껴안고 있던 유지경이었다.
졸린 듯 반만 눈을 뜬 그녀가 헤헤 맹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히. 내가 그렇게 귀여워?”
아무래도 좀 전의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서주환은 킥 웃음을 흘리며 유지경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귀엽지. 어떻게 우리 너구리는 자다 깬 모습도 귀여운지 몰라.”
“흐흫. 오늘은 아침부터 립서비스가 좋네요, 주인님?”
“립서비스라니. 여기 엄청나게 큰 눈꼽도 귀여운데?”
“뭐? 악! 보지 마!”
화들짝 몸을 일으킨 유지경이 다급히 눈을 비볐다. 큭큭대며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흘겨봤다.
“아침부터 장난이나 치고.”
“귀여워서 그런 거지.”
“됐네요. 모닝펠라 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나 씻으러 갈 거야.”
“어어? 너구리, 일로 와. 안 해줄 거면 아예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일로 안 와?”
“메롱이다!”
너구리가 요망하게 궁둥이를 씰룩이며 욕실로 들어갔다. 이어서 용의주도하게 철컥, 자물쇠를 잠그기까지.
서주환은 아깝게 됐다며 혀를 차곤 오른편에 누워 있는 한수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전혀 일어날 기색이 없는지 입을 헤 벌린 채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이내 그는 침대 아래에서 꼬물꼬물 일렁이고 있는 연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해줄래?”
꼬물꼬물. 흩어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연기덩어리. 미세하지만 그 움직임이 위아래인 걸 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서주환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물었다.
“혹시 내 말 알아듣는 거냐?”
꼬물꼬물. 무언가 움직임이 있는 것 같긴 한데 형태가 뚜렷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녀석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일단 유령 비슷한 거인 것 같긴 한데 따지고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이석찬이 이야기 했던 조선시대의 여자가 아닐까요?]
‘환향녀 얘기 말하는 거지?’
[맞습니다. 내세에 풀지 못한 원념(怨念)이 남아서 귀천하지 못했다면 악귀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죠.]
‘악귀? 이게?’
꼬물꼬물. 흐리멍텅하게 꼬물대는 연기를 보고 루시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으음. 악귀…는 아닌 것 같네요. 귀천하지 못한 영혼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너무 미약해서 소멸직전으로 보이지만요.]
‘아무튼 해가 되진 않을 것 같지?’
[이 정도로 미약한 영혼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연 소멸할 겁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칠 힘 자체가 없어요. 다만 루시는 가브리엘라가 했던 말이 걸리네요.]
‘귀인…….’
지난 밤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귀인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보통 사전적 의미의 귀인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 뜻하지만, 샤머니즘적 관점에서의 귀인은 도움을 주는 모든 존재를 뜻한다.
‘그래도 설마 귀인이 귀인(鬼人)을 말하는 건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나 직설적인 풀이였다니.
그런데 대체 이 연기덩어리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상태창을 보려고 해도 접촉 자체가 불가해서 알 수가 없는데 말이다.
‘계속 따라다닐 것 같은데 일단 이름이라도 붙여줄까?’
서주환은 잠시 꼬물거리며 일렁이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꼬물이 어떠냐? 네 이름.”
꼬물꼬물.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다시 머리를 들이미는 꼬물이었다.
*
서주환은 아침식사를 위해 여자들을 깨우러 다녔다. 가장 먼저 한수아를 깨웠고, 다음으로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정하연의 방에 들어갔다가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며 욕을 처먹었다.
민가희와 은율의 경우는 나체로 들어온 그를 보고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민가희는 왁! 하고 놀랐다가 금세 진정했지만, 은율은 아침부터 우뚝 선 그를 보곤 못내 부끄러운지 이불 속으로 숨었다. 참고로 은율은 옷을 모두 벗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모인 아침식사 자리.
정하연이 둘러앉은 여성들을 확인하곤 서주환에게 물었다.
“미화 언니는?”
“어? 아… 미화는 피곤하다고 더 자겠대. 괜히 깨우려다가 욕만 먹었어.”
최미화는 밤새 격렬한 시간을 보낸 후유증으로 앓아누웠다.
사정을 설명하자 여성들은 알만하다는 듯 혀를 차거나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들도 이미 수차례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최미화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
“환이 오빠는 한 번 시작하면 너무한다니까.”
“수아 너는 그래서 나랑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 거지?”
“헤헤. 들켰어?”
“에휴. 저는 가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 혼자 상대했으면 벌써 복상사했을 걸요?”
평화로운 아침식사 자리에서 펼쳐지는 저세상 대화.
이럴 때마다 이게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 복하사가 맞지 않을까? 오빠는 위에서 하는 걸 좋아하니까…….”
소심한 은율마저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하루 사이 여자들만의 기묘한 유대감이 생긴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사 뒷정리를 하던 정하연이 막 씻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서주환의 몰골을 보고 물었다.
“…너 진짜 하루 종일 그러고 있을 거야?”
“물론.”
그리 서주환은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나체였다. 물건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지나치게 당당했고, 오히려 보는 쪽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이 들게 만들었다.
“어제는 너무 순하게 놀았어. 다들 오늘은 안 봐준다.”
“이상한 선전포고하지 마!”
빽 소리치는 정하연이었지만.
“하긴, 어제는 오빠치곤 얌전했지.”
“음. 확실히 여행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어.”
“오, 오늘은 어떻게 되는 걸까…….”
“으와아. 오늘 환이 오빠랑 단둘이 있는 건 피해야겠다. 지경아, 언니들. 나 버리고 다니면 안 돼?”
이미 다들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의외로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들이었다.
*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자 물줄기가 들이닥쳤다.
쏴아아아─!
화창했던 어제가 거짓말인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분명 맑음으로 표기되어 있던 일기예보는 어느새 수정된 상태였다. 빌어먹을 기상청. 절로 욕설이 나왔다.
“어쩔 수 없지. 실내에서 놀까?”
다행히 이석찬의 취향대로 만들어진 펜션은 실내에도 놀 거리가 가득했다. 시설 좋은 노래방과 실내 수영장이 있음은 물론 당구장을 비롯한 각종 오락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시설이 더 좋은데? 오랜만에 당구나 칠까?”
“나는 게임! 여기 컴퓨터도 있고 최신 플스도 있어! 대박! 컴퓨터 사양 보니까 방송도 해도 될 것 같아!”
“율 언니, 우리 노래방 갈래? 아까 확인해보니까 상태 되게 좋더라. 나 애플패드 들고 왔으니까 노래 부르다가 삘 꽂히면 작업도 할 수 있어.”
“그, 그럴까?”
“으음. 그럼 난 수아랑 게임할까?”
“응응. 지경아, 나랑 놀자!”
각자 뭐 하고 놀지 두런두런 얘기하는 여성들.
순식간에 소외된 서주환은 강력하게 항변했다.
“수영장! 무조건 수영장!”
“에엥…….”
하지만 그녀들의 반응은 시들했다.
“물놀이는 어제도 했잖아요.”
“질렸어, 물놀이.”
“밖에 비와서 습한데 웬 수영장?”
그러나 서주환에겐 기필코 수영장에 가야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 아직 비키니 못 봤어. 절대로 수영장.”
“그냥 다른 거…….”
“싫으면 점심이랑 저녁은 너희가 알아서 차려 먹어.”
서주환의 강짜에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치사하게 먹는 걸로!”
“오빠, 쫌생이!”
“아니, 왜 그렇게 비키니에 집착하는 거야?”
“맞아. 이미 볼 거 다 봐놓고.”
하지만 서주환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녀들은 투덜대면서도 수영복을 챙겨서 실내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는가.
서주환은 한 발 빨리 수영장으로 들어가 아이템을 사용했다.
[아이템, ‘페로몬 가스’를 사용합니다.]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의 성욕을 두 단계 상승시킵니다.]
[신체의 성적 민감도를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성관념에 대한 의식수준을 한 단계 하락시킵니다.]
아이템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을 아이템으로 부추겨봐야 갑자기 색녀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어느 정도 생각이 있다면, 또 분위기가 갖추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미 서주환의 그녀들은 이 말도 안 되는 관계를 납득하고 받아들인 입장.
약간만 등을 떠밀어주는 계기가 있다면 이성을 내려놓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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