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66화 (46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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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전개 속도가 느리다는 판단에 연참을 해봤습니다

휴재하는 날이 있으면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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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새비 님, ka55247205 님, ka55247205 님, ka55247205 님, 더케이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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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특별한 사연

설마 가브리엘라가 말한 귀인이 벌써 찾아온 걸까.

잠깐 떠오른 생각에 서주환은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짐작컨대 정하연이 아니면 최미화일 것이다. 낮은 확률로 한수아일 수도 있고. 세 사람은 오늘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다.

“미화였구나. 들어와.”

문을 열자 은테안경이 잘 어울리는 여자가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녀는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듯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서주환은 최미화의 어깨를 잡고 방안으로 들였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품으로 파고들었다.

“주환아.”

최미화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먼저 입술을 맞췄다. 잔뜩 들이켰던 와인 향이 훅 스며들었다. 이내 입술을 뗀 그녀가 조마조마한 눈길로 물었다.

“혹시 내가 와서 실망한 건 아니지?”

“뭐?”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서주환은 황당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이내 최미화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꺅, 하는 비명 소리를 뒤로하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왜 이상한 소릴 하고 그래?”

“…그냥. 다들 너무 예뻐서. 얼굴도 마음도.”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우먼답지 않게 눈꼬리가 축 쳐져서 슬퍼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은테안경을 벗기고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주었다.

“너무 뜬금없어서 뭐라고 달래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기도 충분히 예쁘고 착하면서.”

“…나 안 착해.”

그리 말한 최미화가 그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아까 그런 얘기 꺼낸 거… 의도가 있었거든.”

“의도라니, 무슨 소리야?”

“다들 너 어떻게 만났냐고, 왜 좋아하냐고… 내가 물었잖아.”

“그런데?”

“으스대려는 마음으로 꺼낸 얘기야. 나는 이만큼 특별한 만남이었다고……. 그런데 다들 각자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되려 질투가 났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

“사실 그것까진 괜찮았어. 그래도 시기상으로는 내가 제일 처음 했구나 싶어서 좀 우쭐하기도 했거든.”

거기까지 말한 최미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서주환은 재촉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이내 그녀가 자괴감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경이 얘기 듣고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 나이는 제일 많은 주제에 생각하는 건 제일 애 같아서 부끄럽더라고.”

“으음.”

“나 하나도 안 착하지? 혹시 싫어졌어?”

그리 말하는 최미화의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은테안경을 벗어서 그런지 한결 순해진 눈매가 울먹였다.

서주환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가 그녀의 눈망울에서 기어코 툭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고 큭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미치겠다.”

“뭐, 뭐야. 왜 웃어?”

“안 웃게 생겼냐! 아, 진짜. 으하하핳!”

“왜, 왜 웃냐고…!”

그가 박장대소하자 최미화가 까칠한 투로 따졌다. 부끄러움 가득한 타박에도 서주환은 끅끅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미화야, 오늘 네가 몇 병이나 마셨더라?”

“그건 왜.”

“세 병 정도 마셨나?”

“그 정도 마시긴 했는데…….”

다 같이 마신 게 아니라 혼자서 마신 것만 세 병이란 소리다. 그것도 도수가 높은 양주로 말이다.

그는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기를 머금고 그녀의 볼을 쓸었다.

“취하니까 귀여운 소릴 하고 있네.”

“나, 안 취했거든?”

“누가 봐도 취했어. 얼굴도 새빨개가지곤.”

불을 꺼놓고 있어서 몰랐는데 최미화는 얼굴은 물론 목덜미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저 조금 취한 줄 알았더니만 사실 만취 상태로 비틀거리며 온 것이었다.

하지만 주정뱅이가 자신이 취했음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던가.

“나 안 취했다니까……!”

당연히 최미화도 벌게진 눈으로 항변했지만.

“읍?”

서주환은 주정뱅이와의 대화는 말보단 몸으로 하는 게 빠르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쪽, 입술을 맞춰서 말문을 막고 능숙하게 상의 안으로 손을 넣었다. 배를 쓸면서 올라가자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피부의 열기가 느껴졌다.

“으, 읍. 으응…….”

까칠하게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는 이내 마주 혀를 섞어왔다. 그렇게 입술을 벌리고 서로의 혀를 얽으며 타액을 교환한다. 어느덧 방안은 입맞추는 소리와 달뜬 숨결로 뒤덮였다.

스으윽, 피부를 훑을 때마다 민감한 반응이 돌아왔다. 최미화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고 그만큼 쉽게 느끼는 체질이었다.

그는 이내 입술을 떼어내고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속옷 안 입었네?”

“…….”

“안 착하네 뭐네 칭얼대더니, 할 생각 만반이었구만.”

“그, 그건 하연이가 양보해줘서…!”

그리 외치던 최미화는 윽,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시무룩해졌다.

“언니인 내가 양보해줬어야 하는 건데…….”

“아이고, 취하니까 소심이 다 됐네. 평소엔 야동 틀어놓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난리도 아녔으면서.”

최미화는 두 개의 페티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처음에 그녀에게 작업을 걸 때 이용한 넬렡필리아(Narratophilia). 이 페티시는 막말과 욕설, 선정적인 말에서 흥분을 느끼는 성적 증후군이다.

그리고 두 번째 페티시는 음란 영상과 이미지, 글 등에 중독되는 픽토필리아(Pictophilia). 이 페티시 때문인지 최미화는 19금 콘텐츠에 나온 행위를 따라하는 모방섹스를 좋아했다.

그가 히죽거리며 가슴을 어루만지자 최미화가 눈을 홉떴다.

“…너는 이런 분위기에서 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어?”

“이런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데? 쓸 데 없는 걸로 자기가 나쁜 년이라며 자학하는 소심이 달래줘야 하는 분위기인가?”

“말을 해도…!”

“됐고.”

서주환은 다시 입을 맞췄다. 강제로 말문이 막힌 최미화는 그의 가슴팍을 때리거나 팔뚝을 꼬집으며 저항했다.

그렇게 몇 분 후.

질척이는 키스와 ‘성스러운 손길’ 앞에 최미화는 흐물흐물 풀어졌다. 이내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빨개진 얼굴의 그녀가 헐떡이는 숨을 토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 말이 돼?”

“…뭔 소리야?”

“남자 하나에 여자 여섯이서 여행을 왔어. 질투나 시샘이 조금도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고.”

“…….”

“그러니까 괜히 자책하지 말고 그냥 나한테 나쁜 놈이라고 욕해. 객관적으로 봐도 그게 맞으니까.”

업보를 쌓은 건 그이건만 왜 못된 놈한테 꼬인 여자들이 자책을 한단 말인가? 나쁜 놈이라고 욕을 먹는 건 그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하여간, 다들 착해빠져서 진심으로 욕도 못하는 군상들이다. 차라리 어떤 너구리처럼 솔직하게 질투심을 드러내고 그가 나쁜 놈이라고 욕하며 더 애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좋으련만.

“욕은 나만 먹으면 돼.”

“…….”

“자, 해봐. 미화 너 욕 잘하잖아.”

그의 말에 최미화가 울컥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개새끼.”

“그렇지. 욕 한 번 찰지다.”

역시 똑같은 욕이라도 최미화가 하는 건 타격감이 다르다. 된 발음과 파열음을 참 맛있게 굴린다고 해야 할까. 욕이 귀에 콱 박혀들었다.

“더 해봐.”

“쓰레기 새끼.”

“넵.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인정하고 있는 바다. 음식물 쓰레기라고 안 해줘서 고맙다.

그가 여유롭게 웃으며 끄덕이자 최미화는 정말 열이 뻗친 듯 눈썹을 꿈틀했다. 이내 그녀가 작정하고 씹어뱉었다.

“순진한 처녀들 꼬셔서 따먹고 좋아하게 만든 다음 인생 망치는 기생오라비.”

“…….”

이건 좀 많이 아프다. 안 그래도 여자들이 재능을 펼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가 고민하는 와중인데.

“…끝났어?”

“지랄 똥이다.”

이게 끝이겠냐는 듯 최미화가 코웃음을 쳤다. 이내 그녀가 랩이라도 뱉는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너 여기 있는 애들이 끝도 아니지? 이 욕심 많은 색마 새끼야. 불리하면 섹스로 무마하려고 하는 쓰레기 자식. 나쁠 거면 대놓고 나쁠 것이지 착한 건지 나쁜 건지 애매하게 굴어서 미워하게 만들지도 못하는 교악한 놈. 그래놓고 자책하면 지 욕하래. 헷갈리게 만들지 마, 미친놈아. 여태 등에 칼 안 맞은 게 용하다. 최근에 영화 촬영도 했다면서? 모든 여자들이 우리처럼 가만히 입 닥치고 있을까? 언제 한 번 크게 스캔들 터져서 인생나락 갈 거다,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정말로 상처 받았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라서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팩트로 패는 건 아프다…….

“아직 안 끝났는데? 동 틀 때까지 욕 할 수 있어.”

그만해라. 귀에서 피 나온다. 그런 욕을 해 뜰 때까지 들으면 마음이 무너져버린다.

“…차라리 깨물어.”

“내가 개야?”

“아뇨. 제가 개죠.”

“짖어 봐, 개새꺄.”

“왈왈!”

그리고 개처럼 허리를 흔들어서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 받았다.

“그, 그만! 흐악! 개새끼야…!”

“으르릉. 컹컹.”

“이 발정 난 원숭이 새끼가…!”

“헐. 망가에서나 보던 대사를 실제로 들을 줄은 몰랐어.”

우끼끼. 원숭이처럼 해댔다.

어차피 내일도 펜션에서 머물 테니 여느 때처럼 봐주는 것 따윈 없었다.

*

얼마나 했지?

“힘들겠다. 마사지 해줄게.”

“이제 와서 뭘 위해주는 척이야! 그냥 하연이한테로 꺼져!”

신음하며 눈을 까뒤집던 최미화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흡사 간질 걸린 듯 경기를 일으켜서 차마 더 손을 대지 못했다. 마사지를 해주겠다는데도 거짓말 하지 말라면서 믿지를 않는다.

“내 방인데 쫓겨났네…….”

서주환은 발가벗은 채 복도로 쫓겨났다. 역시 연속으로 일곱 번은 너무 심했나 싶어서 눈꼬리를 긁적이며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목말라.”

하도 싸댔더니 수분이 모자르다.

그렇게 꼬추를 덜렁거리며 계단을 내려고 있을 때였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

서주환은 흠칫 뒤를 돌아봤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실내는 그저 깜깜하기만 했다.

어쩐지 소름이 돋은 그는 루시를 불렀다.

‘루시, 뭐 못 느꼈어?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았는데.’

[뒤는 모르겠고, 저 앞에는 누가 있습니다.]

“뭐?”

서주환은 깜짝 놀라서 육성으로 대답하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계단 아래로 이어지는 주방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이석찬이 해준 귀신 얘기가 떠올랐다.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여자들이 성노리개로 전락한 거 앎? 그때 조선 사람들은 간신히 귀환한 여자들을 두고 절개를 잃었다면서 환향녀라고 부르며 멸시했대. 사대부의 높은 양반들도 좆같은 유교사상을 들먹이며 왕한테 몰려가서 이혼을 청했다고 함. 그렇게 버림받은 여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말로 화냥년(창부)이 되거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더라.

그리고 이석찬의 말에 의하면 이곳 또한 그런 여자들이 숨어든 곳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펜션이 지어지기 전에는 조잡한 오두막과 판잣집이 여러 채 있었다고…….

서주환은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속으로 소리쳤다.

‘시발! 귀신이든 뭐든 어쨌든 여자란 거잖아?’

내가 좆으로 보이냐? 아니, 좆 그 자체니까 상대가 여자면 귀신이라도 무서울 게 없다. 내적 개소리의 향연이 몰아쳤다.

서주환은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희끄무레 보이는 불빛을 향해 다가갔다. 가장 무서운 건 확인되지 않은 존재다. 이대로 무시한다면 찝찝해서 잠도 못 잘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이든 사람이든 일단 저 불빛의 정체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와 주방 입구에 들어섰을 때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불빛이 꺼졌다.

“……!”

완전히 어두워진 사방.

반사적으로 숨을 멈추고 걸음도 멈췄다.

그렇게 석상이라도 된 듯 굳어있는데.

팟!

정면에서 돌연 강렬한 불빛이 터졌다. 암순응을 마친 그의 눈은 순간적인 빛을 견디지 못하고 뿌옇게 변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찰나의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온갖 특수능력을 활성화하며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남자면 죽이고, 여자면 좆초리로 교육해주마!

한데 정면에서도 마주 비명이 들려왔으니.

“꺄아아아아아악! 어머나 씨발! 깜짝이야!”

익숙한 목소리.

“…하연이?”

어느덧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에 비친 건 잠옷 차림의 정하연이었다.

정하연이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손가락질했다.

“너, 너 여기서 뭐하는데! 간 떨어질 뻔했잖아!”

“아니, 그건 나도…….”

“이 미친놈은 왜 옷도 안 입고 있어!? 야 이 미친 또라이 변태 새끼야!”

오랜만에 방언이 터진 정하연이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서주환은 얼떨떨한 얼굴로 마주 물었다.

“그러는 넌 왜 여기 있어?”

“보면 몰라?! 너 때문에 다 쏟았잖아!”

정하연이 빽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따끈따끈한 컵라면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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