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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한 편 더 있습니다
하렘 여행
한여름 무더운 햇살이 세상을 달구는 가운데.
꺄르르르!
어느 산속 계곡에서 청량한 웃음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캬! 이게 인생이지!”
널찍한 썬베드에 몸을 누인 서주환은 계곡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각기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여섯 명의 여자들이 웃고 떠들며 물장구 치는 모습이라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는 이게 바로 안구정화라며 그녀들을 구경하는 가운데 미리 챙겨온 음료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
식도를 얼려버릴 듯한 시원함!
고생고생하면서 아이스박스를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으따. 취한다.”
사실은 그냥 음료가 아니라 알코올이 첨가된 칵테일이다. 벌써 몇 잔 째 쉬지도 않고 들이부었더니 취기가 점점 올라왔다.
[계곡에서 술을 그렇게 마시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야 보통은 그렇겠지?’
서주환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로 답했다.
[하긴, 주인님께는 아이템이 있으니까요.]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들어가서 놀 때는 숙취를 해소하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된다. 그 즉시 알코올이 분해될 테니 걱정이 없었다.
‘이게 다 우리 루시 덕에 할 수 있는 행동이지. 사랑해, 루시.’
[…주인님은 사랑한단 말을 너무 남발하셔요.]
‘그래도 아무한테나 하지는 않는데?’
이래봬도 ‘좋아해’와 ‘사랑해’는 구분 지어 말하는 남자다.
그렇게 알딸딸하니 딱 좋은 기분으로 여자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묘한 경계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섯 명 사이에 은근하게 구분 지어져 있는 친분관계에 의한 경계선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연이랑 지경이, 수아는 걱정 없고. 가희는 율이랑 특히 친한 것 같고.’
대학 멤버들은 세 명이 모두 친하다. 그리고 민가희는 일전에 음악 관련 일 때문에 은율과 특히 친하다. 반면 최미화는 유일한 직장인이라서 여자들과 어울린 적이 없기 때문인지 조금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하연이가 챙겨주니까 다행이다.’
항상 까칠한 듯 틱틱대는 정하연이지만 천성이 착한 여자다. 특히나 그녀는 중학생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정사가 틀어지면서 고교생활을 홀로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처음 대학에 왔을 때는 어울리지도 않는 순한 화장을 하거나 담배 피우는 것을 숨기며 지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혼자 겉도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미화 언니, 들어오세요. 같이 놀아요.”
“아, 네.”
“말 놓으셔도 되는데… 지경이랑은 벌써 말 놨죠?”
“네? 아, 그게 원래는 말 안 놨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까…….”
“아하하. 그럼 저랑도 말 놔요. 우리 같은 방 쓰잖아요. 제가 언니라고 부를게요.”
“그, 그래. 알았어.”
서주환은 그 대화를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정하연이 처음 본 사람에게 저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가다니. 그녀치고는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제 이름을 들은 너구리가 한수아와 놀다 말고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헤이, 최 팀장! 여기까지 와서도 사무모드인 거야? 휴가 받은 의미가 없잖아!”
“…지경이 너는 말 높여. 존대 써. 내가 너보다 네 살 많은 거 알지?”
“에엥! 너무해! 꼰대!”
“꼬, 꼰대?”
“지경이 너! 언니한테 버릇없이!”
왠지 정하연도 같이 화를 내며 유지경을 갈구기 시작했다. 최미화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니 본인도 지레 찔린 것이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정하연은 물론 유지경도 최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하연이랑 미화랑 그림체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좀 냉막한 인상이기 때문일까. 얼핏 자매처럼도 보였다.
그는 이내 한수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막만한 키의 그녀는 오버핏의 개나리색 티셔츠를 입고선 사방을 뽈뽈거리고 돌아다녔다. 유지경과 놀다가도 정하연에게 가서 장난을 치고, 그러다가 방향을 돌려서 민가희와 은율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물을 철썩 하고 뿌려댔다. 하지만 이내 물에 젖은 민가희의 가슴께를 보고선 히익!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도망갔다.
“어엉! 미화 언니!”
제 풀에 상처받고 도망간 한수아가 찾은 사람은 최미화였다. 정하연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으응? 누구… 아, 수아 씨.”
“난 언니가 참 좋아!”
“어? 나?”
뜬금없는 고백에 최미화가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서주환은 그 고백의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웃음을 터뜨렸다. 한수아의 시선이 비교적 자신과 비슷한 크기인 최미화의 가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큭큭큭. 하여간 저 친화력은.”
명기(明氣)라는 재능을 가졌을 정도로 천성이 밝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한수아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근하게 잘 어울려 지냈다.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보던 루시가 말했다.
[다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착한 여자들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인원이 여섯 명이나 되면 알게 모르게 알력이 생길만도 하건만 이 여자들은 그런 게 없었다. 물론 한 남자를 두고 공유하는 사이이니 어느 정도 질투심이야 있겠다만 그게 악(惡)한 마음으로 발전할 만큼 독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하연 같은 경우에는 누구 한 명이 상처받는 게 무서워서 지금 같은 관계가 유지되길 바라는 쪽이었으니.
“나한텐 과분하지.”
문득 쓰게 웃으며 중얼거리니 루시가 말했다.
[과분한 게 아니라 어울리는 거지요. 본래 능력 있는 남자에게는 아름다운 여자가 많이 따르는 법. 저를 만드신 러스트 님이 있는 마계였으면 일부다처제 따윈 문제도 아니었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그래도 마신이랑 비교를 해? 주인이라고 날 너무 추켜 세워주는 거 아니야?’
[주인님께선 전생에 그만한 덕을 쌓았고, 또 지금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걸요?]
‘하하. 루시랑 대화하면 자존감이 팍팍 솟는다니까.’
언제 어느 때나 절대적으로 그의 편을 들어주는 루시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대화만 해도 자존감이 샘솟아서 우울해질 수가 없었다. 가끔은 거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빠! 다시 들어와서 놀아요!”
“서주환! 그렇게 놀자고 하더니 언제까지 쉬고 있을 거야!”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부름.
서주환은 남은 칵테일을 입에 몽땅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아이템을 사용하면서다.
[알코올을 분해합니다.]
[취기가 모두 해소되었습니다.]
맨 정신이 된 그는 계곡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한수아를 번쩍 들어서 목말을 태웠다.
“흐악?! 우, 우와아! 높다!”
비명을 지른 한수아가 순간 달라진 눈높이에 신난 목소리를 냈다. 항상 꼬맹이 취급을 받던 그녀가 언제 이런 눈높이로 사람들을 내려다봤겠는가? 이내 그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손에 든 물총을 여성들에게 겨누었다.
“받아라! 이 가슴괴물들!”
힘차게 쏘아진 물줄기가 민가희를 향해 날아갔다.
“좋아! 수아야, 전부 적셔버려! 속옷까지 다 비치게!”
서주환도 신나서 소리치며 물을 첨벙첨벙 가르고 이동했다.
“악! 눈에 들어갔어! 서주환, 뒤졌어!”
“왜 날?! 물총은 수아가 쐈는데!”
“다들 주환 오빠 공격해! 저 변태 오빠 옷 다 적셔서 벗겨버려!”
“어이, 너구리! 사심이 가득 담긴 것 같다? 대체 어느 쪽이 변탠데?”
서주환은 여성들의 집중공격에 금세 홀딱 젖었다. 참고로 한수아가 쏜 물총에 가장 많이 맞은 사람은 민가희와 정하연이었다.
*
서주환은 한참을 꺄르륵대는 여자들 틈에서 놀다가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빠! 나는 콜라!”
“난 사이다!”
“난 아무거나 좋은데 제로 탄산으로!”
계단을 오르는 그에게 여자들이 요구사항을 외쳤다. 그는 묘한 기분에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가져올 것이긴 했다만 네댓 명이 한꺼번에 외쳐대니 중학생 때 그에게 빵셔틀을 시키려던 연놈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았어!”
하지만 과거 연놈들에게 쌍욕을 하며 대들었던 것과 달리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서주환이다. 아무려면 애인들이 마실 음료수 하나 못 가져다주겠는가. 오히려 아이스박스를 두 개 챙겨올 걸 하고 후회가 들었다.
한데 그가 계단을 다 올랐을 쯤 저 아래에서 빠르게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 밑이 거뭇해서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다.
“율아, 조심해!”
“네, 네에!”
급히 뛰어오던 은율이 배시시 웃으며 속도를 줄였다. 그는 혹시라도 은율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뭘 그렇게 급하게 뛰어와?”
“후우, 하아. 오, 오빠 도와주려고요. 같이 가요.”
“혼자 해도 괜찮은데.”
“그, 그래도 혼자면 심심할 테니까…….”
은율이 다크서클 진한 눈으로 소심하게 눈치를 보며 웅얼댔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물기로 젖어서 엉망이 된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스타일 바꾼 거야?”
“아, 네. 회사에서 어울리는 머리를 찾아보자고 여러 가지로 시도하고 있어요.”
은율이 새로 한 머리는 태슬컷이라 부르는 것으로 목을 덮는 정도로 내려오고 어깨에는 닿지 않는 기장이다. 본디 이런 칼단발은 머릿결 상성에 따라 스타일을 내기가 힘든데, 그녀는 타고난 자연 생머리라 그런지 찰떡처럼 어울렸다.
“회사가 일 잘하는데? 예전보다 더 예뻐졌다.”
이전의 은율은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단발이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당연히 미용실에도 안 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 관리 차원에서 제대로 스타일을 잡아서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살아났다.
“난 단발 잘 어울리는 여자 좋아하거든.”
“그, 그래요?”
은율이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을 스스로 매만졌다.
“으응. 그럼 긴 머리하면 별로이려나. 계속 단발 할까요…?”
“그건 율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긴 머리든, 짧은 머리든.”
“하지만 좀 전에 단발 좋아한다고…….”
“단발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단발이 잘 어울리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원래 단발 잘 어울리는 여자가 진짜 예쁜 거라잖아.”
너 예쁘다고, 그런 의미로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하니 은율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기뻐서 나오는 웃음은 감출 수가 없는 듯 헤헤, 하고 맹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주환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걸음을 옮겼다. 살이 좀 올랐다지만 아직도 마른 감이 있는 그녀는 한 손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 잠 못 잤어? 다크서클이 진하네.”
“아, 그게, 원래도 눈 밑이 좀 그랬어서…….”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니고?”
“…요즘 좀 무리하긴 했어요. 저도 여행 오고 싶어서 연습 열심히 했거든요. 그, 그래도 심각한 건 아녜요. 정말 원래도 이랬거든요.”
“옛날에 아이돌 할 대는 안 그랬잖아?”
“그건 화장으로 가린 건데…….”
민망한 듯 말하는 은율. 아무래도 다크서클은 몸 상태보단 선천적인 문제인 듯했다.
서주환은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픈 게 아니면 됐다며 웃었다. 순한 머리 스타일과 어우러져서인지 다크서클이 음울한 느낌을 주기보단 귀여운 매력 포인트처럼 보였던 것이다.
“판다 같네.”
“네?”
“귀엽다고.”
“…헤헤.”
“웃기는.”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 보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큼지막한 아이스박스를 들고 온 후 냉장고 앞에 내려놨다.
“애들이 뭐 가져와달라고 했더라? 콜라랑 사이다…….”
“환타도 있었어요. 제가 담을게요, 오빠. 지경이는 제로가 좋다고 했고…!”
뭔가 도와줄 게 없나 안절부절 못하던 은율이 재빨리 다가왔다. 이내 그녀는 여자들이 요구했던 음료를 하나씩 골라 담기 시작했다.
서주환은 그런 은율이 귀엽다는 듯 웃다가 문득 그녀의 젖은 상의를 바라봤다. 계곡물에 한 번 빠지기라도 한 건지 그녀의 상의가 온통 젖어서 속옷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은 없답니다.]
‘하긴, 있을 리가 없지?’
다른 여자들은 모두 계곡에 있고, 저택을 관리하는 사용인들은 미리 이석찬에게 부탁해서 비워달라고 했다.
그는 슬금슬금 은율의 뒤로 다가갔다. 그녀는 처음 봤을 때의 뼈다귀 같던 모습과 달리 제법 보기 좋게 살이 올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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