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여자 두 명만 만나도 기 빨리는데 여섯 명이나 되니까 글에서 소음이 들리는 것 같네요. 으윽...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하렘 여행
서주환은 백미러로 슬쩍 뒷좌석을 살펴봤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일행들이 꺄르르 여성 특유의 하이톤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덕분에 노래도 틀지 않았는데 차 안이 무척 시끌벅적했다.
한데 여자들의 대화소리에 문득 그의 이름이 들려왔다.
“꺄하하하! 저 오빠가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 거짓말!”
“아하하! 주환이 쟤가 좀 오글거리는 데가 있다지만 그런 멘트를?”
유지경과 정하연이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에 한수아가 두 팔을 벌려가며 다시 말했다.
“진짜야! 환이 오빠가 그렇게 말했대! 그치 가희 언니? 언니도 그때 같이 들었잖아.”
“수아 말이 맞아. 율이 언니가 얘기해줬어. 율 언니, 맞지?”
“으, 으응. 그렇긴 한데…….”
은율은 혹여 서주환이 화내는 게 아닐까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이미 한수아와 민가희가 꺅꺅거리며 다 떠벌린 뒤였다.
한편 서주환은 자신의 이름을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라서 조수석을 돌아봤다.
“미화야, 쟤네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최미화였다. 그녀는 다른 다섯 명의 여자들과 치열한 가위바위보에 이겨서 조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데 최미화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들거리고 있는 게 누가 봐도 웃음을 참는 모양새였다. 이내 그녀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모르는 게 좋을 걸?”
“내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맞아.”
“뭔데, 알려줘.”
서주환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다. 이내 최미화를 통해 이야기의 전말을 들은 그는 시뻘개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으아악! 그 얘기 그만해!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여자들이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있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 대사가 모두에게 알려졌다니. 아무리 그라도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긴! 저 쓰레기!”
하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더 깔깔대며 그를 놀렸다.
“오빠 너무 스윗해요! 아니, 로맨틱해?”
“가희야, 그건 스윗이나 로맨틱이 아니라 오글거린다고 하는 거야.”
“프히히히. 아무튼 오빠, 그 대사 한 번만 다시 해줘요! 라이브로 듣고 싶어!”
“싫어!”
“왜요오! 나 오빠가 그 말 해주면 막 영감이 샘솟을 것 같은데! 곡 하나 뚝딱 나올 것 같은데!”
“절대 싫어!”
서주환은 질색하며 거절했다. 두 번 다시 그런 멘트는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한데 그가 한사코 거절하니 다른 사람이 나섰다. 장난기 많은 너구리가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성대모사를 하는 것이다.
“율아, 음악으로 날 반하게 만들어봐.”
억지로 흉내 낸 남자 목소리가 버터를 바른 듯 느끼하다. 대사를 마친 유지경이 장난스럽게 혀를 날름거리며 눈을 찡긋했다.
“요런 느낌?”
“꺄하하하핳!”
“아하하하하!”
서주환의 얼굴은 진즉 수치심으로 새빨개졌고 여자들의 폭소가 차를 가득 채웠다. 조수석에 앉은 최미화도 대놓고 웃진 않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떠는 게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고로 친구의 친구와 친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중간다리로 있는 친구를 함께 공격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여섯 여자들의 중간다리는 서주환이었고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화제가 이어졌다.
“그렇게 술에 취한 나를 저 오빠가 집으로 데려갔었다 이 말이지~.”
그 후에 자고 있는 서주환을 덮친 것은 유지경이었지만 그 부분은 쏙 빠졌다.
정하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별로 먼저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고자 한 손 보탰다.
“그때 신문지 게임을 했었거든? 그래서 주환이 쟤랑 신문지에 올라갔는데… 와 미쳐. 저 변태가 글쎄 발기를 하는 거야. 고작 몸 좀 맞닿았다고.”
“헐. 우리 오빠 그때는 순진했나 보네.”
“아닐 걸? 나한테는 막 품에 끌어안으면서 울어도 돼, 가희야… 이러면서 완전 스윗했어. 딱 봐도 선수였다니까?”
한데 여자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서주환이란 놈이 얌전히 당하기만 하는 남자가 아니란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그는 놀림 받기보단 누군가를 골려주는 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듣고 있던 서주환이 돌연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조수석에 있던 최미화였다. 불안함을 감지한 그녀가 힉, 하고 작게 숨을 들이키면서 뒤를 돌아봤다.
“얘들아, 주환이 운전하는데 이제 그만…!”
“어이, 너구리. 주인님한테 자꾸 까불래?”
그러나 말리기엔 한 발 늦었던 모양이다.
서주환이 사악하게 끌어올린 입꼬리와 달리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는 유지경이 헹, 하고 코웃음을 치며 까불어댔다.
“왜, 뭐. 내가 없는 말 했어? 설마 성대모사 좀 했다고 삐진 거야?”
“삐지기는. 네 말대로 없는 말 한 것도 아닌데 뭐.”
“그치? 오빠도 할 말 없지?”
“그럼. 사실이기만 하면 아무 말이나 입 밖으로 떠들어도 되지.”
“…으응?”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한 유지경이었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서주환이 딴딴하게 발성 잡힌 목소리로 모두에게 들리도록 물음을 던졌다.
“다들, 내가 왜 지경이를 너구리라고 부르는 줄 알아?”
그 한 마디에 유지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성적 취향을 아는 사람은 함께 플레이를 해본 한수아 뿐이다. 그나마 정하연 정도가 조금 눈치를 채고 있을까.
“자, 잠깐만, 오빠!”
“오빠?”
서주환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백미러로 유지경과 눈을 맞췄다. 유지경이 꼴깍 침을 삼키며 말을 정정했다.
“지, 집사.”
“집사?”
“…….”
“그러니까 내가 왜 지경이를 너구리라고 부르냐면…….”
“주, 주인님!”
유지경이 빽 소리쳤다.
서주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들었지? 우리 너구리가 SM플레이를 좋아하거든. 묶이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채찍으로 때려주는 건 아주 좋아…….”
“꺄아아악! 왜! 왜 말해! 주인님이라고 했잖아!”
“어쩌라고.”
유지경이 침몰했다.
이후로도 서주환의 폭로는 계속 이어졌다.
“안심해. 난 공평하니까.”
그리 말하곤 유지경 혼자만 쪽팔리게 두지는 않겠다는 듯 한 명씩 지목하며 썰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하연이가 아까 엠티 얘기 했지? 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게?”
“자, 잠깐만!”
“하연이가 바로 나한테 고백을 했지. 음. 그때 뭐라고 했더라…….”
“야아아!!”
정하연이 비명을 지르며 입을 닥쳤고.
“미화 얘가 겉보기에 시크하고 얌전해 보이지? 되게 지적일 것 같지? 하지만 사실은 음란물 중독자다~ 이 말이야. 떡 칠 때도 야동 보면서 그거 따라하는 게 취향…….”
“난 왜! 난 가만히 있었잖아!”
“난 공평하다니까? 그런 의미에서 수아 얘기를 해보자면.”
“나? 나는 부끄러운 거 없는뎅?”
한수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야 언제나 서주환을 좋아한다고 외치고 다녀댔다. 성적 취향도 딱히 걸릴 게 없었다. 설마 곰돌이 탈 쓰고 한 걸 말하는 건가? 그건 그녀가 아니라 서주환이 먼저 선물이라면서 제의한 것이었다. 물론 좋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서주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수아는 아홉 살 때까지 이불에 실례를 저질렀…….”
“와악! 와아아악!”
한수아가 악을 쓰며 손을 파닥거렸다.
그리고 막 민가희와 은율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하려는 찰나.
“오, 휴게소 도착했다. 가희랑 율이는 다음 시간에 할까?”
여섯 명의 여자가 새빨개진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
미녀 여섯 명이 우르르 차에서 내리니 이목이 집중됐다.
“연예인들인가?”
“걸그룹 아니야?”
“남자는 매니전가 보네.”
“그런데 남자 얼굴 봐. 잘 생겼어. 남자도 아이돌 같은데?”
서주환은 여자들에게 미리 챙겨온 선글라스를 하나씩 지급했다. 인식방해 효능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주환아, 일곱 명 다 선글라스 끼니까 더 튀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어. 그냥 껴. 괜히 누가 알아보면 더 귀찮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와 한수아는 이제 꽤 유명인이다. 인기 연예인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길 가다 마주치면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일행들은 간단히 밥만 챙겨먹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누군가 그를 채근했다.
“오빠, 그래서 가희랑 율이는?”
“맞아. 공평하게 둘 얘기도 해줘.”
이제는 자신들만 당한 게 억울하다는 듯 민가희와 은율의 얘기도 요구하는 여자들이었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다가 적당히 두어마디 얘기해주곤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출발한 뒤로 세 시간을 내리 달렸더니 어느덧 산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계곡이라더니 꽤 깊이 있나 보네?”
“그런가봐.”
“어우. 밤 되면 으스스하겠다.”
그 말에 서주환은 문득 장난기가 도져서 말했다.
“석찬이가 말해줬는데, 여기 나온대.”
“어? 뭐가 나와?”
“귀신.”
찰나,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우리 나이가 몇 살인데 귀신 얘기를.”
“맞아. 환이 오빠, 그거 지금 지어낸 거지? 누가 그런 거에 겁먹을 줄 알고?”
“아니, 진짠데? 꽤 자세히 들었어.”
“…정말?”
“응.”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긴 하지만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이석찬에게 들은 얘기였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여자들의 기색을 살폈다. 백미러로 보는 것이라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한수아는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볼까 하던 때였다.
“어! 저기가 목적지 아니야? 저거, 오두막!”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큼지막한 오두막 한 채가 보였다. 이석찬이 말한 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