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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56화 (45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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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하렘 여행

너무 파랗기만 한 하늘은 조금 살풍경한 느낌이다. 적당히 수놓인 구름쯤은 있어야 하늘도 올려다볼 맛이 나는 법 아니겠는가. 특히 솜을 쌓아 만든 듯한 뭉게구름이라면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뭉실뭉실한 마음이 피어오르도록 만든다.

“크으~ 여행 가기 참 좋은 날씨다.”

서주환은 손등으로 눈가를 살짝 가리며 화창한 하늘을 바라봤다. 벌써 8월 막바지, 여름의 끝물이다. 역대 최고 기온이라며 절정을 찍었던 날씨도 지난 태풍 이후 조금은 잠잠해졌다. 오히려 다소 늦은 여행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주인님, 축복 사용하셔야지요. 1시간 후면 적용시간이 끝난답니다.]

“아, 그렇지.”

서주환은 루시에게 고맙다 말하며 ‘몽마신의 축복’을 구매했다. 축복의 가격은 1일에 10만LP. 월 수급 포인트가 상당해진 지금도 상시 적용하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행을 가는 날. 심지어 그냥 여행도 아니고 여섯 명의 미녀들과 함께하는 하렘 여행이다.

이처럼 좋은 날 포인트를 아끼는 건 안 될 말이었다.

“환이 오빠!”

막 축복 적용을 마쳤을 쯤 계단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옆집에 사는 3살 연하의 소꿉친구 한수아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헥헥대고 있었다.

“이거, 너무, 무거워! 도와줘!”

그녀는 제 몸집만한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서주환은 혹여 한수아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얼른 계단을 올라가서 캐리어를 대신 들었다.

“휴우. 고마워, 오빠.”

“뭘 이렇게 많이 챙겼어?”

“헤헤. 이것저것 챙길 게 좀 많았어. 영상도 찍어야 되니까.”

“위튜브 찍게?”

“응! 지경이랑 하연 언니, 가희 언니도 도와주기로 했어.”

“그래? 율이랑 미화는?”

“미화 언니는 부담스러워서 싫대. 율이 언니는 계약 때문에 안 된다 그랬고.”

“하긴, 미화가 그런 거 좋아할 성격은 아니지. 율이도 조심해야 되는 게 맞고.”

은율은 머지않은 미래에 가수로 데뷔할 몸이다. 아이돌을 그만두었다고 해도 남자 한 명에 여자 여섯이서 가는 행이라니 가십거리가 되기 딱 좋다.

그때 한수아가 번쩍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 오빠는 영상에 나오면 안 돼!”

“그야 당연하지. 나 나오면 악플 엄청 달릴 걸? 혹시 찍히면 편집으로 다 쳐내.”

아무리 그가 한수아의 방송에서 좋은 이미지라도 이번 여행은 사리는 게 맞다. 스트리머에게 과몰입하여 연애까지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던가. 유명인들이 괜히 뒤에서 몰래 연애하는 게 아니었다.

‘규모가 커져서 그런지 분탕도 많이 늘었단 말이지.’

그럼에도 다른 방송보다는 클린한 편이지만 말이다. 작은 체구와 순진한 외양 때문인지 한수아의 시청자들은 그녀를 거의 여동생 내지는 딸내미 대하듯 했다. 남자 시청자들도 연애감정보다는 삼촌팬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정도다.

‘애초에 수아 방송은 여캠 리액션보단 게임이 주이기도 하고.’

S급 ‘게임’ 재능을 가진 한수아다. 그녀는 작고 순진한 외양과 어울리지 않게 어지간한 프로들도 씹어 먹는 게임 실력으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악질은 있는 법. 혹여 모를 사태는 미연에 방지하는 게 맞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가는 중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어, 주환아, 수아야.”

“야, 한수아! 너 이쒸!”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정하연과 역정을 내며 두다다 뛰어오는 유지경이다.

무서운 기세로 뛰어온 유지경은 도망가려는 한수아를 잡고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밤늦게까지! 얼마나! 전화를 해야! 어?! 너 때문에 잠을! 내가 잠을!”

“꿱! 꺅! 으악!”

“넌 잠도 없냐!”

“네, 네 시간이나 잤잖아. 왜 때려어!”

“이 꼬맹아! 네가 그렇게 잠을 적게 자니까 땅꼬마인 거야!”

“?!”

드디어 작은 키의 원인을 깨달은 한수아가 충격 받은 얼굴로 굳었다. 유지경이 콧김을 흥 하고 내뿜으며 한수아의 머리 위에서 손을 휘적댔다. 이 엄청난 키 차이가 보이냐는 제스처 같았다.

그를 지켜본 서주환과 정하연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냥 꼬마가 땅꼬마를 나무라네.”

“그러게. 지경이 쟤는 160도 안 되면서.”

“어어. 꼬마들 들으면 화낸다.”

“네가 먼저 시작했거든?”

“내가 욕하면 넌 애들 편 들어줘야지.”

“그게 뭐야.”

그렇게 낄낄대고 있자니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새 투닥거림을 마치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수아와 유지경의 시선이었다.

“둘 다 너무해!”

“맞아! 수아랑 비교하지 마! 자존심 상해!”

“…지경아?”

“뭐.”

“우쒸이!”

투닥거림이 다시 시작됐다.

서주환과 정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짐을 트렁크에 싣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바닥에 있는 짐을 자연스럽게 집어 드는 손이 있었다.

“어, 율아.”

“아, 안녕하세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느새 말없이 다가온 은율이었다. 배낭 하나만 메고 온 단출한 차림의 그녀는 오자마자 일을 도왔다.

정하연은 그런 은율의 행동이 좋아 보여서 작게 웃었다.

“율아,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마. 그냥 편하게 반말해도 돼.”

“네? 하지만 언니인데…….”

“그래봤자 한 살 차이인데 뭐. 율이 너 스물셋 맞지? 지경이랑 수아도 다 나한테 반말 해.”

“그게, 음, 그래도 역시 존대하는 게… 아, 언니가 싫다는 게 아니라! 저는 오빠한테도 존댓말 쓰니까요!”

“주환이한테도?”

정하연의 목소리에 그제야 은율을 본 서주환이 반갑게 손을 들어올렸다. 은율은 그 인사에 수줍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존대를 하고 있다더니 행동거지도 윗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깍듯했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연아, 율이는 존대가 편한 애야. 오히려 반말하라고 하는 게 더 곤란할 걸.”

“으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율이는 손윗사람한테 엄청 예의 바른 타입이구나.”

시대가 바뀌어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장덕훈만 해도 알고 지낸지 1년이 한참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누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하지 않던가.

은율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곤란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꼭 나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닌데…….”

물론 손윗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게 편한 것도 맞긴 했다. 하지만 은율이 서주환에게 존대를 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따로 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떠했던가.

그녀는 이미 엄청난 팬심을 가진 상태에서 서주환을 만났다. 그것도 보통 팬심이 아니다. 그녀는 ‘은아힐링’을 가리켜 삶의 버팀목이라 말할 정도로 각별히 여겼다. 그런 은율에게 서주환은 일종의 우상이었다. 한데 그런 우상이 평생 낫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정신병을 치료해주는 건 물론 포기해버린 가수의 꿈까지 되살려주었다.

이미 은율에게 서주환은 구원자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존재였으니… 이제 존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해질 지경이었다.

참고로 정하연에게는 쫄아서 존대를 한 것이다.

‘가희가 말했던 무서운 언니…….’

사실은 착한 사람인 걸 알고 있는데 얼굴을 마주하니 무서웠다! 이상한 카리스마가 있어서 편히 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정하연은 그런 은율을 좋게 봤다.

“자, 율아. 거기 무거운 건 나한테 주고 가벼운 거 들어.”

“괘, 괜찮아요. 제가 들 수 있어요.”

“에이, 그러다 다쳐. 말라서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이 생겨서는. 역시 연예인들은 관리를 엄청 하는구나~.”

“부, 부러져요?”

은율의 오해가 깊어져갈 즘.

“우와! 다들 벌써 모였어요?! 하연 언니 안녕! 수아 안녕! 지경이 안녕! 율이 언니도 안녕!”

다른 두 사람이 도착했다.

기타를 멘 민가희가 팔을 붕붕 흔들었고, 최미화는 그런 민가희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주환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쟤네 둘이 친한가?”

물론 오해였다.

“누가 얘 좀 떼어줘…….”

자세히 보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민가희가 일방적으로 최미화를 반쯤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최미화의 어깨에서 손을 뗀 민가희가 엄청난 기세로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목적지는 서주환이다. 민가희가 점프했고, 거대한 가슴이 출렁이며 그의 얼굴을 덮쳤다.

“우왁!”

“오빠, 보고 싶었어요!”

“웁! 우웁! 떨어져!”

서주환이 질겁하며 그녀를 떼어냈다. 그에 민가희가 충격 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저 안 보고 싶었어요? 헉, 혹시 내가 싫어졌어? 질렸구나! 역시 가슴 큰 여자는 쉽게 질린다던 친구 말이……!”

따악! 서주환은 꿀밤으로 민가희를 진정시켰다.

“악! 왜, 왜 때려요오.”

“안 싫어하니까 진정해. 오히려 좋아하지.”

“그쵸?!”

“그래, 그래. 얼른 가서 짐이나 실어라.”

“넵!”

서주환은 출렁출렁 뛰어가는 민가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저 사차원 천재 작곡가는 종잡을 수가 없다. 만날 때마다 텐션도 오르락내리락, 말도 존대와 반말을 오락가락이다. 어째 한수아와 유지경과 친해진 뒤로 그런 경향이 부쩍 더 강해졌다. 아니, 최근에 은율이 합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민가희는 제 편이 많아질수록 끝도 모르고 텐션이 올라가는 타입이다…….

“…왠지 벌써 지치네.”

“다 네 업보야. 감당해야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최미화의 말이었다. 재밌는 건 그리 말하는 최미화의 얼굴도 상당히 지쳐 보인다는 것이었다.

최미화가 주변에 모인 여자들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예쁘네.”

“응. 오늘 너 진짜 예쁘다.”

“몸매도 좋고.”

“미화 네 각선미가 끝내주긴 해.”

“개성도 넘쳐.”

“음음. 우리 미화가 개성이 넘치지. 낮에는 은테 안경이 매력적인 커리어우먼. 밤에는 음란물 좋아하는 욕쟁이 변태녀.”

“…….”

최미화가 입을 다물고 노려봤다. 칭찬해준다는 게 너무 갔던 모양이다. 서주환은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주환아.”

“넵.”

최미화가 안경을 매만지며 그를 올려다봤다. 많이 화났나 싶어서 눈치를 보는데,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이 칭찬해줘야 돼.”

“…응?”

“자존감 떨어진단 말이야. 저렇게 예쁜 애들 사이에 있으면.”

“…….”

“평소처럼 재밌자고 막 욕하면… 진짜로 받아들이게 돼.”

넬레토필리아를 가진 최미화는 음어와 막말, 욕설 등에 흥분한다.

그러나 뭐든 때와 장소가 중요한 법이다.

아무리 페티시가 있더라도.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욕설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흥분이 아니라 상처로 다가오고 말 것이다.

서주환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낄낄 장난스럽게 웃으며 최미화의 은테안경을 빼앗았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뭐, 뭐하는 거야.”

“크. 안경 벗으니까 요렇게 순진한 매력이!”

칭찬을 하랬더니 벌써 시작한 건가? 서주환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최미화는 어쩐지 창피해져서 얼른 손을 내밀었다.

“…내놔. 안 보여.”

“다시 요렇게 안경을 쓰면 시크하게 생긴 누님이! 이거 완전 사기 아닌가?”

“…….”

“심지어 혼자만 나보다 연상이야. 애들 다 나랑 동갑 내지는 연하인 거 알아? 지금 우리 미화 누님이 제일 유니크하다 이 말이지. 그러고 보니 안경도 혼자만 썼네? 캬, 이건 노린 거다. 역시 능력 있는 직장인답게 특수성을 잡았네.”

“…닥쳐.”

“응? 아직 칭찬할 거 수백 개는 더 남았…….‘

“닥치라고!”

최미화는 이게 놀리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구분이 힘들었다. 일단 화가 나니까 때려야겠다.

짜아악!

등짝 때리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덩달아 서주환의 비명도 울렸는데, 그를 들은 여자들이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헉.”

최미화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당황했다. 다들 끔찍이 서주환을 좋아하는 여자들인데 인사도 전에 등짝을 후려쳐버렸으니 눈총을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한데 여자들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뭐야, 주환이 너 무슨 짓 했어?”

“환이 오빠,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미화 언니, 오빠가 무슨 이상한 장난쳤어요?”

“일단 주환 오빠가 잘못한 게 분명해.”

서주환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여자들을 쳐다봤다.

“뭐야, 내 취급 왜 이래?”

그때 눈이 마주친 은율이 손을 내밀었다.

“오, 오빠. 괜찮아요? 얼른 일어나세요.”

“율아… 너밖에 없…….”

“자, 얼른 사과해요. 저도 같이 잘못했다고 할게요.”

“…….”

문득 서주환은 인생을 좀 잘못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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