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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한 편 더 있습니다
이 호구들아!
“…나도 여행에 따라가야 돼. 주환이만 설득하면 될 거야.”
정하연이나 유지경, 한수아와 같은 여자들의 의견은 후순위다. 결국 이 기묘한 관계의 중심에는 서주환이 있다. 그만 설득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터였다.
‘사실 여행에 꼭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정 서주환과 여행을 가고 싶다면 단둘이서 가면 될 일이다. 그녀도 구태여 어색한 사람들과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애초에 이 여자들은 모두 연적이 아닌가. 잠시 예상치 못한 배려에 감동할 뻔했으나 결국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었다.
‘지금 같은 관계가 언제까지고 유지될 수는 없겠지.’
여자는 여섯이고 남자는 서주환 한 명이다. 그런데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게 가능한 일인가? 최미화는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여섯조차도 최소한의 인원이 아닌가. 아직 톡방의 존재를 모르는 여자가 몇 명이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 자신만 해도 여섯 명 중 제일 늦게 톡방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정하연, 유지경, 한수아.’
우선은 이 세 명이 요주의 인물이다. 서주환과 같은 대학에 다니고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번만 해도 셋이서 여행을 따로 갈 계획을 세웠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수아 씨는 옛날에 한 번 본 적 있지.’
일 년도 한참 더 된 일이다. 일 때문에 들른 안양 카페에서 서주환의 친동생인 서주희와 소꿉친구인 한수아를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는 단순히 여동생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한수아는 어느새 서주환의 옆집에 딱 붙어서 살고 있었다.
최미화가 생각하기에 제일 강력한 경쟁상대는 한수아다. 그녀는 서주환과 가장 오랜 시간 알고지낸 소꿉친구이기에 유대감이 남다를 터였다.
반면 톡방 멤버 중 최약체는…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나는 주환이랑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나이도 제일 많아. 톡방도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다른 여자들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고…….’
한수아 외에 얼굴을 본 사람은 정하연과 유지경이다. 두 사람 모두 그녀보다 어리고 눈에 띄게 예쁜 미모를 갖고 있었다. 특히 정하연은 같은 여자들조차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스타일이 좋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최미화는 그리 읊조리며 약지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매만졌다. 서주환에게 받은 반지.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증거. 하지만 이 반지를 받은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 독하게 먹자.’
그녀는 침묵하고 있는 톡방을 바라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결국은 모두 연적이다. 잠시 순진하게 마음이 풀어질 뻔했으나 그 사실을 다시금 인지했다. 지금이 먼 옛날 조선도 아니고 일부다처제 따윈 불가능한 현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최미화는 서주환과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했다.
‘…그래도 데이트하는 동안에는 티 내지 말아야지.’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다. 괜히 곤란한 얘기를 먼저 꺼내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어색하게나마 애교라도 피워보자. 그렇게 기분을 좋게 만든 뒤 오늘 밤 침대 위에서 담판을 짓는 것이다.
*
- 수아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듣는 이의 고막을 터뜨려버리겠다는 듯 소리치는 민가희.
“흐악! 깜짝아!”
모든 사건의 발단인 한수아는 귀를 부여잡았다.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귀가 웅웅 울려댔다.
- 나도! 갈! 거야! 치사하게! 너희끼리만!
“아우으. 가희 언니, 바쁜 거 아니었어? 무슨 곡 만든다고 했었잖아.”
- 다 끝냈거든?!
“그, 그래? 벌써?”
- 너어, 수아 너어, 정말 그러는 거 아니야. 지경이도 나빴어. 하연 언니도 못됐어! 자기들끼리만 오빠랑 재밌게 놀려고─!
“오, 오해야. 언니들 다 바쁘다고 해서 신경 쓰일까봐 일부러 안 알린 거라구우…….”
- 안 속아!
“진짠데……. 요즘 가희 언니도 곡 작업한다고 나랑 안 놀아주고, 율이 언니도 막 회사에 감금됐다 그러고…….”
- 흥. 그럼 미화 언니는? 그 언니 이번에 휴가라고 했잖아. 어디 이것도 변명해보시지!
“그래서 미화 언니한테는 따로 까톡 보내려고 했는뎅?”
- 뭐야! 그런데 왜 나는?!
“아, 아니. 언니는 방금 이유 말해줬잖앙…….”
- 아무튼 나도 갈래! 나도! 갈! 거야!
“힉. 알았으니까 그만 소리 질러.”
- 한수아 이 배신자!
“우쒸. 자꾸 그러면 나도 언니가 하연 언니한테 못됐다고 한 거 이를 거야!”
- 그, 그건 안 돼…….
한편 정하연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저기, 하연 언니이…….
“율아, 웬일이야?”
- 그, 그게 있죠. 이번에 여행 가신다고 들었는데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 그으, 수아가 톡방에 메시지 올린 거, 삭제되기 전에 바로 봤거든요. 그래서…….
“아아. 수아가 실수로 올렸나보네.”
- 저, 저기, 그게, 죄송한 말인데요. 혹시, 저도 가고 싶다고 말하면, 너무 민폐일까요?
“어, 그게…….”
정하연은 조금 곤란한 투로 말을 흐렸다. 사실 그녀는 한수아처럼 다른 사람이 바쁠 거라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대학 멤버들끼리 가는 여행인데.’
서주환이 곧 자퇴를 할 예정이다. 이번 여행은 그 전에 마지막으로 가는 여행이 될 터였다. 그래서 자연히 대학 멤버들끼리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여, 역시 안 되겠죠…?
은율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는 게 훌쩍거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한 번 거절당했음에도 다시금 물을 정도면 은율치고는 굉장히 용기를 낸 것이었다.
정하연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일단 주환이랑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게. 애들이 허락하면 나도 좋아.”
- 저, 정말요?
“응.”
정하연은 생각을 조금 바꿨다. 당연하게 대학 멤버들끼리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미 이석찬, 장덕훈, 서주희까지 세 명이나 빠지지 않았던가.
“그래. 차라리 이번 기회에 우리끼리 좀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 난 율이 너랑도 친해지고 싶거든.”
- 저, 저도요! 저도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요. 아, 지경이랑 미화 언니도요!
“그래그래. 미화 씨한테도 말해봐야겠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니야.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끼리 잘 지내야지.”
정하연은 이 기묘한 관계가 평화롭게 지속됐으면 하고 바라는 쪽이다. 가능하면 누구 한 명만 서주환을 독차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 네, 네. 물론이죠. 저 절대로 질투 같은 거 안 해요. 오빠가 받아줬을 때부터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어, 어어. 그래…….”
정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서주환 이 쓰레기가 대체 무슨 말을 하면서 은율을 받아준 건지 의문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했기에 애가 이리도 저자세란 말인가.
한편 한수아와 정하연에게 소식을 들은 유지경은 한껏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랑 수아 둘 다 제정신이야? 와, 진짜 나 완전 어이없어. 둘 다 왜 이렇게 착해빠졌대? 난 당연히 언니랑 수아도 경쟁자 더 안 늘리려고 숨긴 건 줄 알았는데!”
두 사람과 달리 유지경은 견제의 의미로 여행계획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굳이 나서서 못된 짓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좋은 일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지나치게 호구 같아서 답답한 면이 있었다.
“지경아, 이제 와서 경쟁자니 견제니 해봤자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주환이 걔랑 얽힌 애들이 몇 명인데. 너도 그만 포기해.”
“맞아맞아. 지경이는 생각이 너무 복잡해.”
“바보 꼬맹이는 닥쳐!”
“나 꼬맹이 아니야!”
“그럼 바보는 맞다 이거지, 이 바보야? 수아 네가 제일 나빠. 듣자하니까 나랑 언니 의견도 안 묻고 미화 언니한테 말 할 생각이었다면서?”
“다 같이 가면 더 재밌잖아. 그리고 따돌리는 건 나빠.”
“그래, 지경아. 어차피 다들 톡방 멤버인데 다 같이 잘 지내면 좋…….”
“찐따 언니도 닥쳣!”
“…혼날래?”
“히, 히익! 포, 폭력 나빠!”
참교육을 당한 너구리는 볼을 잔뜩 부풀린 채 투덜댔다.
“그래, 나만 나쁜 년이다. 나만 나쁜 년이야. 이 호구같은 인간들. 우리 주인님은 어떻게 알고 이런 호구들만 잡아다가 꼬셨대니. 재주도 좋아. 아이고오, 나도 호구다, 호구. 내가 호구 너구리다아…….”
그렇게 바닥에 엎어져서 넋두리를 해보지만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났다. 이제 와서 혼자 반대해봐야 소용없었다.
정하연이 다가와서 미안한 표정으로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지경아, 그러지 말고. 응?”
“…….”
“미화 씨랑 네가 제일 친하지? 나는 아직 어색해서 그러니까 네가 톡방에 말 좀 올려봐. 같이 가자고.”
“캬아아아악!”
“아악! 얘, 얘가 물었어?!”
발끈한 너구리는 정하연도 문다.
우드득!
하지만 어깨가 뽑힐 위기에 처하면 눈이 돌아간 야생동물도 고분고분해지기 마련이었다.
“흑. 올리면 되잖아. 이 무식한 언니. 쫌만 더 했음 어깨 뽑힐 뻔 봤어…….”
“미, 미안. 그래도 네가 먼저 물었잖아.”
“어허엉! 그래! 나만 나쁜 년이다아! 이 호구들아!”
*
한편 최미화는 즐겁게 데이트를 마친 후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돼.’
베갯머리송사라는 말이 있다.
잠자리에서 기분이 좋아진 남편에게 아내가 바라는 바를 은근하게 속살거리는 행위를 말함이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이미 결혼을 한 언니들이 보증한 방법이었다.
다만 뻔히 알면서도 그녀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아, 흐악! 자, 잠깐! 주환아! 아!”
침대 위에서 주도권을 잡는 건 언제나 서주환이라는 사실이었다. 한바탕 몸을 섞고 나면 정신이 흐물흐물해지는 쪽은 서주환이 아닌 그녀였다.
‘그, 그래도 어떻게든 여섯 번 정도만 하면……!’
최미화는 몰아치는 쾌감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서주환이 아무리 괴물 같은 정력을 가지고 있어도 무한하지는 않을 터. 평소보다 한두 발만 더 뺀 후 애원하듯 속삭이면 마지못해서라도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물론, 그녀만의 착각이었다.
서주환은 지금껏 직장인인 그녀의 출근을 위해 사정을 봐주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보다 적당한 횟수로 관계를 가지고 후처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다. 체력, 기력, 피로회복에 관련된 아이템을 준다던가, 정성들여 마사지를 해준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최미화는 그의 정력을 잘못 판단했다.
어느덧 ‘성스러운 씨주머니’의 랭크도 A+. 이제 서주환은 ‘몽마신의 축복’이 없어도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세계제일의 정력가였다.
“……!”
최미화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쾌락지옥 속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벌렸다. 이미 열 번이 지났음에도 그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속삭였다.
“미화야, 휴가라고 했지? 그럼 며칠 푹 쉬어도 되는 거 맞지? 나 계속 한다? 해도 된다고 했지?”
최미화는 목소리가 안 나와서 도리질을 쳤다. 베갯머리송사고 뭐고 이러다 침대 위에서 떡 치다 죽고 말 것이다.
서주환은 그제서야 행위를 멈췄다.
“아, 그만해?”
“하아, 하윽. 흐으으…….”
최미화는 침대에 엎어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교성을 질러댔는지 목이 쉬어서 따끔거렸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머쓱한 얼굴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그,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랬어. 난 괜찮다고 하길래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엄청 무리한 거였구나.”
변명을 하자면, 그도 싫다는 최미화를 억지로 계속 범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더해도 괜찮다고 하여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행위를 멈추고 ‘성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목부터 부드럽게 매만져주었다.
“…….”
한편 최미화는 욕이라도 한 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스스로 자초한 일임을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기분 좋아서 어떻게 돼버리는 줄 알았어…….’
쾌락과 고통은 한 끗 차이. 괴롭지만 다시금 떠오르는 성적쾌락은 무척이나 중독적이었다. 도대체 누가 누굴 상대로 베갯머리송사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자!’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여기서 그냥 넘어간다면 홀로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다.
최미화는 굳게 마음을 먹고 서주환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주환아.”
“응.”
“그으… 너 이번에 여행 간다고 하던데.”
“응?”
“있지, 사실 나 많이 불안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가지고. 우리 잘 만나지도 못하잖아. 그리고 다들 친해 보이는데 나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서주환은 여자 여럿을 동시에 홀려서 인생 말아먹는 쓰레기인 주제에 은근히 마음이 약한 남자다. 그러니 꼬투리를 잡고 압박하기보단 차라리 인정에 호소하는 게 잘 먹히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때였다.
서주환이 아! 하고 감탄사를 발하더니 생글 웃었다.
“애들한테 들었구나. 우리 내일은 같이 비키니 사러 갈까?”
“…어?”
“이야… 여섯 명 다 같이 여행이라. 이건 나도 감당이 되려나 모르겠네.”
“?”
“그래도 석찬이 녀석이 별장 사용을 허락해줘서 다행이지 뭐야. 사용인들도 없다니까 우리끼리 마음 편히 놀 수 있을 거래.”
“??”
최미화는 잠시 후 까톡을 확인했다.
- 유지경: 이틀 뒤, 23일에 물 좋고 공기 좋은 계곡으로 여행갑니다. 고오급 펜션이라고 하니까 다들 수영복 지참해올 것. 톡방 멤버들 자유 참가. 강제 아님. 억지로 올 필요 없음. 시간 나는 사람들만 오세요.
‘좀 빨리 확인 할 걸…….’
어쩐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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