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53화 (45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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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석찬아, 미안하다

서주환에게 홀린 여성들의 모임.

여섯 명의 여성들은 단톡방에서 주기적으로 서로의 일정을 조율한다. 어느 날 누가 서주환과 만날 것인지에 대한 조율이다.

그러나 일정이 항상 계획한 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톡방 안에서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여자들끼리의 조율일 뿐 서주환의 의견이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예상치 못하게 외출을 하거나 일을 하러 나간다면 기껏 조율한 일정이 어그러지고 만다. 결국 모든 것의 주체는 서주환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리한 사람은 단연코 정하연, 유지경, 한수아처럼 서주환과 가까이 살고 있는 대학 친구들이다. 그녀들은 톡방에서 조율한 일정과 별개로 셋이서 따로 나누는 의견이 있다. 근처에 살고 있으니 보다 손쉽게 서주환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솜노필리아(수면 기호증)를 가진 유지경은 새벽에 몰래 들어가서 자고 있는 서주환을 덮치는 게 취미일 정도다.

“어으, 너구리 너…….”

“쪽. 헤헤. 깼어?”

“계속 몰래 와서 이럴래? 비밀번호를 바꾸던가 해야지 원…….”

“안 돼!”

“으억! 안 바꿀게! 안 바꿀 테니까 깨물지 마!”

이런 상황은 한수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옆집에 살게 된 이후로 틈만 나면 서주환에게 전력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다.

이를 테면 아침에 깨워달라는 다소 유아적인 어리광이다.

“수아야.”

“우응… 환이 오빠…?”

“한수아, 일어나. 아침이야.”

“졸려어… 오 분만 더 잘래…….”

“얼른 안 일어나면 덮친다.”

이렇게 말하면 한수아는 기다렸다는 듯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헤헤. 응, 좋아.”

“좋긴 뭐가 좋아, 이 녀석아.”

“졸리니까, 발로 해줄게. 환이 오빠는 내 발 좋아하지…?”

“아니, 그야 좋아하긴 하는데… 일어나라니까?”

“안 일어날래. 그러니까 빨리 덮쳐줘.”

서주환은 이불 안에서 꼬물대는 한수아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제 덩치보다 두 배는 커다란 이불을 차내고 보란 듯 발을 까딱거리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거 덮친다는 뜻을 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서주환은 괘씸하다는 생각에 그녀의 두 발을 잡고 뒤집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분홍색 곰돌이 잠옷을 모두 벗겨버렸다. 이후 아기처럼 뽀얀 속살을 마구 희롱했다.

“히익?! 화, 화니 옵… 꺅! 흐악!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한 차례 교육을 받은 한수아는 함께 목욕까지 마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서주환의 옆에 앉아서 재잘대며 그가 해준 아침밥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꿀꺽. 식사를 하던 그녀는 문득 헤헤 특유의 헤픈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우리 이러니까 꼭 부부 같다. 그치, 오빠.”

“…….”

그건 좀 어떨까 싶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걸 깨우고, 씻기고, 옷 입히고, 밥을 해서 먹였다. 성적인 부분만 제외하면 부부라기보단 아빠와 딸이 아닐까 싶은 아침이다.

“환이 오빠?”

“…어, 그러게.”

이렇듯 어리광을 부리는 한수아와 대비되는 인물상이라 한다면 명실공히 새침데기의 대명사인 정하연이 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일본어 공부할 차례였지?”

정하연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성실함으로 무장한 그녀의 하루 루틴은 서주환과 상당히 닮은 편이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영어와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이석찬에게 알바개념으로 받은 원고를 편집한다.

그 와중 쉬는 시간에는 서주환이 쓴 소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번역하면 좋을까 생각에 잠긴다. 그 생각은 이윽고 행동으로 이어져서 이름 있는 번역가들의 원서와 번역본을 탐구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성실함에 힘입어 그녀가 지니고 있는 학습(B+/A+), 문장력(B/A+), 어학(B/A+) 재능은 나날이 성장 중이다.

다만 이런 성실함이 꼭 ‘일’을 위한 공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Sophophilia(소포필리아) - 공부성애.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에서 성적으로 흥분하는 페티시.

“이, 이런 체위도 있구나…….”

정하연은 어학 공부를 할 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성(性)을 탐구했다. 그녀가 알아본바 세상에는 참 별의별 취향이 많았고,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성욕은 수많은 변태들의 탐구를 통해 오랜시간 동안 발전해 왔다.

이번에 꽂힌 것은 곡예 같은 체위와 더불어 다소 매니악한 코스튬 플레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메이드복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정하연은 오늘 저녁 서주환의 집으로 가서 슬쩍 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아할 것 같으면 스완(Swan)의 사장이자 전직 코스어인 윤서라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이다.

물론 언제나처럼 생각에서만 그치고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가 해달라고 한다면 못이기는 척 해줄 수 있지만, 이쪽에서 먼저 물어보는 것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무리였다.

*

한편 대학 친구인 셋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비교적 서주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한국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민가희는 S급 재능의 소유자답게 넘쳐나는 영감으로 연일 작곡을 하느라 바쁘다.

그녀는 오늘도 룸메이트인 윤슬기에게 막 작업한 노래를 들려주며 묻는다.

“이 곡 어때, 슬기야? 좋지? 막막 희망찬 느낌이지?”

그에 윤슬기는 퀭한 눈으로 대답한다.

“어어. 좋네. 대단하네. 희망이 막 샘솟네.”

“그치그치. 그런데 너무 과하진 않아? 좀 낮추는 게 좋을까? 응? 응?”

윤슬기는 피곤한 표정으로 다시 대답한다.

“응. 좀 덜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너무 과하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희망찬 걸 넘어서 성스러운 느낌을 바란다면 다소 과한 게 좋지 않을까? BGM은 소설을 읽을 때 몰입할 수 있도록 거들어주는 용도니까 결국 내용이랑 맞물리는 게 중요한데 그렇다면 작가의 필력에 따라서 곡의 과한 느낌도 충분히 커버가 될 수 있을 테고 주환 오빠는 글을 엄청 잘 쓰니까 차라리 아예 더 힘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아.”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낸 민가희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윤슬기를 바라본다.

“슬기는 어떻게 생각해?”

윤슬기는 찰랑거리는 파란 머리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냥 알아서 하면 안 될까? 어차피 네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묻는 거야…….”

“슬기야, 이 부분 좀 기타로 쳐주라. 역시 직접 연주를 들어봐야겠어.”

그러나 민가희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른 소리를 한다.

윤슬기는 울컥 저 파란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는 욕구를 참으면서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내 말 듣긴 했니? 그리고 가희야, 난 기타 싸개가 아니거든? 잠 좀 자자… 그보다 너, 리액트에서 의뢰받은 곡은 다 만들고 그러는 거야?”

민가희는 최근 우연찮게 리액트 엔터과 면을 트고 실력을 인정받아서 외주를 받았다. 서주환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지도 교수의 유학 권유마저 거절한 그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이다. 그녀는 아직 학생 신분임에도 착실히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딸칵.

민가희는 걱정스럽게 묻는 윤슬기에게 보란 듯 엊그제 완성한 곡을 들려주었다. 이미 곡 주인이 될 사람에게 컨펌까지 모두 통과한 곡이다.

이내 곡을 들은 윤슬기가 질린 표정으로 내뱉는다.

“…괴물 같은 년.”

순식간에 귓가를 사로잡는 멜로디에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BGM 위주의 곡만 작업하더니 어느새 유명 기획사와 계약하고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곡의 퀄리티는 또 어떠한가. 그냥 작곡만 한 게 아니라 한때 가수 지망생이었다는 걸 어필이라도 하듯 가이드보컬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그냥 이대로 음원을 발매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우히히. 칭찬 고마워.”

“…마냥 칭찬은 아닌데.”

“어, 어? 그럼 욕한 거였어? 나 뭐 잘못했어?”

“아니, 아니야. 칭찬 맞으니까… 됐어.”

윤슬기는 피곤한 얼굴로 민가희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귀찮기 그지없지만 그녀의 해맑은 얼굴이 퍽 보기 좋았던 탓이다.

한때 재능 없음에 좌절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무너져가던 민가희는 이제 없다. 그녀는 돌고 돌아서 재능을 찾았고 넘쳐나는 재능을 하루가 다르게 꽃피우고 있었다.

윤슬기는 문득 작년 2월을 회상했다.

‘그때 클럽에 데려가길 잘했지.’

우울해하고 있는 민가희의 기분을 풀어주겠답시고 몇 번 가보지도 않은 클럽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만난 인연으로 인해 민가희는 물론 그녀의 인생도 달라졌다. 민가희는 한 남자를 만나서 자신의 재능을 찾았고, 윤슬기는 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참고로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이정훈과 결혼을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잠시 2월의 그날을 회상한 윤슬기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래, 어울려주자. 졸려 죽겠지만 기타연주 까짓 거 몇 번 못해주겠는가. 사실 민가희가 그녀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의 게임 BGM 작업을 적잖게 도와준 터라 연주를 거절할 입장이 아닌 것도 있었다.

그렇게 악보를 내놓으라고 말하려는 때였다.

“……!”

휴대폰을 바라보던 민가희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

은율은 오늘도 리액트 엔터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아니, 출근을 했다는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게 아니라 그저 사옥 내에서 눈을 떴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녀는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해진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빠 보고 싶다…….”

한때는 서주환과 밤 산책을 함께 할 정도로 가까이 살았던 그녀지만 지금은 리액트 엔터와 계약한 후 맹연습을 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리액트 측에서 나날이 발전하는 은율의 재능을 알아보고 집중케어를 시작한 탓에 기획사 건물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벌써 일주일 동안 서주환을 만나지 못했다. 점차 사라져가던 정신병이 다시 도질 것만 같은 일상이다.

‘물론 유진 쌤이 신경 써주는 건 감사하지만…….’

성유진은 그녀의 전담 트레이너다. 본래라면 개인을 전담하여 이토록 교육하는 일이 없는 사람인데 서주환의 인맥으로 여차저차 하다 보니 재능을 인정받고 완전히 제자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은율은 서주환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실력이 늘고 있었다. 본래 내년 후반기는 되어야 음원을 낼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이 점점 앞당겨지는 중이다. 이게 모두 성유진이 개인 시간까지 모두 할애하여 은율에게 정성을 쏟은 덕분이었다.

다만 그 정성이 너무 과한 게 문제다.

성유진은 불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열정이 지나치게 넘쳐서 소심한 은율과는 대척점에 있는 성향이었다.

은율은 사건의 발단인 열흘 전을 떠올렸다.

- 율아, 미안하지만 내가 조금 있으면 투어 다녀야 해서 너를 가르쳐줄 시간이 없어. 당분간은 혼자서 해야할 것 같아.

은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너무 강행군으로 달리느라 지쳤던 참이다. 무엇보다 서주환이 너무 보고 싶었다. 힐링 필요했다. 이럴 때 찾아온 휴식이니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유진은 휴식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 그러니까 투어 전까지 더 열심히 가르쳐줄게! 오늘부터 당장 회사에서 숙식하면서 지내자. 걱정 마. 내가 회사에 다 말해놨어. 보컬 트레이닝은 지금까지처럼 내가 해줄 거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모두 신경 써 줄 거야.

그렇게 합숙 비슷한 게 시작됐다. 분명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왔던 것 같은데 갑자기 회사에서 건강관리까지 신경 써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식단과 운동까지 사옥 내 시설을 통해 관리를 받는 중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강제가 아닌 말 한 마디로 거절이 가능한 제의였으나 소심한 은율은 차마 호의로 건네온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오빠가 보고 싶어…….”

은율은 훌쩍이며 휴대폰을 찾았다. 언젠가 삶의 버팀목이라 말했던 소설을 읽기 위함이다. 이미 최신화까지 모두 읽었지만 애타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한 번 더 읽을 셈이었다.

그렇게 휴대폰 잠금 화면을 풀고 어플에 접속하는데.

- 한수아: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은율은 무언가 잘못 보았나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

무언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찰나 간 어떤 메시지가 나타났다가 수초 만에 지워졌다.

은율은 얼핏 봤던 문장들을 되뇌었다.

“지경이랑 하연 언니 이름이 있었던 같은데… 수영복? 환이 오빠면… 주환 오빠? 어?”

은율은 한동안 눈을 깜빡이며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이내 울상을 지었다.

“나두… 나두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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