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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부득이 휴재를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공지를 올립니다ㅠㅠ
다만 조아라의 공지란 접근성이 안 좋은 듯합니다.
앞으로는 본편에 공지를 올려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석찬아, 미안하다
이석찬이 입으로 우웩 소리를 내며 말했다.
- 드러운 새끼야.
“농담이다. 사실 반신욕 중이야.”
손을 휘저으니 첨벙 소리가 났다. 반신욕 중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는데, 이석찬은 똥 떨어지는 소리 아니냐며 과장되게 질색하는 투로 낄낄댔다.
서주환은 숨죽인 채 킥킥거리는 두 여자에게 다시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후 말했다.
“아무튼 여행이 어쨌다고?”
- 엉. 그게, 암만 생각해도 지금 몸 상태로 여행 가는 건 무리겠더라고. 방학도 열흘 밖에 안 남았고.
“…….”
글쎄. 예상컨대 병문안을 갈 때마다 조금씩 ‘성스러운 손길’을 사용하면 일주일 안으로 완치가 될 것이다. 방학이 열흘 밖에 안 남았으니 조금 빠듯하긴 해도 2박 3일로 여행을 가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스킬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서주환은 대체로 긍정하며 답했다.
“아픈데 별 수 있냐. 혹시 빨리 낫게 되면 그때 상황 보고 가자.”
- 아무리 빨리 나아도 방학 중에는 무리지. 통원 치료만 두 달 하라잖아.
“그럼 방학 끝나고 가던가. 2학기에 월요일 공강이거든. 주말 껴서 가면 돼.”
- 그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그보다 너 학교 계속 다닐 거임? 걍 자퇴 하라니까.
이석찬의 말에 반응한 건 서주환이 아니라 한수아와 유지경이었다. 스피커 모드로 대화를 듣고 있던 터라 두 여자는 ‘자퇴’라는 단어를 고스란히 들었다.
“환… 웁.”
휘둥그레 눈을 뜬 한수아가 입을 열려다가 유지경에게 제지당했다.
서주환은 혹시 이석찬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까봐 얼른 입을 열었다.
“고민 중이야. 결정하면 알려줄게.”
- 흠. 뭐, 알아서 해라.
“용건은 그게 끝이야?”
- 아니. 얘기가 잠깐 샜는데… 내가 별장에 이미 말을 해뒀었거든? 너희 끌고 가려고.
“별장이면 어제 말했던 계곡?”
- 어. 사용인들한테 조만간 갈 거니까 관리 좀 해두라고 했음. 아마 며칠 전부터 준비 중이었을 거임.
그러고 보니 이석찬이 여행 얘기를 꺼낸 건 어제가 처음이 아니다. 친구들의 일정을 모두 꿰고 있는 그이니 미리부터 준비를 한 듯싶었다.
- 그런데 내가 다쳐서 못 가게 됐잖아. 기껏 준비 다 해놨는데 아깝더라고.
“그래서?”
- 아까우니까 너희끼리라도 다녀오라고.
“음.”
서주환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답했다.
“글쎄다. 덕훈이 녀석도 지금 글 쓴다고 바쁘던데 시간이 될까 모르겠다. 주희 고것도 요즘 시에서 주관하는 영상편집 교육 받는다고 바빠 보이고. 덕훈이 안 가면 안 따라올 것 같은데.”
- 그런가? 그럼 아예 취소해?
서주환은 그러라고 답하려 했다. 일행 중 절반이 빠지는데 놀러 가봐야 무슨 재미겠는가.
하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말을 멈췄다.
‘어, 잠깐만.’
이석찬과 장덕훈, 서주희가 빠진다면 그를 제외한 인원은 정하연, 유지경, 한수아다. 즉, 모두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들이란 뜻이다.
한수아와 유지경도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있다. 여행을 취소하지 말란 뜻이리라.
서주환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어, 음. 일단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다녀올게. 너 나으면 다 같이 한 번 더 가자.”
- 오케이. 그럼 주소 찍어드림.
“어어. 그래. 고맙다.”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석찬아, 미안하다.’
조금만 더 아프고 있어라.
치료는 여행 다녀와서 해줄게.
*
3일 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서주환의 집에 여행을 가기로 한 인원들이 모였다. 그는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여자친구 세 명이랑 동시에 여행이라…….’
2박 3일 여행. 남자 한 명에 여자 셋.
일반적으로는 나올 수 없는 구성이다.
그러나 서주환의 세 여자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 넘어 매우 절친한 친구들이다. 그녀들은 이 해괴한 인원구성에 전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나마 여름을 즐기겠다며 저들끼리 수영복을 사러가겠다고 계획을 짜고 있었다.
물론 정하연에게 한 마디 듣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들 있는 데서 건드리면 때릴 거야. 알아들었어?”
무척이나 방어적인 태도로 말하는 정하연이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정하연은 벌써부터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미래란 서주환과 세 여자가 끈적하게 뒤얽히는 광경이다. 이미 그가 한수아, 유지경과 쓰리섬이라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내숭 떨 단계는 지났다지만!’
벌써 서주환과 육체관계를 갖게 된 지 1년이 훨씬 지났다. 그동안 온갖 체위로 격렬한 사랑을 나눠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4P는 아니지 않은가! 문란함의 정도를 넘어섰지 않은가!
그녀는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진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반면 서주환은 그런 정하연의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더 음흉하게 웃었다.
“알았어. 너는 애들 앞에서 안 건드릴게.”
“…어째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묘한 말에 정하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주환은 실실 웃으며 유지경을 돌아봤다.
“우리 너구리는 어때?”
그 말에 유지경은 두어 번 눈을 깜빡이다가 힐끗 정하연을 쳐다보더니 이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기가 동한 너구리는 만면에 심술을 드러내며 서주환의 팔을 꼭 껴안았다.
“난 상관없어. 하연 언니만 손해지 뭐.”
정하연의 눈썹이 꿈틀 들썩였다.
“뭐? 내가 왜 손핸데?”
“언니는 우리 있을 때 안 할 거라면서? 난 여행 내내 오빠 옆에 붙어 있을 거거든. 그럼 뭐…….”
기회가 없을 테니 손가락 빨면서 구경이나 해.
말로 하지 않았음에도 어찌 뜻이 전해지는 것일까.
정하연은 울컥 짜증이 난 눈으로 유지경을 쏘아봤다.
하지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한수아가 한 점의 흑심 없는 얼굴로 추가타를 넣는다.
“나도, 나도 계속 환이 오빠 옆에 있을 거야. 요즘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어!”
그녀는 서주환의 뒤에서 매달리듯 앵기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수아 많이 서운했어?”
“응! 엄청! 엄청 서운했어!”
한수아는 그저 서주환이 좋다. 세상에 태어나고 생각이란 걸 시작했을 때부터 키워온 사랑이다. 그녀에게는 다만 서주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일이었다.
한데 최근 서주환은 너무 바빴다.
갑자기 위튜브 컨텐츠를 찍겠다며 춤을 배우러 다니던 서주환. 프로 댄서가 되기라도 하려는 건지 매일 같이 댄스 스튜디오에 나가서 함께 놀 시간이 없었다.
겨우 댄스 강습을 마친 후에도 마찬가지다.
서주환은 갑자기 나타난 은율을 케어하는가 싶더니 웬 연예기획사에 가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도 좋다.
한데 노래연습이 어느새 연기연습으로 변했다. 갑자기 오디션에 나가겠다며 연기훈련에 매진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하더니만 영화촬영을 해야 한다며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기획사에서 숙식을 하기 시작했다. 기껏 서주환의 옆집으로 이사 온 의미가 사라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육체관계는 재주 좋게 이어나갔지만… 섹스는 결국 성적인 만족일 뿐이지 않은가.
“요즘은 나랑 게임도 잘 안 해주잖아. 방송도 잘 안 켜고! 위튜브만 올리고!”
한수아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타입이다. 서운하면 서운하다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새침데기인 정하연과는 꽤 대비적이다.
한수아는 서주환의 정수리를 턱으로 꾹꾹 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환이 오빠 이제 자퇴할 거라면서. 또 뭔가 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럼 얼굴 보기 더 힘들어지잖아…….”
“아니, 그건 아직 고민 중이라니까.”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정하연이다. 놀림을 당해서 못마땅하게 찌푸리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주환이 너 자퇴할 거야? 수아랑 지경이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그리 말하는 정하연의 표정에 당황과 서운함이 비쳤다.
서주환은 그녀가 오해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어제 석찬이랑 술 마시다가 갑자기 나온 말이야. 수아랑 지경이도 오늘 우연히 들은 거고. 아직 결정된 거 없어.”
“그럼 자퇴는 안 하는 거야?”
“그건…….”
서주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어느덧 자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당연히 대학을 졸업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졸업장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무의식중에 그와 친구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대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귀 전 사람과의 인연을 제대로 맺어본 적이 없기에 한 얕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정하연을 비롯한 여성들은 물론 이석찬과 장덕훈까지. 고작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고 끊어질 얕은 인연이 아닌 것이다.
- 뭐 어때. 학교 안 간다고 너희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나온 이석찬의 말을 듣고서야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학에 다닐 이유가 없다.
정하연은 그런 서주환의 표정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퇴해도… 계속 여기 있는 거지?”
“어?”
서주환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정하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탓이다.
아주 찰나간의 침묵.
정적을 깬 것은 유지경이었다.
“언니,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야? 당연히 여기 있겠지. 그냥 학교 갈 시간에 소설이나 더 쓰려는 거 아니겠어? 그치, 오빠?”
유지경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서주환은 잠시 움찔했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그럼. 내가 너희를 두고 어딜 가. 그냥 뭐, 내가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은 거 알잖아? 글도 쓰고, 노래랑 춤도 배우고, 최근에는 영화촬영까지 했잖아. 그걸 학교 다니면서는 다 못하겠더라고.”
그제야 정하연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그치? 갑자기 자퇴한다고 하니까 놀라서 말이 헛나왔어.”
“으이그. 바보 언니.”
유지경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경이 너 자꾸 까불어? 적당히 안 하면 혼난다.”
정하연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봤다.
“아악! 폭력 반대!”
“어, 언니. 난 암 말두 안 했엉.”
어깨를 잡힌 유지경이 비명을 지르고 덩달아 한수아가 쫄아서 변명했다.
한편 서주환은 투닥거리는 세 여자를 보며 눈꼬리를 긁적였다. 왜 조금 전 자신은 변명처럼 말했던 걸까. 그게 가감 없는 사실이거늘.
그러다 서주환은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어서 흠칫 눈을 크게 떴다.
- The World(세계, 우주). 완성, 약속된 성공, 나그네. 방랑벽 한 번 참 대단하네요. 무슨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겠다는 건지. 또 이런 운명을 지닌 사람이 고작 대학생활을 하겠다고 숨죽이고 있다니.
가브리엘라의 예언. 그녀가 말했던 변화와 전환점.
어쩌면 그 전환점은 ‘자퇴’가 아닐까.
‘그럼 정말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되는 건가?’
서주환은 문득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조금 전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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