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50화 (4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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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친구들

천하장사도 졸린 눈꺼풀만큼은 무겁다고 하던가.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눈을 뜨는 건 어제나 고된 일이다.

정하연은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거리다가 결국 잠에서 깨어났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눈가를 간지럽힌 탓이다. 창밖으로 얼핏 보인 풍경은 간밤의 폭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따사로웠다.

그녀는 익숙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곤해…….”

늦은 새벽까지 격렬한 시간을 보낸 탓일까.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어쩐지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은 중량감도 느껴지는 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듯했다.

그러다 정하연은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얘가 진짜.”

중량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서주환의 다리가 그녀의 배 위에 올라와 있던 것이다.

정하연은 빨리 비키라는 의미로 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으음.”

하지만 그는 한 번 앓는 소리를 내더니 오히려 반 바퀴를 뒹굴어서 그녀의 몸 위로 몸을 포개었다. 그리곤 몇 번 뒤척이며 자세를 잡더니만 아예 그녀가 죽부인이라도 된 듯 끌어안았다.

“음.”

“…뭐가 음, 이야?”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입매가 아주 얄밉기 그지없다.

정하연은 샐쭉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조금 전처럼 그를 깨우진 않았다. 너른 품에 안겨있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있다가 깨워야지.’

딱 십분만 봐준다. 그리 마음을 먹은 그녀는 꼬물꼬물 움직여서 안겨 있기 편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머리맡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가져왔다. 서주환의 연재 작품인 ‘은아힐링’으로 아침잠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어플에 접속하는 중 문득 드는 생각.

‘설마 나 때문에 연재 못한 건 아니겠지?’

서주환이 어제 글을 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침부터 그녀와 실랑이를 하다가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 정선애의 묘소에 간 탓이다.

하지만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다. 미리 예약 업로드를 해둔 건지 무려 세 편이 업로드 되어있었다. 평소에 비축분을 많이 쌓아뒀다는 뜻이겠지.

정하연은 비축분이라고 하니까 또 한 명의 작가가 떠올랐다.

‘덕훈이는 하루하루 죽어가던데.’

드디어 유료 연재 작가가 되었다며 기뻐하던 장덕훈은 하루가 지날수록 눈 밑이 퀭해지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어제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묘소에 함께 다녀온다고 마지막 비축분까지 털어낸 터라 위기가 닥친 상황이다. 정하연의 입장에서는 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반면 서주환은 어떻게 되먹은 인간인지 하루에 기본 세 편 이상을 연재하면서 노래, 춤, 그림에 이어서 최근에는 영화촬영까지 했다. 그 와중에 여자들과의 육체적 관계는 빼먹지도 않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괴물 같은 능력이었다.

정하연은 ‘은아힐링’을 최신화까지 일독한 후 밀린 까톡을 살폈다. 우선은 여섯 명의 여자가 있는 단체톡방이다.

- 유지경: 아! 섹스하고 싶다! 누구는 좋겠다!

“콜록.”

첫 문장을 읽자마자 기침이 저절로 나왔다. 시간대를 보아하니 어제 그녀가 서주환에 집으로 넘어왔을 쯤 올라온 까톡이었다.

- 최미화: ?

난데없는 헛소리에 물음표를 띄우는 최미화.

- 한수아: 지경이카 마니 취해써요 조ㅣ성해여

누구보다 취해보이는 한수아.

- 민가희: 오늘 누구 차례인데요? 나도 하고 싶다.

한 마디 보태는 민가희.

- 은율: 저는 오빠 얼굴이라도 보고싶어요…….

어쩐지 우는 표정이 그려지는 은율까지가 서주환에게 꾀인 톡방의 멤버다.

정하연이 어제 저녁부터 늦은 새벽까지 격렬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다섯 명의 여자는 대화를 참 많이도 나눴다.

- 유지경: 섹스!

- 최미화: 오늘 지경 씨 차례 아니에요?

- 유지경: ㄴㄴ오늘은 원래 수아 차례! 그런데 한 차례씩 밀렸으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두세요.

- 최미화: 왜요?

- 유지경: 수아가 하연 언니한테 양보했어요. 이유는 말하기가 좀 그래요.

- 최미화: 그럼 수아 씨는 건너뛰는 게 어때요?

과연 유일하게 직업이 있는 커리어우먼이라고 해야 할까. 최미화의 말은 제법 칼 같은 면이 있었다. 멋대로 양보했다면 다른 사람한테까지 피해주지 말고 확실하게 해라, 라는 의미일 테지. 정론이지만 말하기 불편한 주제일 텐데 그녀는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 한수아: 안ㄷ제ㅓ요ㅜㅠ

그에 비해 한수아는 술 냄새가 잔뜩 나는 눈물을 흘렸고.

- 민가희: 나는 수아 차례 건너뛰는 거 찬성! 나도 빨리 하고 싶단 말이야. 율이 언니는?

푸르른 머리빛깔처럼 뇌가 조금 청량한 민가희는 본능에 의거해서 최미화에게 찬성했다.

한편 질문을 받은 은율은.

- 은율: 어, 그게 나는… 사정이 있는 거 같은데 하루쯤은 더 참을 수 있어.

눈치를 보는 건지 본래 성격이 착해서인지 조심스레 한수아를 두둔했다.

그렇게 까톡방에선 한수아의 차례를 건너뛰느냐 하루씩 통째로 미루느냐로 갑론을박이 오갔다.

정하연은 어지러운 대화내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아는 어차피 옆집 사는데 그냥 낮에 하면 되지 않나?’

그 와중 주제가 바뀐 건 술에 취한 유지경의 폭탄발언에 의해서다.

- 유지경: 그냥 수아는 나랑 같이 하자. 그럼 해결이지?

- 한수아: 지켜이가 체고냐ㅠㅠㅠㅠ 사아헤

술에 취한 한수아는 좋다며 덥석 받아들였고.

당연하게도 까톡방이 뒤집어졌다.

- 최미화: 이게 무슨 말이야. 셋이서? 쓰리썸 하게요? 아니, 한 적 있어요? 주환이가 좋아해요? 아니, 당연히 좋아하겠지. 그 변태 자식.

- 민가희: 헐. 모야, 그거 나도 할래. 지경이랑 수아만 재밌는 거 하고.

- 은율: 우와…….

각자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발언이다. 아니, 최미화는 잘 모르겠다. 아직 톡방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파악이 조금 덜 됐다.

정하연은 계속해서 까톡을 읽었다.

- 민가희: 율이 언니, 나랑 같이 할랭?

- 은율: 그건 좀…….

- 민가희: 내가 싫어?

- 은율: 아니 가희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역시 그런 건 좀…….

- 민가희: 됐어. 나도 안 해. 언니 미워.

- 은율: 가희야?

- 은율: 가희야!

- 은율: 가희야, 갠톡 좀 봐줘ㅠㅠ

- 민가희: 장난이었지롱ㅎㅅㅎ

- 은율: ;ㅅ;

- 최미화: …….

[최미화 님이 대화방을 나가셨습니다.]

[민가희 님이 최미화 님을 대화방에 초대했습니다.]

- 민가희: 언니, 왜 나가요?

- 최미화: 정신 나갈 것 같아서요.

- 유지경: ㅋㅋㅋㅋㅋㅋㅋ

- 유지경: 미화 언니, 익숙해지세요.

- 최미화: 이걸요?

- 유지경: 견뎌

- 민가희: 견뎌!

- 한수아: ㄱᅟᅧᆫ댜

- 최미화: 내가 이상한 거야?

가장 최근에 톡방에 들어온 최미화가 혼란에 빠졌다.

정하연은 최미화의 말마따나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메시지를 껐다. 그리고 또 다른 톡을 확인했다.

유지경에게 온 개인 메시지였다.

- 유지경: 좋아?

- 유지경: 좋겠지?

- 유지경: 좋을 거야, 아무렴.

- 유지경: 언니야, 나 지금 가도 돼?

- 유지경: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하면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 유지경: 치사하다, 치사해. 혼자 다 해먹어라.

- 유지경: 언니, 미안. 술 먹고 취해서 쓴 거야. 잘못했어.

한참 전에 온 메시지인지라, 정하연은 굳이 답장하지 않기로 했다. 유지경의 성격상 읽씹을 당하면 혼자 제 발 저려서 눈치를 볼 것이다. 그때 괜찮다면서 달래주면 된다. 미리 괜찮다고 하면 금세 기고만장해져서 까불 게 뻔했다. 이제는 유지경에게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게 된 정하연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까톡이 와있었는데, 문득 가장 윗줄의 최신 까톡이 바뀌었다. 그녀를 비롯한 일명 서주환 일행이 다 모여 있는 톡방이다.

- 이석찬: 혹시 일어난 사람 있음?

- 이석찬: 어 1 사라졌다 누구임?

- 이석찬: 누구든 간에 좋으니까 나 좀 도와줘ㅋㅋㅋㅋ

이게 무슨 소리일까.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자니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정하연은 눈앞에 살색이 보이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미친놈이 왜 옷 벗고 사진을…?”

그러나 욕설은 금세 의문성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 보인 이석찬의 상체가 파랗게 멍이든 걸 넘어서 보랏빛으로 변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너머로도 퉁퉁 부어오른 게 보였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상태에 눈을 휘둥그레 뜨는데.

- 이석찬: 몸이 안 움직임

- 이석찬: 살려줘ㅋㅋㅋㅋㅋ

이 새끼는 뭐가 재밌다고 처 웃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 주환아!”

정하연은 자고 있는 서주환을 급히 깨웠다.

*

“하연아, 나 먼저 갈게!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

“어, 어? 같이 가!”

“아니야. 제대로 씻고 나와. 병원 가서 연락할게.”

서주환은 씻지도 않고 바로 옷만 챙겨 입은 후 이석찬의 집으로 향했다. 사진으로 확인한 상처가 무척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착한 이석찬의 자취방.

서주환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석찬을 바라봤다. 사진에는 상체가 보랏빛으로 물든 것만 보였는데, 이제 보니 온몸에 긁힌 상처가 한 가득이었다.

이석찬이 고개만 들어서 그를 반겼다.

“왔어, 마이 브라더? 역시 너밖에 없다.”

서주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제 집에 오다가 자빠짐.”

“자빠져서 이렇게 됐다고?”

“플러스, 계단에서 구름.”

“븅신. 가지가지 한다.”

서주환은 어제 폭우 속에 이석찬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내심 자책하며 말했다.

“굴렀으면 바로 병원 갔어야지 왜 이러고 있냐?”

“아프긴 한데 졸려서 걍 잤지.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몸이 안 움직임. 엌.”

“…….”

“살려줘. 병원으로 이송 플리즈.”

이쯤 되자 서주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는 낄낄대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새끼. 구급차를 부르던가. 톡방에 살려줘, 이지랄.”

“아, 그러네? 나도 당황해서 생각을 못했음.”

당황했다는 놈이 사진을 찍어서 올릴 정신은 있었나 보다. 보이는 것처럼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겠지.

서주환은 의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물건 챙겨야 될 거 있냐? 세면도구랑 팬티랑 대충 수건 정도?”

“아니, 일단 병원으로 옮겨줘. 아파 뒤질 것 같음.”

“아픈 김에 좀 더 아프고 있어. 한 번에 챙겨가게.”

“개새끼야. 숨 쉬기도 힘들다고.”

“말만 잘하는구만. 아, 이거 진통제니까 먹어라.”

“오?”

대충 타x레놀을 주는 척하면서 통증을 가라앉혀주는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리고 루시에게 조언을 구했다.

‘당장 스킬을 사용하긴 좀 그렇겠지?’

[겉으로 드러난 상처가 너무 큽니다. 붓기를 가라앉혀주는 것처럼 인과율을 얼버무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병문안 가면서 조금씩 치료해주는 수밖에 없나.’

[그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하니 다행이네요.]

대충 짐을 챙기고 차에 이석찬을 실어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석찬의 상태를 본 의사가 말하기를.

“부러졌습니다. 입원하세요.”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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