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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께 깜짝 연참을 선물해볼까 했지만
역시나 생각과는 달리 언제나처럼 실패하고 만 하루입니다 엉엉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친구들
이석찬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 장학재단 운영하는 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음. 노벨다이스에 돈을 다 쓴 건 아니거든.”
“그런데?”
“재단은 네가 먼저 꺼낸 이야기잖슴. 네가 하고 싶은 걸 내 돈으로 하면 의미가 없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몇 년 후에 해야지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너 생각보다 돈이 많네. 기껏해야 이삼십 있는 줄 알았더니.”
이삼십이란 당연히 억 단위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폰을 흔들었다.
“너도 내가 이만큼 투자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겠지.”
“그래. 아무튼 그 돈이면 당장 가능할 거임. 생각 있으면 말하셈.”
“돈 주면 알아서 해주냐?”
“엉. 재단 설립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오케이.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오늘은 술이나 마시고.”
“이응키읔.”
“병신.”
“븅신.”
서주환과 이석찬은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낄낄댔다.
장덕훈은 따라가기 벅찬 스케일에 조금 얼이 빠진 채로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형님들한테 개기지 말아야지.’
앞으로도 변치 않는 충성을 바치기로 했다.
그때 이석찬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를 돌아봤다.
“아, 그런데 덕후야.”
“예?”
“너 주희랑 어디까지 갔음? 사귄지 꽤 된 것 같은데 키스는 했냐? 이 새끼 딱 봐도 쑥맥이라 아무것도 못했을 것 같은데.”
“…….”
역시 가끔은 개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빠악!
서주환이 이석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끄억!”
“미친놈아. 주희 내 동생이다.”
“왜 때려, 이 새끼야. 정하연은 내 누난데?”
서주환이 움찔했다가 변명했다.
“그건 다르지.”
“뭐가 다른데 내로남불 쓰레기 새끼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나한테 쓰레기라고?”
“뭘 억울해해. 암만 나라도 너만큼은 아님.”
“닥쳐. 너 아직도 부산 갔을 때 일로 꽁해있는 거지? 조루새…….”
이석찬이 정색했다.
“씨발 새끼야. 사과해.”
서주환은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장덕훈은 그저 눈만 끔뻑였다.
*
함께 술을 마시던 장덕훈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난 건 폭우가 조금 가라앉았을 때였다. 이때가 기회라는 듯 쳐들어온 서주희가 부리나케 인사를 하고 장덕훈을 끌고 간 것이다.
“자기야, 나 바래다줘!”
과연 바래다주는 것만으로 끝날까.
순진한 장덕훈은 정말 그뿐일지도 모르겠으나 그의 여자친구인 서주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서주환의 친동생이었다.
둘만 남은 방안에서 이석찬이 낄낄대며 웃었다.
“주희가 고생이 많네. 오늘 작정한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넌 괜찮음?”
“뭐 어쩌겠냐. 지가 좋다는데.”
“하긴, 씹덕이지만 덕후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다 뿐이냐? 오히려 감사하지. 덕훈아, 힘내라.”
서주환은 마음을 비웠다. 친동생이 남자와 어떻게 해보려 애쓰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장덕훈도 그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일선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석찬이 문득 말했다.
“덕훈인 좋은 놈이야.”
“아무렴. 덕훈이 만한 남자가 없지.”
“덕훈이 말고도 다 좋은 친구들이고. 너도 포함해서.”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석찬이 실실 쪼개며 말했다.
“취해서 그런가 기분 좋네. 정하연도 괜찮아진 모양이고, 친구들도 다 좋고. 성씨가 다른 남매인 거 알아도 별 말 없고, 재벌인 거 알려줬는데도 덤덤하고.”
“재벌까진 몰랐어도 너 부자인 건 애들도 진즉에 다 눈치 챘지. 대놓고 돈 쓰고 별장에도 데려갔었잖아.”
“하긴. 원래 그렇게 대놓고 돈 쓸 생각 없었는데… 왠지 괜찮을 것 같았어.”
서주환은 웬일로 정상적인 말투를 구사하는 이석찬을 빤히 바라보다가 술병을 들었다.
“받아.”
“땡큐.”
술을 받은 이석찬도 그의 잔을 가득 채웠다.
쨍, 하고 잔을 부딪치자 술이 넘칠 듯 찰랑였다.
단번에 잔을 비운 이석찬이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정도 묻지 않고 한 달음에 달려온 건 좀 감동이었어.”
“자세히는 아니어도 다들 하연이 사정 대충은 알잖아. 당연한 거지.”
“지랄. 뜬금없이 친구 어머니 묘소에 같이 가는 게 당연한 거냐? 특이한 거지. 하여간 특이한 놈들.”
장례식장도 아니고 이미 돌아가신 친구 어머님 묘소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가는 게 일반적이진 않다.
서주환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끼리끼리 모이잖냐. 나도 특이하고 너도 특이한갑지.”
“글쎄다. 고딩 때까진 웬 병신 같은 것들만 꼬였거든. 내가 재복은 있어도 인복은 없었나봐. 아니, 나도 병신이어서 그랬나?”
“재복이니 인복이니… 너도 그런 거 믿냐? 의외네. 점술가 한 명 소개해줘?”
“가브리엘라?”
“아, 만나봤었지.”
“걘 재미없어 보여서 싫어. 눈이 재수 없어. 하여간 집에 돈 좀 있는 것들은…….”
“그만 욕 해, 새끼야. 재벌 3세가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가브리엘라도 지금은 그때랑 달라졌어.”
그 말에 이석찬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또 네가 바꿨냐?”
“내가 뭘?”
“음. 알만하네. 됐다.”
“이 자식 또 혼자 질문하고 결론 내내.”
“그럼 네가 말해주던가. 어떻게 바꿨냐?”
“그냥 뭐, 내 친구들 소개해주니까 바뀌던데?”
“친구들? 정하연이랑 지경이, 수아?”
“어. 그리고 너도 있고, 다른 선생님이나 누님, 형님, 동생들?”
“그 선생님이랑 누님, 형님들 나도 소개 좀 해줘봐. 동생도 좋고.”
“갑자기? 미리 말하지만 소개해 줄 여자는 없다.”
“여자 말고 이 새끼야. 좋은 사람들 같이 알고 좀 지내자는 거야. 네가 인복 좀 나눠줘라.”
인복이란 말에 서주환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너 성근이 형이랑 연락하냐?”
“잘 안 하는데.”
“나눠 달라고 하지 말고 있는 거나 챙겨, 븅신아.”
“아, 좀.”
“왜 땡깡이야? 징그럽게.”
“취해서 그래. 아무튼 좋은 사람들 있으면 나도 소개해줘.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잖아.”
서주환은 술을 홀짝이며 이석찬을 쳐다봤다. 갑자기 배성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석찬이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그러고 보니 이채희도 이석찬에게 말했었다. 싸가지 없던 꼬맹이 얼굴이 많이 펴졌다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석찬도 인생을 복잡하게 살던 놈이라는 것이었다.
‘궁금하긴 한데 알려줄 것 같진 않고. 사실 안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친구라고 해서 모든 사정을 다 알 필요가 있을까. 그냥 옛날에 뭔가 있었겠지 하고 넘어가면 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이었으니.
서주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친구면 네 친구지. 기회 되면 다 한 번씩은 만나지 않겠냐?”
“고맙다.”
“낯간지러운 소리 그만하고. 그거 원래 내 전문이잖아.”
“옮았나봐.”
“됐고, 너 그거 어떻게 했냐? 휴학 고민 중이라고 했잖아.”
“아.”
이석찬이 눈을 끔뻑였다.
“안 말해줬나? 나 자퇴했는데.”
“…뭐요?”
서주환은 뭔가 잘못들었나 싶어 귀를 후볐다. 하지만 이석찬은 아예 쐐기를 박았다.
“엊그제 자퇴서 내고 왔음.”
“아니 왜. 휴학하면 되지 왜 자퇴를 해?”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으니 이석찬이 낄낄대며 술을 한 잔 더 홀짝였다.
“휴학해서 뭐하냐. 복학 하지도 않을 건데.”
“졸업장은 딸 생각 아니었어?”
“그게 필요했으면 더 좋은 대학을 갔겠지. 대학은 그냥 집에서 간섭하는 게 싫어서 정하연 따라 온 거야. 지금은 아버지랑 화해도 했겠다, 내 회사도 따로 굴리고 있겠다. 대학 다닐 필요가 없지.”
“골 때리는 놈이네 이거.”
“뭐 어때. 학교 안 간다고 너희 못 보는 것도 아니고.”
“…….”
“왜 그래?”
“아니 그냥. 네 말이 맞다 싶어서. 학교 안 가도 볼 수 있지.”
서주환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이석찬이 이상한 놈 보듯 그를 봤다.
“당연하지. 설마 안 볼 생각이었냐?”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네. 차라리 너도 자퇴하는 게 어때?”
“어?”
서주환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뭘 놀래? 오히려 네가 아직까지 학교 다니는 게 이상하지. 졸업장 그거 나중에 취업 할 때 빼면 필요 없잖아.”
“어… 아니, 취업이 아니어도 사회적 인식이라는 게…….”
그 말에 이석찬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지랄. 이미 주식에만 몇 백억은 우습게 있는 놈이. 그리고 문단에도 네 이름 알려졌잖아. 그런 놈이 무슨 사회적 인식?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는 놈이 시간낭비는 왜 그리 하냐? 네가 대학에서 더 얻을 게 뭐가 있다고.”
“…….”
서주환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고 있던 사실이 새삼스럽게 상기됐다.
‘자퇴라…….’
안중에도 없던 선택지가 갑작스럽게 화두로 떠올랐다. 새삼스럽게도 그가 대학에 온 이유는 회귀 전처럼 외롭고 싶지 않아서였다. 까놓고 말해서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복학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초의 목적을 생각하면 당장 자퇴를 해도 문제가 없다. 이석찬의 말대로 그와 친구들은 이미 자퇴 정도로 멀어질 만큼 얕은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 주환아.”
이석찬의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왜 불렀나 바라보니 술기운으로 불그레해진 이석찬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친구해줘서 고맙다.”
“…….”
서주환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미친놈. 이 새끼 진짜 오늘 왜 이러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낯간지러움에 욕설을 내뱉으니 이석찬이 마주 욕설을 뱉었다.
“고맙다고, 개새끼야.”
“알겠으니까 닥쳐. 나도 고맙다, 병신아.”
“그래.”
“어.”
하여간 사내새끼들은 왜 취해서도 욕 없이는 솔직하지 못한 걸까. 문득 자괴감이 밀려왔다. 주변의 평을 들어보면 이석찬은 몰라도 그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꽤나 아무렇지 않게 하는 병이 있었는데 도무지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서주환은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술병을 들었다. 딱 두 잔이 나왔다. 각자의 잔에 따르고 술잔을 부딪쳤다.
마지막 잔을 비운 이석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나도 가야겠다.”
“밖에 비 오는데? 자고 가.”
“본심은?”
“왠지 쪽팔리니까 빨리 꺼져.”
“이응키읔.”
“가다가 자빠지지 마라.”
“이응키읔. 아, 애들 개강하기 전에 여행이나 함 가자.”
“바다?”
“아니, 바다는 작년에 갔으니까 이번엔 산으로. 계곡에 별장 있음.”
“오키.”
대충 여행 약속을 잡았다.
“나 간다.”
“그래.”
이석찬이 위태롭게 폭풍우를 뚫고 걸어갔다. 진탕 취한 듯 비틀거리는 걸음새가 한 번은 자빠질 것 같았다.
*
띵~동.
새삼스럽게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이 울리는 게 왜 새삼스럽냐면, 그의 집은 일행 모두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멋대로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비틀비틀 걸어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굉장히 도도하게 생긴 고양이 상 미녀가 손을 흔들었다. 부끄러운 듯 지은 미소가 너무 예뻐서 손을 잡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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