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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443화 (44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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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비축분 만들 겸 끊을까, 아니면 두 편으로 쪼개서 올릴까 고민했지만

아무리 봐도 호흡상 한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엉엉

사실상 연참이니 예쁘게 봐주세용ㅎㅎ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친구들

쏴아아아아─ 꽈르릉!

이른 저녁 무렵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가 세상을 한바탕 시끄럽게 청소하고 있었다. 8월 중순에 뒤늦은 장마가 시작된 듯했다.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비 한 번 무섭게 내리네.”

“진짜 무섭당. 하늘이 막 번쩍번쩍…….”

꽈르르릉!

“흐야악!”

재잘대던 한수아가 화들짝 몸을 들썩였다. 함께 놀란 유지경이 끄엑!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한수아를 껴안았다.

서주환은 반사적으로 정하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안심하고 술을 홀짝였다.

‘괜찮은가 보네.’

놀란 기색이 완연하긴 했으나 다만 그뿐이었다.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뜻일까. 정확한 건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이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잠시 후.

정하연이 놀란 신색을 정돈한 뒤 둘러앉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다들 고마워.”

단조로운 한 마디에서 부담스러울 정도의 진심이 전해졌다.

친구들은 저마다 어색하게 웃거나 낯간지럽다는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특히 유지경이 간지러워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정하연을 타박했다.

“이 바보 언니는 한 번 말했으면 됐지 몇 번이나 말하려는 거야? 까톡으로 한 번, 어머님 앞에서 한 번, 돌아올 때 한 번. 그리고 이번에도 한 번. 벌써 네 번째야. 그만 좀 해!”

“너무 고마워서 그래.”

“바보 언니. 고맙다는 말도 자꾸 하면 의미가 퇴색되는 거 몰라? 바보. 멍청이. 쪼다. 이 찐따 언니.”

“그건 알겠는데 왜 계속 욕을…….”

가만히 듣던 정하연이 눈초리를 사납게 떴다.

마구 타박하던 유지경이 화들짝 놀라서 술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자, 건배! 우리 찐따 언니의 행복을 위하여!”

“위하여!”

일행들이 순식간에 합을 맞춰 술잔을 들었다. 모두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정하연은 다소 화가 난 얼굴로 유지경을 흘겨보다가 조그맣게 따라 말했다.

“위하여.”

이석찬이 낄낄대며 정하연을 놀렸다.

“드디어 본인도 인정했구만.”

이쯤 되자 정하연도 울컥한 얼굴로 입가를 씰룩였다. 평소라면 욕설이 튀어나올 순간. 하지만 날이 날인만큼 그녀는 술과 함께 화를 삼키듯 말했다.

“…너, 오늘만 봐준다.”

“오, 그럼 오늘은 놀려도 되는 날임?”

“해봐. 뒤지고 싶으면.”

“히히. 죄송.”

말과 달리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에 일행이 웃음을 터뜨렸다.

꽤나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음에도 무척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

서주환을 비롯한 친구들은 어느 순간 인원을 나누었다.

이석찬과 장덕훈은 그대로 서주환의 집에 남았고, 여자들은 저들끼리 할 얘기가 많다면서 옆집인 한수아의 방으로 이동했다.

서주환은 이석찬, 장덕훈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떠들다가 말했다.

“고추 놈들끼리 마시는 것도 괜찮은데?”

“으하하. 오히려 좋습니다.”

장덕훈이 함지박처럼 웃으며 동의했다. 의외인 건 이석찬도 설핏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서주환은 일부러 장덕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덕훈아, 요즘 글 쓰는 건 어때?”

“하하…….”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던 장덕훈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가 이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죽겠습니다. 백 화를 넘겼을 때부터 왠지 불안했는데 이백 화를 넘긴 요즘은 특히 압박감이 큽니다. 아무래도 유료 연재라 그런 것 같습니다.”

“비축분도 다 떨어졌다 그랬지?”

“예.”

그는 오늘 마지막 남은 비축분을 사용했다. 글을 써야 할 시간에 정하연의 어머님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다.

장덕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스승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내일이 토요일이잖습니까. 주말 동안에 비축분 만들면 됩니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

“예. 그런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힘들긴 해도 글 쓰는 건 재밌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덕훈이 네 담당도 미화지?”

“예, 최미화 편집자님이십니다.”

“글 쓰다 막히면 미화랑 의논해. 글 보는 눈은 나보다 미화가 더 좋아.”

“형님보다 말입니까?”

장덕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서주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화가 나보다 책을 읽어도 몇 천권은 더 읽었을 걸? 어쩌면 만 권 단위일지도 몰라. 걔가 중증 활자중독자거든. 속독도 엄청 빠르고.”

“그래도 형님은 형님이신데… 형님이 서환이잖습니까.”

“그 서환도 우리 최미화 편집자님 도움 아래 글을 썼다. 그리고 잘 쓰는 거랑 잘 보는 건 또 달라. 막히는 거 있으면 자존심 부리지 말고 미화한테 도와달라고 해.”

이석찬도 말을 보탰다.

“덕후놈아, 네 생각보다 미화 씨 능력이 좋음. 네가 초짜라 모르는 거지 작가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함. 네임드 작가들 중에는 계약 조건으로 미화 씨를 담당자로 배정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음.”

“그, 그렇슴까? 능력 있는 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최미화 씨 월급을 괜히 대기업 과장급으로 주고 있는 게 아니란 말씀.”

그 말에 서주환은 놀란 눈으로 이석찬을 돌아봤다.

“대기업 과장급?”

“엉. 물론 인센티브는 따로 있음.”

“이야, 우리 미화 누나 돈 잘 버네. 나중에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야지.”

“이거 양심 없는 놈이네. 미화 씨 연봉이 네 한 달 수익보다 적음.”

“뭐 어때. 너도 잘 버는데 나한테 자주 얻어먹잖아.”

“노벨다이스 계속 적자였는데? 사이트 오픈, 직원들 월급, 어플 개발, 온갖 파격적인 이벤트 비용이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함?”

“아하.”

노벨다이스는 독과점이나 마찬가지였던 웹소설 플랫폼 시장에서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키운 사이트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고 몇 달 동안 굉장한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모든 비용은 이석찬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서주환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나도 투자 한다니까.”

“껌 값은 안 받는다고 했다.”

“좀 받아라. 나 주식으로 번 돈 꽤 있어.”

“주식? 너 주식에 손댔음?”

서주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석찬이 기겁한 얼굴로 말했다.

“너 설마 코인도 한 건 아니지?”

“했는데?”

“미친놈아.”

“지금은 안 해.”

“지금은? 최근에 시작한 게 아니었음?”

“너 만나기 전부터 했다.”

“어휴, 시벌. 난 또 나 때문에 헛바람 든 줄 알았네.”

이석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었다.

“야, 폰 줘보셈. 비번 풀고. 어디 투자했는지 좀 보자.”

“이거 왜 이래? 내 주식 정보가 탐 나?”

“지랄 말고.”

“응.”

폰을 넘겨주자 이석찬이 투자종목을 살펴보더니 황당하다는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미친놈은 왜 이리 개잡주가 많아? 굵직한 건 또 나랑 비슷하네.”

“개잡주라니. 다 수익 냈는데.”

“그러니까 미친놈이라고 하고 끝내는 거임. 너 뭐 어디서 정보 얻고 들어갔음? 혹시 세력이랑 얽힌 건 아니지? 이 새끼 분명 간신히 차트 보는 게 다였는데 수익을 어떻게 냈지?”

“나도 몰루. 그냥 하니까 되던데?”

미래를 알고 있으면 된다. 서주환은 대게 튼튼한 우량주에만 돈을 투자했지만, 가끔은 주식 종목을 둘러보다가 번뜩 떠오르는 잡주를 산 다음 적당히 올라가면 팔아버리곤 했다. 그나마도 아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었다.

그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폰을 훔쳐본 장덕훈이 컥 하고 술을 내뿜었다. 평가손익에 표기된 빨간 글씨가 그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콜록! 쿨럭쿨럭!”

“어으, 디러. 이 새끼 숨넘어가겠네. 괜찮음?”

“후우. 괜찮습니다. 제가 방금 뭘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어, 아니야. 제대로 봤음.”

그 말에 장덕훈이 멍한 눈으로 술잔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갑자기 인생에 회의감이 듭니다. 형님들, 저도 주식 좀 가르쳐주십시오.”

“지랄 말고 글이나 쓰셈. 넌 이런 거 손대면 패가망신할 관상임.”

“덕훈아, 하지 마. 지금 네가 버는 돈만 해도 나이에 비하면 엄청난 거야. 나중엔 더 벌 거고. 아니면 형이 몇 개 알려줄 테니까 그것만 사.”

“미친놈아, 네가 무슨 확신을 가지고 알려줘. 나도 앵간하면 남들 안 알려주는데. 덕후야, 걍 글이나 쓰셈. 형이 네 작품 잘 밀어줄게.”

두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걱정스럽게 말하자 장덕훈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농담입니다. 저는 주식 같은 거 무서워서 못합니다. 그리고 저한테 도박은 게임 가챠로 충분합니다.”

“휴. 잘 생각했음. 앞으로도 생긴 거답게 소처럼 우직하게 써라, 글싸개 이호.”

“일호는 주환 형님입니까?”

“맞음. 어떻게 생각하냐, 글싸개 일호?”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호구 대표.”

“응, 호구 아님. 이번 달에 흑자로 돌아섰음.”

“오, 축하축하.”

“축하드립니다, 석찬 형님.”

“감사감사. 아무튼 투자 필요 없으니까 걱정 마셈. 돈 남아돌면 나중에 재단 설립할 때나 보태.”

“재단?”

뜬금없는 소리에 그가 눈을 끔뻑이자 이석찬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기억 안 남? 작년에 학교 흡연장에서 얘기했던 거.”

“흡연장… 아, 장학재단?”

“그래. 보는 눈 좋다고 자신했잖아. 재능 있는 사람들 헤드헌팅 하고 싶다고. 그냥 농담이었음?”

“아니, 뭐, 반은 진담이긴 했는데.”

그의 조언을 들은 도유이가 갑작스럽게 자퇴를 했던 날 나눈 이야기다. 언젠가 해야겠단 생각으로 한 말이긴 했지만 이석찬이 그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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