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40화 (4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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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랭크인

서주환은 짐을 챙긴 후 하늘을 올려다봤다. 슬슬 어둠이 옅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두 시간쯤 뒤면 동이 틀 것 같다.

‘엄청 민폐 끼쳤네.’

그래도 목적은 달성했다.

서주환은 S급으로 오른 이채희의 재능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한 번 사용하는데 10만 포인트가 소모되는 ‘각성’ 스킬을 며칠 연속으로 활성화시킨 보람이 있었다.

“주환 씨, 고생하셨어요.”

한 스태프가 다가와 인사했다.

서주환은 작게 고개 숙여서 마주 인사했다.

“고생은 스탶 분들이 더 하셨죠. 저랑 누나 때문에 죄송해요.”

“네? 하하. 맞아요. 엄청 힘들었어요.”

스태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어요. 그렇게 연기를 잘 해놓고 왜 계속 다시 찍는지 무슨 시간낭빈가 싶더라고요. 얼마나 답답하던지.”

“하하…….”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던데요?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고마우면 사인 하나만 해줘요. 나중에 우리 딸내미가 서주환 배우 사인 구해달라고 난리칠 것 같거든요. 미리 준비해뒀다가 줘야겠어요.”

“물론이죠. 바로 해드릴게요. 배우로 사인하는 건 처음이네요.”

“배우로? 아, 원래 소설 작가님이라고 하셨죠. 이거 참, 제 눈에는 천생 배우로만 보이는데…….”

서주환은 몇몇 스태프에게 더 사인을 해준 뒤 이채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완전히 넋이 빠져서 짐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작게 웃음을 흘렸다. 루시도 함께 웃었다.

[후후. 그렇게 바라던 경지에 발을 들였으니 저럴 만도 하지요.]

‘오, 그렇게 말하니까 꼭 무협지 같은데? 하긴 뭐, 다를 것도 없나?’

무공이나 연기나 어쨌든 경지의 고하가 있으니 비슷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는 여운에 잠겨 있는 이채희를 흔들어 깨웠다.

“누나, 정신 차려요.”

“…어? 어어, 너구나.”

“집에 가야죠. 스태프 분들도 다 짐 챙기고 있어요.”

“응, 그래. 가야지.”

이채희는 여전히 멍한 기색이었다. 그러다 실실 웃음을 흘렸는데, 마치 반쯤 실성한 모습 같기도 했다. 이내 그녀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이 되어 기지개를 켰다.

“아~ 재밌었다. 진짜, 엄청 재밌었다.”

“제 덕분인 거 알죠?”

“그럼그럼. 우리 주환이가 최고지.”

“참나.”

서주환은 피식 웃었다.

알긴 뭘 아는가. 끽 해야 지옥훈련을 같이 한 덕이 있는가보다 싶겠지. 실상은 온갖 버프를 걸어주고, 아이템을 사용해서 피로를 회복해주고, 집중력까지 높여줬는데 이걸 어떻게 생색낼 방도가 없었다.

‘뭐, 생색낼 필요 있나.’

굳이 티 내지 않고도 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 아쉬울 필요가 없다. 그녀는 스스로도 모르는 새 그에게 보답을 해줄 것이다.

“가요, 누나. 제가 운전할게요. 피곤하면 자고 있어요.”

“정말? 땡큐. 안 그래도 너무 피곤했어. 아, 선하는 어쩐대?”

“어차피 같은 방향이잖아요. 선하 누나도 태워서 가요.”

“오케이~.”

서주환은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뒷좌석에는 이채희와 민선하가 곯아떨어져 있었다. 함께 고생한 와중에 그만 추가로 운전기사 노릇을 하는 모양새였지만,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잔뜩 괴롭혀야지.’

그러니까 지금은 자게 내버려두자.

*

잠에서 깨어난 서주환은 시스템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S급 재능을 보유한 여성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S급 재능 조각’을 습득했습니다.]

지난밤 드디어 S급에 안착한 이채희와 관계를 갖고 아홉 번째 S급 조각을 얻었다.

“이제 정말 하나 남았네.”

조각 열 개를 모으면 S급 재능석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숙련도 100%를 달성한 A+등급의 재능 하나를 S등급으로 올릴 수 있게 된다.

‘S급으로 만든다면 당연히 글쓰기 재능인데… 그 이후에는 뭐가 있지?’

일단 확실한 건 루시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그는 일전에 루시가 한 말을 떠올렸다.

‘저를 사람으로 만드는 건 주인님께 폐가 될 거예요.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됩니다.’

‘훗날 정보 제한이 풀리고 그 방법을 아셨을 때… 지금의 발언을 철회하셔도 저는 절대로 주인님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루시의 말에서 걸리는 게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주인님께 폐가 될 것’이라던 말.

둘째는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던 말.

셋째는 ‘원망하지 않겠다’던 말.

이 발언들로 미루어보아 ‘S급 재능석’을 만들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

‘정보제한이 풀린다고 했었지.’

루시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나고, 그녀가 말한 다른 가능성도 함께 나타난다. 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다른 가능성’은 루시가 원망하지 않겠다고 미리 말할 정도로 매력적일 터다.

루시를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 그때가 가브리엘라가 거듭 말해왔던 변화와 선택의 순간일까?

서주환은 조각을 만지작거리다가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고민은 그때 가서 하면 되겠지. 어차피 정보가 부족한 지금은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는 양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여자들을 흔들었다.

“누나들, 일어나요. 밥 먹어야죠.”

밤새 촬영을 하고 와서 불태운 열정이 과했던 걸까.

이채희와 민선하는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서주환은 시간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오늘 일정이… 아직 여유롭네.’

그럼 밥은 좀 이따 먹기로 할까. 지금은 다른 것부터 먹어야겠다.

서주환은 어느 쪽으로 할까 두 여자를 번갈아 보다가 민선하의 위로 올라갔다. 이불을 차내고 엎드려서 자는 그녀의 엉덩이가 더 야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끌미끌 러브젤’을 사용하고 민선하의 질구를 매만졌다. 젤을 묻힌 채 ‘성스러운 손길’로 자극하자 금세 물이 흘러나왔다.

찌걱찌걱.

“으응.”

민선하가 몸을 비틀며 작게 신음했다. 동시에 다리가 살짝 벌어지며 엉덩이가 들렸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질구와 항문을 번갈아 매만지며 물었다.

“누나, 어디 넣을까요?”

“…….”

“깬 거 다 알고 있어요.”

“…모르는 척 좀 해줘라.”

“모른 척 하려고 해도 너무 티 나잖아요. 아무튼 어디?”

“치. 보지에 넣어줘.”

“넵.”

그렇게 민선하와 떡을 치고 두 번째 사정을 했을 쯤 이채희가 일어났다. 그는 이채희와도 진득하게 한 번 얽힌 후 셋이서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누나들, 여기서도 한 번?”

“시간 없어. 안 돼.”

“또 시작하면 촬영 시간에 늦어.”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픈 것 같아도 역시 프로페셔널한 누님들이다. 이런 자세는 본 받을만 했다.

*

영화 <스토커>는 범죄 스릴러 장르다.

대한민국의 어설픈 스토커 관련법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서주환이 맡은 살인마 역의 김정민은 스토커와 별개의 인물이다. 영화 속 김정민의 직업은 웹툰 작가인데, 본인이 죽인 여자들을 모티브로 여주인공을 그리는 싸이코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죽인 여자들의 혼이 웹툰 안에서 살아 숨 쉰다고 믿는 정신병자다.

“푸흡. 풉, 푸하하하하! 스토커요? 아, 내가 그래서 잡힌 거였구나?”

김정민이 재밌는 걸 들었다는 듯 박장대소했다. 그러다 이내, 뚝 웃음을 그친 그가 말했다.

“그거 내가 한 거 아니야.”

“뭐?”

“여자들~ 내가 죽인 건 맞는데, 스토커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던 김정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다, 나 스토커도 맞는데? 죽이기 전에 좀 알아본다고 미행한 적이 있으니까, 응, 스토커 맞네.”

“이 새끼가 진짜!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형사가 귀찮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

“야 이 살인범 새끼야, 네가 지금 스토킹 범죄가 중요한 줄 알아? 네가 죽인 사람만 세 명이야. 어차피 감옥에서 평생 썩는다고!”

“으음. 형사 아저씨, 나 감옥에서도 연재할 수 있으려나? 우리 선희 씨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꼭 여주인공으로 그리고 싶어. 인기가 아주 많을 거야. 살인마가 직접 그린 살인마 이야기!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

“이 미친 새끼가!”

콰앙!

형사가 철장을 후려쳤다. 그러나 김정민은 그 순간만 깜짝 놀랐을 뿐 다시 히죽히죽 웃었다.

형사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헛소리 그만하고 똑바로 말해. 주선희 씨 스토킹도 네 짓이잖아. 너 어차피 감옥행이니까 일 복잡하게 하지 말자. 엉? 스토킹 했어, 안 했어?”

“흐흐. 당연히 했죠. 조사를 철저히 해야 안 잡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사전조사가 좀 부족했나봐. 벌써 잡힐 줄은 몰랐네.”

“우 형사, 들었지? 받아 적어. 스토킹도 이 새끼다. 거 동영상도 다 확보했다고 했지? 현장검거에 증거, 자백 다 나왔네. 주선희 씨한테 연락해서 이제 두 발 뻗고 자라고 해.”

그때 김정민이 실실 웃으며 형사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히히. 사진 보낸 건 나 아닌데.”

형사는 그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리고.

“오케이! 컷!”

컷 사인이 울렸다.

서주환은 실실 웃던 표정을 지우고 목을 좌우로 꺾었다. 표정과 몸짓에 변화를 준다고 만들었던 자세 때문에 근육이 결렸다.

“어우, 뻐근해라.”

“동생, 고생했어야. 여기 열쇠. 수갑 풀어야지.”

“감사합니다, 형님.”

형사 역을 맡았던 마영수가 손수 수갑을 풀어주었다.

서주환은 손목을 돌리며 철창을 나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촬영이 금방 끝났다. 그는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정리하고 가죠!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서주환은 곧 들려올 환호성을 기다렸다. 한데 반응이 생각과 조금 달랐다.

“에이, 주환 씨, 신인배우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요.”

“오늘 주환 씨 마지막 촬영 날인데 감독님이나 영수 씨가 어련히 알아서 사려고.”

“맞아요. 원래 어린 사람은 얻어먹는 거야. 돈 함부로 쓰지 말어.”

몇몇 사람들이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주환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라, 이게 아닌데.’

그때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이구. 이 사람들아, 누가 누구 돈을 걱정해? 주환 씨 돈 엄청 잘 벌어.”

“으응? 신인이 벌어봤자 얼마나 번다고. 물론 영화 개봉한 뒤에는 잘 벌겠지만…….”

“배우 말고. 주환 씨 본업이 작가잖아. 저번에 못 들었어?”

“아.”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사람들. 지금까지 함께 촬영하며 본 모습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혜성처럼 나타난 불세출의 천재배우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어, 그럼 얻어먹어도 상관없나?”

사람들의 시선이 서주환에게로 향했다.

그는 커흠,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품에서 지갑을 꺼내들며 다시 소리쳤다.

“오늘은 제가 쏩니다!”

잠시 후.

“와아아아아! 오늘은 주환 씨가 쏜댄다!”

“야야! 일차로 저거 이름 뭐냐, 아무튼 곱창집 예약해!”

뒤늦은 환호성이 터졌다.

*

서주환은 오랜만에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는 의자 위로 올라가서 술잔을 들고 소리쳤다.

“하하! 모두 감사합니다! 제가 배우로서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또 같이 촬영할 날이 있을 겁니다! 훗날 제 작품이 영상화 되면! 그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찬 포부에 모두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몇몇 선배 배우들은 재능을 썩히는 게 아깝다며 서주환을 전업배우로 만들기 위해 장시간에 걸쳐 설득했다.

그리고 이 년 후.

서주환을 가장 열렬하게 설득했던 마영수와 김수환은 넷플러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회귀자의 병영생활>에 출연하게 된다.

각각 원사와 중대장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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