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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길고 길었던 떡씬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19금 소설 치곤 떡 비중이 너무 적었던 것 같아 작정하고 한 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파트인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전개 속도 조절을 잘못해서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네요.
사실 계획대로라면 서너 편은 더 빨리 끝났을 파트인데ㅠㅠ
저는 필요한 것만 딱딱 쓰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색함 전혀 없이 납득시키는 작가님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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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정상 연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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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랭크인
영화 <스토커>의 촬영이 시작된 지 2주 째.
오늘은 초반부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이채희(주선희 역)와 서주환(살인마 역)의 추격 및 대치 씬을 촬영하는 날이다.
서주환은 주변을 둘러보며 본인의 촬영 동선을 외우고 있었다.
‘카메라 방향은 이쪽이고… 저기서 저기까지 원 테이크로 끊어야 한댔지.’
추격이라고 했지만 모든 장면에서 그와 이채희 두 사람이 동시에 뛰는 것은 아니다. 교차편집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교대로 한 명씩만 달리면 된다.
“컷! 채희 씨, 수고했어요.”
“하악, 학. 아으, 숨차.”
“채희 씨, 여기 물이요. 주환 씨는 5분 후에 들어가니까 대기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서주환은 살인마가 되어 골목을 달렸다. 기괴하게 뒤틀린 미소를 지은 살인마가 여자를 죽이기 위해 쫓아간다. 고함을 치거나 욕설을 내뱉는 것도 아닌데 지켜보는 모두가 섬뜩함을 느낄 만큼 잔인하고 위협적이다.
“컷! 주환 씨, 고생했어요.”
촬영은 이후로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주변에서 스태프들이 신기하다는 듯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길 야간 촬영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러니까. 욕 좀 먹을 건 각오했는데.”
“주민 분들 마음이 참 넓어. 솔직히 찍으면서도 죄송한데 말야.”
당연한 말이지만 야간 촬영 전에 시청과 미리 협의하고 주민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사전에 조율을 해도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취객이 현장에 들어오기도 하고 소음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항의를 하는 경우다.
“조용. 분위기 좋은데 괜히 떠들지 말자고. 지금 흐름 끊기면 안 돼.”
“아, 넵.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다들 전달해서 목소리 줄이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오늘은 단 한 차례의 트러블도 없었다. 다만 묘한 긴장감이 현장을 감싸고 있었다. 배우들을 비롯한 스태프들 모두가 그 공기를 느꼈다. 자연히 사람들의 말수가 줄고 긴장감이 더욱 높아졌다.
그때 민선하에게 조명 감독이 조용히 다가와서 속삭였다.
“민 감독님, 오늘 분위기가 좀… 그쵸? 이거 제 착각 아니죠?”
“네.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어요. 저도 똑같아요.”
“하하. 느낌이 좋습니다. 이번 영화는 잘 될 거예요.”
“…….”
민선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두 눈은 이채희와 서주환에게 못 박혀 있었다.
느낌. 방금 조 감독이 말한 그 느낌을 민선하도 받고 있었다. 흥행가도를 달린 영화를 찍을 때면 찾아오는 그 느낌이다.
‘저 두 사람이야. 주환이랑 채희한테 달렸어.’
전력달리기를 반복한 두 사람의 얼굴은 땀으로 엉망이었다. 8월의 무더운 날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을 고쳐 받는 두 사람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찾는 게 보였다.
민선하는 직접 물 두 병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둘 다 괜찮아?”
조금 멍하니 있던 이채희가 한 박자 늦게 민선하를 알아봤다.
“…아, 선하야. 물 땡큐. 걱정 마, 여유로우니까.”
말과 달리 이채희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눈빛만은 형형해서 여느 때보다 진한 생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 멍했던 기색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반면 서주환은 똑같이 뛰어다녔음에도 별로 피곤하지 않은 듯했다. 땀을 조금 흘리긴 했지만 호흡도 안정적이고 얼굴색도 멀쩡했다.
서주환이 물병을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누나.”
“…응.”
민선하는 ‘누나’라는 호칭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기엔 서주환과 별의별 짓을 다했다. 무엇보다 지금 최고조로 집중하고 있는 배우를 별 것도 아닌 걸로 트집 잡고 싶지 않았다.
‘방해하면 안 돼.’
민선하는 오늘따라 서주환의 눈치가 보였다. 아니,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요 며칠간의 그는 분위기도, 연기력도, 집중력까지도 촬영 초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났다. 특히 오늘은 그런 기색이 더욱 강했다.
이제 곧 있으면 두 사람의 대치 씬.
민선하는 이번 영화의 운명이 서주환에게 걸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주환이 돌연 일어나서 작게 속삭였다.
“오늘 저 말고 채희 누나한테 집중하세요.”
“어?”
“전 조연이지 주연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이런 걸 보통 조연 당사자가 말하던가?
서주환은 뒤편에 다시 멍한 얼굴로 돌아간 이채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여러 번 재촬영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능하면… 채희 누나가 만족할 때까지 찍어주세요.”
그리 말한 서주환이 생긋 웃으며 살짝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민선하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서 고개를 꺾었는데, 높고 구름 없는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얘는 뭘 보고 있는 거지? 아, 목 아파.’
전봇대처럼 커다란 놈을 따라서 고개를 들려니 부러지겠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이채희를 바라봤다. 서주환의 말을 곱씹으면서다.
한편 서주환은 여전히 허공을 응시했다. 민선하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한 허공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스킬, ‘각성’이 ‘연기(A+/A+)’에 적용 중입니다.]
[사용자가 지정한 재능을 24시간 동안 100%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능력, ‘성교사(性敎師)’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자, ‘이채희’에게 ‘호감도 등급’에 따른 버프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자, ‘이채희’에게 ‘섹스’로 인한 버프가 적용 중입니다.]
[대상자, ‘이채희’에게 ‘직접 교육’으로 인한 버프가 적용 중입니다.]
[사용자의 ‘연기(A+/A+)’재능이 대상자의 ‘연기(A+/A+)’ 재능과 공명합니다.]
*
촬영에 들어간 현장은 고요하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배우를 바라봤다.
주선희와 살인마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두려움에 물든 주선희의 얼굴이 안타깝다. 살인마는 그 표정을 음미하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웃는다. 대사 한 마디 없음에도 주선희의 공포와 살인마의 잔인함이 느껴졌다.
주춤.
뒷걸음질 친 주선희가 울먹이는 얼굴로 대사를 친다.
“왜, 저한테 왜 그래요? 왜 저한테…….”
살인마가 눈을 깜빡이더니 히죽 웃는다.
“좋은 질문이네요. 비명이나 지르는 것보단 훨씬 좋은 반응이에요. 마음에 드니까 알려드릴게요.”
“…….”
그때였다.
주선희가 다음 대사를 받지 않고 카메라를 돌아봤다. 그 순간 주선희는 이채희가 됐다.
“컷!”
민선하가 촬영을 중단시켰다.
한숨을 내쉰 이채희는 주변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민선하가 가까이 다가가서 묻는다.
“채희야, 왜 그래? 연기 좋았는데.”
조금 전 촬영 중단은 민선하가 아니라 이채희 본인의 판단으로 한 것이었다. 벌써 이게 일곱 번째 재촬영이었다.
이채희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털어내며 말했다.
“미안. 다시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네가 그렇다면 괜찮지만…….”
“표정변화에서 연결이 조금 부자연스러웠어.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민선하는 이채희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채희와 서주환의 연기 모두 완벽해서 중단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서주환이 다가와서 이채희에게 음료를 내밀었다.
“마셔요, 누나. 피로회복제예요.”
아이템 뽑기에서 나온 음료다. 피로회복과 집중력 상승효과가 부여되어 있다.
“아, 땡큐. 그보다 주환아, 조금 전에 나 어땠어? 네가 대사 쳤을 때 받는 표정이 좀…….”
“아, 그거요. 여길 이렇게 하면 어때요?”
서주환은 그녀가 말하는 바를 단번에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지금의 그는 ‘연기(A+/A+)’ 재능이 100% 활성화 된 터라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연기론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한편 민선하는 다른 세계로 진입한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연기 보는 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연차 높은 몇몇 배우들이 보였다. 경찰 역의 마영수와 스토커 역의 김수환이다. 눈이 마주친 그들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마영수가 말했다.
“괜한 신경 쓰면 머리 아픕니다. 민 감독님도 알고 있잖슴까. 애초에 채희 쟤 별종인 거. 저거랑 제대로 수준 맞추려면 이 바닥에서도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들 데려와야 돼요.”
40대 중반의 마영수가 지긋한 나이라 말할 정도면 최소 오륙십 이상의 원로배우들을 말함이다.
문득 옆에서 가만히 듣던 김수환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럼 주환이 쟤는 뭔지 모르겠네요.”
“뭘 물어? 저것도 별종이지. 그냥 열정적인 후배님 들어온 줄 알았더니만… 에잉, 쯧. 인생 씨부럴 것.”
“오늘 제 파트가 없어서 쉴까 했는데… 보러 오길 잘했네요. 그쵸?”
“잘하기는. 은퇴하고 싶어졌구먼.”
“맘에도 없는 소리 하시기는.”
마영수는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커피를 마셨고, 김수환은 태연한 말투와 달리 초조한 듯 다리를 떨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현장을 떠나지 않고 가까이서 서주환과 이채희를 바라본다는 점은 같았다.
민선하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조금 쉬었으니 촬영을 재개해야한다. 마침 준비를 마친 이채희와 서주환이 카메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박수를 짝짝 쳐서 이목을 모았다.
“모두 힘냅시다. 이채희 배우님, 서주환 배우님은 만족할 때까지 찍어줄 테니까 중간에 쓰러지지만 마세요.”
민선하의 말에 스태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아무도 앓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모두가 지금이 무척 중요한 순간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큐!”
촬영은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진행됐다. 큐 사인과 컷 사인이 메아리처럼 울리기를 반복했다. 어느 누가 봐도 완벽한 연기였지만 이채희와 서주환이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배우 본인이 만족하지 않아서 재촬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지는 않는다. 감독이 수준이하의 연기를 보고 계속 요구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은 명백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평을 입에 담지 않았다. 실제로도 두 사람의 연기가 재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변화는 이채희에게서 일어났다.
“큐!”
Take 31.
서른한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S#25 ─ 어두운 골목길(밤)
서주환과 이채희의 표정이 변한다. 각자가 지닌 고유의 분위기가 변하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서주환과 이채희 대신 주선희와 살인마가 눈을 뜬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존재가 현장의 사람 외에도 있었다. 서주환을 제외한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다.
[드디어 끝났군요.]
루시가 들뜬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 주인님의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해 알림과 메시지를 지웠다.
[대상자 ‘이채희’의 재능 ‘연기’ 등급이 S로 상승했습니다.]
[욕망 퀘스트, ‘성장과 정체의 기로’를 완수하였습니다.]
반복된 촬영이 서른한 번째 만에 비로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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