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435화 (43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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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3p는 다음 화!

다음 화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떡씬 없을지도...?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크랭크인

맛있는 걸 먹으면 마음이 넉넉해지기 마련이다.

그간 서주환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그에게 한참을 시달린 두 여자는 무척 배가 고픈 상태. 여기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니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은 둥글어졌다.

냠냠. 쩝쩝. 후루루룩.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던 분위기가 배고픔 앞에서 허물어졌다.

이채희는 뜨끈한 국물을 후룩 떠먹으며 생각했다.

‘더 화내봐야 내 손해지.’

그러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남의 집에서 다른 여자와 떡을 친 건 아주 괘씸했지만, 여기서 서주환을 더 몰아붙여봐야 그녀에게 좋을 게 없었다.

약속한 자정까진 하루의 반나절이 남은 상황.

말을 주워 담을 게 아니라면 적당히 타협하는 게 옳았다. 애초에 절친인 민선하가 얽힌 문제를 크게 키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그보다 당장 중요한 문제도 생겼다.

식사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 민선하의 발언이 문제였다.

“주환이 얘 비중을 더 늘리고 싶다고?”

“응. 사실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였거든. 너희 둘한테 조언을 좀 구하고 싶어서.”

“얘가 우리 집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주환이가 있을 줄은 몰랐어. 채희 너 만나려고 온 거야. 자고 있는 것 같아서 깨우려고 들어온 거였고.”

그랬다가 이 사단이 난 것이었다.

이채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나.”

“…마음대로 들어와서 미안.”

“됐어. 나도 너희 집 맘대로 드나들었는데 뭐.”

애초에 둘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사이다. 오래된 인연이고 가까이 사는 술 친구였던지라 서로 간에 지나치게 벽이 없었다.

이채희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수정은 어떤 식으로 하려고? 말하는 거 보니까 대사 한두 줄 정도 수정하려는 게 아니지?”

“응.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에 손을 대야할 것 같아. 주환이 비중을 좀 늘려서 중후반부까지 끌고 가려고. 너랑 주환이 합이 너무 좋을 것 같거든.”

“그럼 나랑 얘 말고 다른 배우들 대본도 수정해야겠네? 수정 방향은 정한 거야? 설마 지금부터 생각해보겠다는 건 아니지?”

“사실 거의 다 나왔어. 둘 다 폰으로 보내줄게. 지금 한 번 볼래?”

이채희는 수저를 내려놓고 새롭게 수정된 각본을 살폈다. 꽤나 긴 분량. 역시 간단하게 얘기할만한 문제는 아니다.

‘재밌긴 한데…….’

각본을 보니 민선하가 왜 수정을 하겠다고 말하는지 알겠다. 바뀐 각본은 그녀와 서주환의 비중이 더 커졌고, 대치하는 구도가 더 자주 나왔다. 당돌한 여주와 쾌락살인마의 대치 구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주고 몰입감을 상승시킬 것이다. 민선하의 연출력이라면 수정 이전보다 더 임팩트 있는 장면을 많이 뽑아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이채희는 작품을 보는 안목이 좋은 편이다. 다만 글을 쓰는 것 자체에는 문외한이라 이 찝찝한 기분을 즉석에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정확히 콕 짚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말을 꺼낸 것은 서주환이었다.

“이대로 수정하게요? 정말로?”

그리 말하는 서주환의 표정은 전에 본 적 없이 찌푸려져 있었다. 황당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게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순간 이채희는 불안을 느끼고 급히 입을 열었다.

“주환아, 잠…….”

그러나 서주환이 말하는 게 먼저였다.

“선하 누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수정 전보다 재미없어요. 이야기가 난잡해졌어요.”

이채희는 낭패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아니나 다를까, 민선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망했다.’

평소엔 순해빠진 민선하지만 작품과 관련해선 쇠고집 같은 면이 있다. 거친 영화판에서 작고 순하게 생긴 여자감독이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자존심이다. 먼저 조언을 구했다곤 해도 말을 조심해서 해야 되는데 서주환은 돌아가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부딪혔다.

민선하는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려 웃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쨌거나 먼저 조언을 구한 것은 그녀였으므로 침착해질 필요가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제가 누나 작품 다 봤다고 한 거 기억하세요? 이 수정본 글 흐름이 누나 전작들 망한 거랑 비슷…….”

서주환의 말이 이어질수록 민선하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채희는 다급히 서주환을 말렸다.

“야, 너 왜 그래. 미쳤어? 갑자기 왜 막말이야.”

평소 재수 없을 정도로 능글맞게 선을 잘 타는 놈이 왜 이런단 말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망해버린 전작들을 언급하는 건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주환은 말을 멈추고 잠시 이채희와 시선을 마주쳤다. 장난기를 쏙 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끼어들지 말란 뜻이다.

이채희는 그 의미를 알아듣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평소와 다른 진중한 기색에 감히 끼어들기 힘들었다. 이상한 카리스마가 공간을 휘어잡았다.

서주환은 다시 민선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나, 조언 들으러 온 거라고 했죠?”

“…그래.”

“그럼 제 말 진지하게 들어주면 좋겠어요. 제가 누나 기분 나쁘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어요? 단지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또 글을 쓰는 작가로서 보고 느낀 그대로 말하는 거예요. 결론을 내는 건 어디까지나 누나 몫이고요.”

서주환은 여느 때보다 훨씬 진지한 기색이었다. 조금 전까지 섹스어필을 하며 능글맞게 웃어대던 사람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에 민선하도 신색을 바로잡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서주환은 괜히 도발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서주환이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지만, 전 연출 쪽은 잘 몰라요. 그러니까 영화 각본에 대한 건 당연히 선하 누나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다.

순문학, 영화, 드라마, 웹소설 등.

각 분야마다 글의 호흡도 다르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다르다. 웹소설은 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자유롭다. 그러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는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CG를 사용해야 한다면 거기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을 따져야 하며, 글을 영상으로 표현했을 때 어떤 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작법을 함에 있어 디테일이 다르다.

“하지만 글 자체는 누나보다 제가 더 잘 써요. 이건 확신해요.”

연출에 관해서라면 조언할 게 없겠으나, 글의 완성도만을 두고 본다면 분야가 다르더라도 그가 조언할 부분이 차고 넘쳤다.

서주환은 진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제 생각에 살인마 역의 김정민은 이미 완성된 캐릭터예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죠. 그런데 억지로 분량을 늘리니까 캐릭터성이 애매해졌어요.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고 초반부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캐릭터가 중반부를 넘어서 중후반부까지 간다? 그럼 살인마와 스토커가 같이 등장하게 되는 건데, 주연급 악역이 두 명이라 포커스가 흔들려요.”

“그건…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야. 하지만 연기와 연출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해. 배우들의 연기력만 받쳐준다면 굉장히 임팩트 있는 장면이 될 거야.”

“대신 다른 캐릭터가 조금씩 죽어버리는데요?”

“그것도 내가 연출로 커버할 수 있어. 이게 글로 봐서 그렇지 영상으로 보면 느낌이 다를 거야. 영상까지 생각하고 쓴 글이거든.”

“영상으로 보면 다를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연출에 문외한인 제가 할 말은 없죠. 그런데 감독님, 좋은 글을 좋은 연출로 만드는 거랑, 구멍 뚫린 글을 좋은 연출로 커버하는 거랑 뭐가 더 좋을까요?”

“그건…….”

순간 민선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에 변명하듯 말했다.

“…영화는 글만 있는 소설과 달리 각본과 연기, 연출이 모두 합쳐져야 해. 조금 부족해 보이는 이야기가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더 빛나는 경우도 많아. 이번에 수정한 각본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해.”

민선하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2차 창작되는 콘텐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엄청난 히트를 친 웹소설 A와 적당히 인기를 끈 웹소설 B가 있다. 그러나 웹툰화 제의는 인기가 부족한 B 소설에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 이유는 B 소설이 웹툰화에 더 어울리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각 분야에 어울리는 구성이 따로 있는 법이다. 민선하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았다.

서주환은 그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했다. 하지만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민선하가 수정한 각본은 너무 과하다.

‘누나는 납득하기 힘든 모양이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들으려 노력했으나 여전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일반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을 들먹이고 있었고.

하지만 아무리 분야가 달라도 그와 민선하의 이야기 구성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다름을 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을 때 하는 것. 그의 눈에는 수정된 각본의 안 좋은 부분이 낱낱이 보였다.

문제는 지금 이걸 하나하나 말해준다고 해서 민선하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서주환은 가늘게 뜬 눈으로 민선하의 상태창을 살폈다. 망상(A/A+). 왜 그녀의 재능이 상상이 아닌 망상인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지금까지 그녀가 대박과 쪽박을 오간 이유도 짐작이 갔다.

‘이 누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안 되는 타입이야.’

수정된 각본을 보니 확신이 생겼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왕창 때려 박은 티가 역력했다. 그나마 일정을 고려해 수정된 것이라 이정도로 그친 것이지, 시간이 충분했으면 더 이상한 각본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빈 공간을 채우기 급급한데, 오히려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덜어내지 못해 실패를 하는 사람. 그러니 여유가 있으면 온갖 아이디어를 더하고 더하다가 망치는 것이다. 반대로 여유가 없으면 최소한의 아이디어만 사용해서 오히려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이고.

‘어떻게 납득을 시킬까.’

잠시 고민하던 서주환은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에 이채희와 민선하가 몸을 흠칫 떨었다. 말없이 고민하던 서주환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 전 얻은 ‘카리스마’ 재능의 효과였다.

서주환이 말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시간?”

“…더 얘기 안 하고? 중요한 얘긴데 이거 먼저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민선하가 고개를 갸웃했고, 서주환의 말을 눈치 챈 이채희가 은근히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녀로선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좋았다.

서주환은 어디서 개수작이냐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현재 시각 7시.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시간.

그 안에 두 사람과 최대한 즐길 생각이다. 겸사겸사 민선하의 혼을 쏙 빼놓고 조종할 셈이기도 했다.

“자, 가죠. 섹스하러.”

일단 떡부터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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